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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5월 에베레스트 정상등정후,, 12명이 폭설에 사망하는 그때의 경험을 사실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 - 우체국 직원으로 야근하며 등반비용을 모은 "더그 한센", 50세의 사업가 "벡 웨더스", 산에 미친 청년 "앤디 해리스", 일곱 봉우리를 목표로 한 일본여성 "남바 야스코", 백만장자 "샌디 피트먼" 등 |
▣ 1장. 정상에서
ㅇ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정상(해발 8,848m)
- 57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였다. 지난 4일간 먹은 것은,, 라면 국물 한 공기와 땅꽁 한 줌 뿐이다.
- 몇주간의 심한 기침으로 이제는 숨 한번 쉴때마다 양쪽 갈비대에서 격렬한 통증이 일곤했다.
- 아주 적은 량의 산소만이 뇌로 흘러들어 오는 바람에 사고능력은 원만한 어린아이만도 못했다.
- 오후 1시 17분,, 나는 세계의 지붕에서 5분도 채 머물지 않았다.
▣ 2장. 가장 높은 꿈
ㅇ 1852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발견
- 9년뒤 인도 삼각측량국은 전임 측량국장인 " 조지 에베레스트"경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15봉에서
『 에베레스트 산』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 현지 토착지명으로는 티베트 사람들은,, 초모롱마(이 세상의 여신이자 어머니)
네팔 사람들은,,, 사가르 마타라(하늘의 여신)이라고 불렸다.
ㅇ 최초 등정은,, 1953.5.29 정오 직전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진 노르게이"
- 힐러리 스텝,, 험난한 코스로 높이 13m의 거대한 바위와 빙벽으로된 절벽
▣ 3장. 낮선 사람들과 한팀이 되어
ㅇ 1996년 3월 29일 ,, 총 12명(가이드 3명, 전담 의사 등 지원 팀, 고객 7명)
- 1인당 비용,, 65,000달러(네팔까지 항공료, 개인장비 구입비는 별도)
가이드 | - 로브 홀,, 총 대장 - 앤디 해리스,, - 마이크 그롬,, 33세, |
고객 | - 존 크라카우어,, 아웃사이더〉의 기자 및 집필담당 - 루 카이슈케,,, 변호사 - 남바 야스코,, 47세, 회사 인사과장, 7대 봉우리 등정 경험 - 벡 웨더스,, 49세 병리학자 - 스튜어트 허치슨,, 34세, 심장분야 전문 연구원 - 존 대스크,, 54세, 마취전문의, 군인 출신, 산악인 - 프랭크 피슈벡,, 53세, 출판업자, 에베레스트 3번 도전, 정상 100m 아래 사우스 서미트까지 올라감 - 더그 한센,, 46세, 우체국직원, 사우스 서미트까지 올라감 |
지원팀 | - 헬렌 월튼,, 39세, 전속의사. 베이스 켐프 매니저 - 캐롤라인 매켄지,, 20대 후반 산악인이며 전속의사 |
▣ 4장. 여신의 발치를 가다.
ㅇ 1996. 3.31,, 피크팅(해발 2,800m)
ㅇ 도보여행,, 처음 엿새간은 꿈결처럼 그윽하게 흘러갔다.
- 내 백펙속에는 재킷 한벌과 캔디바 몇개, 사진기 정도만 있어서 무겁지도 않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 고개를 들면 험준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꿰뚫을 듯이 치속아 오른 장엄한 스카이라인이 보였고,, 이국적인
아치가 풍기는 낮선 고장을 홀가분한 기분으로 즐기면서 걷다보면 자주 황홀한 도취 상태가 찾아 오곤한다.
ㅇ 1996. 4.6,,, 쿰부빙하의 끝부분에 도착
(해발 4,877m로서 초록빛 식물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 5장. 베이스 캠프 도착
ㅇ 1996. 4.8 로부제(해발 4,938m)
- 나일론 돔으로 이루어진 원형극장같은 도시
- 베이스 캠프(해발 5,364m), 14개 등반대와 세르파들을 위한 300채 이상되는 텐트
ㅇ 6주간의 고도 적응기간,,,
- 베이스 캠프에서는 해수면 대기산소량의 1/2 정도, 정상에서는 해수면 대기산소량의 1/3정도로 줄어듬
- 고도상승에 따라 인간의 몸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적응한다.
호흡수의 증가, 혈액의 PH 변화, 산소를 나르는 붉은 피톨(적혈구,, 적혈구는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고
불필요한 이산화탄소는 배출하는 이중의 역할을 함)의 급격한 증가,,, 등
▣ 6장. 얼음궁전으로 첫 나들이
ㅇ 1996. 4.12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해밸 5,364m)
ㅇ 첫번째의 고도 적응훈련 및 등산장비 정검
- 베이스캠프에서 800m 위에 자리잡은 제1 캠프까지 하루에 왕복하는 여행
- 사용치(길 들이지) 않은 새 등산화,, 루 카이슈케, 벡 웨디스, 스튜어트 허치슨
ㅇ 가장 인상적인 대원은 프랭크 피슈벡(53세, 3번 도전 경험)
- 한결같이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처음에는 남보다는 느리게 올라 갔으나
- 빙폭 꼭대기에 이를 무렵에는 어느새 모든 사람들을 추월하였으며,,, 한번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 7장. 사고의 예감
ㅇ 1996. 4.13 제1 캠프(해발 5,944m)
ㅇ 무 자격자,, 고산 등반경험 미숙자/크램폰(10개 정도의 강철발톱이 있는 아이젠) 착용방법을 모르는자
① 타이완팀,,, 매킨리 참사, 리더 "마칼루 고"
- 예) 타이완팀이 에베레스트에 나타났다는 것은 다른 등반대에 큰 근심거리임
타이완팀 사고시,, 다른 팀들은 목숨을 건 구조와 정상 오를 기회를 상실할 수 도 있다.
