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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원형
플러스 관점과 마이너스 관점이 있다. 플러스 관점은 탑을 쌓는 것과 같다. 작은 원자가 모여 큰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마이너스 관점은 소를 해체하는 것과 같다. 큰 원본이 잘게 쪼개져서 널리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탑을 쌓기는 어렵고 소를 해체하기는 쉽다.
플러스 관점 - 작은 원자가 모여 큰 세상이 이루어졌다.
마이너스 관점 - 큰 원본이 잘게 쪼개져서 세상이 널리 이루어졌다.
구조론은 소를 해체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쉽다. 세상은 보다 쉽고 단순한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 탑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 쌓을 수 있지만 내부의 모순에 의해 무너진다. 탑을 쌓기보다 무너뜨리기가 쉽다.
원자론의 플러스 우주론 - 점, 선, 면, 입체로 커진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우주론 - 계, 체, 각, 선, 점으로 작아진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원자는 점이고 점은 크기가 없다. 크기가 없는 것이 모여도 커질 수 없다. 0+0은 0이다. 원자론은 틀렸다. 처음부터 큰 것이 있었는데 쪼개져서 작아졌다. 큰 것은 완전성이다. 처음에 완전한 복제의 원본이 있었다. 그것은 방향전환이다.
양자구조론
세상은 변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변화다. 존재한다는 것은 외부 관측의 작용에 반작용하여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변화다. 존재는 곧 변화다. 변화는 궁극적으로 방향전환이다. 우주는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방향전환의 복제다.
태초에 완전성이 있었다. 완전성은 방향전환이 가능한 구조다. 원자는 점이고 점은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므로 원자론은 틀렸다. 태초에 방향전환이 있었다. 방향전환에 필요한 것은 구조다. 구조는 어떤 둘이 마주보고 축을 공유하는 대칭에 의해 방향전환이 가능한 형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형태로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질이 깨져서 입자 둘로, 입자가 깨져서 힘 둘로, 힘이 깨져서 운동 둘로, 운동이 깨져서 양 둘로 바뀌는 것이 방향전환이다. 반드시 둘이 되어야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접점을 공유하는 둘이 깨지면서 방향을 바꾼다.
우주의 근본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점은 방향전환을 못한다. 선은 움직여서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양자는 선이다. 양자는 링 모양으로 머리와 꼬리가 붙어 있는 폐곡선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각이다. 반지와 같다. 반지를 세워서 회전시키면 입체다. 입자는 회전하는 링이다.
회전하는 링 둘이 붙어 8자 모양이 된 것이 물질이다. 양자는 내부에 파동을 가진 8이다. 진동하는 8이 깨지면 진동하는 0이다. 0이 진동을 잃으면 고리 0이다. 0이 깨져 선이 되고 선이 깨지는 접점이 점이다. 우주는 진동하는 8> 진동하는 0> 그냥 0> 선> 점으로 존재한다.
완전성 모형
세상이 단순한 것의 집합이라는 원자론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원자론에는 변화 개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원자를 변화시키려면 에너지, 공간, 시간, 정보가 필요하다. 변화는 에너지> 원자> 공간> 시간> 정보 순으로 일어나며 우리가 아는 원자는 그 일부다.
세상은 단순한 것의 집합이지만 그 단순함은 완전성을 반영해야 한다. 완전한 세포가 모여 생명을 이루고 완전한 벽돌이 모여 건물을 이룬다. 죽은 세포는 모여도 생명이 될 수 없고 부스러기 먼지는 모여도 집이 될 수 없다. 원자 개념에 완전성을 반영하면 그것이 구조다.
왜 양자역학인가? 원자가 점이라면 양자는 선이다. 점은 모여도 선이 되지 않지만 선을 자르면 접점의 형태로 점이 생긴다. 선 이전에 면이 있고, 면 이전에 입체가 있고, 입체 이전에는 4차원이 있다. 존재의 기본단위는 4차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일이론
회전하는 8, 혹은 진동하는 8, 내부에 파동을 숨긴 8, 두 개의 파동이 연결된 8은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가진다. 내부에 파동을 가지고 진동하는 두 0이 붙어서 대칭과 축을 이루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레고블럭도 돌기가 있어야 붙는다. 요철이 있어야 분해조립이 가능하다.
