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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활의 시작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일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어떤 일을 10년 이상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생각을 고쳐먹고 다른 일을 하기로 했을 때 받아주는 곳을 찾기는 더 쉽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택지 중 하나로 공무원이 보였습니다. 공무원이란 것, 수험공부란 것이 어떤 건지 알아보러 학원 설명회에 갔다가, 다섯 과목 종합반 두 달 가격이 5만 원대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학원가의 상술에 절대 넘어가지 않겠어.’하고 차돌같은 경계심을 갖고 걸음을 했지만, 이정도 조건이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잃을 게 별로 없겠다는 판단 하에 시도해보기로 결정합니다. 2014년 7월, 아주 오랜만에 학생 신분이 됩니다.
강경욱 쌤 曰, “이 노량진이란 곳은, 한 번 잡은 먹이를 결코 순순히 놓아주는 법이 없습니다.”
성향
친척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영업이나 사업가 쪽은 아닌 것 같고, 성실하고 꼼꼼하긴 하니 나중에 선생이나 공무원이나 해라”란 소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공시에 지금처럼 사람이 몰리지 않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저는 그 말이 썩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내 안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어.’하고 고집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평소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든다고 적어놓은 구절을 몇 개 소개합니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 맞을 것 같은지 한 번 판단해 보세요.
삶은 모든 것의 목적이다. 따라서 삶에는 어떤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많은 사람들은 평범하고, 안정되고, 어떤 위험도 없는 삶을 선택한다. 그런 사람들은 심연으로 추락하거나 혹은 정상으로 비상하는 일이 결코 없다. 그들의 삶은 따분하고 밍밍할 뿐이다. 정상도, 계곡도, 밤도, 낮도 없다. 그들에게는 무지개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게 잿빛 세계 속을 살다가 결국 침침하고 밋밋한 잿빛 인간이 되고 만다.
“여자라는 것은 남자의 결점도 사랑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지만, 나는 그분의 선행 때문에 그분이 미워 못 견디겠어요. 나는 그분하고 같이 살 수는 없어요. 그 분을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생각이 들어요.”
아직 임용도 되지 않았으니,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활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지 않았고, 그건 수험공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원에서 쉬는 시간마다 바라보던 풍경
7~8월 – 그래, 시작이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는 게 반가웠고, 노량진의 독특한 분위기에 대한 호기심도 일어 일없이 골목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다섯 과목 종합반을 실강으로 들으며 복습이 밀리지 않게 하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국어: 편하고 재미있는 강경욱 선생님 수업을 바탕으로 어문규정을 1회독할 수 있었습니다.
국사: 중학교 때부터 잘해본 역사가 없는 과목인지라, <중학생을 위한 2시간 한국사> 같은 책을 따로 보면서 큰 흐름을 익혔습니다. 노범석 선생님의 유쾌한 언변 덕에 흥미도 붙일 수 있었습니다.
행정법: 박준철 선생님은 이 기간 동안 용어정리에 집중해주셨습니다. 수학으로 치면 부호의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에 해당할 듯합니다. 하지만 ‘~의 ~인 ~의 ~은 ~의 ~이 ~을 함에 있어 ~의 ~을 ~함 없이 ~을 ~하여 ~한 ~에 의한 것인바, ~을 고찰하면 ~은 ~가 있어 ~라 할 것이고, ~가 ~을 ~한 사실만으로써 ~인 ~이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처럼, 끝나지 않는 외계어 문장을 볼 땐, 세종대왕님이 이렇게 쓰라고 만들어주신 한글이 아닐텐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회: 권영찬 선생님은 사회의 세 파트에서 출제빈도 높은 단원을 골라서 수업해주셨습니다. 다른 수업처럼 막 재미있진 않았지만, 체감 상 시간 대비 효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9~10월 – 국사를 열심히 …
독서의 계절이 찾아왔지만, 강의실이나 전철에서 책을 보다 눈을 들었을 때, 파란 하늘에 박힌 시선이 좀처럼 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내가 수험생활이란 걸 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 의무적으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줄면서, 전체적인 학습량은 종합반 때보다 줄었습니다. 강의 외 순수 공부 시간은 하루 평균 약 5시간 정도였다고 기억합니다.
