Theme 가정부흥을 위하여 Date 2015. 5. 10
Text Jh19,25-27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 전도를 하다보면 제사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제사를 주장하는 사람들 자신들도 거의 모두 다 전통적인 제례를 따르지 않으면서 유독 기독교에만 불효라는 멍에를 씌워놓고 기독교신앙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불효의 도를 가르친다고 기독교를 매도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부모를 필리핀, 제주 등지에 버리고 오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부흥을 주요과제로 삼고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부흥되어야 할 대상 1번이 개개인의 심령이라면, 그 다음은 바로 가정 부흥입니다. 이 가정 부흥은 교회부흥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가정부흥을 가정복음화, 인가귀도가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면, 복음화가 이루어진 가정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효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효가 없는 가정을 부흥이 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이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마다 꼭 효가 있는 가정으로 부흥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의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앞에 있는 13,23에 보면 이 “사랑하시는 제자”는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자들 중에서 각별히 예수님과 인간적으로 가까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려서 그랬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간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순간에 제자 요한을 가리키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여기 “여자여”라는 표현은 우리말로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만 영어로는 “Dear woman!”입니다. 이 “Dear woman!”이라는 말은 모친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저는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효란, 부모님을 자기의 부모님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존재가 부모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어리광, 생떼, 무리한 요구를 부모에게는 합니다. 자신을 위한 배려와 희생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해주지 않는다며 행패를 부리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모든 행패를 다 감수합니다.
일전에 방송인 이경규씨가 건강검진을 받고 딸이 아버지의 검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다룬 T.V 프로를 잠깐 봤습니다. 아버지도 이제 가족들로부터 돌봄이 필요한 나이가 됐음을 알리고 아버지도 자신의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경규씨의 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연세도 있으시고 그런데 뭐 굳이 다이어트를 하려고 애쓰시고 또 운동도 그렇게 하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됐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그렇게 하셔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나이 먹어 늙어서 몸매를 가꾸고자 하는 노력을 과욕으로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 생각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께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했습니다.
부모님도 부모님이라는 이름 외에 당신만의 이름, 보호 받아야 하는 당신 자신만의 인생이 있음을 알라는 말씀을 “Dear woman!”이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들으셔야 하겠습니다. 모친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서만이 아니라 한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히 여기는 표현이 “Dear woman!”인 것입니다. 어머니는 내게는 어머니시지만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여인이고 아버지 또한 내게는 아버지시지만 한 남자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을 부모님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이해하고 계십니까? 한 여인으로서, 한 남자로서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고뇌와 감정,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계신 욕구와 기쁨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주고 계십니까? 가정에는 부모와 자식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몇 명의 남자들과 몇 명의 여자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주는 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해는 하고 알아주기는 해야 합니다. 그것이 ‘효’라는 사실을 주님은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던 그 순간에 알려주셨습니다.
3. 다음, 예수님께서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육신의 아들로서 더 이상 모친을 부양해야 할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 아들 역을 요한을 지목하여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부탁은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자녀들에게 대하여 어떤 효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해답입니다. 효란 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고 손과 발이 못에 박히고 허리가 창에 찔려 있는 상태에서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며, 반대로 반드시 실천해야 할 도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 연로한 부모님에 대한 태도들이 곱지가 않습니다. 병들었다고 구박, 늙어서 느리다고 구박, 냄새 난다고 구박합니다. 이런 서러운 일이 어디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주름살이 깊어졌고, 누구 때문에 손마디가 굵어졌으며 허리가 굽었습니까? 건강할 때 헌신했던 부모님을 병들었다고 구박하고 서로 떠넘기며 몇 푼 되지도 않는 간병비 챙길려고 쟁탈전을 벌이는 볼성사나운 꼴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 효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살다가 갑자기 어려운 일을 만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여러분은 무엇부터 포기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포기합니다.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를 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며 충성할 것을 포기합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마 부모 아닐까요? 돈이 없어 먹는 것을 줄이고 입는 것을 줄여야 할 때 부모님 드실 것을 줄이고 부모님 입을 것에 대하여 소홀이 여기며, 혹 부모님이 멋을 내려고 하면 코웃음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것은 포기하는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은 유일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과 같고 부모님을 포기하는 것은 지옥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고 성경 여러 곳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과 같은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성경 첫 장 27절에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던 날 인간에게 복을 주기 시작하신 분이 누구라 써놓았는지. 성경 마지막 장 계22,1에 인간을 위한 생명강이 발원한 곳을 찾아보니 하나님의 보좌가 발원지더라고 했지 않습니까? 신27,16을 보십시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불신자보다 악하다잖아요. 불신자가 어디갑니까? 지옥밖에 더 있습니까?
여러분, 최후의 순간까지 효를 명하신 주님의 당부를 기억하십시다.
4. 마지막입니다. 이 ‘효’를 지금 누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까? 제자 요한이지요. 마리아에겐 예수님 말고도 둘째 셋째도 있었고 딸들도 있었습니다.(마13,55-56)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멀쩡히 아들 딸 다 있는 분에 대한 효를 그들에게 맡기지 않고 제자 요한에게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 요한이 누굽니까? 마12,48 이하에 의하면 예수님의 영적 가족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의하면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키고 있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도망갔지요. 다른 제자들은 숨어 있거나 멀리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 27절에 의하면 요한은 그날로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섬겼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남겨진 역사유적에 의하면 마리아는 요한의 품에서 인생을 마감했다고 하며 터키에 가면 그 기념 교회당 유적이 지금도 있습니다.
효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에게 남겨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대신하여 믿음 있는 요한을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 빈자리를 요한으로 채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가정은 효를 실천하는 가정으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어버이날만 하지 말고, 평상시에 이 마음을 가지고, 효를 실천하는 가정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먼저, 어른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 이해하셔야 합니다. 말을 걸고 의논하는 상대로 삼으셔야 합니다. 출입할 때마다 인사를 하십시오. 용돈을 드리거나 과자 하나라도 신기하고 맛있는 것을 사드리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불효자들 가인, 함, 롯의 두 딸, 에서, 삼손, 홉니와 비느하스, 암논, 압살롬 등...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잘 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26-27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