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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현우 회원이 2013년 경남펜 연간집 <경남펜문학> 제9호에
단편소설 "그늘의 종언"을 발표했다.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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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종언(終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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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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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의 불길한 징조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강영감이었다.
“이, 이거 무슨 일인교? 나무껍질에 금이 가고 따개지네?”
강영감의 호기심어린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무 옆 의자에 둘러 앉아 잡담을 나누던 중늙은이들은 아무런 관심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말거나 강영감은 나무 밑둥치의 껍질이 벌어져 생긴 금에 손을 갖다 대보기도 하고 쓸어보기도 하며 나무에 행여 큰 탈이 난 것이 아닌가하고 진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9만 몇 천원 노인수당을 받고 있는 강영감이야말로 이 동리의 정보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동리 골목을 이 구석 저 구석 운동 삼아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 바퀴 동리를 순시하고 나서야 아침밥을 먹었는데,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새벽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해야 되는 법이구먼!”
하고 주장을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걸 정찰기가 적진상황을 탐색하려고 비행하듯 한다고 ‘강영감정찰’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조그만 농촌마을 일을 보는 이장(里長)이란 사람이 흔히 동네 집집마다의 사정을 환히 알아서 김서방 집에는 젓가락 숟가락이 몇 개인지 심지어 박서방네는 부부간 금슬이 좋은 지 어떤지 시시콜콜 안다고 하지만 반장도 이장도 통장도 아닌 강영감이 한 작은 지방도시의 변두리 동네의 사정을 손금 들여다보듯 환히 안다는 것은 여간 관찰력도 있고 머리가 비상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산골 초등학교 졸업의 최종학력인 강영감인데도 돌밭(:石田)마을 소식은 꿰차고 있어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소문을 퍼뜨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대학을 다니지 못했지만 관찰력이나 지능지수가 높다고 할 수 있겠고 흉을 보자면 박학다식하지만 그게 쓸모없는데 관심을 가져 돈도 되지 않을 잡동사니 쓰레기만 잔뜩 끌어 모으는 수집광 같은 별난 인물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평을 받았다.
여하튼 그는 어느 골목에는 불법 투기한 쓰레기가 얼마쯤 있고 쓸 만한 폐지나 박스, 냉장고, 가구들이 야밤을 틈타 버려진 것도 환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골목을 나다니는 사람들의 집, 직장, 과거 경력, 집안 내력은 물론 나이도 자녀도 보유 재산 까지도 얼추 기억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그에 대한 신분을 정보과 형사처럼 나무 그늘의 늙은이들에게 풀어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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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쉼터는 몇 해 전 소방도로를 내면서 생긴 삼각형의 좁은 자투리땅에 작디작은 화단을 조성하고 그 복판에 장정 허벅지만한 굵기의 나무를 심고 그 밑에 등받이 없는 타원형 긴 의자 4개를 갖다 놓으면서 생겼다. 멋지고 값나가는 나무와 꽃을 심고 잘 가꾸어놓은 아늑한 공원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오다가다 지나가는 행인이 잠시 쉬어가란 그런 조악(粗惡)한 자리였다. 처음에는 나무가 어려 그늘이 크지 않아 사람들이 꾀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나무가 쑥쑥 자라고 가지가 쭉쭉 뻗어 길게 늘어져 그늘이 펑퍼짐하게 커지자 사람들이 잠시잠시 다리쉼을 하곤 했다.