국어: 기출정리 실강을 바로 들었습니다. 이론을 건너뛴 건, 어법에 대해선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다고 느끼기도 했고, 종합반에서 구경만 하고 넘어갔던 세세한 암기사항을 어디부터 건드려야할지 몰라 일단 문제부터 보고 가닥을 잡아가자는 판단을 해서였습니다. 이 때 이유진 선생님의 ‘빈출코드 160’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적으려니 길어지고, 그로 인해 광고로 의심받는 건 원치 않으니, ‘고심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차별성 있는 교재와,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쏟는 정성’이라고 줄이겠습니다.
국사: 기본이론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노범석 선생님 수업은 양이 많아 일주일에 네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출석해야 했습니다. 노범석 선생님 수업의 장점을 하나만 꼽자면, 역사의 장면 장면을 친숙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건 저같은 초심자, 암기바보에게 도움이 됩니다. 가령 정조는 외울 게 꽤 많은데, 그 인물의 스토리를 듣고 나면, ‘오, 완전 멋진 분이잖아. 이런 분에 대해선 내가 알아두는 게 예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암기의 고통이 한결 덜어지는 식입니다.
사회: 사회과목의 꽃으로 불리는 경제파트를 잡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인강으로 위종욱 선생님의 이론을 들은 후, 기출 2000제를 풀어보았습니다. 당시 공단기에선 다른 사회강사가 뜨고 있었지만, 폭넓은 배경지식과 연구하는 태도, 내용 전달력, 쓸쓸꿋꿋한 유머 등을 보고 위종욱 선생님을 선택했습니다.
11~12월 – 행정법을 열심히 …
해는 짧아지고, 바람은 차지고, 손들은 주머니로, 시선은 땅으로. 노량진은 추운 곳이었습니다. 여름 가을에 학원에서 만나 인사하고 지내던 지인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대신 수업 때마다 제게 따뜻한 음료를 건네주는 친절한 사람을 새로 만나게 됩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하는 강의실에선 두꺼운 옷이 짐입니다. 다행인지 서글픈 일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영향 받을 나이는 오래 전에 지났습니다. 연말엔 KG 장학생 모의고사에서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이듬해 수강료 부담을 덜게 됩니다.
국어: 이때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문학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시간안배를 미리 계산하시는지, 이유진 선생님 수업은 월 단위로 봐도 그렇고, 하루 단위로 봐도 그렇고, 대개는 남거나 부족함 없이 시간 안에 진도가 딱 들어갑니다. 선재 1000제를 개별적으로 조금씩 풀면서 문법과 비문학독해를 연습했습니다.
국사: 선우기출을 혼자서 풀었습니다. 책을 선택한 기준은 문제량이었는데, 기출 중에서도 심하다 싶은 걸 만났을 땐 고민 없이 찍고, 맞든 틀리든 잊어버렸습니다. 국사 머리가 없는 저로선 시험장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걸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행정법: 실질적으로 주 4회 진행되는 박준철 선생님의 기본이론을 실강으로 듣는 한편, 똑같은 수업을 인강으로도 구매해, 졸아서 놓치거나 한 번 듣고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 분 수업 평은 워낙 자자해 보탤 것도 없겠죠. 현장에선 교실에 몇 백 명이 앉아있든, 모두와 1:1 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사회: 9~10월에 끝낼 계획이었던 경제가 아직도 안 끝나고 있었습니다. 제 안에서 ‘어이, 다시 한번 시간을 줘 봐. 이번엔 잘 할 수 있어.’하고 속삭이는 녀석을 믿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자율적 인강보다는 강제적 실강형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깨닫기만 하고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습니다.
필기감이 좋다는 말에 혹해 거금을 들여 구입한 샤프
1~2월 – 문풀? 난 소신 있게 자습 중심으로 가겠어. 그런데 …
달력이 바뀌고, 학원가에선 이제부터 문제풀이가 시작된다고 고삐를 바싹 조이는 시기입니다. 문풀반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냐고 자신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국어, 기본이론 안 듣고 괜찮겠어? 국사, 이론기본 들었지만 너 여전히 바보잖아. 행법, 가장 생생하겠지만 혼자서는 아직 1회독도 못 끝냈지? 사회, 법과 정치의 순수성을 지켜줘서 고마워.’ 여기서 저는 행법 하나만 문풀을 시작하고, 나머지는 부족한 이론을 보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멍청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납니다.
안 그래도 추워서 나가기 귀찮아지는 계절인데, 의무적으로 학원에 가야하는 날이 주 1회로 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저는, 인강을 듣다가 웹서핑을 하게 되고, 웹서핑을 하다가 온라인 게임을 잡게 됩니다. 원래 스토리와 배경음악이 좋은 오프라인 RPG를 좋아하는데, <삼국판타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단순노동으로 캐릭터를 세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데다, 만듦새도 엉성하고, 끝물이라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게, 처음엔 심심풀이로 30분, 1시간 하던 것이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선랩업 후공부’의 생활수칙을 준수하게 됩니다. 2월 한 달간 일 평균 순수 공부 시간은 약 20분 정도였다고 기억합니다.
