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삶의 정상에서 지평의 나를 내려다보며
예향 이종명 첫 시집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을 읽고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가. 들어가며
『첫』이라는 말은 대단히 설레는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팽팽한 긴장과 아득한 유년의 어떤 지점을 생각할 때 그리움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하는 사람의 일 중의 사랑이라는 말 앞에 『첫』을 붙이며 그 사랑은 일상의 사랑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이 된다. 경건할 수도 있고 겸손해질 수도 있는 양가성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겠지만 자기 일이나 사명감 같은 것도 사랑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첫』에 해당하는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며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첫』이라는 단어 앞에서 영롱한 사람의 자취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첫』이라는 단어 앞에서 아릿한 이별의 상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살아온 인생의 어느 순간의 정점 앞에서 뒤안길을 보며 내 삶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그날의 마음가짐과 생의 시작에 대하여 매무새 가다듬은 호흡과 함께했던 날의 내 안의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하던 출발선에 새겨진 것은 『첫』이라는 단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첫』이라는 단어는 내게서 실종되고 생경한 단어가 되고, 단어가 가진 순수함과 착실한 질감의 감각적인 면을 잃어버리고 나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기도 한다.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초심의 본질이 가진 말의 무게에 초점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삶의 많은 무게중심이 ‘나’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관계라는 속성에 깊이 스며들어 관계와 관계 속에서 나는 나의 『첫』을 다만, 그리워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때가 돼서야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하게 마련인 것이 사람의 속성이기에 그렇다.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고 주변의 시선과 성취감, 목표에 대한 완성형 독선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뭔가를 꾸준하게 이뤄내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변화를 스스로 합리화하며 변화의 중심에 있는 나를 변명하기 급급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첫』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귀감龜鑑의 대상이다. 『첫』이라는 말의 무게를 고스란히 등에 지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첫』의 질감을 실천하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그 순수의 시대에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이종명 시인의 『서평』을 의뢰받으며 시인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 77편을 읽었다. 시조 3편, 동시를 포함한 시 74편의 작품 모두가 작품의 기반이 되는 시의 포착점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두 번 모두 스무 번을 정독하다 보니 시인 삶의 방향성이 가을날의 구름처럼 내게 채록되었다. 이종명 시인은 구름을 해석하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그 모양과 꾸밈이 수시로 바뀌는 구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시인만의 눈으로 관찰하여 삶의 지평을 관조하는 듯한 관점에서 생의 어느 지점에 대입하여 『첫』의 질감을 글에 충분하게 녹여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시인의 살아온 삶이 어떠한지, 시인이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성찰하며 무엇에 대하여 경건하고 겸손한 자신을 가꾸며 살아온 것인지에 대한 투명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착시를 갖게 되었다. 시를 포함한 모든 장르의 글은 저자의 삶이다. 동시에 꾸밈없는 맨몸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맨몸의 언어는 교언영색이 없이 온전하게 솔직해야 한다. 설령 같은 눈높이가 아닌, 다른 높이에서 자칫 실수한 것이 있다 해도 그것조차 고해성사하듯 말할 수 있는 것이 시라는 장르의 글이다. 이종명 시인은 38년을 온전히 교육에 헌신한 사람이다. 선생님이 된 이유가 선생님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다른 여하의 이유가 아닌, 다만 좋아해서라는 말속에 순수와 진리가 숨어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은 피곤하지 않다. 좋아서 하는 일은 자기기만이나 포장이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은 좋을 뿐이다. 이종명 시인의 세계관은 시인의 말에 잘 나오듯 교육과 사랑, 가족과 인생, 그리고 신앙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엮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말과 삶의 다섯 주제를 들으며 문득 안온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안온安穩, 조용하고 편안하다는 말이다. 바람이 없고 따듯하다는 말이다. 다섯 주제를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섬기고 나누고 베풀고 같이 고민하고 사랑하고 믿음이라는 토대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온전하게 지키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첫』의 의미에, 질감에, 무게에 가장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시간 살아오면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해야 할 것에 아낌없이 나를 바치고, 주변과 가족의 일을 타인처럼 대하지 않고 나의 것으로 고민하며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원고를 받으며 시집 제목으로 다소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의 정독과 시를 내 감정에 이입하면서 이종명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가장 올바른 시집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 시인의 말 중 일부를 인용하여 그의 품성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본다.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된 지도 벌써 38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탄가루가 날리는 강원도 도계 장원초등학교로 1987년 첫 발령을 받아 리코더를 가르치며, 학급문집 ‘초록이’를 발간하던 그때가 가장 기억납니다. 처음 2년 동안 가르치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과 2018년 7월 28일, 28년 만에 만나 세상에서 아름다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교육자로서 가슴 뿌듯하고 설레는 날이었습니다.