그 즈음 환갑을 지내고 몇 년이 된 강영감이 다니던 공장에서 퇴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이가 많아 쫓겨난 것이었다.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그는 독수리가 사냥감을 찾아 공중을 빙빙 돌듯 돌말마을을 종횡무진 돌며 살피는 정찰을 시작했고 이내 쉴 곳을 찾았으니 바로 느티나무 아래 그늘쉼터였다. 정보과 형사 뺨치게 관찰력이 좋은 게 그의 장기인지라 느티나무아래 그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윙크도 보내고 안부 한 마디 건네며 눙치고 슬슬 농담 한마디도 낚시처럼 허허실실 던져서 동리 사람들과 안면을 텄다. 사실 한창 공장에 다닐 적에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을 했으니 동리사람들과 안면을 틀 여유도 시간도 통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갈 곳이 없어 아침밥 먹고 나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소일할 장소라고는 느티나무 그늘뿐이었다. 그가 자리 잡고 턱 버티고 앉아 아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알은척을 하자 처음에야 다들 서먹서먹해 하고 낯설어하고 콧방귀도 대꾸도 없이 외면하던 동리사람들이 점점 그를 아는 척하기 시작했고 할 일 없는 늙은이 두엇 같이 그 옆에 앉아 쓸데없는 얘기 주고받는 동무가 되었다.
하나는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늙은이였는데 관절염으로 무릎수술을 한 이후 지팡이를 짚어야 운신을 하는 남사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로 서울로 가는 화물을 실어 나르는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문기사였다. 문기사는 강영감보다 나이가 뚝 떨어지는 사내이지만 실어 나를 화물이 없으면 동리 근처에 트럭을 세워놓고는 골목을 빙빙 돌아다니며 이 상점 저 사람 들락거리거나 집적거리면서 실없는 소리 몇 마디하며 소일했다. 그러니 아침마다 동리를 정찰하는 강영감과 단번에 죽이 맞아 떨어져 친하게 되었고 기름집 남사장이야 아픈 무릎 때문에 10m 쯤 걸었다면 길가 층계이든 점포 앞 가판대이든 앉을 자리만 있다면 다리쉼을 해야 하는 병골이라 나무 그늘에 항상 죽치고 있는 강영감이 정말 반가운 상대이기도 했다. 언제든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기만 하면 강영감이 떡 버티고 앉아 말상대가 되어 주니 ‘도랑치고 가재 잡고’가 아니던가. 셋 모두 이 마을 토박이도 아니면서 느티나무 주변에서 텃세를 부리면서 은근슬쩍 동리 일에 간섭하는 말도 하곤 했다.
조금 세월이 지나자 또 두 사람이 쉼터에 자주 나왔는데 왕년에 부자로 돌밭 토박이와 동리에서 누구든 존경하고 어른으로 대접을 받는 백발노인 노암선생이었다.
노암선생은 여든두 살이었는데 부인과 4, 5년 전 사별하고 혼자 살았다. 노암선생은 젊었을 때부터 10여 년 전까지는 서예학원을 차려 꽤 서예가로 명성이 이 지역에 알려진 분이었다. 그래서 동리 사람들은 그를 ‘김씨! 이씨!’ 부르지 않고 서예가로 활동할 때 쓴 ‘노암’이란 아호 그대로 노암선생이라 불러 인격이 높은 선비어른으로 대접했다. 그는 70대에 난청으로 가는귀가 먹어 여간 큰소리로 얘기를 하지 않으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귀가 먹어 남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자연히 대중의 대화에서는 항상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노암선생은 쉼터에 10시쯤 느지막하게 나타나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빼 들고 와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노암선생의 좌정은 쉼터의 그늘과도 같았다. 그가 나와 말 한마디 않고 앉아있어도 돋보였고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나 행세를 하는 유지들은 목례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다. 그러니 노암선생이야말로 이곳 쉼터에 나오는 영감들의 그늘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노암선생으로 말미암아 강영감을 비롯한 그들도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식구라곤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사는데 홀아비 노인네가 무슨 진수성찬을 차려 먹을 능력이 있을 리 만무였다. 가뜩이나 식욕이 없는 판에 잡수시는 게 부실하고 보니 날로 기운의 쇠락함이 역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감탄하는 게 딱 하나 있었으니 그의 옷차림이었다. 노암선생은 언제나 선비타입으로 옷차림은 반듯했다. 모시저고리를 입고 출입을 하는데,
“상처한 양반이 우째 모시옷을 빨아서 다리고 손질해서 입능교?”
하고 쉼터 사람들이 이구동성 놀라워했다. 그러면 노암선생은 태연자약 눈을 깜짝깜짝 거리면서 말했다.