② 단독으로 정상에 오르겠다는 노루웨이 청년
③ 남아프리카팀,, 리더 "우안우달"이 중심이 된 흑백 혼성등반대
- 고산등반 경험없고, 리더쉽 부족하고, 등반대 상호관의 약속과 계약을 파기하며 신뢰없는 거짓말 팀
- 예) 직언하는 전속의사를 철수시키고, 후원 신문기자를 배척하며
심지어 만델라 대통령의 친서를 받은 뒤에도 타협치 않음
▣ 8장. 세르파들과 백만장자
ㅇ 1996. 4.16 제1캠프(해발 5,994m)
ㅇ 2번째의 고도 적응훈련,,,
- 베이스캠프 → 빙폭 → 1캠프(2박) → 2캠프(4박, 해발 6,492m) → 베이스캠프
- 제1캠프에서 → 제2캠프간의 고도차이 약 550m, 거리 6.4㎞ 임
- 제2캠프에는 120동의 텐트가 있으며,, 술에 심하게 숙취된 것 같아, 2일 동안 누워서 지냄
ㅇ 샌디 힐 피트먼,,,
- 피셔팀의 인터넷 통신원(NBC 인터액티브 미디어에 기사 전송)
- 백만장자, 사교계 저명인사, 산악인, 세번째 에베레스드에 도전)
▣ 9장. 제3캠프 도전실패
ㅇ 1996. 4.28 제2캠프(해발 6,492m)
- 제2캠프 오전 4시 자명종이 삑삑 거리기 시작했을때, 나는 이미 깨어있었다.
나는 희박한 대기속에서 숨을 쉬려고 헐떡이면서 그 밤을 꼬박새우다시피 했다.
ㅇ 3번째 고도 적응훈련,,, 2캠프에서 긴하루를 보냄
- 베이스캠프 → 2캠프 → 3캠프(1박 계획, 7,315m)
- 산 위쪽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칼날같은 바람의 풍속냉각현상으로 기온은 영하 40도로 뚝 떨어졌다.
- 거센바람, 거대한 눈가루의 소용돌이가 해변에 부서지는 흰파도처럼 로체사면을 휩쓸고 있다.
해발 7,010m 지점,,, 발의 감각은 무뎌지기 시작했고 손가락 역시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다.
- 호흡기 손상,,, 눈가루가 가득한 싸늘한 공기를 폐속 깊숙이 들어 마신 탓으로 후두가 얼어 버린듯하다.
▣ 10장. 준비완료
ㅇ 1996. 4.29. 로체사면(해발 7,132m)
ㅇ 더그,, 한명만 빼고 대원 전원이,,, 2캠프 → 3캠프(1박)
- 한 없이 길어보이는 나일론 밧줄에 주마를 걸고,, 300m이상 치솟아 오른 경사면을 올라갔다.
- 크램폰을 빙벽에 박고 한발 옮기는데 두번의 심호흡을 하며, 3시간 혼신의 힘을 다해 빙벽과 씨름을 하였고
앞으로도 1시간의 고투를 해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위 가파른 사면위의 텐트를 향하여 달팽이 처럼,, 느릿 느릿하게 기어 올라갔다.
ㅇ 고도 적응훈련,, 3캠프 → 2캠프(1박) → 베이스캠프로 훈련
- 해발 7,300m 지점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잠을 자지 못하고,, 이틀날 아침에 2캠프로 내려가고
- 하루뒤 5월 1일에는 정상공격을 하기위한 힘을 되찾기위해 베이스 캠프로 되돌아 감.
* 3주 지난후,,, 베이스 캠프의 대기가 풍요롭다고 할 만큼, 산소로 가득찬 것을 느꼈다. - 하지만 몸 상태는 좋지않았다. 9㎏의 근육(양 어깨와 허리, 다리 근육 등)을 잃었다. 피하지방층이 모조리 에너지로 변화되고 소진되어 추위에 훨씬 민감하게 되었다. - 가장 큰것은 가슴이었다. 마른기침,,, 가슴의 연결조직이 손상되어 기침할 때 마다 누가 양쪽 갈빗대 사이를 몸둥이로 후려치기라도 하는 것 처럼,, 격심한 통증이 일었다. * 뇌수종(HACE, 높은 고도로 인한 뇌수종) - 산소가 부족한 뇌혈관에서 체액이 스며나와 뇌가 심하게 부어 오르면서 발생 - 두개골 안쪽으로 압력이 가해지면서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술에 만취한 것과 비슷한 현상, 걷지도 못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상실되고, 옷 입지 못하고,,) - 그 다음단계는 혼수상태가 된다. →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3~4일이 지난후에야,,, 비틀거리지 않고 제대로 걸을수 있었다. |
▣ 11장. 첫번째 죽음을 등지고 정상으로
ㅇ 1996. 5.6 베이스캠프(해발 5,364m)
등산의 매력의 상당부분은 산에서는 인간관계가 단순화되고, 우정이 매끄러운 상호작용으로 축소(전쟁터에서 처럼)되고,,, 관계 그 자체가 다른것(산이나 도전 자체)으로 바뀌는데에 있다. - 데이비드 로버츠, 『가장 뛰어난 주역들』, 『승자의 순간들』에서 |
ㅇ 5월 6일,,, 새벽 4시 30분,, 정상등정길에 나섰다.
- 햇살이 빙하를 내비치고 찜통같은 더위로 모자속에 눈 뭉치를 거듭거듭 집어 놓어 넣었지만, 끝없이 계속
되는 오전시간내내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혀가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입으로
숨쉬기가 힘들었고 명료한 생각과 판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 오전 10시 30분경 제2캠프에 도착하고 게토레이 2리터를 먹고 난후에야 내 몸의 평형상태는 정상이 되었다.
