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1) - <꼭두각시 놀이>
1. ‘꼭두각시 놀이’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민속 인형극이다. 현재 이 작품은 ‘남사당패’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으며 196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남사당 놀이’로 개칭되었다. 가면극의 외형적인 낯설음을 공유하면서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삶 속에 녹아있는 갈등과 욕망 그리고 비합리적인 힘에 대한 저항의지를 신랄한 욕설과 재담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는 전국 많은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었으며, 그 기원은 고려시대 기록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추정될 수 있다.
2. 현재의 ‘꼭두각시 놀이’는 조선 후기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달라진 민중들의 의식과 신분관계의 와해현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신화적 요소와 종교적 제의적 특징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의 관객이 대부분 힘없는 서민이었다는 점에서 공연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풍자와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불합리한 모순에 대한 저항적 태도가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꼭두각시 놀이’의 주역은 ‘박첨지’이다. 그는 극 전체의 해설자이면서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극 중 인물로도 등장하면서 극을 전개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박첨지는 무대 앞에 있는 악사의 대표인 ‘산받이’와 재담을 주고받으며 사건의 진행과정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보여준다.
3. ‘꼭두각시 놀이’는 채록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박첨지 유람막 ②상좌춤막 ③꼭두각시막 ④이시미막 ⑤평안감사 매사냥막 ⑥상여막 ⑦절짓고 절 허무는 막’ 등이다. 각 막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 독립적이면서도 극 전체를 박첨지가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가면극보다는 막 사이의 연결과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가면극보다 인형을 다루는 기능이나 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이 더 컸다는 점에서 가면극보다 훨씬 전문적인 연희패들이 꼭두각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각 지역에서 고정적으로 공연되기보다는 유랑연희패들의 순회 공연이라는 상업적 성격때문에 대사의 욕설과 비속어 사용이 빈번하고 신랄하다는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4. ‘꼭두각시 놀이’의 등장인물은 주요 인물을 크고 명확하게 만든 반면 비중이 작은 인물들은 작게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인형의 조종 방식도 주요 인물은 막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중이 작은 인물들은 주머니를 활용하여 손으로 표현하고 있다. ‘꼭두각시 놀이’는 악사들의 음악과 등장인물의 가창도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대사를 위주로 하는 ‘연극’이라는 점에서 각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그것을 통해 표현하는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꼭두각시 놀이’의 대표적인 주역은 박첨지와 홍동지 그리고 꼭두각시이다.
5. ‘첨지’는 원래 종3품 당상관에 해당되는 벼슬이었지만 조선 후대 사회질서가 붕괴되면서 나이 많은 양반들에 대한 호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박첨지’는 바로 그런 보통의 퇴락한 양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장되고 비속하며 부도덕하고 방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랜만에 만난 처를 여전히 구박하고 젊은 첩에 호의를 베푸는 인물이며, 중들과 어울리는 조카딸들을 단속하려 나왔다가 오히려 그들과 함께 놀이에 빠지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조카인 홍동지와 묘한 관계를 통해 무력한 권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한 박첨지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세속적인 서민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박첨지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그의 성격을 잘 표현해준다. “늙은 놈이 주책없이 질녀있는 데서 춤을 추었고나, 그러나 이왕같이 춤출 바에야 어찌할 수 없다. 이 괘씸한 중놈을 처치해야 할 터인데 늙은 내가 기운이 있어야지. 아마도 생질 조카 홍동지를 내보내야겠다.”