“다아 예전에 배워뒀지. 마누라가 모시옷 손질하능 거 눈여겨 봐 두었제.”
사실 노암선생보다 조금 일찍이 합세하게 되었던 토박이는 정사장이란 위인이었다. 느티나무 쉼터에 나오더라도 자판기 커피 한 잔 사는 법이 없었다. 물론 음료수나 요구르트를 누가 사서 나눠먹으면 사양도 않고 얻어먹기는 잘했다. 그래서 면전에서 구박을 하지 못하지만 돌아 세워 놓고는 흉을 보며 빈정거렸고 흉금을 털어놓는 얘기는 정사장 앞에서는 아무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가 나와 앉아있었어도 언제나 외톨이었다. 아무도 그와 대화 상대를 해 주지 않으니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다는 왕따 같았다. 정사장이란 위인은 왕년에 내노라 하던 이 마을 대지주였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논밭이 수 천 평 있어 그걸 기반으로 집도 지어 팔고 큰 사업을 한다고 떵떵거리며 마산 일대를 자유자재로 활개를 치고 다니며 주름잡았던 사내였다. 그런데 요 중년에 나이도 먹고 중풍도 들고 사업도 실패해 폭삭 망해버렸다. 강영감의 정보 분석에 의하면 아들 둘이 있는데 그것들이 애비의 재산을 몽땅 말아 먹었다고 했다.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가 없다더니! 저 늙은이가 꼭 그 쪼야!”
물론 정사장 면전에서야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식 농사는 잘못 지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동네에는 노인정이 두 곳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곳 출입을 하지 않았다. 아니 문전박대를 당해 갈 수가 없었다. 노인정은 흔히 토박이 늙은이들이 구렁이가 똬리를 틀듯 아랫목에 버티고 앉아 득세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같은 토박이이면서도 그는 그 대열에 끼지도 범접도 못했다. 한창 신나게 잘나가고 잘 살았을 때는 동리 사람들에게 돈 빌려 주지 않고 구박이나 주고 동리 일에 협찬을 부탁하면 무조건 거절하면서 눈곱만한 도움이나 배려도 베풀지 않았던 자린고비라 그만 마을사람들에 이른바 외면을 당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갈 곳이 마땅찮은 그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그늘쉼터에 나와 앉곤 했다.
남사장도 문기사도 하나아파트에 사는 박씨 영감의 얘기를 듣느라 강영감의 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70대의 박씨 영감은 함안에 있는 파프리카 농장에 일하러 다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는 농장에서 함께 숙식을 하면서 일하는 중국인 인부 험담을 하느라 침을 튀기고 있었다. 이야기에 열중한 박씨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담배는 제 혼자 타고 있었다. 재가 길게 달린 채.
“아, 그 사람이 게을키는 한정이 없다니까! 오후 5시 땡! 하면 하던 일도 스톱하고 연장은 딱 그 자리에 팽개쳐버리고 핑! 온실을 나가버리지. 아, 조금만 꼼짝꼼짝 더 하면 마무리될 것도 내 몰라라야. 그러면서도 우리가 돈 주고 사다 먹는 술은 뚜꺼비처럼 넙죽넙죽 처먹는 거야. 그러면서 돈은 악착같이 모을려고 하제.”
“어어! 금이 가기는 갔구만. 큰일 났네! 큰 탈이 났어!”
강영감의 고함에 겨우 관심을 보이며 곁으로 온 이는 노암선생이었다.
“이거! 재미없지요? 나무둥치가 굵어지려고 크려고 터실터실해 지기도 하겠지만 이건 좀 다릅니다. 요것 보시이소. 금이 간 요 부분을 두드려 보시이소. 통통 비어있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나무거죽과 속껍질이 딱 붙어 있지 않고 떨어졌단 말입니다.”