늘 시적 영감을 주시어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매일 사랑하지만 설레게 하는, 나보다 더 큰 시심을 가고 나의 마음으로 시와 함께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곁에 있기만 해도 힘이 되는 딸과 아들, 양가 두 어머님께도 기쁨을 나눕니다. 2023년 10월 2일 돌아가신, 지금은 천국에 계신 아버님께 불효자식이 이 시집을 바칩니다.
『시인의 말』 부분 인용
시집 원고를 읽다 보니 장재민이라는 전 교장 선생님 (1975년도 이종명 시인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의 발간 축사가 있다. 내 관점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관점도 중요하기에 축사 중 일부 인용해 본다.
언젠가 몸이 아파 장기 결석 함에 가정방문을 간 것이 그렇게 고맙고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지극히 당연한 방문이었는데 그 작은 온정에 고마움을 표현하니 내가 더 쑥스럽기도 했답니다. 예향님(이종명 시인)과 함께 동고동락하던 그때 친구들은 정말 때 묻지 않은 순수와 동정심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협동심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다정다감한 우정들을 나누었습니다.
『장재민 님의 축사』 부분 인용
축사에서 중요한 말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말이지만 이종명 시인의 시집에 가장 어울리는 말, “정말 때 묻지 않은 순수와 동정심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과 공동선을 추구‘라는 말이다. 정말 아무 조건이나 이유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터득했다면 장재민 선생님의 말씀대로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마음 자세를 형성했다는 말이다. 더불어라는 말속에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충만하다. 더불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With, Togeth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탕에는 내가 아닌 네가 존재한다. 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나와 네가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他者적인 단어가 아닌, 공존의 단어이기에 이종명 시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종명 시인의 시집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음덕진 목사님의 축사 역시 일부 인용해 본다.
시를 통해 기도하면서 꿈을 이루고 행복을 품은 어린아이와 같은 꿈지기로 하늘을 훨훨 나는 독수리가 되기를 기도하고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이 시집을 많은 분께 추천합니다.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많은 시가 담겨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마음을 치료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꿈지기 선생님 – 음덕진 목사의 축사』 부분 인용
음덕진 목사님의 축사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음을 치료하는 시간이다. 시는 마음을, 심령을, 지친 가슴을, 아픈 감정을 치유하는 가장 큰 촉매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장 한구절, 단어 하나에서 인생의 지침이 될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시라는 장르의 매력이다. 시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나 언술의 기교적 발전이나 진화 이전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울림과 성찰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옷을 입히는 일이며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느낀 것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쳐 그 본질을 타인과 교류하는 것에 그 순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정抒情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로 예술 작품에서, 자기가 느끼거나 겪은 감정이나 정서를 나타내는 말이다. 현대시의 근간은 서정이다. 그 서정의 무게를 성찰을 통해 타인에게 이입하는 과정을 소통이라고 한다. 무엇을 줄 것인가는 시인의 몫이지만 무엇을 받아들일까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저자와 독자의 간격을 메워주는 것이, 그래서 저자와 독자가 같이 공감하는 것이 시의 표현력이며 그 표현력의 중심에 ’진솔‘이라는 것이 주재료로 들어갈 때 한 편의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진솔, 진실하고 솔직하다는 말이다. 화려한 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이 아닌, 소수의 몇만 이해하는 추상이 아닌, 읽는 모두가 공감하는 글은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그 울림의 깊이가 무한하다. 그것은 지치고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위무하고 보듬어주기 때문에 치료가 되는 것이다. 시를 쓰면서 시인 자신이 자신을 치료하고 그 치료제가 독자들의 마음을 치료하기 때문에 시의 질료는 진솔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종명 시인의 시집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이 그런 시집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알게 된다. 아련한 어떤 날의 기억이 내게도, 내 호주머니 어디 깊은 곳에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난한 세상사에서 나를 반추해 볼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 무의미를 유의미로 기억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변의 모든 것을 유의미로 만들어주는 시집이 이종명 시인의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이다. 마치 순백의 종이 위에 하나의 구름을 여러 개 겹쳐 그리듯 표가 나는 듯, 나지 않는 듯 담담하게 자신을 그려내고 타인을 그려내고, 시인이 행한 38년간의 교육자 생활을 그려내고, 사랑과 가족과 인생과 신앙까지 진솔하게 고백하는 작품에서 필자는 시의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허쉬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시는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되새기게 한다.“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일지 몰라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가장 낮은 곳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꺼내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쓸모 있고 없고의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일까? 우리의 몫이다. 또한 시인의 몫이다. 어쩌면 플러시보(placebo)효과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위약僞藥이라 해도 치료가 된다면 얼마든지 시를 쓰고 싶다. 이종명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가장 큰 울림이 드는 것은 세상의 다양한 곳에서 발견한 ’쓸모‘ 를 배운다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싶은 말들을 이제부터 경청해보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첫 시간이다.
