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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천에 위치한 만석보(萬石洑)는 본래 전라북도 정읍 배들평야 농민들이 사용했던 농사용 보로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아 쌀 만석은 수확할 수 있다하여 만석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던 이곳이 고종 30년인 1892년 느닷없이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 동학농민운동의 단초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동진강은 태인쪽에서 흘러오는 태인천과 정읍쪽에서 흘러오는 정읍천이 예동에서 만난다. 두 강줄기가 만나기 전에 태인천에는 팔왕보(八王洑)라는 보가 있었고 정읍천에는 예동보(禮洞洑)라는 보가 있었다 .
바로 이 예동보가 배들평야을 적시는 보로 일명 만석보라 불렀다.
배들은 1년에 벼가 만석이나 난다는 넓은 들이었고 문제는 당시 새로 부임한 고부 군수 조병갑이 멀쩡한 만석보 아래 새 보를 쌓으며 시작됩니다.
조병갑은 만석보 바로 아래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새로 보를 쌓았는데 이 새 만석보는 너무 높아서, 홍수가 지면 오히려 냇물이 범람하여 상류의 논들이 피해를 입었다.
새 보를 짓는다고 임금도 주지 않고 농민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더니 보세, 수세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보 사용료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새 보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냇물이 범람하여 논이 물에 잠기는 등 농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조병갑이 역부 수만명을 동원하여 개수사업을 일으켜 만석보를 새로 쌓으면 농민은 물을 사용할 권리와 함께 의무를 지니게 되는데 수세는 보의 관리 외에 직접, 간접으로 관개사업과 관련된 경비에 충당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조병갑은 거둬들인 수세를 모두 착복해 버린 것이다.
전봉준 공초(供招)에 이렇게 해서 거두어들인 수세가 해마다 700석이라고 했으니 신보를 수축한 뒤 백성들로부터 갖은 명분으로 늑탈(勒奪)했음을 알 수 있다.
돈 가진 자들을 불효(不孝), 불목(不睦:사이가 서로 좋지 않음), 음행(淫行), 잡기(雜技:여러 가지 노름) 등 갖가지 죄목으로 엮어 가둔 후 속전을 받고서야 풀어 주는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뿐만 아니라 태인 현감을 지낸 자기 부친의 공덕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수천 냥의 돈을 다시 늑징(勒徵)했으니 그 원성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재 태인 피향정내에 조규순 불망비가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무렵에는 삼남지방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보세를 감해달라고 관아로 간 농민들은 보세 감면은커녕 매를 맞고 나왔다.
만석보는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고부봉기 때 관아를 점령한 농민들은 만석보로 달려와 속시원히 헐어버리고 말았다. 너르디너른 배들평야를 가로지르는 방죽 위에는 1973년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건립한 만석보 유지비가 있다.
그렇게 만석보는 사라지고, 훗날 ‘만석보 유지비’를 세워 부당한 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농민들의 의로운 봉기를 기념하고 있고 ,또한 이곳의 시비에는 양성우 시인의 시 <만석보>가 새겨져 있다.
만석보
양성우
"들리는가, 친구여.
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만석보 허무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대 지금도.
그 새벽 동진강머리 짙은 안개 속에
푸른 죽창 불끈 쥐고 횃불 흔들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굽은 논둑길로."
1
그때 그 아비들은 말하지 못했다.
어둠을 어둠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픔을 아픔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들은 것도 들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날 저문 남의 땅, 황토언덕 위에
눈물뿐인 오목가슴 주먹으로 치며
달을 보고 울었다. 그때 그 아비들,
가을걷이 끝난 허허벌판에
반벙어리 다 죽은 허수아비로
굶주려도 굶주림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2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주눅들고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주눅들어서
죽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고,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
밤도망이라도 칠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한숨만 쉬었다.
3
제 똥 싸서 제 거름 주고
제가 거둔 곡식은 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오뉴월이면
송장메뚜기라도 잡아먹지.
오동지섣달 길고 긴 밤,
그 허기진 배
오죽했으리.
모진 목숨이 원수였고
조병갑이 원수였다.
4
이방 포졸 떴다 하면
닭 잡고 개 잡아라.
쑥죽 먹는 신세라도
사또조상 송덕비 세워주고,
사또에미 죽었으니
조의금 천 냥을 어서 내라.
못살겠네, 못살겠네,
보리쌀 한톨이 없어도
억새풀 묵은밭
천수답 다랭이 물세를 내고,
죽자사자 낸 물세를
또 내고 또 내라고 하고,
못 내면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5
아아, 전창혁이 곤장 맞아
죽던 날 밤엔
만석보 긴 둑에 무릎 꿇고 앉아
하늘에 빌었다. 고부 장내리 사람들.
차라리 마을마다
통문이나 돌릴까?
이 야윈 가슴팍에 비수를
꽂을까?
아비들은 주먹으로 허공을 가르고,
아아, 전창혁이 곤장 맞아
죽던 날 밤엔
피눈물만 있었다. 그 산비탈.