강영감이 그 짧은 사이 나무둥치를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얻은 진단결과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노암선생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날은 그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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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순에 때 이른 장마라더니 비가 오지 않고 비가 오더라도 5mm도 오지 않고 그치곤 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여름이 되었다. 7월에 들어서자 드디어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낮 기온이 34~5도를 오르내리고 햇볕이 쨍쨍 내려 쬐기를 불이 펄펄 타는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 콩을 볶는 듯 폭염이 계속되었다. 그러구러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의 새 잎이 시들시들 힘없이 축 늘어지거나 누렇게 변한 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 가지에서 나와야 할 새가지가 소식이 없음을 발견한 강영감이 또 야단이나 난 듯 큰소리로 지적했다.
“저것 보라모! 새 잎이 영 없는 기라. 새 가쟁이가 쭉쭉 뻗어 날 때가 되었는데 아래쪽 저저 몇 가지 말고는 통 새가지가 없단 말이요.”
“아따! 새가지가 왜 안 나온단 말이요?”
문기사가 강영감 말에 퇴방을 놓는데 기름집 남사장이 한참이나 가지들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잎이 영 힘이 없고마는! 저 저기 잎은 영 시들시들하네? 진짜 가뭄 탓만은 아닌 거 같아!”
“아따! 남사장 눈에는 인자 그게 보이는고만! 내사 진작보고 말했거마능! 새잎이 새파랗게 돋아나서 아아들 손바닥만큼 커야하는데 쪼그맣게 오그라들어서 통 안 큰다니까!”
“허어! 정말 그렇고만!”
문기사도 외톨이 정사장도 그제야 강영감 말에 동의했다.
“이 나무가 탈이 나기는 났구만! 봄에 강영감님이 나무거죽에 금이 가고 벌어진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여기기는 했는데…… 어느 놈이 여게다 오줌을 쌌나?”
“아! 오줌 몇 방울에 나무껍질이 갈라져? 차라리 거름이지! 어림없는 소리!”
“허어! 내 얘기는요. 오줌 같은 소금을 우리 몰래 갖다 뿌린 것 아닌가 해요. 지나다니는 젊은 애들 우리가 나무 밑에 앉아 노는 걸 싫어한답디다. 그놈들이 나무를 죽일라꼬 소금 한 봉지 가져다 뿌릴 수도 있다는 거지요.”
문기사의 말에 남사장이 맞장구치고 나섰다.
“맞아! 제초제를 갖다 부었을 수도 있지. 나무를 죽일려꼬. 밤중에 가서나 머스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담배를 피우고 술도 처먹고 떠들며 난장판을 만드니 요 근처 사는 사람들이 잠을 못 잔다고 카기는 카지만도. 그러니 요 인근 사람이?”
“그라면 요 나무근처 사는 넘이 남모르게 슬쩍 소금이나 제초제를 뿌렸단 말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이소.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여게 와서 사는데 나무 밑둥치에 그런 흔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소.”
“그, 그야 그렇지……. 그러지만 이상한 일이제.”
강영감은 문기사와 남사장의 근거 없는 주장에 고개를 내저었다. 강영감의 타박에 문기사는 다시 전문가처럼 그럴 듯한 진단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나무뿌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요. 저 잎들이 시들어지고 새가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수근(樹根)에 문제가 생겨 물을 제대로 빨아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란 말이요. 이 땅이 삼각형이 아니요? 양쪽이 모두 하수구이니 뿌리가 제대로 뻗어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탈이 난거라 생각드는데요?”
“하아! 그럴 수도 있겠네! 문기사가 오랜만에 옳은 말 같은 말 한마디 했네!”
토박이 정사장은 나무야 죽든말든 관심이 없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고, 노암선생은 원래 귀가 먹어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지 난청을 핑계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 싫어서 인지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노암선생은 전처럼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와서 누구에게 권하는 법 없이 홀짝홀짝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었다. 올 여름 들고 폭염에 가뭄에 느티나무 그늘쉼터는 너무나 더웠든지 에어컨 시원한 바람이 잘 나온다는 노인정으로 자주 가곤 했다.