나. 들여다보기
네가 나의 꿈이야
고운 꿈 가슴에 여며
꿈길 따라 사뿐사뿐
한 송이 꿈 꽃으로
한줄기 꿈 빛으로
꿈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때론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나 힘차게 앞으로
때론 슬프고 아파하지만
나를 달래어 밝은 발걸음으로
위대한 도전, 선행과 나눔으로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꿈 키워
천 일의 간절한 마음 담아 비오니
그 바람의 향기 하늘에 닿아서
꿈 피워 세상을 빛나게 하소서
아름다운 눈물과 꽃을 품고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하여 헌신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가슴 뛰는
온 세상을 품어
따뜻하게 수놓아 나갈
네가 나의 꿈이야
『네가 나의 꿈이야』 전문 인용
제1부 교육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동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동시를 쓴다는 것은 아이들을 알아야 하며 같이 호흡하며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먼저 아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종명 시인의 동시가 아름다운 것은 글자 하나, 단어 하나에도 사랑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 눈높이 맞춘 사랑의 실루엣이 작품마다 지천이라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아이가 되어있고 아이는 어른이 되어있다. 한 송이 꿈 꽃이 꿈 빛으로,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달래며 다시 밝은 발걸음으로 미래를 향해 한발, 두 발, 그렇게 가다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하여 헌신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이종명 시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네가 나의 꿈이야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런 기대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교육자의 상일 것이다. 우리 유년과 교육환경이 많이 달라진 요즘. 빈번하게 나오는 교육 현장의 기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태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선생님과 아이들 학부모 모두에게 공통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우선 교육자의 입장에서 시선을 정확하게 고정하게 네가 나의 꿈이라는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면 그 진심이 통할 것 같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가도 결국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며 진심은 서로 소통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그런 시인의 메시지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동시 한 편이다.
시 쓰는 아이들
쏘옥쏘옥 손 내미는 새싹
얼굴 붉힌 연분홍 진달래
노란 꽃잎 조롱조롱 개나리
풀빛 내음 가득한
꽃빛 봄 하늘 아래서
수줍음 많은 1학년 지아
말없이 묵묵한 2학년 윤재
애교 많은 3학년 시현
꿈꽃을 피워서
꿈빛을 비추어
꿈별로 빛이 날
시 쓰는 아이들
꿈을 노래하고
마음을 노래하며
어린 인생 읊조려
몽글몽글한
여린 마음길 담은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시 쓰는 치악산 시인들
『시 쓰는 아이들』 전문 인용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시 쓰는 치악산 아이들이라는 문장이다. 지아와 윤재와 시헌이가 치악산의 봄을 바라보며 그 앙증맞은 손으로, 생각으로,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상상을 해 본다. 시를 쓰면서 얼마나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볼 것인가. 얼마나 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더불어 사는 가치를 느낄 것인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니, 스스로 즐거워진다.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꿈꽃을 피우는 일이며 꿈빛으로 꿈별로 성장하여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랄 것이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시를 쓰게 함으로써 좀 더 사물을 구체화하고 풍경을 마음속에 자라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참된 교육자 정신이며 참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악산 어딘가에서 깊은 가을의, 봄의, 여름의, 겨울의 풍경을 보며 싱싱하게 커나갈 우리 아이들만 있다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순환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선순환을 향한 교육의 방법은 어렵지 않다.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막연한 꿈이 아닌, 꿀 수 있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시의 창작법은 어렵지 않다.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꿀 수 있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내게, 그리고 네게. 이종명 시인의 시가 그렇다. 씨앗을 뿌리고 발화를 기다리고 활짝 핀 꽃을 바로 보는 것이다. 지긋하게.