원자는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므로 우주를 건축할 수 없다. 파동을 가진 8은 축과 대칭을 갖추어 요철이 있으므로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다. 파동 둘이 극을 이루어 자기장이 된다. 극이 있으면 극을 바꿀 수 있다. 파동의 결이 어긋날 때 방향전환하여 결맞음이 된다.
방향전환에 의한 파동의 결맞음이 힘이다. 우주의 근원은 힘이다. 파동을 가진 두 0이 결맞음에 의해 8 하나로 바뀌는 힘이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은 모두 결맞음에 의해 공간을 축소시키고 보다 효율적인 형태로 변하며 효율이 비효율을 이겨서 우주는 이루어진다.
우주는 다섯 차원이다. 4, 3, 2, 1, 0차원이 있다. 4차원이 완전하고 나머지는 방향전환을 돕는 부품들이다. 하나의 개체가 변화의 단위가 되면 입자다. 입자는 변화의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하므로 불완전하다. 4차원은 집단이 에너지를 자체조달하여 자발적 변화에 성공한다.
4차원 계 - 여럿이 모여 내부의 힘으로 자발적인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3차원 체 - 하나의 개체가 외부의 힘에 의지하여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2차원 각 - 대칭된 둘이 접점을 공유하면 두 방향이다.
1차원 선 - 어떤 둘이 연결되면 방향은 하나다.
0차원 점 - 어떤 하나는 방향이 없다.
앞으로 가던 사람이 뒤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은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의 도움을 받는다. 축은 2차원, 대칭은 1차원. 대칭된 각각은 0차원이다. 앞으로 가던 무리가 뒤로 방향전환 하면 4차원이다. 움직이는 무리는 스스로 방향을 전환한다.
변화의 단위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자극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자극과 반응의 단위가 존재의 단위다. 반응한다는 것은 힘의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는 의미다. 존재는 그것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혼자 방향을 틀 수 없으므로 지구의 중력에 의지하여 방향전환에 성공한다. 우주 비행사는 우주공간에서 방향을 틀 수 없지만 두 명이 있다면 방향을 틀 수 있다. 우주가 원자가 아니라 양자로 존재하는 이유다. 빛은 직진이 가능한 구조가 있기 때문에 직진한다.
원자는 크기가 없으므로 방향을 틀 수 없지만 내부에 파동을 숨기고 있다면 방향을 틀 수 있다. 사람이 하나의 몸통과 두 다리로 걷듯이 원자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 물질 내부에 깔때기와, 지렛대와, 도마와, 칼과, 재료를 갖추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물질은 진동이 깔때기를 만든다. 8은 0 둘이 점점을 공유하며 대칭된 것이 지렛대다. 두 0이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지렛대의 의미다. 8은 안쪽이 느리고 바깥쪽이 빠른데 의미가 있다. 가장자리 파장은 크고 안쪽은 파장이 짧다. 차동장치와 같이 가운데 축으로 쏠린다.
(8) - 깔때기 : 계는 자원들이 자력에 의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8 - 지렛대 : 체는 외력에 의해 중심과 주변이 반대로 움직인다.
0+0 - 도마 : 각은 대칭이 축을 공유한다.
00 - 칼 : 선은 연결된다.
0 - 재료 : 점은 단절된다.
우리가 아는 차원은 외부 관측자인 인간 기준이다. 내부사정은 무시된다. 내부에서는 다섯 번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냥 두 다리로 걷는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상체를 기울여 지구 중심으로 떨어진다. 지구중심 계, 신체중심 체, 골반 각, 다리 선, 발바닥 점이 있다.
구조론 요약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지렛대다. 세상은 지렛대다. 우주 안에서 지렛대보다 복잡한 것은 없고 지렛대보다 단순한 것도 없다. 구조는 역설이다. 역설은 반대로 작용한다. 지렛대의 받침점을 중심으로 힘점과 작용점이 반대로 움직여서 인간들을 당황시킨다.
지렛대 둘을 연결하면 깔때기다. 깔때기는 역설을 극복한다. 도마, 칼, 재료는 지렛대를 구성하는 부품이다. 세상은 깔때기, 지렛대, 도마, 칼, 재료로 모두 설명된다. 인간은 역설에 좌절하지만 지렛대를 깔때기에 가두는 역설의 역설에 도달하면 편안해진다.
역설
구조는 사건의 진행구조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계, 체, 각, 선, 점이 되니 4, 3, 2, 1, 0차원이다. 세상은 다섯 가지 구조의 수순으로 모두 설명된다. 가두기, 키우기, 바꾸기, 보내기, 멈추기로 하나의 일을 시작하고, 장악하고, 결정하고, 전달하고, 종결한다.