그때 경로당 총무로 노인네들의 잔심부름 도맡아 하고 있는 뚱보 황칠갑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황칠갑은 나이는 칠십대이지만 전에 쌀장수, 연탄장수를 했던 사람이라 성격이 활달하고 몸이 날래서 노인정 총무를 맡고 있었다. 사실 노인정에 나갈 형편이 안 되는 늙은이들이 느티나무아래 주로 모이는데 황칠갑과 노암선생만은 예외였다.
노암선생은 나이가 팔십을 넘겼으니 노인정에 가면 상좌에 앉는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느티나무 밑에 모이는 축들은 거개 노인정 축담에도 못 오를 사람들이었다. 우선 나이가 60대 중반이니 경로우대가 절대적인 미덕인 그곳에 가면 층층시하나 다름없어 나이 가지고는 노인대접을 받지 못했다. 완전히 늙은 청년취급이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낸 내가 노인정 상좌어르신의 담배 심부름을 해야 될 판이니 누가 거기 가겠는가? 나는 안 간대이!”
“술심부름도 해야 한다민서? 술 사다가 술잔, 안주 쟁반 챙겨서 안방 늙은이에게 하듯 갖다 바쳐야 한다민서? 처음에는!”
남사장은 황칠갑의 권유에 그렇게 단언했다. 사실 황칠갑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휴대폰 벨이 울리면 전화를 받고는 100원짜리 동전을 바꾸려고 종종 마을금고로 달려가곤 했다. 노인정 노인들이 고스톱을 치며 놀다가 동전이 모자라면 100원짜리 동전을 바꿔오라고 그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크크크!” 웃으며 잔돈을 바꾸려고 마을금고로 두말 않고 달려가는 자존심도 고집도 없는 듯한 호인이었다.
“이 나무가 죽을라꼬 하는 기 맞다. 내가 진작 동사무소 직원에게 알렸어. 나무가 고사 직전이니 살리든지 죽이든지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와 보고는 무슨 영양주사를 놓고 가지를 치면 될 끼라꼬 하지만도.”
황칠갑은 강영감의 걱정에 동사무소에 진작 연락해 두었으니 무슨 조처가 나올 것이라 큰소리쳤다.
황칠갑의 연통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느티나무의 수상한 낌새를 알아챈 동사무소 직원과 동장이, 또 느티나무의 우환 소식을 듣자 그 그늘 아래 모이는 노인 유권자들을 의식한 이 동리 출신 시의원 도의원들도 며칠 전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들은 나무뿌리가 탈이 난 모양이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나무를 살릴 방도는 구구각색이었다. 영양제 주사를 찌른다든지 아니면 가지를 대폭 잘라버린다든지 하는 얘기들만 무성할 뿐 정작 세월이 가도 동주민센터나 구청에서는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황칠갑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얘기들은 말짱 헛지랄이고. 내 생각에는 확 잘라 버리고 가을에 새 나무를 심는 거야.”
“아따! 다시 나무를 심으면 그거 언제 커서 이만한 그늘을 만들고 사람들이 땡볕을 피하겠능교?”
“물론 그늘이야 형편없겠지. 그렇지만 이 나무는 살리지 못해!”
“…….”
사람들은 우두망찰해서 할 말을 잊었다. 노암선생은 심각해져 토론을 벌리고 있는 그들을 무심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간다온다 말 한마디 없이 가 버렸다. 노암선생이 가버리자 역시 강영감처럼 동리소식통인 황칠갑이 한마디 했다.
“노암선생이 낭패라더군!”
“왜?”
남사장이 황칠갑의 말을 탁 받았다.
“저 노인네가 손자와 함께 사는 것 다 아는 사실이고…… 고등학교 댕긴다는 그 놈이 요 근래 사고를 쳐서 감방인가 유치장인가 갔나봐. 애비는 돈 벌러 간다고 타향만리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고 어미란 년은 서방이고 자식이고 나 몰라라 하고 이혼을 하고 사라졌으니 그렇고…….”
“참 노암선생 팔자가 낭패로군. 어떻게 먹고 사나?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몇 푼 가지고 살라면 배를 쫄쫄 곯을 텐데.”