부채
홍조 띤 빠알간 볼
고사리 같은 작디작은 손
초롱초롱한 눈망울
2학년 세은이
부끄러워 살포시 내민 손
시원하라고 만든 부채
삐뚤삐뚤
교장선생님이라고 쓴
비행기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한 색종이 부채
그 마음이 예쁘다
세은이가 부채다
여름이 시원하겠다
『부채』 전문 인용
학생에게서 부채 선물을 받은 교장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가 떠올라 나도 몰래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 장면이 필자를 웃게 한다. 그리고 독자를 웃게 할 것이다. 거창한 명품 선물이 아닌, 예쁜 마음으로 접은 (서툴게 접었을 것이다.)비행기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한 색종이 부채 하나에 세상은 온통 화사해진다. 그 예쁜 마음의 눈높이에 맞춘 교장 선생님의 마음이 더 예쁘다. 세은이가 부채라는 말이 더 예쁘다. 여름이 시원하겠다는 말이 더 예쁘다. 아니, 모두 예쁘다. 걸그룹의 춤사위가 아닌, 아이들이 부르는 어색한 트로트가 아닌, 치악산 어딘가 작은 학교에 다니는 세은이가 백배는 더 예쁘고, 시원한 여름을 맞이할 교장 선생님이 예쁘다. 어른의 잣대로 시를 읽으면 안 된다. 어른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섞어 시를 읽어야 한다. 보이는 대로 보여주는 대로 봐야 하는 것이 풍경이다. 풍경의 배경을 읽으려고 할 때부터 시는 어려운 장르가 된다. 그것은 어른의 영역이다. 동시의 영역은 예뻐야 한다. 예쁘게 읽을 때 예쁜 풍경이 된다. 이종명의 동시를 읽으면 예뻐질 것 같다. 모든 치장을 버린 맨몸의 단어와 어절과 문장이 이토록 예쁘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아니, 이제 배운다.
이종명 시인의 시집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의 2부를 들여다본다. 2부는 사랑이라는 소제목에 부제를 (아내를 위하여)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가 가족과 삶과 아내에 대하여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시인의 눈시울을 가늠해 본다.
가을하늘 아래서
꽃향기 가득한
가을하늘 아래서
나 그대의 진실함을 보았네
부끄러울 때 수줍어할 줄 알고
슬플 땐 흐느낄 줄 아는
내 사랑하는 소녀의 순진한 마음을
속세에 물들지 않고
거짓됨에 때 묻지 않은
한 송이의 국화
그 국화가 그대이길 나는 바라네
주여!
