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
〈 사진제공 : 영양군청 김 상 수 님 〉
施福神의 氣祥 시복신의 기상
김 진 시
그날도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밤늦도록 귀신 얘기에 빠져 마루 끝을 적시는 도둑비의 굵은 발소리가 추적추적 내렸다는데 듣도 보도 못했고, 동네 아이들은 앞 등에 배통을 붙여 곶감처럼 엮인 채 날숨을 통째 배꼽 속으로 숨겨 버렸다.
“오늘밤은 귀신 얘기 들을래... 이무기 얘기 해줄까?”
“이무기요!” 또래들은 동네 강아지들처럼 합창을 했다.
도시로 나가서 대학교에 다니던 상용이 형은 동네에서 전해오던 전설 뿐 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오밤중에도 불빛이 반짝거리고 낮 보다도 더 밝다는 신기한 얘기를 끝도 없이 쏟아내 주었고, 우리들은 그 마력에 빠져서 한여름 밤의 무더위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오갠나들 아까메쏘에 눈이 징만하고 눈깔이 빨간 이무기가 살아. 그놈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면 쏘 앞 모래밭으로 거품이 냅다 덮치는데 거품 속으로 염소가 몇 마리나 죽어 나간대. 그래서 아까메 사람들은 염소를 키우지 않는다는 거야. 그놈의 눈깔을 본 사람은 방앗간 집 칠성인데 칠성이는 벙어리라서 자맥질을 해서 물속에 들어가 있어도 밥 한 양푼이 먹을 동안 숨을 안 쉬어도 끄떡이 없어. 작년 가뭄 때 칠성이가 삼지창을 들고 깊은 물속까지 들어갔다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밖에 있던 사람들은 돌 틈새에 끼여 죽었다며 놀라고 있었는데, 그때서야 물 밖으로 뛰쳐나온 칠성이가 모래판에 이무기 눈깔을 그려 놓고 혼절했지.
힘센 덕곤이가 한골 침쟁이한테 업고 가서 목을 뚫는 대침을 맞고서야 깨어났어.
칠성이가 모래판에 그려 놓은 이무기 눈깔은 크기가 징보다 더 컸다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무기가 무서워 아까메 쏘에서는 헤엄질을 하지 않거던...” 하원리에 살고 있었던 우리들은 사월종택의 대청마루가 놀이터였고 향토 문화의 교육현장이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도시로 공부하러 나갔던 형들이 돌아와 마을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 실제 일어난 사건들과 얽어서 말해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동네 원고 할배가 얘기해 주는 것 보다 더 믿음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또래 열 댓 명은 밤마다 대청마루에 모여서 마을의 전설을 들으면서 자랐는데 그 중에서 상원리 나들목인 오갠나들 앞 쏘에서 삼지리 앞산 척금대 동굴까지 땅 밑에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얘기가 가장 무서운 전설이었다.
“그런데 머리통이 아까메 쏘에 있는 이무기는 선유굴까지 목 부분이고 삼지리로 이어진 연못 밑으로 몸통이 있는데, 척금대 동굴에 꼬리가 있다는 거야.
옛날에 사들 사람들이 아까메 쏘에서 명주실을 풀었는데, 그 실 끝이 척금대 동굴로 나갔대. 그러니까 그놈이 얼마나 크고 무섭겠어.“
형은 두 팔을 벌리거나 고개를 치켜들고 전설속의 이무기 흉내를 내기도 했다.
“선유굴은 이무기가 목을 비틀 때 마다 물 회오리가 생기는데 그 때 선유굴 앞 쏘에서 헤엄을 치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시체도 사라진다는 거야. 이무기가 수백년 동안 몸통이 커져 굴속에서 목을 뒤틀면 사람의 머리통도 짓 이겨지고 뼈도 못 추린대. 지난번에 빠져 죽은 넘이 엄마도 시체를 못 찾았고...”
마을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들춰 내고 이무기를 등장시켜 얘기하니 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눈동자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공포였는데, 그 또한 여름밤의 색다른 즐거움이라 가슴 밑이 따끔따끔 할 때 까지 숨을 참았다. 심지어 야호댁 막내아들 우진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웃을 수 없었다.
“척금대는 3년에 한명 씩 사람이 떨어져 죽는데, 이무기란 놈이 굴속에서 꼬리를 흔들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떨어져 죽어. 꼬리가 길어서 3년마다 한번씩 흔들어 댄다는 거야. 지난해 7월에도 그때 읍내 산간수가 떨어져 죽었어. 너네들도 소문 들었지?”
얘기가 이쯤 되면 홑이불 하나에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파고 들고 뒤집어 쓰느라 홑이불이 뜯겨지고 구멍이 나서 종택을 지키던 할배에게 야단 맞기도 했었다.
덧붙여 주는 옛날 얘기는 하원리와 삼지리 일대의 밭곡식이 해마다 흉년이 들자 당시에 영주부석사 큰 스님을 모셔와서 살펴보니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원통하니까 땅 속에서 용트림을 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天動地衝천동지충하여 그 일대는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고 했단다. 그래서 큰 스님은 이무기가 요동을 치지 못하도록 석탑을 세워서 부적을 해 놓았단다.