“우짜겄노? 벌어 저축해 놓은 돈은 없을꺼고. 그래도 영감님이 깨끗하게 모시 저고리 빨아 다려서 입고 나오시는 걸 보면 참 눈물겹지.”
문기사의 말에 강영감은 토를 달았다. 나무 아래 사람들이 뻔히 아는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다들 처음 듣는 얘기인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우째 그렇게 곱게 모시옷을 손질해서 일고 나오시느냐? 물었지. 노암선생이 그러데. 다아 부인께 배웠다고. 할마씨가 살아있을 때 꽤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영감님 옷을 손질해 입혀 출입을 하게 했던 모양이제. 내야 마느래가 풀을 먹이는지 다림질을 하는지 통 모른다 아이요?”
“참 걱정이네. 할마씨가 죽은 지 4, 5년이 됐제? 영감이 혼자서 밥 끓여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산다니. 그 놈의 아들 며느리라도 함께 살면 저 고생을 안 할껀데. 얼마나 외로울꼬?”
“아따! 이 동리에 그런 호부래비 과부 할마씨들이 어디 한 둘이가? 전신만신 천지인데!”
사람들은 시들어 죽어가는 느티나무처럼 노암선생의 힘없는 걸음걸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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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오랫동안 폭염이 계속되었다.
유난히 가뭄이 심한 해이기도 했다. 중부지방은 연일 폭우가 쏟아지네, 강이 범람해 사람이 죽네 사네,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등산객, 캠핑 족들이 갇혔네, 119 소방대원이 출동해서 몇 명을 구조했네. 연일 텔레비전에 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부지방, 그 중에서도 창원에는 비가 귀했다. 아니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느님도 인색하시지. 이 놈으 마산 땅에는 비가 올락말락하다 싹 웃지방으로 돌아가뿌리네!”
“강영감! 오데 로비 잘하는 사람 하나 구해보소. 아니면 사바사바 잘하거나 사기 잘 치는 넘도 좋고!”
“그런 사람 구해서 뭣 하려고?”
“아! 돈 보따리 들려서 하느님에게 보내 이 바닥에 비 좀 푹 내려주십사 하고 로비 좀 할까 싶어서!”
“에이! 될 소리 좀 해요.”
강영감은 문기사의 흰소리에 기가 막혀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그때 최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갔거나 지능이 영 모자란 영감으로 길에서 만난 중늙은이들이 인사를 해도 전연 응대가 없었다. 사람을 알은척도 않았다. 구부정한 허리를 더 굽히고 땅바닥에 시선을 꽂고 다녔다. 강영감이 코웃음을 쳤다.
“좀 일찍 나오지. 인자 나오면 뭐하노? 청소부가 담배꽁초를 싹 쓸어간 후인데…….”
“요새 담배꽁초 주어서 피는 사람이 어디 있노? 실없는 소리 말아라.”
“아, 아이라 칸게네! 가만히 보면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길가 꽁초란 꽁초는 다 주어서 피운다니까! 난 저 최노인 마느레를 독한 여자라꼬 욕한데이.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9만 몇 천원 말이다. 그것만 하면 담배 서른 갑을 살낀데!”
“소문에 마누라가 주는 용돈은 이발하라고 주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하데?”
“설마!”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최노인은 나무 밑 쓰레기통을 살폈다. 밤이면 근처 젊은이들이 나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놀기 때문에 담배꽁초가 나무 아래 이곳저곳에 널려 있곤 했다. 사실 길가에는 꽁초가 더러 버려져 있어도 주워 피울만한 꽁초는 드물었다. 담배가치가 가늘어 필터까지 타 버렸거나 아니면 1, 2cm 남았다하더라도 지나가는 차가 뭉개버리므로 온전한 꽁초는 드물었다.
햇볕은 더 강렬하게 내려쬐는데 나무그늘은 점점 엷어져 갔다. 제일 위쪽 가지의 나무 잎이 가을철처럼 누렇게 변하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가보면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낙엽이 많이 떨어져서 쓸어야 했다. 그들이 앉아 쉬는 그늘이 점점 엷어져 듬성듬성 원형탈모증에 걸린 머리처럼 햇살이 군데군데 쏟아져 들어 왔다.
