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단에서 보인 설교자의 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그 정교한 솜씨는 놀랍다. 의학도들이 시체를 해부하면서 발하는 탄성이 굳디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관찰하면 모든 지체가 그렇게도 정교하고 때로는 오묘함을 느낀다. 여기서 신앙이 있는 인간은 창조주의 경이로운 섬세함에 다시 머리를 숙인다.
특별히 인간이 두 손을 쳐다볼 때 그 용도이 다양함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 두 손이 인류의 발달에 얼마나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손의 위치를 보노라면 그 나타나는 현상이 매우 흥미롭다. 특별히 설교하는 사람이 회중들 앞에서 손을 사용하는 경우와 사용하지 않을 때의 경우를 주목하고 있노라면 그것이 때로는 설교자의 감정을 표현하고 메시지의 위치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몫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손을 사용하지 않을 때 그 손을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지 몰라 약간 당황할 때가 있다.
이러한 순간은 일상 생활에서는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대중 앞에 나타나서 말을 해야 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 특히 설교자에게는 이러한 순간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두 손이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하여 다음의 두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을 때 회중은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나 서서 회의를 진행하거나 사람들을 대할 때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두 손을 뒤로 보내어 허리에 올려놓는 경우이다. 이러한 자세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습관화되어 있기에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본인은 이러한 몸가짐에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이어간다. 지난 주일에도 한 설교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두 손을 뒷짐을 지거나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도 이러한 자세를 매우 자연스럽게 취하면서 살아간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 손을 내가 어디에 두고 말하든지 상대가 그것을 문제시하거나 시시비비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순일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행위가 사회적인 관습과 이해를 벗어났을 경우에는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가 때로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안겨 주게 된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 두 가지의 자세는 모두가 상대를 존경하지 않은 자세로 이해되고 있다. 말을 하거나 또는 뒷짐지고 말을 하게 되면 불경스러운 자세로 지탄받을 수 있다. 이러한 손가짐은 주인이 하인들에게 나타나 지시를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문화를 잘 나타내는 영화나 연속극을 보면 쉽게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얻게된다.
다시 말하면 수하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손의 위치가 용납이 되지만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우리의 예의 문화이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어지고 두 팔을 밑으로 내려뜨리고 걷는 것이 불현할 때 두 손을 허리 뒤쪽에 올리고 걷는 경우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건강한 설교자가 두 손의 위치를 호주머니나 허리에 올려 둔다면 그것은 설교자를 거만한 태도의 소유자라 때로는 이 땅의 예의 문화와 거리가 먼 인물로 오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관망과 태만의 성품을 소유한 인물로 오해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