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26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실화…글로벌 공급망 혼선으로 한국 경제 타격 불가피
우려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됐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세력이 수립한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러시아가 국가로 승인한 것이다. 이후 체결된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진입했다. 이미 반군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에 대한 승인과 진출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적인 무력충돌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후 러시아의 움직임에 따라 유럽대륙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직접적인 군사개입보다는 일단 경제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신속하게 제재에 나서고 있다. 독일의 경우 개통을 앞둔 러시아의 수출용 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의 개통을 위한 인증 절차를 중단했다. 영국은 러시아 은행 및 푸틴 대통령 측근에 대한 제재조치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전쟁 전에 ‘경제 전쟁’ 발발
미국은 아직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국제결제망(SWIFT)에서 러시아 퇴출 및 러시아 주요 산업부문에 대한 수출통제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제재조치에 맞서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 축소, 각종 원자재 공급제한 등 보복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적인 전쟁 이전에 경제를 둘러싼 다툼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미국과 유럽 국가의 제재는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되기 이전부터 진행되던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혼선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석유 및 가스 가격의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유럽의 경제 회복은 더욱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과 금리 인상을 추진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위기로 인한 급격한 침체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완화적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전쟁의 위기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제재 강화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원자재 부문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많은 국가가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 축소나 수입선 다변화 등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3.5%에서 현재 2% 미만으로 하락했고, 미국 역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3.5%에서 현재 1% 미만으로 감소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분야는 석유와 가스다. 브렌트유 가격은 2월22일 기준으로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했으며, 가스 도매가격 역시 다시 한번 급등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10% 감소할 경우 유로존의 GDP는 0.7%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산업 자체가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슬로바키아나 오스트리아 등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2월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분리주의 공화국들에 러시아군을 파견해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 ⓒ연합뉴스
‘러시아발(發)’ 천연가스 공급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미국, 중동 등으로부터 LNG 공급 확대를 희망하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2월22일 카타르 에너지부는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카타르와 다른 LNG 수출국가의 여력은 이를 충당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그동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큰 경제적 수축을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충격에 비교적 용이하게 적응할 수 있으며,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최근 가스 공급 축소에 대비해 공급망 변화를 추진해 왔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식품이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처해야 하는 중앙은행들도 곤혹스럽게 됐다. 어렵게 찾아온 성장의 불씨를 다시 꺼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단계적 금리 인상과 유동성 감소 등 통화정책 정상화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중앙은행 역시 통화정책을 지나치게 빠르게 긴축하는 데 따른 위험을 고려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3월 미국 금리가 최소 0.5%포인트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단기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점차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차적으로는 러시아 현지에서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러시아에서 현지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러시아와 인접 국가인 CIS에서 약 4조원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LG전자도 지난해 3분기까지 이 지역에서 1조388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스마트폰과 TV, LG전자는 세탁기와 냉장고 분야에서 러시아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제제재로 러시아 내수가 감소할 경우 사업장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공급이 차단될 수도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 부문 악영향 우려
정유 및 석유화학 부문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정유사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전체의 5.5%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의 경우 나프타 수입 물량 가운데 24%를 러시아산이 차지하고 있다. 각종 제재와 보복으로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어려워지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네온, 아르곤, 제논 등 특수가스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약 50%에 달하고 있어 공급이 감소하거나 중단될 경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최근 밀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가뜩이나 상승 중인 곡물 가격 상승이 가속화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밀접하게 하나로 연결된 공급망을 형성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이러한 공급망이 취약해지고 있었으며, 코로나19 확산에 더해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은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 효과를 누려온 우리로서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해 보면 2022년 우리의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차분한 대비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준영 /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