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문득 산골에서 그런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았다. 삿포로의 눈밭 아래에 묻혀서 설산을 보면 음성이 먹혀들어 간다.
겨울의 이미지란 것은 대개 스냅사진의 한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눈 결정이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던 찰나,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디뎠던 도약, 손끝에 말라붙어 있던 핫초코 위 마시멜로의 감촉, 직물로 둘러싸 맨 목을 관통하던 겨울바람 한 점. 연속적이지 못한 이미지의 나열은 필름 카메라의 산출물처럼 이어졌다. 분과 초의 파편이 아니라 덩어리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묻는 이는 있었으나 대답할 줄 아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필름 사진 한 장을 들고 과거를 끝없이 반추하는 생물이다.
잘 지내시나요?
대답하는 법을 잊어서 고개도 까딱이지 못하고 인사를 고했던 적이 있다. 그날은 차게 식은 길거리 벤치에 앉아 김이 펄펄 나는 커피를 마셨다. 얼었던 손에도 감각이 없는데 뜨거운 음료에 화상 입은 혀에서는 아무것도(통증도 맛도 아릿함도 추위도 그래 어쩌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어느 것이든.) 느껴지지 않았다. 저온 화상과 보통의 화상은 어디가 다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문명의 발달 속 넘쳐나는 정보 사이에서 무지를 말한다. 통증은 한 박자 늦게 발걸음을 맞추던 어린 친구처럼 뒤늦게 따라온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お元気げんきですか、私あたしは元気げんきです!
한 번쯤은 그런 대답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고개 끄덕이는 행위. 잘 지내는 건지 아닌지 가늠은 못 해도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다정함.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아직 대답도 듣지 않았으면서 먼저 안부를 전하는 성급함이란! 하며 비웃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기에 하지 않았던 일을 비웃는 짓은 심장을 저버리는 행위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대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몇 년이나 늦게 깨달았다. 나는 하지 못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