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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아까 말을 들어보니 아직 장가도 못 갔다고 했는데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게 생겼으니 애석한 일이야! 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팠고
게다가 만년한철로 아주 튼튼한 관까지 짰으니 누굴 탓할 일도 아니지..
여하튼 불쌍하게 됐어.. 쯧쯧! ‘
강운과 백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내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기에 아직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강운에게 다시 한번
위협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진짜 좋은 말로 할 때 안 갈래? 응? 이게 오냐오냐하고 봐주니
까 끝 간 데 없이 까불려고 하네? 너 같은 꼬마애가 어떻게 관문시험장
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까불지 말고 빨리 꺼져! “
강운의 몸이 점점 떨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백호는 강운의
상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당황을
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강운
이었다. 아니, 그런 말을 해줄 상대는 많았지만 강운은 그런 상대들이
입을 열기전에 이미 주먹을 먼저 휘둘렀기에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었다.
상황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체 인상을 잔뜩 구기며 위협을 하고 있는
사내와 그 앞에 분노해 있는 강운, 그리고 그런 강운의 모습을 조마
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백호 사이의 긴장감을 무너뜨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퍽! 퍽! 퍽!
“으아악!! “
강운을 위협하던 사내와 뒤에서 조롱석인 비웃음을 흘리며 강운을 바
라보던 다른 2명의 사내가 처절한 비명성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고
땅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들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뭐하는 짓들이야! “
날카롭게 울려퍼지는 뾰족한 목소리에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던 3명의 사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차렷 자세로 벌떡 일어서
버렸다.
홍의 소녀는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몽둥이를 땅바닥에
내 팽개치며 자신의 앞에 긴장한 모습으로 시립해 있는 사내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마도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무식하게 생긴 몽둥이가 사내들의
머리를 강타한 주범이 틀림없을 것이다.
“너희들 말이야! 내가 처음부터 다 지켜봤어. 왜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고 있던 거야? “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내들 중 홍의 소녀는 주로
강운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너! 네가 말해봐! “
“아.. 가씨.. 소인은 정말.. “
-퍽!
“으흑! “
정강이를 거세게 걷어차인 사내가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려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의소녀가 콧 방귀를 꼈다.
“떠듬 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 못해! 흥! 네놈들은 내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가 본데? 좋아! 그럼 아버지께 모두 일러바칠 테니까 각오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꺼야! “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 버리는 홍의 소녀를 향해 3명의 사내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제발 분타주님께만은..”
“아버지 무서운 줄은 아는 모양이군! 그럼 어서 사실대로 불란
말이야! 왜 아무 힘도 없는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냐고? “
홍의 소녀의 위협에 기가 죽은 3명의 사내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얼벙한 모습으로 자신들 쪽을 쳐다보고 있는 강운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네 놈 때문에 우리만 이렇게 깨지다니! 용서하지 않을 테다. ‘
원독에 가득찬 눈빛으로 강운을 쳐다보던 사내들은 가볍게 서로 고개
를 끄덕거린 후 홍의소녀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인 사내가 앞으로 나서
서 입을 열었다.
“아가씨! 속하들은 지금 화운문의 관문시험을 통과한 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합격자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심히 수상쩍어 보이는 저 소년이 출현하여 다짜고짜 안으
로 들어가겠다는 강짜를 부리고 있었기에 저희로서도 부득불 무력으
로 소년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희들이 미처 저 같이 수상
쩍은 자가 이 근처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점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저 소년은 필히! 끌고가서 신분을 조사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내는 말을 끝내며 고개를 숙여 보였고 홍의 소녀에게 들키지 않게
강운을 향해 간교한 웃음을 흘려보내었다.
‘꼬마놈! 넌 이제 죽었어. 성질 더러운 우리 아가씨한테 걸리면 팔다
리 한두군데쯤 부서지는 걸로는 일이 끝나지 않을꺼다. 크크 ‘
사내가 지껄이고 있는 헛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버린 강운은 황당하다
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얼마 전 터질 듯한 분노는 갑작스런 홍의
소녀의 등장으로 이미 저만치 날아가 있었다.
