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5.05.16~25.08.31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회를 열며
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츠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에 걸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를 선보인다.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를 간직한 천년 고도 경주에서 시작해 부산과 제주, 서울에 이르기까지 총 4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버 ㄴ전시는 가우디움어소시에츠의 창사 10주년 전시로 기획되었다.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은 문화적 혜택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서 시작해 2년에 걸친 대장정을 서울에서 마뮈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20세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400년을 조망해볼 수 있다.
지오반니 볼디캔퍼스에 유채/ 리오넬 필립스 1903.
19세기 손꼽히는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사실적인 화풍과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터치로 유명한 지오반니 볼디니는 이탈리아 페라라에서 종교화를 그리던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미술을 배운다. 이후 피렌체로 이주해 이탈리아의 인상주의자들로 불리는 마키올리파 화가들과 어울렸던 그는 런던으로 건너가 초상화가로 성공한다.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설립자인 필립스 부인의 남편인 리오넬 필립스 남작의 초상은 이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탄생했다.
안토니오 만치니/ 초상에 관한 연구 1909.캔퍼스에 유채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이 초상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아트 딜러이자 컬렉터인 휴 퍼시 레인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휴 레인 현대시립미술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만치니/ 필립스 부인 1909. 캔퍼스에 유채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지오반니 볼디니나 윌리엄 니컬슨 경과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 이 초상화는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만치니는 12ㅅ0ㅇ0 나폴리 국립미술원에 입학했을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다니엘 세이거스/ 꽃병에 꽂힌 꽃. 1661, 패널에 유채
당대 최고의 플랑드르 꽃 화가로 손꼽히는 다니엘 세이거스는 서양회화에서 정물화의 시조로 불리는 얀 브뤼겔 1세의 영향을 받아 꽃과 화환 그림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인 튤립을 담아내고 있다.
에사이아스 보스/ 소박한 식사. 1631-1672, 오크 패널에 유채
1631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에사이아스 보스는 동인도 회사에 입사해 두 번에 걸쳐 인도를 항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렘브란트에세 그림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작품은 두 번째 인도 항해 길에 마흔한 살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에 아주 희귀하다. 그의 그림은 고요한 아름다움과 미묘한 색채의 조화가 특징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과 비교할 만한 절묘한 실내 묘사가 돋보인다. 이 그림에서도 작가는 농민이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조건을 담백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게릿 아렌츠 반 뒤어스/ 노인이 노래하면 젊은이는 피리를 불어라, 1663, 캔퍼스에 유채
핸드릭 소르그/ 서재의 젊은 남자. 1656. 오크 패널에 유채
161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1670년 사망하기까지 평생을 로테르담에서 살며 이 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핸드릭 소르그는 네덜란드 황금기의 중요 화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와 네덜란드 국립미술관과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네덜란드의 번영하는 부르주아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성 아래의 목초지. 1808, 에칭, 메조딘트
윌리엄 터너는 영국 근대 화가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윌림엄 터너에 대하 이렇게 남겼다. "자연의 분위기를 가장 감동적이고 진실되게 측정할 수 있는 예술가이다." 이 평가는 영국인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작을 잘 보여준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주인공인 터너는 자연의 힘과 창조의 신성한 초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풍경을 그렸다.
조지프 말로드 윌림엄 터너/ 안더나흐의 해머스타인. 1817, 종이에 수채
존 에버렛 말레이/ 한 땀! 한 땀!. 1876, 캔퍼스에 유채
1870년대에 이르러 존 에버렛 밀레이는 라파엘전파의 창립 멤버이자 이 운동의 대표 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리 라파엘파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대신 이전 동료들이 지지했던 스타일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새로운 단계에서 밀레이는 벨라스케스나 조슈아 레이놀즈와 같은 옛 거장들이 스타일을 참고하여 자신 살던 시대의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레지나 코르디움. 1860, 패널에 유채
카드처럼 2차원적인 이 작품은 금색 배경에 르네상스 회화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조세티가 직접 설립한 라파엘전파의 문체와 상징적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그림 속 얼굴은 라파엘전파의 수많은 그림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이자 화가인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미의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다. 이 그림은 정교한 라파엘전파 스타일을 완벽하게 구현한 이 예술가의 우아함, 기술력 및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풍경. 연도 미상, 캔퍼스에 유채
코로와 바르비종파의 화가들에게 풍경은 역사적, 종교적, 신학적 장면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풍경 그 자체가 하나의 회화 장르로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경영인의 길을 걷던 그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하여 화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정규 미술 교육을 받게 된 그는 이탈리아 여행 이후 신고전주의적 작품을 그리지만 이후 바르비종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며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풍경화가로 손꼽히게 된다.
외젠 부댕/ 아르장퇴유의 보트들. 1899 캔퍼스에 유채
1824년 노르망디의 옹플뢰르에서 태어난 부댕은 주로 바다 풍경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클로드 모네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그는 자신의 제자들과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스케치의 놀라운 속도감과 사실가믈 유지하면서 빠른 색채 터치를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다 풍경을 그렸다. 모네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았던 부댕은 공식 서클에서 인상주의자들보다 더 높은 명성을 누렸다.