가두기 - 깔때기에 가둔다.
키우기 - 지렛대로 증폭한다.
바꾸기 - 도마로 방향을 튼다.
보내기 - 칼로 힘을 전달한다.
멈추기 - 재료에서 멈춘다.
운이 좋으면 깔때기에 가두지 않아도 사냥할 수 있다. 이미 가두어져 있는 사슴을 잡기만 하면 된다. 수렁에 빠져 움쭉달싹 못하는 사슴을 창으로 찌르면 된다. 보통은 늑대 한 마리가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길목을 지키는 방법으로 어렵게 가두는데 말이다.
운좋게 가두어져 있는 사슴을 발견한 사람이 그 방법을 재현하려다가 망하는게 수주대토의 고사다. 보통은 부모가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뒤를 받쳐준다. 부모가 도마가 되고 내가 칼이 되면 합쳐서 깔때기다. 어른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망한다.
관점
공든 탑은 층수가 높을수록 어렵다.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상하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이 어렵고 갈수록 쉬워지는게 정상이다. 플러스 세계관과 마이너스 세계관의 차이다. 플러스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마이너스는 갈수록 쉬워진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구조론은 소를 해체하는 것이다. 들판의 소를 붙잡은 다음에 목을 따고, 뼈와 살을 분리하고, 요리하여 먹는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은 소를 잡고, 목을 따고, 뼈와 살을 분리하고, 요리하고, 먹는 순서다. 갈수록 쉬워진다. 소를 잡기는 어려워도 먹기는 쉽다.
아기의 걸음마는 첫 한 걸음이 어렵고 대학은 입학시험이 어렵다. 무슨 일이든 첫 관문의 돌파가 어렵고 갈수록 쉬워지는게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플러스 관점으로 본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관점으로 갈아타야 한다.
변혁
내부에 압력이 걸려 있는 깔때기 구조의 닫힌계 안에서 방해자를 제거하면 저절로 해답이 찾아진다는 것이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마이너스 뿐이다. 플러스는 압력의 차이에 의해 외부에서 저절로 들어온다.
혁명이 구체제를 헤체할 수 있을 뿐 자체적으로 설계하여 신체제를 도입하지는 못한다. 러시아도, 중국도 혁명을 표방할 뿐 사실은 집단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던 봉건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프랑스도 혁명사상을 전파했을 뿐 자체적으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방법
원교근공의 법칙은 물리학이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멀리 있는 우군과 손잡고 눈앞의 적을 깔때기 구조에 가두어 제거하는 마이너스 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은 이렇게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므로 그렇게 한다.
전략은 미리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여 깔때기를 만드는 것이다. 원교근공은 지정학적 구조 안에서 깔때기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다음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방해자를 깔때기 구조에 가두어 제거하는 원교근공의 전략 뿐이다.
변화
세상은 변화의 집합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세상이 이루어진다. 변화의 단위는 방향전환이다. 존재가 내부 원인에 의해 스스로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것이 의사결정이다. 방향전환을 가능케 하는 닫힌계 내부에서의 자발적 의사결정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존재하는 것은 곧 반응하는 것이다. 외부 작용에 반작용으로 맞서면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외부의 작용이 닫힌계 내부에 모순을 일으키면 자체 의사결정을 거쳐 반작용 형태로 변화가 격발된다. 변화의 원인은 모순이며 모순은 둘의 충돌이다.
변화는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둘 이상의 집단이라야 한다. 변화를 격발하는 모순은 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집단이 내부에서 자체적인 의사결정을 거쳐 방향전환을 일으킨다. 방향전환이 가능한 집합구조가 갖추어지면 그것이 존재의 단위가 된다.
둘이 접점의 공유 형태로 공존하여 계를 이루면 내부에 밸런스가 만들어진다. 모든 변화는 밸런스의 복원으로 일어난다. 변화는 닫힌계 내부의 불안정에 의해 격발된다. 불안정하면 내부에서 상쇄되어 힘을 전달하지 못해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이면 진다.
지면 깨지고, 깨지면 작아지고, 작아지면 충돌하지 않으므로 안정된다. 그러므로 계 내부의 파동은 동조화되어 나란해진다. 나란해졌을 때 충돌을 멈춘다. 우리가 존재로 아는 것은 내부의 자체적인 방향전환이 나란해져서 모순이 해소되고 안정된 형태다.