광복절을 넘기고 나서는 늙은이들이 엷어진 나무그늘에 가 앉아 쉴 수가 없었다. 폭염이 너무 심하니 그늘이 그늘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 잠시 모여 앉았다가 햇살이 따가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각자 집으로 가서 선풍기나 틀어놓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뒹굴기가 일 수 였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바짝바짝 말라들었다. 아침에 나가보면 낙엽이 11월 늦가을처럼 떨어져 쌓여있었다. 이제는 아래쪽 큰 가지 하나만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을 뿐 다른 가지들은 대부분 말라 누렇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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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8월 하순 오후, 구청마크를 붙인 트럭을 탄 인부들이 나타나더니 전기톱 같은 연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뭐 할라꼬요?”
강영감이 물었다. 힘없게 지팡이를 짚고 나온 남사장이 히어멀건 표정으로 구청 공원관리소란 글이 있는 트럭을 바라보았다.
“죽은 나무 잘라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졌기에 왔소.”
“아! 전에 시의원, 도의원이란 사람들이 나무를 살리겠다고 했다던데?”
“우리는 잘 모르겠소! 병든 나무를 살리는 것 보다는 베어버리고 새로 심는 것이 훨씬 좋지요.”
인부들은 전기톱을 나무둥치에 갖다 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는 길 쪽으로 자빠졌다. 가지들이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먼지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애환의 세월을 몇 년간 보냈던 늙은이들은 남다른 감회를 갖고 베어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허망한 순간이었다. 한숨을 쉬거나 얼빠진 듯 무표정으로 나무의 최후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늘이 일순간에 예고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때 자전거를 탄 황칠갑이 바쁘게 나타났다. 나무가 베어진 걸 바라보더니 슬슬 웃으면서,
“허어! 나무를 기어코 베어 버렸네! 인자 여게서 놀던 당신네들 오데 갈끼고? 이참에 몽땅 장수경로당에 오이소! 그라면 강영감에게 총무를 넘겨 줄낀데.”
하고 허튼 소리를 했다. 구청에서 온 인부들은 일사불란하게 척척 가지를 자르고 잎을 싹싹 쓸어 모으더니 나무토막들과 함께 트럭에 실고서 사라져버렸다. 한참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황칠갑이 깜빡 생각이 난 듯 말했다.
“헤! 내 정신 보라모! 나무 베는 것 보려고 온 것 아닌데!”
“와? 무슨 일이 있능교?”
“그래 말이요. 오늘 새벽에 노암선생이 별세했다네?”
사람들이 갑작스런 노암선생의 별세소식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서로 다투어 황칠갑에 물었다.
“우째 돌아가셨소? 요새 기력이 영 없는 것 같드마는! 더위를 먹었능갑다.”
강영감의 말에 남사장도 놀란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누가 우째 알기는 알았노?”
황칠갑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는 얘기를 풀어나갔다.
“나도 노인이 더위를 묵은 거라 생각이 들구마는! 요새 얼매나 무더웠나! 푹푹 안 쪘나!”
“올 여름 더위 얘기는 다 아는 기고? 그냥 넘어가고!”
“그래!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간혹 국이나 반찬을 만들면 노암선생께 갖다드리고 했던 모양인데 오늘 아침에 쇠고기 국을 끓여 가져갔다네? 여러 번 불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서 긴가민가 활짝 열린 안방엘 들여다보니 자는 듯 가셨더라는 거야. 선풍기는 제 혼자서 돌아가고……. 기겁을 해서 119에 전화하고 구급차가 와서 병원에 실고 갔지만 벌써 숨을 거둔 후였더란 거야.”
“…….”
그들은 일시에 두 가지 그늘을 잃어버렸음을 한참 만에 깨달았다. 따갑고 무더운 햇살을 막아주던 느티나무와 할 일없이 빌빌거리며 소일하는 중늙은이들에게 무언의 방패막이가 되어준 노암선생의 커다랗고 넓은 그늘을……. *****
경남펜문학 2013.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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