국어: 무엇을 했는지, 하기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국사: 무엇을 했는지, 하기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행정법: 박준철 선생님 문풀 수업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채점해보면 50~65점 정도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루 두 set 나오는 이 문제 복습만은 꼭 하자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밀렸습니다.
사회: 독학중심, 인강 보조로 법과 정치 기본서를 1회독 했습니다. 의결 정족수 등 세세한 암기사항은 외우지 못했습니다.
3~4월 – 정신 차려야지? vs.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대
나무에 싹이 돋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인 만큼 (공시생이 새학기랑 뭔 상관?)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학원 수강을 최대한으로 늘려봅니다. 하지만 시간 투자해 키워놓은 캐릭터도 포기하진 못합니다. 학원에 가서 앉아있으면 저만 빼고 다들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날과 열심히 랩업하는 날들이 교대로 이어집니다. 일 평균 순수 공부 시간은 2~3시간 정도였습니다.
국어: 임상욱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수업에 대해 높은 자존심을 갖고 있고, 그만큼의 긍지를 수강생들에게도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설명에서 설명이 파생되는 경우가 많아 진도는 느렸지만, 수업을 듣고 나면 뭔가 머리가 꽉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암기의 영역일 것 같은 한자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점수는 문제에 따라 50~85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습니다. 국어선생님을 옮겨 다닌 이유는 선생님마다 다른 강조점을 두루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강경욱 선생님, 이유진 선생님의 아침특강에도 틈틈이 들어갔습니다.
국사: 노범석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선생님을 바꿔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고, 이 시기에 국사는 어떤 설명보다도 문제를 받아 풀어보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범석 선생님 연구팀이 제작한 문제의 질에 대해선 언제나 믿음이 갔습니다. 점수는 40~80 사이를 오갔습니다. 게시된 점수표를 보면 90점을 넘기는 수강생은 언제나 상당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보고 기운이 빠지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 교실엔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담이고, 몇 개를 틀리든 그건 <삼국판타지>가 챙겨간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인과 전한길 필기노트 스터디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아 결국엔 혼자서 봤습니다.
행정법: 박준철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이 과목에서만큼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이미 지난 가을 확인한 상태였기에 호기심이나 변덕으로 인한 갈등은 없었습니다. 1~2월에 비해 2~3개 더 맞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과목에 익숙해져서인지, 문제가 쉬워져서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회: 권영찬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이론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문제를 접하며 공부의 범위를 좁혀나가자는 계산이었습니다. 점수는 보통 80에서 소폭으로 오르내렸습니다. 난이도를 실전에 가깝게 맞추었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실전에서도 비슷한 점수가 나왔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출제되는지, 그 문제에 대한 가장 빠른 접근법은 무엇인지, 어디까지 공부하면 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셔서 궁극적으로는 수험생의 시간을 절약시켜주시는 분입니다.
4월 18일 국가직 – 하늘이 수험생이냐
뭐 하나 완성된 건 없었습니다. 저의 실상을 모른 채, 그저 믿고만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잘 보고 오라는 미소 띤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니, <삼국판타지>와 함께 한 지난 석 달이 죄가 되어 가슴을 눌러옵니다. 시험장으로 걸어가며 생각합니다. ‘모르는 문제를, 그것도 많이 만나게 될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것 때문에 아는 걸 놓치지는 말자.’ 문제지가 책상에 올라오고, 방송에서 시작을 알립니다. 30초 이상 고민하게 되는 문제는 넘기면서 1차 마킹을 끝내고 나니 20분 정도가 남습니다. 돌아와 채점을 해보니 예상보다는 점수가 괜찮습니다. 잘하는 과목은 어렵게, 못하는 과목은 쉽게 나온 덕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가 아니라, ‘하늘 혼자서 최선을 다 한 시험’이었습니다.
5~6월 – 허무하게 해주마, 널 위해서라면
국가직 치르러 갈 때 느꼈던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갑자기 바뀌진 않습니다. 하지만 <삼국판타지>가 5월 20일에 서비스 종료되면서 그간의 레벨업이 물거품 되고,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멀어집니다. 6월에는 일 평균 순수 공부 시간을 작년 수준인 5~6시간으로 회복하게 됩니다.