구조
어떤 2가 연결되어 계를 이루고 외부에 대해 1로 맞서는 것이 구조다. 집단이 개체로 행세한다. 모든 독립적 존재는 이러한 구조가 있다. 구조가 없는 것은 다른 것에 빌붙어 있을 뿐 독립할 수 없다. 내부가 없다고 가정되는 원자 개념의 존재는 자연에 없다.
질 - 깔때기 내부에서 충돌이 상쇄되어 1이 된다.
입자 - 지렛대의 받침점을 중심으로 힘점과 작용점의 대칭이 1이다.
힘 - 각운동의 바깥쪽에서 중심으로 밀리며 힘을 전달하여 1을 만든다.
운동 - 시간적인 반복으로 1을 만든다.
량 - 접점에서 1을 만든다.
집을 지어도 한 채를 짓고, 동물을 키워도 한 마리를 키우고, 사람이 와도 한 명이 온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언제나 1을 도출한다. 실제로는 한 채의 집 안에 기둥이 여러개 있고 한 마리의 몸통에 팔다리가 여러개 있다. 1이 아닌 것이 모여서 1로 행세한다.
물건을 들어도 두 팔로 잡아서 깔때기를 만든다. 가위로 잘라도 두 가윗날 사이에 종이를 끼워 깔때기가 된다. 칼로 잘라도 도마로 받쳐 깔때기를 만든다. 도마가 없어도 속도를 높여서 깔때기를 만든다. 최소한 질량으로 받치므로 무조건 깔때기가 발생한다.
깔때기 - 안과 밖의 구조가 있다.
지렛대 - 내부에 대칭과 축의 구조가 있다.
도마 - 도마가 칼을 멈춰세워 공간의 방향을 바꾼다.
칼 - 칼이 시간적으로 진행하여 일을 전달한다.
재료 - 접점에서 멈춘다.
모든 의사결정은 깔때기다. 다른 것은 깔때기가 세트로 갖추어져 있느냐 차이다. 깔때기는 중력이 작용하여 재료를 안으로 밀어넣는다. 절구통은 사람이 밀어넣는다. 칼과 도마는 깔때기가 해체된 것이다. 지렛대는 조립된 것이며 깔때기는 지렛대가 두개다.
우주는 깔때기다. 깔때기보다 복잡한 구조는 없고 더 단순한 구조도 없다. 깔때기 안에 지렛대, 지렛대 안에 도마, 도마 위에 칼, 칼 앞에 재료로 다섯 가지 세부 의사결정이 하나의 사건을 완성시킨다. 깔때기는 방향전환이며 지렛대, 도마, 칼, 재료는 세부다.
관점
구조론과 원자론은 세계관이 반대다. 원자를 뒤집으면 구조다. 원자론은 외부 관측자의 관점이다. 구조론은 내부의 자체질서다. 인간이 관측하는게 아니라 내부에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관측한다. 외부에서 담너머로 보는게 아니라 식구들이 서로를 관측한다.
원자는 크기가 없고 내부가 없으므로 쪼갤 수도 없다. 그런 것은 자연에 없다. 굳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둘의 접점이다. 구슬 두 개가 닿아 있다면 그 접점의 크기는 0이다. 접점은 쪼갤 수 없다. 쪼개면 접촉이 사라지고 연결이 단절되므로 더는 접점이 아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량이 원자와 유사하다.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종이를 자를 때 두 가윗날이 만나는 지점은 크기가 0이다. 깔때기, 지렛대, 도마, 칼, 재료 중에서 재료가 원자와 같다. 그러나 량은 접점이고 접점은 둘의 만남이므로 독립할 수는 없다.
원자는 주체인 인간이 객체와 연결한 것이며 인간과 객체 사이에 관측의 접점이지 자연의 존재자가 아니다. 자연에는 원자가 없다. 량이 원자와 비슷하지만 관점이 반대다. 량은 질을 쪼개서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이다. 선을 잘라서 탄생하는 단절점이 점이다.
선을 자르면 점이 되지만 점을 합쳐도 선이 안 된다. 구조는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돌이 깨져서 모래가 되지만 모래가 붙어서 돌이 될 수는 없다. 원자론은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지만 구조론은 전체가 깨져서 부분이 된다. 계는 마이너스로 통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