6
밤은 밤으로만 남아 있었고
칼은 칼로만 남아 있었다.
겉늙은 전라도 굽이굽이에
굶주림은 굶주림으로만
남아 있었고
증오는 증오로만 남아 있었다.
먼지 낀 마루 위에 아이들은 앓고
신음소리 가득히 그릇에 넘쳤나니,
오라, 장돌뱅이.
어둠 타고 오라.
나무껍질 풀뿌리로 살아남아서
장성 갈재 훌쩍 넘어
서둘러 오라.
맞아죽은 아비 무덤 두 손으로 치며
전봉준은 소리 죽여 가슴으로 울고,
분노는 분노로만 남아 있었고
솔바람소리는 솔바람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7
구태여 손짓하며 말하지 않아도
누구누구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알았다.
그 손님들을.
찬바람 서릿길 깊은 밤이면
썩은새 감나무집 작은 봉창에
상투머리 그림자드
몇몇이던가를.
구태여 손짓하며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은 알았다, 아이들까지도.
김도삼이, 정익서, 그리고 앉은뱅이,
두루마기 펄럭이며
왔다가 가고,
그 밤이면 개들이 짖지 않았다.
개들도 죽은 듯이
짖지 않았다.
8
장날이 되어야 얼굴이나 볼까?
평생을 서러움에 찌든 사람들.
찰밥 한 줌 못 짓는
무지렁이 대보름,
진눈깨비 내리는 대목장터에
큰바람이 불었다. 쇠전머리에.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때가 차고 부스럼딱지 개버짐 피었으니,
가자 가자 용천배기,
손뼉치며 가자.
김제 태인 알렸느냐?
최경선이를 불렀느냐?
지푸라기 날리는 저녁장터에
으스름 보름달 서럽게 밟고
낫 갈아 아비들은 침대를 찍었다.
9
드디어 때가 찼으니,
증오를 증오로 갚기 위하여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안개 낀 새벽.
해묵은 피고름 비로소 터지고
증오를 오히려 증오로 갚기 위하여
아비들은 몰려갔다.
살얼음 거친 들판
꽝꽝 울리며,
나무껍질 풀뿌리로 살아남아서
그 겨울 노령남북 모여든 아비,
아비들은 몰려갔다. 곰배팔이도.
눈비바람 칼날같이 몰아칠지라도
그 누가 무단히 죽어간다더냐?
동트는 고부읍내 천둥번개로
두둥둥 북치고 꽹과리치고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꽹과리치고.
10
보아라. 말발굽소리 크게 울리며
흰말 타고 달려오는
전봉준을 보아라.
남은 처자 불쌍하여 눈 못 감고 죽은
만 사람의 붉은 피
두 손에 움켜쥐고
어이어이 말잔등 찬바람 뚫고
한걸음에 여기 왔다.
이노옴, 조병갑아.
11
자네, 손화중이 동문으로 가고
자네, 김개남이 남문으로 가게.
한 번 지른 함성으로 삼문이 부서지고
또 한 번 지른 함성으로
동헌 지붕이 불에 탔다.
창고문을 열어라.
감옥문을 부숴라.
조병갑이를 놓치지 마라.
갈기갈기 찢으리라.
죽창이 없으면 괭이로 찍고
몽둥이가 없으면 발로 밟으리라.
자네, 김개남이 앞뜰로 가고
자네, 손화중이 뒤뜰로 가게.
12
앉은뱅이 이빨 물고 치는 북소리,
고부산천 회오리치며 크게 울렸나니,
여우 같은 조병갑이 옷 바꿔 입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뺑소니치고,
분바른 계집ㄷㄹ 후들후들 떨며
목숨을 빌었다.
맨땅에 엎드려.
13
이제 와서 그 흙탕물
어찌 두고 보랴.
원한 쌓인 만석보 삽으로 찍으며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소리소리쳤다.
만석보를 허물어라.
만석보를 허물어라.
터진 봇둑 밀치며 핏물이 흐르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얼싸안고 울었다.
14
차라리 노래보다
몸부림으로
그 한나절 용천배기
어깨춤 추고,
어절씨구 곰배팔이
곰배춤 추며,
어절씨구 어절씨구
곰배춤 추며.
15
허허, 이게 참으로 몇 해 만인가?
한쪽에선 가마솥에 흰밥을 찌고
한쪽에선 만석보 허물고 온 이야기,
조병갑이 허겁지겁 도망친 이야기로
모두들 오랜만에 신명이 났다.
허허, 이게 참으로
몇 해 만인가?
한쪽에선 가마솥에
흰밥을 찌고.
16
이윽고 산마루에 큰 달이 뜨니,
해묵은 어둔 밤을 비로소
끝내기 위하여 아비들은
빼앗은 관청마당 높은 담장 밑에
날선 죽창 세워 두고
모닥불 쬐며,
아이들이 부르는
청승맞은 노래를 들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