국어: 임상욱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국사: 노범석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행정법: 써니 기출문제집을 독학으로 1회독 했습니다. 책은 두껍지만 페이지 당 1~2문제 꼴이라, 진도는 금방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회: 권영찬 선생님 문풀반을 실강으로 들었습니다. 패턴에 익숙해지기 위해 3월부터 푼 문제를 다시 봤습니다.
6월 13일 서울시 - لا حالة جديدة للإصابة بكوروناأنه في مرحلة الخمود
메르스의 한가운데 시험이 있었습니다. 문제를 받아보니 갑자기 국가직 때 만났던 문제들이 그리워지면서, ‘걔네들 예뻤는데, 잘해줄걸.’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세부 암기가 부족한 저에겐 ‘장르’가 다른 시험이었습니다. 그래도 네 번째 과목을 풀 때까지 시간 관리는 나쁘지 않게 되어가고 있었는데, 도표로 잔뜩 무장한 채 매복하고 있던 사회를 만나면서 그마저도 무너집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보려 했던 문제들과, 도표 문제 몇 개는 그냥 찍어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6월 27일 경기도 지방직 – 우습게 보이냐?
아직도 메르스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비싸고 귀하다는 N95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는 걸 보니 우리 동네에 대한 애착이 샘솟았습니다. 문제 느낌은 서울시보다는 국가직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행운은 없는 것이어서, ‘잘하는 과목은 어렵게, 못하는 과목은 쉽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냥, 전체적으로 쉽게 나옵니다. 변별력이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채점을 해보니 놀랍게도 국가직 때보다 겨우 한 문제 더 맞았습니다. 거기다 공통은 오히려 한 문제 덜 맞아서 환산점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됩니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난 두 달간 시간을 투자한 행정법이 정직하게 올라줬다는 데서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로써 시험은 모두 끝났습니다.
7~8월 – 면접한다. 면접하면 손발이 오그라진다.
출입국관리직에 지원했던 국가직에서 필합하면서 면접준비에 들어갑니다. 적잖은 분들이 차라리 공부가 쉬웠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면접 스터디는 오랫동안 누군가와 말하지 않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쥐어짜가면서, 굉장히 낯선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익숙한 기존의 나와, 되어야하는 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이유진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한 번 키운 학생은 끝까지 바라봐주시는 지극정성에 좋은 결과로 보답을 하고 싶은데, 커트라인에 가까운 필기점수가 마음에 걸립니다.
스터디를 둘 이상 하다보면,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면접강사마다 입장이 다르고, 내가 같은 말을 해도 조원마다, 또는 스터디그룹마다 반응이 다른 걸 보게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고, 자신의 색깔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밝은 인상, 성실성, 의사 전달력, 봉사 정신, 창의성 등 다양한 가치 중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골라 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리론 알고 있는데, 몸은 안 따라줍니다. 결국 실전면접에서 보통을 받고 탈락하게 됩니다. 만일 ‘면접장에서 똥만 안 싸면’ 합격할 점수였는데 미흡을 받아 떨어졌다면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 졌겠지만, 제 경우는 예상했던 결과라 상심은 거의 없었습니다.
8월에는 지방직 면접 스터디를 시작합니다. 50분짜리 국가직 면접을 준비한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10분 안팎의 면접을 준비하는 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직에서처럼 필기점수가 위태롭지도 않았습니다. 실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행정학 지식 관련 질문을 몇 개 받아,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를 연발해야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큰 이변 없이 최종합격하게 됩니다.
혹시 '7'자가 보이시나요? 만일 보인다면 당신은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에서 행운/불운을 점쳐보는, 지극히 정상적인 수험생의 길을 가고 계신 겁니다.