ㅇ 5월 7일,,, 제2캠프에서 하루종일,, 휴식
ㅇ 5월 8일,,, 2캠프 → 로체사면 등반 → 3캠프 도착(해발 7,300m)
- 마실물을 만들기위해 피켈로 얼음을 캐서 녹여야하며, 탈수증방지를 위하여 매일 4리터의 물을 마셔야함
- 해질무렵,, 루와 프랭크가 가장 늦게도착
- 산소통과 조절장치, 마스크를 지급받고 체력유지를 위하여 보조산소로 호흡
(보조산소는 정신과 육체기능의 감퇴를 저지해 주고 잠자는데 도움을 준다.
ㅇ 5월 9일,,, 3캠프에서 → 4캠프
* 지난 6주간의 몇건의 큰 사고들 ① 세르파 텐징이,, 크레파스에 추락한 사건 ② 세르파 앙가왕 톱체가,,, HAPE에 걸린뒤 본인이 전통의식에 의한 치료(보조 산소로 호흡)거부로 → 급격히 증세악화되고 병원 이송되었으나 → 얼마후 사망 ③ 맬 더프팀의 젊은 영국인 진즈 플런이,,, 빙폭 꼭대기에서 심한 심장발작을 일의킨 사건 ④ 맬 더프팀의 덴마크인 킴세이베리,, 빙폭에서 셀락이 넘어지는 바람에 갈비뼈가 몇대 부려진사건 ⑤ 대만팀 첸(36세),, 3캠프에서 대변을 보려고 텐트밖으로 나오면서 밑창이 미끄려운 운동화만 신고 나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렸으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다가 로체사면으로 굴려 떨어졌다. - 기사회생으로 24m 아래의 크레바스에 거꾸려 처박혔고 세르파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그 충격으로 그 다음날 하산하는 도중에 사망함 |
▣ 12장. 쌓여간 작은 잘못들
ㅇ 1996. 5.9. 제3캠프(해발 7,315m)
나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하산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그 무수한 노고, 잠을 설친 그 무수한 밤, 그 무수한 꿈들 덕분이었다. 우리는 다음번 주말에 한번 더 시도하기 위해 가볍게 돌아 올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 하산한다는 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큰 의문부호가 찍힌 미래로 내려간다는 걸 뜻한다. 그냥 계속 올라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 - 토머스 F. 혼베인 『에베레스트 서쪽 능선』 |
ㅇ 1996. 5.9,, 3캠프 → 4캠프
- 아래에는 다른 등반대원 50명 가량이,, 길게 늘어서서 올라오고 있으며 교통마비 형상이 우려된다.
- 로체사면에는 단 한줄의 밧줄만 걸려있어 느린 사람들을 추월하기가 쉽지 않다. 3명을 추월하고 『옐로
밴드』(잘 부서지는 황토색 석회암 절벽)을 넘어 설 즈음,, 대열의 선두에 나서게 되었다.
- 느리면서 꾸준한 속도로 로체사면 꼭대기 부분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조각조각 부서져 나가는 검은색
편암이 크게 돌출된 『제너바 스퍼』 꼭대기 7,894m 지점에 멈춰서서 물을 마시면서 주위풍경을 감상했다.
- 수정처럼 투명하게 아른거리는 희박한 대기로 인해 아주 멀리있는 봉우리들 까지도 손 끝에 잡힐 것 처럼
가깝게 보였다. 한낮의 햇살로 눈 부시게 빛나는 에베레스트의 피라미드 모양의 정상이,,, 간간히 지나가는
엷은 구름들 사이로 성큼 다가왔다.
ㅇ 오후 1시,,, 정상 공격의 발진 기지격인 『사우스 콜』도착
- 해발 7,900m 황량한 고원이자 양쪽으로 까마득하게 치솟은 "로체"와 "에베레스트" 성벽들 사이에 형성된
넓은 골짜기 『사우스 콜』은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축구장 8배 정도의 넓이이다.
- V자형 골짜기를 지나가는 제프기류는 가속도(시독 50노트)가 엄청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 날이 어두워지자 정상 공격중이던 『모테네그로 팀』이,,, 폭풍으로 『힐러리 스텝』 바로 밑에서 퇴각하여
사우스 콜로 돌아와, 정상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ㅇ 오후 7시 30분,,, 기적같이 강풍이 갑자기 뚝,, 끊긴 것이다.
ㅇ 자정 25분전,,, 산소 마스크를 쓰고 헤드램프를 켜고 어둠속으로 나섰다.
- 홀팀 인원은 15명,, 마운틴 매드니스 팀(스콧 피셔 팀, 15명)은 30분 뒤 늦게 출발
- 타이완 팀의 "마칼로 고"는,, 당초 같은날 정상등반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무시하고, 피셔팀이 떠난 직후
2명의 세르파와 함께 출발
- 남아프리카팀은,, 3캠프에서 사우스 콜까지 오를때 많이 고생한 탓으로 진이 빠져 텐트밖으로 나오지 못함
ㅇ 5월 10일,,, 그 날 한밤중 3개팀 33명이 정상등반 출발
- 우리등의 운명은 이미 얽혀들기 시작하고 이었으며
- 그리고 그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ㅇ 날선 추위로 투명한 그날 밤은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 그 아름다움은 산을 오를수록 더 하였다. 그 많은 별들, 8,481m인 『마칼루』의 어께위에 떠오른 하현달이
내 발밑의 산 비탈에 푸르스름한 빛을 흩뿌려 굳이 헤드램프를 켤 필요가 없었다.