귀스타브 쿠르베/ 에트르타 백악 절벽 1869. 캔퍼스에 유채
코로가 그린 그린 구름 낀 하늘과 포근한 분위기가 여전히 낭만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면, 사실주의의 아버지인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에트리타 백악 절벽>은 좀 더 실재적인 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훗날 외젠 부댕과 클로드 모네에게 큰 영향을 준 이 작품은 바위, 물, 해안, 해안에 정박한 보트의 촉각적 특성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실주의 거장이 풍경화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가 되어준다.
외젠 부댕, 트루빌 항구, 1893. 캔퍼스에 유채
클로드 모네/ 봄, 1875 캔퍼스에 유채
이 그림은 1875년, 클로드 모네와 그의 친구들이 나다르의 오래된 아틀리에에서 만나 그들의 작품을 거부한 공식 살롱에 반대하여 독립 전시회를 시작하기 전해에 그린 작품이다.
앙리팡탱라투르/ 부케. 연도 미상, 캔퍼스에 유채
사실주의 화가들과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의 간극을 이어주는 작품을 남긴 앙리 팡태라투르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제자였고 에두아르 마네와는 같은 생활하고 작업을 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앙리 팡태라투르는 정물화도 상당수 그렸는데, 특히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낸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그의 꽃 그림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이로 인해 그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에드가 드가/ 두 명의 뮤희들. 1898, 종이에 파스텔
에드가 드가는 인상파이면서도 야외 풍경보다는 실내 장면을 더 자주 화폭에 담았다. 동료들이 빠르고 순간적인 터치로 그린 그림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선으로 그린 인상파'로 자신을 정의했다. 발레리나는 이런 에드가 드가가 가장 선호하는 주제 중 하나였으며 드가는 발레리나의 날씬한 몸의 움직임과 왜곡을 관찰하고 해부학적 구조를 묘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폴 시냑/ 라로셀, 1912. 캔퍼스에 유채
폴 시냑이 그린 이 걸작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시냑은 초기에 사용하던 점들 대신 더 넓고 기하학적인 터치를 사용한다. 화가의 관심은 현실의 환상적인 재현이 아니라 색과 선의 사용에 있었다. 점묘법이 탄생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냑은 풍경을 그릴 때 주로 색채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리스 드니/ 잠든 드니 부인의 초상. 1930. 캔퍼스에 유채
"회화란 전쟁화나 여인의 누드, 혹은 이야기이기에 앞서 특정 양식의 색채로 뒤덮인 평평한 표면이다."
나비파 화가로 활동했던 모리스 드니는 회화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인상파 이후의 신선한 색채 감각을 이어받고, 나아가 고갱의 평면적인 표현에 어떤 착상을 담아냈던 그는 점차 기독교 신앙이 반영된 상징주의적인 세계로 몰입했다.
브론즈/ 이브. 연도 미상
모리스 드 블라맹크/ 홍수. 1935, 캔퍼스에 유채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야수파 작가 중 가장 강렬하고 독창적이며 특이한 삶을 산 작가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루브르에 가본 적도 없었고 감정이 치솟을 때면 종일 소설을 쓰는 괴짜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반 고흐의 전시를 보고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는 강렬한 색의 물감을 짜서 직접 캔퍼스에 바르거나 캔퍼스 나이프로 문지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그의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가 잘 드러나 있다.
모리스 위트릴로 / 육군병원. 1914, 캔퍼스에 유채
르누아르나 드가의 모델이었다가 프랑스 표현주의의 여성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의 아들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난 모리스 위트릴로는 순탄치 않을 삶을 살았다. 청년시절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자주 진 그를 위해서 수잔 발라동은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했고, 그런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어두운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인상파 스타일의 풍경화를 그리다 1908년 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석고와 접착제를 혼합해 그림 속 건물 벽체의 느낌을 살리는 기법을 선보였다. <육군 병원>은 이런 위트릴로의 기법을 보여 준다.
프란시스 베이컨/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 1969. 캔퍼스에 유채
이목구비를 무너뜨리는 붓질로 변형되고 부식되고 훼손된 베이컨의 뚜렷한 형상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복잡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의 정서적 불쾌감과 긴장감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특히 베이컨의 작품은 아일랜드 예술가의 환각적이고 강렬한 회화의 완벽한 표본이다. 서정적이고 예상치 못한 분홍색의 배경은 선을 깨뜨리는 붓질로 찢어지고 부식된 얼굴로 표현되어 정서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데이비드 호크니/ 나무. 1968, 다색 판화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영국 런던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 다녔던 그는 재학 당시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단체인 '젊은 세대'를 통해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그의 초기 작품은 영국의 구상 표현주의 화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과도 유사한 점이 많았다. 호크니는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 수채화, 사진콜라주, 아이패드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끊임없이 실험한 전위적인 예술가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 연도 미상, 스크린 프린트
앤디 워홀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대담에서 요셉 보이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뉴욕의 화려함을 대표하는 워홀은 사뢰 잠여적이고 절충주의적이며 진지하게 영감을 받은 예술가인 보이스를 담아냈다.
이르마 스턴/ 국화. 1945, 캔퍼스에 유채
윌리엄 켄트리지/ 물에 잠긴 소호. 1999, 종이에 목탄 파스텔
남아공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윌리엄 켄트리지는 화가인 동시에 연극제작자,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손으로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데 매 장면을 직접 손으로 그린 드로잉을 이용해 영화를 만든다.
제라드 세코토/ 오렌지와 소녀. 연도 미상, 캔퍼스에 유채
조지 펨바/ 춤추는 사람들. 1981, 카드보드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