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
1. 미국의 도덕철학자 매킨타이어가 저술한 『덕의 상실』은 미국에서 벌어진 윤리학적 논쟁(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에서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저자는 현대의 윤리적 상황을 ‘도덕성과 언어의 파국’이라고 진단하면서, 윤리와 도덕이 인간의 삶에 대한 더 나은 방향을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도덕적 논쟁(예: 정당한 전쟁, 낙태, 복지 등)은 다양한 견해와 관점이 충돌하고 있는데 대부분 이러한 주장은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약불가’하며, 비인격적 합리적 논증을 사용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저자가 찾아낸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근대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편향된 관점이다. 키에르케고르와 칸트와 같은 계몽시대 철학자들은 ‘도덕의 일관화된 보편적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를 통해 도덕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기획에 돌입했고, 자연권·인권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해 비인격적인 합리화를 주도함으로써 유신론의 굴레와 목적론적인 사유방식의 혼돈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에 대해 저자의 평가는 다르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배제한 도덕법칙의 보편성 추구는 심각한 역사적 의식의 결여이며 사유와 실천이 구체적인 문화에서 파생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3. 계몽주의적 기획의 실패는 결국 현대를 지배하는 중요한 도덕적 관점인 ‘정의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정의주의’는 모든 가치평가적 판단 즉 도덕적 판단은 선호의 표현이나 태도 및 감정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이 주장은 근대의 객관적 도덕성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성립하였다. 정의주의의 등장 속에도 계몽주의적 도덕의 정당화는 현대에도 멈추지는 않았다. 노직이나 롤스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권리와 유용성’의 개념에 의거하여 비인격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적 법칙을 만드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정의주의에 대해서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현대적 자아, 즉 정의주의적 자아는 자기 자신의 영역에서는 주권을 획득하지만, 인간의 삶을 특정한 목표를 향해 질서지워져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과 정체성을 통해 제공된 전통적 한계들을 상실”한다는 이유에서 비판한다. 또한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의 견해를 “두 설명(노직 & 롤스)에 있어서 개인들이 일차적이며, 사회는 이차적이다. 그리고 개인적 이해관계의 확인이 그들 사이의 모든 도덕적 또는 사회적 유대의 구성보다 선행하고 또 이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4. 그렇다면 현대의 도덕적 혼돈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의 기본적인 전제는 비인격적 규칙을 통한 분리된 방식으로는 인간의 삶과 방향을 파악할 수 없으며, 전통과 문화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적 전통을 다시 소환하며 그러한 전통을 완성시킨 ‘아리스트텔레스’의 덕성에 관한 견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현대 윤리학의 대표적인 견해인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 즉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에 대한 비판은 현대 철학의 중심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스인들이 인간을 기능적 개념으로 파악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인간이 지닌 기능(지적인 덕과 성격적인 덕)이 도덕의 전제였음을 강조한다. 그런 전통에서 덕은 인간선을 성취하는 목표에 대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선을 구성하는 것은 최선으로 실현된 완전한 삶이고 덕의 실천은 스스로에게 그러한 삶을 보장하기 이한 삶의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5. 도덕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공동체의 문화와 역사와 분리된 채 비인격적 방식의 법칙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가 중시된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대로써 정치적 제도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롭고 선택적인 삶은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일정한 목적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전체적 인간 삶의 선, 즉 하나의 통일성으로 파악된 인간삶의 선을 구성함으로써 실천의 제한된 선들을 초월하는 하나의 텔로스(목적)가 없다면 두가지 경우가 발생한다. 즉 특정한 파괴적 자의가 도덕적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고 또 우리는 더 이상 특정한 덕들의 콘텍스트를 적절하게 규정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6. ‘덕’은 개인과 공동체가 분리될 수 없는 환경에서 좋은 삶을 위해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장소와 시점에서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지적인 것과 성격적인 것의 결합을 통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덕은 하나의 습득한 인간의 성질로서, 그것의 소유와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실천에 내재하고 있는 선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 그것의 결여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들의 성취를 방해하는 성질이다.” 즉 덕들의 실행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결단적인 태도를 요청하는 것이며, 그러한 결단은 특별한 제도적 성격을 지닌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7.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으로 본다면 현대의 자유주의적 정치사회는 오직 자신들의 보호만을 위해 결속한 ‘아무 데도 없는 곳’의 시민들의 집단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판단되며 궁극적으로 개인적 선만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선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저자는 도덕적 법칙이나 규칙을 통해 윤리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철학자들과는 달리 공동체의 좋은 삶을 가져오는 내재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덕’의 회복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은 우리의 도덕적, 사회적 태도들과 책무들에 대한 이해가능성과 합리성을 복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 서술될 수 있다.”
8.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의 논쟁은 흥미롭다.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결정적인 태도로서 무엇을 중시하여야 하는 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롤스의 ‘정의’에 대한 원칙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지지를 보내고 있는 입장에서, 반대 견해인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은 도덕과 윤리의 판단에서 한 쪽만의 견해만 일방적으로 수용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서로 다른 주장을 조합하는 방식인 ‘수정주의’, ‘절충주의’는 학문의 엄밀성의 측면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싶지만, 실제적인 행위에서는 하나의 입장만을 선택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와 실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롤스의 ‘정의의 원칙’이 인간의 덕성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형태의 도덕적 실천가능성을 탐색하고 싶다. 다만 탐색의 시작을 위해서는 각각의 견해에 대한 장단점과 구체적 적용가능성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피상적인 이해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첫댓글 - 도덕의 무질서, 윤리의 상실 시대에서 찾고자 하는 공동체의 자각....... 삶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