* 등반 대장/가이드인 "로브 홀",,, 정상등반길에는 자기 지시를 따를 것을 강조함 ① 정상 등반길에는 어떤 반대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 ② 동남능선 꼭대기 지점(발코니 8,412m)까지는 앞뒤 대원들 간격을 100m(가이드 시야)이내로 유지 |
ㅇ 오전 5시 30분경,,, 해가 뜨기 직전, 『동남능선 』꼭대기에 도착
-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다섯 봉우리 중의 셋이,, 파스텔 색조의 새벽하늘을 배경으로하여 우람하고 험준한
실루엣으로 떠 올랐다.(고도계는 8,412m)
- 등반대장 "로브 홀"이 『발코니』에서 우리팀 전원이 모이기 전에는 전진하지 말라는 지시대로,, 백펙을
깔고 90분이상 기다리자 후미로 올라오던 "로브"와 "벡"이 나타났다.
- 기다리는 동안,,, 피셔팀과 타이완팀이 나를 앞질러 갔다.
34년에 걸쳐,,, 산을 타면서 우리가 등산을 통하여 얻는 가장 큰 원칙은 ① 자기를 신뢰해야 하고 ②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적절히 다스려야 하며 ③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
▣ 13장. 반환점
ㅇ 1996. 5.10 동남능선(해발 8,412m)
이곳에는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더 없이 가파른 능선들과 보기만해도 섬뜻한 천길 낭떠러지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오르기 쉬운 눈 비탈에 관한 얘기는 신화적인 얘기에 불과한다는 점 정도만 말해 두겠소,,, 이건 더 없이 스릴에 넘치는 일이오. 이 일이 나를 얼마나 사로 잡는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재감을 안겨 주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성명할 길이 없소, 이 곳의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그렇고!! - 조지리 맬로리, 1921. 6.28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ㅇ 5월 10일,,, 제4캠프에서 산소통(3㎏) 2개씩 지고 정상으로 출발
- 사우스 콜 위,, 곧 죽음의 지대안에 들어서면 우리의 생존은 시간과 각박한 다툼을 벌이게 된다.
- 산소 한통으로 5~6시간 지탱할 수 있으며, 산소 부족시에는 HAPE/HACE/체온 저하/판단력 손상/동상
등으로 죽음을 맞이 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ㅇ 해발 8,530m 지점, 높이 30m 암벽 앞에서,, 3개팀 대원들로서 병목현상 발생
- 오전 후반부터 밧줄이 설치된 구간,,, 교통 혼잡상태로 시간 지체
- 특히, 타이완 팀은 특이한 등반방식으로 속도가 아주 느렸다.
ㅇ 하산시간은 오후 1시~2시,,, 절대적인 하산시간전에 정상 등정 가능성이 낮은 3인
- 오전 11시 30분,, 스튜어트 허치슨, 조 대스크, 루 카이슈케 하산 결정
* 산을 타다보면,, 중도에 목표를 포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의 핵심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 붙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죽을 수도 있다. 특히 8,000m 위에서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상 정복열정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 버린다. - 등산비용 7만달러라는 거금이 들었고, 몇 주동안 추위/고산병 등 혹독한 괴로움을 겪었다. 모두들 야망이 크고 지는 일에 익숙지 않으며 중도 포기하는 것에는 더 더욱 익숙지 않는 사람들이 었다. - 그 날 그렇게,,, 현명한 판단을 내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
ㅇ 오전 11시경,,, 『사우스 서미스』에 도착하니
- 눈 앞에는 또다른 병목구간으로,, 『힐러리 스텝』이라는 수직의 암벽구간
- 거의 수직에 가까운 얼음으로 뒤덮인 높이 14m의 얼음이 뒤덮힌 암벽은 아주 위협적인 모습이다
ㅇ 산 꼭대기를 향해,,, 마지막 몇 걸음을 천천히 옮겨 딛었다.
- 그건 물속에서 정상속도의 1/4정도로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 산소통과 알루미늄 측량장대로 장식된 비좁은 얼음능선 꼭대기가 나왔다.
불교주문이 적힌 깃발들이 사납게 물어뜯고 있었으며
- 산의 다른쪽 사면,, 저 아래에는 티베트 고원의 암갈색 대지가 지평선 너머까지 끊없이 펼쳐져있었다.
ㅇ 정상에 이를 때면 온 몸이 벅찬환회로 들끓어 오를거라 예상했으나
- 에베레스트,,, 그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하였다.
- 앞으로도 위험스러운 한산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암담한 기분에 자축하고 싶은 충동같은
것은 완전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 14장. 재난의 서막
ㅇ 1996. 5.10,,, 오후 1시 12분 정상(해발 8,848m)
산을 오를 때뿐만 아니라 내려가는 동안에도 나의 의지력은 무디어 졌다. 산을 오르면 오를 수록 애초의 목표는 점점 더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 주의력과 기억력도 떨어졌다. 이제는 정신적인 피로감이 육체적인 피료감보다 훨씬 더 켰다. 아무 것도 하지않고 앉아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그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 었다. 탈진상태로 인한 죽음은 동사와 마찬가지로 아늑하고 기분 좋은 죽음이다. - 라이홀드 매스너, 『수정의 지평선』 |
ㅇ 산소부족으로 정상등정 기념사진도 촬영하지 않고 서둘려 하산
- 기념품 삼아,,, 혈암이 노출된 땅에서 조그마한 돌들을 한 움큼 집어들고 파카주머니에 넣었다.
- 조금전 구름들이 막 골짜기들을 채우면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만 남기고 모든걸 뒤덮어 버리고 있었다.
- 『힐러리 스텝』 꼭대기에서,,, 차례로 한명씩 올라오는 열 켳명의 한무리의 사람들로 인하여, 보조산소
없이 1시간을 기다림
ㅇ 오후 3시 30분경,, 마이크 , 야스코, 앤디보다 앞서서 『사우스 서미트』를 떠났으며
-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두꺼운 구름층 속으로 들어섰다. 그 때부터 가는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면서 사방이
어둠침침한 빛속에 잠겨들어 어디가 능선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 정상에서 멀어 질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기만 하였다.