내가 한 송이의 국화를
영원히 사랑하듯이
나 또한 그대의 작은
가슴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가을하늘 아래서』 전문 인용
마치 한 편의 동화와 같은,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어떤 날이 그려지는 수채화 같은 그런 질감을 가진 작품이다. 가을의 어떤 날, 아내의 진실함을 보았고, 소녀와 같은 순진한 마음을 보았고, 들녘에 핀 국화와 같은 가녀린 흔들림에 감탄한 그 몸짓을 가진 그녀가 한 송이 국화로 보이기까지, 그 사랑의 깊이는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의 느낌을 신앙의 절대자에게 고백하며 그녀가 국화를 닮았듯 나도 그녀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게 해 달라는 염원의 기도는 순수 이전에 순백이라 말하고 싶다. 현대사회는 계산이 통념화된 사회다. 만남에도 조건이 있고 계산이 있고 셈법이 있다. 같은 부류가 같은 부류와 통행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의 사랑 트랜드가 그렇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장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 사랑은 온유하며 오래 참고 교만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 국화가 그대이길 나는 바란다는 시인의 말에서 사랑의 깊이와 철학을 배울 수 있다. 국화는 흔하디흔한 가을의 꽃이다. 다만, 우리가 국화에 의미를 부여할 때 국화는 아내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바람은 단순하다. 모나지 않고 잘 나지 않고 들판 이곳저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자릴 잘 지키고 있는 그런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시인 역시 아내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싶은 것이기에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의 실루엣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이다. 청마 유치환의 말처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그말에 무슨 조건이 있으며 무슨 거대한 사치와 낭비와 교만과 오만과 독선이 존재할 것인가. 이종명 시인은 시인의 자격이 충분한 시인이다. 가짜 시인이 아닌, 진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오일장 날
원주 횡성 오일장 날
아내와 둘이서 뽀작뽀작
호빵은 하나만 사고
어묵도 조금만 먹고
알뜰살뜰 시장만 보고
오자는 종알종알 아내
무거운 짐 들고 낑낑 낑
아내 뒤만 몇 시간 졸졸
짐꾼으로 따라가는 장날
닷새마다 찾아가는 왁자지껄 오일장
뻥튀기 할아버지, 어묵집 아주머니
늘 먼저 열리는 내 주머니 속 용돈
먹기 싫다는 뽀로통 아내 더 맛있게
볼거리 먹을거리 이야깃거리
한 줌 덤으로 행복 챙겨주는
사람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따뜻한 향기 물씬 풍기는 삶터
장바구니 가득 담아오는 아내 마음
아내와 함께라서 손가락 꼽는
더 기다려지는 오일장 날
『아내와 오일장 날』 전문 인용
오일장, 5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장날이다. 없는 것이 없는 오일장을 아내와 같이 다녀온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장에서 구매한 무거운 짐을 들고 아내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시인의 모습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스스로 짐꾼이라 칭하며 졸졸 쫓아가는 시인의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착한 남편의 모습이기도 한 몇 부분을 재인용 해 본다.
무거운 짐 들고 낑낑 낑
아내 뒤만 몇 시간 졸졸
짐꾼으로 따라가는 장날
볼거리 먹을거리 이야깃거리
한 줌 덤으로 행복 챙겨주는
사람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따뜻한 향기 물씬 풍기는 삶터
『아내와 오일장 날』 부분 인용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그리고 한 줌 더 얹어주는 인심, 복잡한 셈법이 아닌, 기분 내키는 대로 인심과 정을 담아 한 줌 더 주는 마음속에 한국식 정이 스며있다. 이익보다는 情에 초점을 맞춘 오일장의 모습이 복잡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크다. 모두 다 가지려고 하면 아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거늘, 반면 모두 주려고만 하면 모두 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분쟁은 시작되는 것이며 분쟁이 전쟁이 되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 늘 먼저 열리는 내 주머니 속 용돈/이 무엇이 아까울까. 하나라도 더 뭐라도 사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선한 그림인지, 그렇게 저렇게 실랑이하다 장바구니 가득 담아오는 아내의 마음을 읽는 시인과 시인의 가족과 주변들, 그리고 이웃들, 선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치열하고 각박한 다툼이 아닌 주고 싶어 안달하는 나눔과 베풂의 선한 행동에서 삶은 우렁우렁 신선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종명 시인의 작품은 한편 한편이 삶의 자세이며 올바른 삶의 양태를 지양한다. 아내와 함께라서 손가락 꼽는 오일장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라서라는 말이다. 더불어. 같이. 나와 함께, 당신과 함께, ’함께‘라는 단어의 중심축은 내가 아닌, 당신이다. 무게중심을 더불어라는 가치에 두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짐꾼으로 따라가는 장날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사랑은 말이 아니다. 실천이다.
포장이 잘된 껍질이 아닌, 내용물의 진실성에 그 가치를 두고 산다는 시인의 뒷모습이 못내 어룽거릴 듯하다.