6. 홍동지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이다. 온 몸이 붉은 색인 홍동지는 항상 벌거벗은 상태로 남근을 발기시킨 채 나타난다. 그는 강한 힘을 바탕으로 약자를 도와주는 역할도 하며, 때론 권력자를 조롱하는 비판자로서 등장한다. 홍동지는 생명을 구원하는 구원자로서 젊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홍동지는 이시미(뱀)에게 죽어가는 박첨지를 구할 뿐 아니라 각가지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다. 가면극의 말뚝이와 취발이와도 다른 더 적극적이고 파괴적인 힘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홍동지의 행동은 거림김이 없고 일상의 도덕관념도 파괴한다. 어떤 채록본에서는 시신에 대한 모욕 때문에 처형당했다는 극중묘사도 보인다. 다음의 대사는 홍동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여보게, 내 상여구경이나 좀 해야겠네. 잘 꾸몄다. 잘 꾸몄어. 원 이런 굵은 조각의 떡조각이나 있건마는 다 먹었다. 다 먹었어. 아, 쥐새끼같은 놈들이 다 처먹었네 그려. 크, 아 내매도 오라지게 난다. 방귀를 안 뀌고 뒈졌나.”
7. ‘꼭두각시’는 인형극의 명칭으로 사용되지만 ‘박첨지’에 비해 비중이 작다. 그녀는 박첨지의 본처이다. 극 중에서는 오랫동안 집 밖으로 떠돌다 박첨지를 만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꼭두각시’는 조선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심각한 피해자이다. 그녀는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남편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제도 속으로 편입되지 못한 국외자인 것이다. 하지만 ‘꼭두각시’의 매력은 그런 비극적 상황에 마냥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망에 대한 표현도 숨기지 않는 것이다. 비록 많은 장면에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 제도의 모순 속의 희생자이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특별한 힘을 표출한다. 집에 돌아온 후 박첨지와 나눈 대화는 그녀의 재치있는 저항의 태도를 찾을 수 있다. “(박)자네가 나간 후로 수십 년을 혼자 살다가 늙은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어 작은 집을 하나 얻었네. (꼭) 옳지, 내 알겠어, 영감님이 내 나간 뒤에 그 알뜰히 알뜰히 해가지고 작은 집을 한 칸 샀다니까, 고맙습니다. (박) 왜? 기와집은 안사고, 이 늑대가 파갈 년아. (꼭) 아, 그러면 무어란 말이오? (박) 그런게 아니라 작은 마누라 하나 얻었단 말이다. (꼭) 옳지, 내 알았소, 내가 갔다 들어오면 김장하라고 마늘을 한 접 샀단 말이죠?”
8. 그밖에도 상좌중과 중들과 어울려 노는 피조리, 가족들을 해치는 영노와 이시미, 평안감사와 그 모친 등이 등장한다. ‘꼭두가시 놀이’의 특징은 다른 가면극에서 양반을 잡아먹고 권력에 저항하는 캐릭터인 ‘영노’가 여기에서는 홍동지에게 패배한다는 것이다. ‘홍동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종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붉은 색의 벌거벗은 홍동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더구나 그가 남근으로 평안감사의 상여를 메는 장면에서는 민중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제공했을 것이다. 이렇듯 ‘꼭두각시’는 가면극보다도 더 하드코어적인 언어적, 행위적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9. ‘꼭두각시 놀이’와는 특별한 개인적 기억이 있다. 80년대 대학시절 ‘인형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민속인형극 ‘꼭두각시’에 대해 들었고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당시 유명했던 민속학자 ‘심우성’씨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 서투른 탓에 내가 한 질문이 마치 경찰의 취조처럼 느꼈던 심씨의 반발과 꾸중을 접했던 것이다. 곧바로 정중한 사과로 마무리했고 직접 방문해서 나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해서 문제는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때 얻은 ‘꼭두각시놀이’에 대한 정보가 우리가 하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름 ‘인형극’에 대한 열정을 갖고 움직였던 기억과 함께, 일을 추진할 때 필요한 절차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방식의 태도와 규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당시 심우성씨는 민중운동의 중심인물이었고 경찰의 감시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철모른 대학생의 갑작스런 질문에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40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 ‘꼭두각시 놀이’에 대한 자료를 읽다보니, 당시 제대로 ‘꼭두각시’에 대한 자료 조사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질문만 했던 무지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가면극’에 대한 80년대에 대한 연구도 그런 과거의 기억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댓글 - 언젠가 연수 때 안성에서 만났던 남사당패 놀이마당.......... 철모르는 대학생의 무지(?)가 필요했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