ㅇ 오후 4시 45분경,,, 『발코니』(동남능선 8,412m)
- 벡 웨더스 발견,,, 벡은 몇년전 시력교정을 위한 "방사형 각막 절개수술"을 받음, 수술영향으로 높은 산에
오르면 기합이 낮아지면서 시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됨.
- 3캠프에서 → 4캠프로 오르던날 오후에는 시력이 아주 나빠져,, 1m이상은 보이지 않았고
- 정상 등정날,, 일출시 『발코니』에서는 시력이 한층더 나빠지게 되어, 거리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됨
ㅇ 평상시 산행시,, 지형지물을 숙지하여 하산시 이정표로 하는 습관훈련
ㅇ 오후 6시경,,, 60노트가 넘는 강풍과 폭풍설의 양상을 띨 무렴,,
사우스 콜 위쪽 200m 눈 비탈에서 고정 밧줄을 만나게 됨
- 몇 분뒤 또 다시 질식할 것 처럼 숨이 탁 막히는 순간, 나는 산소가 다 떨어 졌다는 것을 느꼈다. 산소가
없다보니 내려가는 속도가 훨씬 더 느려졌고, 좀 더 자주 걸음을 멈추고 쉬어야 했다.
- 저 산소 때문인가? 환각 상태의 현상인가? 나 자신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이상한 기분을 맛 보았다.
마치 내가, 내 머리위 1~2m 상공에서,,, 나 자신이 내려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왔다,
- 강풍으로 기온이 영하 60도 가까이 떨어졌으나 이상하게도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ㅇ 오후 6시 30분,,, 제4캠프 전의 수직절벽 70m 지점에 도착
- 단단하고 매끄러운 얼음으로 뒤덮힌 경사진 빙벽,,, 밧줄도 설치되어있지 않은 수직절벽을 내려가야 했다.
- 실수하면 끝장이기에 그 곳을 내려가기 전에 온 몸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기위해 잠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일단 주저앉고나니 무력증이 찾아왔다.
ㅇ 갑자기 가이드인 "앤디 해리스"가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 무심코 헤드램프로 그의 얼굴을 보니 소름끼치는 모습을 하고있어 움찔했다.
그의 두빰은 하얀서리로 뒤 덮였고, 한 쪽 눈은 감긴채 얼어붙어 있었다.
- "텐트가 있는 곳이 어느 쪽이죠?",,, 앤디는 절박하게 피난처를 찾고 있었으며, 급경사 절벽을 엉덩이로 털썩
주저앉고 내려가기 시작하려다가 70m 얼음비탈을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ㅇ 15분간 크램폰으로 빙벽을 찍으면서 한발 한발 내려가는 과정은,,,
힘겹고도 아슬아슬한 것이긴 했지만 안전하게 얼음비탈 밑에 이르렀고, 10분후 내 텐트앞에 이르렀다.
- 나는 크램폰을 묶은채로 텐트안으로 들어가, 서리로 뒤 덮인 바닥에 그대로 퍼질러 눕고 말았다.
그제서야 내가 심한 탈진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 하지만 나는 안전했다. 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ㅇ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모든것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19명의 남녀들이 그 산에 묶어있고 살아 남기위해 필사적으로 발 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 15장. 악몽의 사우스 콜
ㅇ 1956. 5.10 오후 1시 25분 정상(해발 8,848m)
ㅇ 오후 1시 25분 정상,,, 가이드 닐 베이들맨과 고객 마틴 애덤스 정상 도착,,
- 조금 후 앤디 해리스, 아나톨리 부크레예프 45분경에는 크레브 쇼에닝
그리고 2시가 되고 있었다. 각 팀의 라더들은 오후 2시는 하산/돌아서는 시간으로 정하고 강제 적용하기로 하였다. |
ㅇ 오후 2시 이전에 정상에 도착한 사람은 ,,, 총 6명
- 저자, 닐 베이틀맨, 마틴 애덤스, 앤디 해리스, 아나톨리 부크레예프, 클레브 쇼에닝
ㅇ 오후 2시 10분경,,,
- 샌디 피터먼, 샤럿 폭스, 롭상 장부, 팀 매드슨, 레네 가멜가르드, 로브 홀, 마이크 그룸, 남바 야스코
- 3시 40분경,, 피셔,
- 4시경에는 "더그 한센"이 정상도착 함
ㅇ 오후 3시 10분경,, 하산하는 피셔팀의 가이드 "베이들 맨" 그룹(샌디 피트먼, 가멜가르드, 폭스, 매드슨)
ㅇ 오후 6시 45분경,,
- 베이들 맨 그룹은 4캠프위 70m 수직빙벽위에 도착했으나,, 눈바람과 거센바람으로 수직빙벽 우회
- 베이들 맨, 그룸, 폭스, 매드슨, 웨더스, 남바와 2명의 세르파(타서 체닝, 앙가왕 도르제)
ㅇ 오후 7시 30분경,, 사우스 콜 정상에 도착했으나,, 폭풍으로 4캠프를 찾지 못함
ㅇ 그날 초저녁,, "스투어트 허치슨"이 나와 다른 텐트의 고객/세르파들을 깨워서,,,
-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텐트로 찾아 올 수 있도록 냄비를 두들리고,, 하늘로 손전등을 비춰보자고
했으나, 모두들 강추위와 피로에 지쳐 응할 수 없었다.
- 구조팀을 조직하려는 허치슨의 노력은 아무소득없이 끝나고 말았다.
- 허치슨 혼자서,,, 폭설속으로 6번씩이나 나갔으나 강풍과 추위로 15분이상은 버티질 못햇다고 했다.