이무기를 가둬놓은 스님은 이무기에게 비록 지금은 潛龍잠용이나 앞으로 사백 년 동안 雲行雨施운행우시를 연마하면서 선행을 베풀고 인내하면 부처님께 고하여 승천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였고, 이무기도 스님의 도력을 믿고 반성하는 뜻으로 그동안 요동을 쳐 흉년이 들었던 마을로 흐르던 물길을 돌려서 반변천으로 흘러가도록 했고, 강물이 흐르던 그 곳에 논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밭농사 뿐 이었던 하원리와 삼지리에 논농사가 처음으로 생겼다고 했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고향친구와 선바위 관광지에서 만나 하늘을 쳐다 보면서 남이장군의 바위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고, 분재전시장을 돌아보면서 그 간에 구전으로 전해져 오던 영양문화의 재조명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영양의 전설과 문화에 대하여 마치 전문가처럼 설명을 잘 할 정도로 알고 있어서 같은 영양인으로서 부끄러웠다. 내륙의 산간오지 영양군은 대도시와 거리가 멀어서 고추농사와 사과농사 이외에 농가소득원을 찾을 길이 없는데, 외지관광객의 발걸음이라도 자주 드나들게 하여야 그나마 도움이 될 터이니 영양지방의 대표적인 문학 문화와 전설의 재조명을 통한 연구와 개발이 앞선 과제라는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공감하였다.
분재원안에 전시된 사진콘테스트의 우수작품을 보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영양읍이 우회도로를 만들고부터 대외적으로 홍보활동이 높아졌고 내적으로 고추농사와 사과농사의 소득이 증가하여 해마다 억대 부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출품된 사진 한 점을 보니 현동리를 돌아서 영양여중고와 삼지리를 지나 일월면으로 향하는 우회도로의 지형을 하늘에서 찍은 구도였는데, 신기하게도 태극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一瞬일순 나는 “이무기의 승천!”이라고 중얼거렸다.
유년시절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구전으로 듣던 전설의 이무기가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쏟아지던 달에 승천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승천한 이무기는 善行感天선행감천 施福神시복신이 되어서 등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고 있다는 증표로 태극문양이 형상되도록 영적감응을 인도하였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 태풍‘매미’이후부터 영양읍네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태극문양의 문화적 해석은 인간과 신의 연결매체로서 인간은 地神지신과 天神천신의 보호를 받아야 재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지역민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역서를 읽어보면 ‘道도는 易역을 만들고 역은 순환의 氣기를 생성한다’고 했다.
영양읍을 돌아나가는 우회도로가 개설 되면서 이무기와 함께 사백 년 동안 갖혔던 藏風장풍(陰음)의 기는 이무기의 승천으로 生風생풍(陽양)의 기가 되어 인근지역 기운 흐름에 변화(易역)가 생겼고, 변화의 기는 순환의 기운이 되어 대외적으로 공중파의 주목을 받았으며 내적으로는 소득이 증가하였을 것이다. 최근 정부로부터 삼지리와 하원리를 잇는 ‘농어촌테마공원’이 신규로 선정되어 고추 주산지인 영양을 주제로 한 ‘영양고추테마공원’이 조성된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의 일치나 한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 조건
첫째 기회를 주는 하늘의 계시다.
둘째 지역민의 수렴된 의지다.
셋째는 민의를 수용하는 리더자의 의사결정일 것이다.
이러한 기운을 삼재 즉 천지인의 조화라고 한다.
개발과정에서 인위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형의 형상에서 태극문양이 재현된 것은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미래 국제사회에서 영양인들이 그 기운의 중심에서 先走선주할 것을 확신해 본다. 그 이유는 영양인의 의지, 태극문양의 地氣지기, 등천한 이무기 시복신의 氣祥기상에서 재 발견한다.
. 대청마루, 사월종택 : 월담헌 사월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하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주택.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52호. 한양조씨의 종택으로 1602년(선조 35년) 조임의 나이 30세 때에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 오갠나들 : 영양군 하원리와 상원리의 접경 지명으로 오씨와 조씨들의 세력이 바뀔 때마다 조갠나늘 또는 오갠나들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 아까메 : 일본어로 あかめ(赤目). 쏘; 하원리 동북쪽에 있는 지명으로 붉은 눈을 가진 짐승이 살고 있는 큰 웅덩이. 소(=淵)의 된 발음.. 선유굴: 仙遊窟선유굴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하원리 동쪽에 있는 동굴이다.
. 사들 : 영양읍 상원리의 별칭.
. 석탑 : 삼지 모전 삼층 석탑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삼지리에 소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 신라시대의 고찰인 영혈사가 있었는데, 400여 년 전 사월종택을 건축한 조임이 영혈사를 헐고 그 자리에 신축하였다고 한다.
. 반변천 : 半邊川반변천은 영양읍 삼지리로 흘러가던 강줄기가 하원리의 옥선대 앞으로 물길이 바뀌면서 생긴 강줄기 이름.
. 施福神시복신 : 인간에게 선행과 복을 가져다 주는 龍용을 施福神시복신이라고 부르는데, 늘 우리 곁에 살아 있으면서 때로는 상서로운 짐승(=서수瑞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이 글은 2011년 영양문학(제 27호) 에 발표한 글입니다.
첫댓글 2012년,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
북쪽을 수호하는 길상의 존재로 민간 신앙의 커다란 몫을 차지한다지요
농민들에게는 농경에 관한 일을 주관하는 수신,
어민들에게는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님으로 복을 구하는 대상
유년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합니다.
사담이지만 용왕님의 부름심이 다소 늦었던 이무기의 승천
용왕님의 부르심이 있던 날 이후의 커다란 발전을 하는 영양읍
지역 특산물의 테마공원, 미래 국제사회로의 발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