맺으며
수험생활 후기는,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게 좋은 모양새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따라해야할 것보다는 그러지 말아야할 것이 더 많습니다. 저는 일일 타이머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하루 계획, 일주일 계획을 짜서 스케줄 관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산점 자격증도 따지 않았습니다. 기상시간은 불규칙한 가운데 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원피스>는 매주 챙겨 봤고, 제 주머니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술을 사준다거나 클럽,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면, 고마운 마음에 언제나 마다 않고 나갔습니다. 머리가 좋은 편도 못됩니다. 두 자리 수 IQ를 지닌 덕에, 암기가 따라줘야 하는 국사나 사회 과목에선 세 차례 시험을 보는 내내 85점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공부 시작 전 기본기라면 유리한 면이 있긴 했습니다. 영어과목의 경우, 한 달에 두어 번쯤 학원에 비치된 YK모의고사나 이동기 500제를 풀어보고, 시험 며칠 전 인터넷에서 공시단어를 받아 외우는 정도의 수고로, 서울시를 제외한 두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머리도 안 좋고 공부 시간이나 습관 면에서도 본받을 점이 없는 사람이 기본기와 운만으로 결과를 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보다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요인이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에 얼만큼 공부할 수 있는 인간인지 현실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환상을 가지면, 계획을 짜더라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세히 봐야하는 걸 대충 보고 있거나 엉뚱한 걸 잡고 앉아서 힘을 허비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게 되면, 주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전자에만 집중하기도 더 쉬워집니다.
두 번째는 집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집중은 미간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뜨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은, 그 시간 그 장소에는 그것만 있게 하는 것입니다. 빗살무늬 토기를 보고 있을 땐, 지금이 몇 회독 째라는 의식도, 몇 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합격이라는 목표도 잊고, 원시인이 되어서 오늘은 저 안에다 무얼 넣을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힘은 XX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노력으로 이뤄내는 게 아니라, OO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존중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아저씨들, 이걸 여기다 붙여놓는 건 시방 우리랑 싸우자는 건가연? ㅠ.ㅠ
마지막은 즐거움입니다. 수험생은 늘 벌레 씹은 듯 엄숙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어야 하는 수도승이 아닙니다. 어깨에서 힘을 좀 빼면 즐길 수 있는 건 많이 있습니다. <삼국판타지> 같은 딴짓을 찾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멋진 시를 만나면, 공부하기 전에 먼저 감탄할 일입니다. 외계어로 무장된,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행정법에서도 코믹한 판례는 나오고, 그럴 때 우리가 맘껏 웃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느낄 수 있으면 외울 때보다 기억이 오래 갑니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마주쳐 얼굴을 알게 된 사람과는, 날을 세우고 경계하는 것보다는 인사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공부가 잘 된 날은 자신에게 8000원짜리 식사를 사주는 사치도 부려봅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듣는 노래 한 곡, 첫차 타러 나왔을 때 어둑한 하늘에서 혼자 반짝이고 있는 끝별, 새로 산 책의 냄새. 그런 것들이 주는 느낌을 흘려버리지 말고 한껏 즐깁니다. 즐길 수 있으면, 견딜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저를 믿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었던 분들을 찾아다니며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어떤 업무가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주민들과 동료에게 실망이나 스트레스를 안겨주지는 않는 공무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노량진역
어느새 추억으로 가고 있는
첫댓글 재치와 유연함이 묻어나는 멋진 수기입니다!
즐길 수 있으면, 견딜 필요도 없다는 말
공감합니다!:-)
저도 전투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 해서 자괴감에 가끔 빠졌는데 이 글을 읽으니 자기 페이스대로 밀고 나가는게 가장 정확한 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파이팅해서 내년에 꼭 수기 남기고 싶네요^^
이 이른 시간에 댓글을 ^^
성격이 그러시다니, 같은 시기에 학원을 다녔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방향만 맞게 가고 있다면, 방식에선 재량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방향마저 놔버렸던 주제에 ㅡㅡ;;)
열심히 하고 계신 듯하니, 바라시는 대로 될 거예요!
제 학생이시면서도 제가 존경하는 흥남 씨와 상욱 씨, 멋진 도전을 하시고 이루신 두 분의 새로 시작된 청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식스센스>에 보면 꼬마애가 부르스윌리스 보며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요."하고 말하잖아요. 막상 이 나이 되면 자신이 늙은 줄도 모릅니다 ㅋㅋㅋ
저는 오히려 강단에 선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전에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햇살이 없었다면 칙칙함은 몇 배가 됐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상욱님이셨군요!ㅋㅋㅋ
한번 더(?) 축하드려요~^^
네, 접니다, 서희님. 까페닉 따로, 카톡명 따로, 본명 따로 ㅋㅋㅋ
그러면 저도 한 번 더(?) 축하드릴게요 ㅎㅎ
수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시군요
저도 또 다시 한 번 축하드리겠습니다:)
전문용어로 '덕력'이라고 하던가요? ㅋ
저도 위에 '다시 한 번'이라고 써놓은 게 보이는데, '다시 한 번', '다시 한번' 뭐가 맞는지 갑자기 헷갈립니다.
수박님도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소신 없음. 둘 중 하난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