ㅇ 오후9시경,,, 제4캠프, 행방불명된 19명
ㅇ 오후 12시 45분,,, 6명 폭설속에서 4캠프에 도착
- 귀환 대원 4명( 닐 베이들맨, 그룸, 클레브 쇼에닝, 가멜가르드)와 2명의 세르파
- 걸을 수가 없어서 폭풍속에 남아있는 5명(피트먼, 포스와 팀 매드슨, 웨더스, 남바)의 위치를 알려줌
ㅇ 부크레예프(러시아) 혼자,,, 폭풍 아가리속으로 구조활동 나섬
- 1차,, 한시간 동안 사우스 콜을 헤맸지만 찾지 못함
- 2차,, 닐 베이들맨과 쇼에닝에게 위치 확인후 다시 폭풍속으로 나아감.
팀 매드슨의 헤드램프 불빛을 보고 행방불명된 5명을 찾았으나,, 한번에 한명만 구조할 수 밖에
없었다.
- 처음에는 폭스를 구조하고
ㅇ 오전 4시 30분,,, 2명 구조되어 4캠프 도착하고, 2명은 구조되지 못함
- 그 다음에는 샌디 피터먼(여)를 붙잡아 일으켰고, 팀 매드슨은 뒤 쫒아 가고 4캠프에 도착
- 그리고 상태가 좋지 못한,, 남바 야스코(여), 벡 웨더스는 끝내 견뎌내지 못하여 구조되지 못함
▣ 16장. 믿을 수 없는 착각
ㅇ 1996. 5.11 새벽 6시, 사우스 콜(해발 7,925m)
- 실종자 : 가이드 앤디 해리스,,, 전날(5월 10일) 70m 빙벽에서 미끄러지면서 하산하는것을 보았던 기억?
추정 1. 사우스 콜 서쪽 끝인 높이 1,200m가 넘는 로체사면의 빙벽에서 실종
추정 2. 정상 등정 후 제 4캠프로 돌아 오지 못함
- 구조요청 : 대장 로브 홀과 고객 더그 한센,,, 하산길의 정상 능선에서 구조요청
(더그 한센,, 체력 고갈 및 산소 부족으로 『힐러리 스텝』을 내려오지 못함,
로브 홀,,, 고객을 두고 혼자 하산할 수 없다는 대장)
- 사망자 : 벡 웨더스, 남바 야스코
ㅇ 비상사태인대도,, 무전기를 빌려주는 것을 거절한 남아프리카팀의 리더 "우달"
▣ 17장. 저 위에 그가 아직 살아있다.
ㅇ 1996. 5.10 오후 3시 40분 정상(해발 8,848m)
우리가 조난 당한 것은 갑자기 악천후가 닥쳐왔기 때문이긴하나, 그 것만으로 모든게 만족스럽게 설명되는 건 아닌듯하다,,, - 오츠선장의 발병 - 연료부족과 - 마지막 보급저장소로 부터 11마일 직전에 불어 닥쳐온 폭풍 모든 사태들이 우연히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뿐이므로 우리로서는 하등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을 뿐,,, - 로버트 팔콘 스콧, 1912년 3월 29일 남극대륙에서 죽기직전에 쓰여진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일부 『스콧 최후의 원정』에서 |
ㅇ 5월 10일,오후 3시 40분경,,, 정상
- 정상에 스콧피셔와 세르파 대장 롭상 장부,, 몇분뒤 마칼루 고와 2명의 세르파 도착
- 불길한 구름의 파도가 정상능선에 서서히 차오를 무렵,, 로브 홀이 도착하고 더그 한센을 기다림
ㅇ 오후 3시 55분,,, 피셔팀원 하산
- 스콧피셔, 롭상 장부, 마카루 고와 그의 세르파
ㅇ 오후 4시경,, 더그 한센 정상에 도착
ㅇ 오후 4시 30분,, 힐러리 스텝 위쪽에서
- 산소가 다 떨어진 더그 한센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는 정상에 오르느데 모든 힘을 다 소진해 버려
하산할때 쓸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 로브 홀은 시급히 산소가 필요하다고 무전 연락
- 앤디 해리스,,, 중간에서 무선 연락을 받고 사우스 서미트에는 산소통이 비어 있다고 회신함
(이때의 앤디 해리스는 저산소증으로 치매 상태였으며,
『사우스 서미트』에는 산소가 가득한 두개의 산소통이 있었다.)
ㅇ 오후 5시 직전,, 그룸은 간신히 로브 홀과 교신이 되어 『사우스 서미트』에 산소가 있다는 사실 통지함
ㅇ 오후 5시 30분경,, 앤디 해리스,, 산소를 전달하기 위하여 느리게 올라가고 있었다.
