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곡지의 수련과 물왕호의 물오리가 있는 가을 아침
1. 일자: 2021. 9. 22 (수)
2. 장소: 관곡지, 물왕호
연꽃은 이제 철이 지났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관곡지 찾았다. 초입, 해뜰 무렵이면 그 많던 사진 작가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그렇구나 하고 낙심하며 단지를 천천히 돌아보는데, 놀랍게도 늘 가던 그 자리에서 붉은 수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자리자기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는 자가 최고임을 또 확인한다. 구름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로 내려선다. 비가 후드득,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기억이 났다. 진천 양궁장 가는 길에 만난 소낙비에 사 두고 쓰지 않던 애물단지 우산. 볼품없이 큰 우산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내 비는 그친다.
걸어도 별 감흥이 없다. 바라볼 게 없는 호수는 그저 처리해야 할 일처럼 다가온다. 원점으로 거의 돌아올 무렵, 백로 한 마리가 물에 내려앉는다. 곁에는 물오리가 있다. 낚시터에서 버려진 철판 위에 용케도 풀이 자란다. 물새들이 잠시 머무는 쉼터가 되어 주리라. 생명이란 위대하고, 사물에는 용처가 있기 마련이리라.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사진을 본다. 행복한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