지금 홍의소녀에게 쩔쩔 매고 있는 사내들에게 화를 낸다는 것도 시
간상 너무 늦은 감이 있었고,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거치면서 화도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뿐이
었다.
-뚜벅!뚜벅!
사내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무언가를 궁리하는 듯 보였던 홍의소녀가
갑작스럽게 걸음을 옮겨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사내들의 시선
은 홍의소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초점이 집중되었다.
마침내 걸음을 멈춘 홍의소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몽둥이를 다시
집어 들고는 씨익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렇단 말이지? “
말을 끝냄과 동시에 바람 같은 신법으로 복날 개패듯 사내들을 두들
겨 패는 홍의소녀였다.
-퍽!퍽!퍽!
“야! 이것들이 정말 누굴 물로 아나! 조금 전에 내가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다고 했잖아? 기억 안나? 근데 감히 누굴 속이려 들어!
네놈들이 아는 사람을 잠깐 만나겠다고 찾아온 저 아이한테 먼저
겁을 주고 시비를 걸었잖아! 안 되겠어. 너희들은 오늘 확실히
정신교육 좀 받아야겠다. “
무자비란 말이 지금처럼 정확하게 표현될 수 있는 때는 쉽게 찾아
오지 않을 듯 싶었다. 그 만큼 홍의소녀는 사내들을 향해 사정이라는
건 눈곱만큼도 주지 않고 머리통이고 얼굴이고 가릴 것 없이 사정없이
몽둥이를 내리 갈겼다.
-퍽! 퍼~억! 콰당!
마침내 더 이상 매질을 버티지 못하고 사내들이 혼절을 해 버리자
그때서야 홍의소녀는 씩씩거리는 한숨을 몰아쉰 후 손을 탁탁 털어
내었다.
“휴! 시원해. 안 그래도 누구든지 걸리기만 하면 그 동안 쌓여왔던 안
좋은 기분을 모두 털어낼 작정이었는데. 너 한테는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덕 분에 신나게 기분전환 했으니까 말이야. 호호호! “
손등으로 입을 가린채 연신 호호 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있는 홍의
소녀를 향해 백호는 하얀 이를 들어내며 으르렁 거렸다.
지금껏 쭉 참아 왔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홍의소녀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시끄러워 백호의 신경을 박박 긁어놓았던 것이다.
백호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소리에 대해서 만큼은 매우 민감한 반
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홍의소녀가 흘리고 있는 방정맞은 웃음소리는 백호로
하여금 엄청난 짜증이 밀려오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되고 있었다.
‘아흑! 저 웃음소리 어떻게 못하나! 근데 운이는 왜 저렇게 뚱한 표정
으로 저 인간계집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거야? 좀 말려주라 운아~!! ‘
결국 참다못한 백호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자 그때
서야 홍의소녀가 웃음소리를 거두었다.
“앗! 귀여운 하얀털 강아지잖아? 호호호! 너가 키우는 애완동물이구
나? 어머! 정말 귀엽게도 생겼네. 어디! “
겁도 없이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던 홍의소녀는 하마터면 백호
에게 물릴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백호가 홍의소녀의 손이 자신의 머리로
다가오자 대뜸 물어버리려 했던 것이었다.
요행히 홍의소녀는 백호가 물기 전 손을 빼낼 수 있었고 재차 물어
뜯기 위해 몸을 날리려는 백호의 목덜미를 강운이 붙잡아버렸다.
[백호야 그만해! ]
[응? 운아 왜 말리는 거야? ]
심통이 단단히 난 듯한 백호의 음성에 강운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백호 너가 참어! 나도 아까 참았잖아? 그리고.. 헤헤! 저 여자애 너무
재미있다.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애. ]
‘윽! 운이는 그걸 알라나 모르겠네. 너무 변했어. 정말.. 너무 많이 변
한 것 같다. 성격도 침착해지고 예전의 막무가내의 운이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저렇게 바뀌게 된거지? 그건 그렇고 이제 그만 놔 줄
때가 지나지 않았나? ‘
전혀 영문을 모른 체 강운의 손에 매달려 바둥거리고 있는 백호를
의아스럽게 바라보던 홍의소녀가 다시 예의 그 호호 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