(증상이 더욱 악화된 상태에서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해리스는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렀다)
ㅇ 고객을 두고 내려갈 수 없다는 로브 홀
- 오랜 친구 가이 코터와 베이스 캠프의사 캐롤라인 매켄리, 홀의 아내 잰 아놀드,,, 하산을 설득
- 오전 9시,, 보조산소없이 8,748m에서 16시간을 보냄(폭풍설, 영하 70도이하)
- 오후 6시 20분경,, 아내와 마지막 통화
▣ 18장. 조난자를 버려두고 오르는 사람들
ㅇ 1996. 5.10 동북능선(해발 8,702m)
에베레스트는 이 세상의 물리적인 힘의 화신이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으로는 그 것과 맞붙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모든 산악인들에게 불러 일으킬 짜릿한 전율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것이 영국에 안겨다 줄 영예, 저 세계적인 관심, 그 것이 자신에게 가져다 줄 명성, 자신이 자신의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영속적인 만족감,,, 세번째로 돌아 서느냐, 아니면 죽느냐의 두가지 대안 가운데서 멜로리에게는 후자 쪽이 훨씬 더 쉬운 길이었으리라. 첫번째 대안이 안겨주는 고통은 인간으로서, 산악인으로서, 그리고 예술인으로서 그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 프랜시스 영허즈 번드 경, 『에베레스트 산의 서사시』 1926년 |
ㅇ 5월 10일 오후 4시경,, 『인도-티벳트 국경경비대』 등반대
- 3인(체왕 스만라, 체왕 팔조르, 도르제 모룹)이 티벳트 사면 북동능선으로 정상 등정
ㅇ 5월 11일 오전 1시 45분,, 일본등반대, 티베트 북동능선으로 정상으로 출발
- 일본 산악인 2명(21세 시게카와 에이스케, 36세 하나다 히로시)과 3명의 세르파
ㅇ 오전 6시,, 일본 등반대, 조난자 1명 발견
- 제1스텝의 험준한 바위벼랑 주변에서 눈밭에 쓰러진 팔조르로 추정되는 조난자 발견
ㅇ 오전 7시 15분,, 제2스텝(푸석푸석한 7m의 편암절벽)에서 조난자 2명 발견
- 90분간 악전고투끝에 절벽을 넘어섬,, 꼭대기에서 스만라와 모름을 만남,, 그들은 죽기 입보전이었으나
일본인들은 그 들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고 물이나 음식, 산소통도 건네주지 않았다.
ㅇ 오전 11시 45분,, 일본등반대,, 강풍이 몰아치는 악천후에서도 정상 등정
- 하산시 제2스텝위에서 스만라와 모룹을 만났으나, 모룹은 죽은 듯했고, 스만라는 아직 살아있기는 했으나
고정밧줄에 뒤엉켜 꼼작하지 못한것을 세르파가 고정 밧줄을 풀어 주기만하고 계속 하산함
- 제1스텝에서 만났던 팔조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ㅇ 등반직후 『파인낸셜 타임즈』의 영국기자 리처드 카우퍼와 인터브 내용
- 36세 하나다,, " 그사람들은 우리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 였읍니다. 그 들은 고산병증세가 심해 목숨이
위태로와 보이더군요"
- 21세 시게카와,, " 우리는 너무나 피로해서 도와 줄 수가 없었어요. 8,000m이상되는 곳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을 따를 수가 없읍니다."
ㅇ 5월 17일 오전 1시 15분,, 『인도-티베트 국경경비대』의 2차 정상도전 시도
- 2명의 라다크 사람과 3명의 세르파는 정상등정 중간에 얼어붙은 자기네 동료(스만라, 모룹, 팔조르)들의
시신을 만났으나 현장에 그대로 눕혀둔체 계속전진하여
- 오전 7시 40분에 정상 등정
▣ 19장. 벡 웨더스의 기적같은 생환
ㅇ 1996. 5. 11 오전 7시 30분, 사우스 콜(해발 7,925m)
매는 점점 더 넓은 원을 그리면서 돌고 도느라, 매 사냥꾼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모든 건 산산히 흩어지고 중심은 버터내지 못한다. 온 세상이 완연한 혼돈에 빠져들고 피로 물든 조수가 밀려들면서 도처에서 순수의 의식은 익사한다. - 월리엄 버틀러 에이츠 『재림 』 |
ㅇ 밤사이에 있었던 난마같은 현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 사우스 콜을 한시간 동안 수색하였으나 앤드 해리스를 찾지 못하고,, 그가 죽었다고 확신하며
- 리더인 로브 홀이 사우스 서미트에서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 있고, 더그 한센은 죽었고
- 그날 밤 시간 대부분을 사우스 콜에서 헤메였던 스코 피셔팀의 대원들은 남바 야스코와 벡 웨더스가
죽었다고 했다.
- 스콧 피셔와 마칼루 고가 4캠프에서 400m위쪽 지점에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ㅇ 허치슨은 4명의 세르파와 함께 벡 웨더스와 남바 야스코의 시신을 찾아 나섬
- 두 사람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강풍속에 무릎을 끊고 얼굴에 붙은 7~8㎝ 얼음 껍질을 떼어낸 뒤에야
확인가능하였다.
- 놀랍게도 두사람은 숨을 쉬고있었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 베트랑 셀파인 락파의 의견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나두라고 권했다.
제4캠프까지 운반하더라도 베이스캠프에 이르기전에 죽을 것이 분명하고, 그들을 구하러 들었다가는
사우스콜에 있는 다른 대원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ㅇ 오후 4시 45분,,, 하루밤과 이틀날 낮시간동안 빙판에 버려진 넥 웨더스는
- 싸구려 공포영화에 나오는 미라 모습으로 제4캠프로 기적같이 돌아왔다.
- 그는 장갑을 끼지 않아 괴상하게 오그라 붙은채,,, 강풍에 그대로 노출된 오른손을 쭉 뻗고있어 흡사
인사하는 모습으로 한 팔을 뻗은 로봇같았다.
- 그는 12시간 이상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토요일 오후 늦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해서
그의 무력한 뇌의,,, 파충류 단계의 심층부에서 불이 반짝하면서 의식을 되 찾았다.
ㅇ 심한 동상에 걸린 막내 가이드 마이크 그룸,, 꿋꿋한 자세로 고객들을 하산시키기 시작
- 하산전 마지막으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벡 웨더스의 텐트를 찾아보니,, 여전히 살아 있는그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며 놀랐다.
- 그는 무너진 텐트 바닥에 누워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섬뜻할 정도로 부어 올랐고 코와 양
빰은 동상으로 인해 잉크처럼 새카만 반점들로 뒤덮혀 있었다.
