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덕산, 흑성산 > 천안의 두 산을 즐겁게 오르다
1. 일자: 2024. 11. 9 (토)
2. 산: 광덕산(699m), 흑성산(519m)
3. 행로와 시간
광덕산 [광덕사 주차장(09:46) ~ 장군바위(10:51) ~ 정상(11:21) ~ 광덕사(12:27) ~ 주차장(12:40) / 7.4km]
흑성산 [독립기념관(13:35) ~ (단풍나무숲) ~ 등산로입구(14:08) ~ 활공장(14:41) ~ 통신탑(14:57) ~ 정상(15:06) ~ (산성) ~ 전망대(15:19) ~ 단풍나무숲(15:42) ~ 주차장(16:20) / 8.58km]
금요일 저녁 망설이다 이러다 산과 더 멀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좌석을 확인하고는 신청을 했다. 안 가본 흑성산이 200대(산림청 기준) 명산 인줄 알았는데, 광덕산이 해당되었다. 대신 흑성산은 블랙야크 100+ 명산이다.
평소와 다르게 별 다른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선다. 토요일 아침, 긴 기다림 끝에 죽전에서 버스에 오른다. 만석이던 좌석이 꽤 많이 비어 있다. 덕분에 1인석으로 옮겨 앉는다.
< 광덕산 >
기억이 희미한 광덕사를 지나 등로에 선다. 초입부터 꽤 오래 널찍한 등로를 따라 걷는다. 산 중턱 농장으로 향한다. 길가에 감나무의 붉은 색감이 시선을 끌고 멀리 색이 변해 가는 광덕산이 전모를 드러낸다. 옛 기억은 없다. 힘겹게 1시간 여를 걸어 장군봉 바위 앞에 선다. 지능선이 끝나고 주능선에 올라 탄다. 가파름이 훨씬 덜 하다. 먼 풍경은 흐릿하지만 가까운 숲의 색은 참 곱다. 앙상한 가지가 대세인 길가에 유독 새파란 나무가 있어 눈길을 보낸다.
머지 않아 광덕산 정상에 선다. 이 역시 낯설다. 바라보는 풍경에 너울지는 산과 천안 외곽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데크 옆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다양한 모습의 산꾼들을 바라본다. 저 마다의 사연을 안고 산을 찾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길은 오를 때보다 속도가 난다. 등로의 대부분은 계단이었다. 다시 광덕사에 들어선다. 대웅전부터 절 이모저모를 살피며 내려왔다. 큰법당 앞에 석탑이 있고 주변은 잔디가 곱게 자란다. 절마당에 서니 마음의 평온이 찾아든다. 3시간 여 마음을 비우고 산에 푹 빠져 들었나 보다. 길을 나설길 잘 했다.
< 흑성산 >
버스가 독립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차분하게 길 안내를 하는 여성 대장의 말투에서 회원을 향한 배려가 느껴진다. ㅈ산악회에 이런 대장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바라보았다. 인상이 참 선하다.
독립기념관 외곽을 지나 그 좋다는 3km 단풍나무숲에 들어선다. 숲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 운치 있다. 그런데 계절이 11월 중순을 향해 가는 데도 단풍나무는 아직 제대로 물들지 않고 있다. 올 해 날씨는 정말 특이하다. 긴 여름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다. 다음 주가 되어도 단풍은 절정의 시기는 아닐 듯 하다. 그래도 녹음이 주는 분위기는 그만이다. 이 길과 길을 함께 하는 낯선 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30분을 조금 넘게 단풍나무숲을 걷다, 산길로 갈아 탄다. 꽤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만만히 보았는데 흑성은 500미터가 넘는 '산'이었다. 30여분을 오르니 웬 도로가 나타난다. 우측으로 돌아들어 활공장에 선다. 마침 활공을 앞둔 이가 있어 양해를 구하고 준비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활공의 순간은 순식간이었다. 힘차게 날아 올라 하늘 멀리 사라져 가는 행글라이더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언젠가 나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바램에 잠시 행복했다.
흑성산 정상은 통신탑들로 어지럽다. 갈림에서 우측으로 돌아드니 대전방송국과 MBC 통신탑을 지나 미군 통신부대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막힘이 없다. 멀리 천안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낯선 길에 들어선 건, 잘한 일이었다.
통신부대 펜스를 돌아드니 흑성산 정상이 나타난다. 아주 작은 정상석이 낮게 서 있었다. 주변에는 차도 올라오는 흑성산성이 있었고, 하산 등로는 정상석 옆으로 난 작은 계단에서 시작되었다. 낙엽 짙은 숲길을 걷는다. 전망대에 서서 독립기념관 부근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문득 드는 생각, 이 의미 깊은 곳에 아직도 일제시대의 사고와 역사관에 머물러 있는 이가 기관장에 인명되고 가당치 않은 이야기를 쏟아져 내는 세월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나, 슬픈 마음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결코 잊지 않되, 그 잘못됨을 용서할 날도 기다려 본다. 일제 근대화론을 도둑이 남에 집에 들어와 귀중품을 훔쳐 가고 범행 도구 몇 개를 남기고 간 것에 지나지 않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광덕산도 오르고 흑성산까지 비고 1000미터를 넘게 걸었는데,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오랜 만에 산에 오른 자에게 산이 주는 일종의 보상이려니 여긴다. B코스가 끝이 나고 길은 다시 단풍나무숲으로 이어진다. 오를 때보다 인파가 놀랍도록 줄어들었다. 덕분에 방해 받지 않고 삼각대를 세우고 내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 이곳저곳을 둘러 본다. 옛 조선총독부 해체 과정에서 수습한 잔해들을 전시 해 둔 공간이 인상 깊었다. 예전 광화문 앞에 흉물스럽게 서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해 내고, 그리고 지금 석물들이 이렇게 잔해로 뒹구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정면에서 바라보니 독립기념관은 정말로 거대한 건축물이다. 그 뒤로 내가 올랐던 흑성산이 기념관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버스에 오른다. 잠시 후 대장이 막걸리를 준비했다 하며 부른다. 막걸리 대신 감을 하나 손에 집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 안에 감돌았다. 피로가 날아간다.
고맙습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 맛 나게 하는 고마운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에필로그 >
두 산을 합쳐 16km 결코 짧지 않은 산행이었다. 광덕산은 15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인데, 희미한 옛 기억에 새 것을 보충했고, 흑성산은 독립기념관을 품은 곳이라 더 의미 있었다. 즐거운 산행이었다.
버스가 서울로 출발한다. 산에서와 독립기념관에서 경험한 일들을 복기한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그래서 준비도 하지 않은 산행, 생각보다 길어 당황했지만, 내 몸이 잘 견뎌주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새 경험들을 많이 해 보람되고 감사한 하루였다.
서녘에 노을이 물든다. 요즘 들어 부쩍 가족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진다. 잘 먹고, 잘 자고, 더 바른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그게 최선이 아닐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