- 벡을 본 순간 그 처참한 상태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우리가 또 다시 그를 방치하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ㅇ 구조대 피트 애선즈와 벌레슨,,, 조난자 지원을 위해 정상등정 연기
- 550만 달러짜리 촬영 프로젝트팀인 아이맥스 등반대, 알파인 어센츠 인터내셜날 등반대, 영리목적의
맬 더프등반대는,, 조난당한 사람들을 돕기위해 즉각 정상 등정계획을 연기함
- 그들은 즉각, 뜨거운 차가 든 물동을 들고 벡 웨더스의 텐트로 달려 갔다.
- 애선즈는 죽어가는 그 텍사스 사람의 허벅지에다 『덱사매타존 4미리그램』을 주사하였다.
▣ 20장. 이사람을 살려야 한다.
ㅇ 1996. 5.12 오전 9시 45분 제나바 스퍼(해발 7,894m)
경험 미숙이 초보 산악인에게 안겨주는 최대의 이점은 그가 전통이나 선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모든게 다 간단해 보이며,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간명한 해결책을 선택한다. 물론 그로 인해 종종 그가 추구하는 목표가 실패로 돌아가고 비극적인 결과가 일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 자신은 모험을 시작할 때 그 것을 알지 못한다. - 월트 언스워스, 『에베레스트』 |
ㅇ 『제나바 스퍼』 꼭대기에서 제3캠프로 내려가는 하산길
- 사흘전 이 곳을 올라 올때 우리 일행은,, 11명이였는데 지금은 6명뿐이다.
ㅇ 오후 1시 30분,, 제2캠프(해발 6,492m)에 도착
- 살인적인 강풍은 없어지고, 작열하는 태양아래 진땀이 흘렸다.
- 큰 텐트는 야전병원으로 급조되었다.
ㅇ 데이비드 브리셔즈가 벡을 데리고 하산하고 있다.
- 텍사스인은 『덱사메타존』을 맞은 직후 놀라만큼 생생하게 살아났다.
- 10시 30분경,, 벡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걸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 벡은 바로 앞에선 애선즈의 어깨에 한 팔을 걸치고, 벨레슨은 벡의 벨트를 뒤에서 단단히 붙잡은 상태로
그 들은 조심스럽게 하산했다.
- 석회암 절벽인 『옐로 밴드』(해발 7,620m) 위에서는 2명(에드 비르터즈, 로버트 쇼이)의 대원 합류
- 3캠프에서는 4명이 추가 합류하여,, 8명의 산악인들이 벡을 데리고 2캠프로 하산
(브리셔즈, 짐 월리엄스, 베이카 구스탑손, 아라셀리 세가리)
ㅇ 병원텐트 의사들은 벡을 고(타이완 팀) 곁에다 눕히고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닥터 캐물러는 벡의 오른손을 보더니,, "이건 마카루의 경우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 의사들은 단지에 든 미지근한 물속에 벡의 얼어붙은 손발을 담그고 아주 조심스럽게 녹이고 있었다.
▣ 21장. 끝나지 않은 비극
ㅇ 1996. 5.13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해발 5,364m)
ㅇ 5월 13일(월) 오전 쿰부 빙폭 통과
- 베이스캠프 전속의사 캐롤라인 매킨지 등을 만나고 나서,, 빙판에 털썩 주저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흐느꼈다.
- 며칠동안 내 어께를 짓눌렀던 긴장감에,,,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나는 살아 남았다는 것이 괴로워 흐느껴 울었다.
ㅇ 5월 14일(화) 오후,, 마운틴 매드니스팀 야영지에서,, 합동장례식 거행
- 라마 승려인 앙가왕 샤 키아는 희쁘연 잿빛 하늘아래에서 향을 불사르며 불경을 낭독했다.
ㅇ 5월 16일,, 페르체에서 헬기로 → 상보체 마을 → 카트만드로 이동과 가슴아픈 인터뷰
- 남바 야스코의 남편과 그녀의 오빠와,,, 어렵고 가슴아픈 이야기들
- 트리부반 국제공항,, 수많은 마이크와 텔레비젼 카메라 인터브
- 가루다 호텔,,, 힘겨운 인터뷰와 네팔 관광부 관리들에게 시달림
ㅇ 5월 19일 미국 시애틀 공항,, 더그 한센 가족들에게 돌려줄 그의 소지품, 2개의 더블벡
나는 산을 오르는 건 많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행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위험이야 말로 그 게임의 필수요소라는 걸 인정했다. 위험이 없다면 등산은 수백가지의 다른 오락거리와 하등 다를바 없으리라. 죽음의 수수께끼와 수시로 몸 비비고,,, 그 금단의 영역을 몰래 훔쳐보는 일은 아주 자극적이었다. 나는 등산은 본질적으로 파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혹적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
* 사고 요인,, 1. 날씨,,, 에베레스트의 높은 고도/강풍과 폭설 2. 하산 시간,, 오후 1시~2시 이전에는 돌아 설 것(홀과 피셔의 경쟁심) 3. 고정 밧줄 설치로 시간 소비,, 힐러리 스텝 등 * 고객들의 경우는,, 1. 해발 7,000m 위에서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아슬 아슬한 경계선을 딛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2. 죽음의 지대에서는 가이드나 세르파도 무력한 상태로 고객들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
▣ 22장.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ㅇ 1996. 11. 29 시애틀(해발 82m)
ㅇ 11월 중순경,, 루 카시슈케의 편지
- "에베레스트의 경험은 내 평생 최악의 경험이였죠. 몇 달이 걸렸지만, 그 건 과거지사요. 지금은 지금이고,,
난 긍정적인 측면들에 초점을 맞추고있어요,,,"
ㅇ 벡 웨더스는,,, 웨스턴 콜에서 헬기를 타고 떠난뒤 병원 수술실에서
- 오른쪽 팔꿈치 밑으로 반 가까이 팔을 잃었고, 왼손의 다섯 손가락 모두를 잃었으며,
- 코를 절단한뒤 귀와 이마 조직을 떼어내 코를 복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