교육하나 내려놓고
꽃다운 스물네 살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설렘과 떨림의 첫 발령
아이들과 향긋한 첫눈맞춤
서투른 첫사랑 가슴속 아련히 머뭅니다
가르치랴 일하랴 배우랴
아이들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
이리 바삐 저리 바쁘게 살아온
속절없이 흘러간 빛 같은 사십 년
걱정하나 켜고
신경 둘 켜놓고
온몸 녹인 일평생 가르침의 길
한땀 한땀 교육으로 헌신했으니
당신은 올곧은 참 교육자여라
가르침의 항해가 항구에 닿아
사뿐사뿐 교육에서 내려올 때까지
교육하나 내려놓고 행복 둘 가져오게
천년 사랑 아내 안에 봄만 가득하게 하소서
※ 얼마 남지 않은 아내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기도하는 시
이종명 시인의 아내 역시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다. 24세쯤에 선생님이 되어 첫 발령을 받고 지금까지 평생을 교육 현장에 몸을 바쳤으니 그것 자체로도 대단히 어렵고 존경할 일이다. 그러면서도 한땀 한땀 교육으로 헌신하였으니, 그 헌신에 대한 이종명 시인의 헌사는 아내에게 당신은 올곧은 참교육자라고 한다. 남편에게 들을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이다. 사랑한다. 예쁘다. 아름답다. 좋은 말도 많지만 올곧은 참교육자라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이며 마음속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참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배우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것인가? 행복이란 물질이 아닌 정신적이라는 것을 배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헛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삶에 오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며 그것이 아내를 행복한 여자로 만들 것이다. 좋은 곳 좋은 자리에서 좋은 식사를 해도 홀로 하는 식사라면 그 맛은 반감될 것이며 더욱이 땀 흘려 번 돈이 아닌 느닷없이 생긴 돈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종명 시인은 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부부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다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경이다. 교육 하나 내려놓고 행복 둘 가져오게 하소서 하는 시인의 바람이 소박하면서도 진솔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익어가는 것이다. 늙은 것이 아니라.
제3부는 소제목을 가족이라고 했다. 타이틀은 아버지를 위한 시라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제3부의 가장 첫 번째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아버지의 사계(四季)
썩은 동아줄 붙잡은 호랑이 이야기 들려주시고
비 온 날 징검다리 업어서 건너 주시며
늘 내 등 뒤에 있었던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의 봄
온몸 부서져라 일하시며
아파도 아프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내 인생에 내가 없이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 산
속울음 가득한 아버지의 여름
헌시, 감사장, 감사패
일생 담은 동영상
아들 등 업히시어
팔순에 울컥울컥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가을
쪼글쪼글 주름진 얼굴
휘청 굽은 허리
잘 들리지 않은 귀
절룩절룩 저는 다리
흐릿흐릿한 눈
늙고 초라한 아버지의 겨울
아버지에게 처음 편지를 씁니다
가난해서 짧은 배움이었지만
끝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며 겸손하라는
가르침 주신 큰 스승 최고의 아버지라고
다음 생애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로 태어나
추워도 마르지 않고
뿌려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은 그 사랑
넘치게 갚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사계(四季)』 전문 인용
아버지, 어머니는 그 단어 자체로도 시가 되는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선명한 부조처럼 가슴에 맺혀있는 법이다.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아들의 삶에 있어 큰 스승이라는 말이다. 다음 생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로 태어나 내게 주신 그 사랑을 반드시 갚겠다는 다짐을 이종명 시인이 하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내 인생에 내가 없이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 산
속울음 가득한 아버지의 여름
『아버지의 사계(四季)』 부분 인용
내 인생에 내가 없이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 산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은 가족에 대한 헌신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과 속울음 가득한 아버지의 여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삶의 방정식 속에서 팔순을 넘겨 그제야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심정이 글에 온전하게 담겨 있다. 작품을 읽으며 소위 말하는 요즘 MZ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편리하고 합리적인 생활에 만족하며 살지만 질박한 정이나 소박한 나눔이나 가족에 대한 연민이 부족한 시대. 어쩌면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암울한 미래가 보인다면 어불성설일까 싶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것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더 화려한 말이다. 껍질의 말이 아닌, 내면의 소리이며 소중하게 간직한 내 존중의 기억이다. 아버지의 사계를 지나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는 이종명 시인. 샘물 같은 그 사랑 넘치게 갚고 싶다는 편지 구절이 새삼 나를 반성하게 한다. 필자 역시 아버지에게 편지 한 통 쓰지 못한 이 땅에 속한 대다수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종명 시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맑고 투명해진다. 그 글의 물속을 헤엄치는 버들치 몇 마리가 보일 것 같다. 청정 1급수에서만 사는 금강모치, 산천어, 열목어의 자유분방한 헤엄이 보이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도 물 한 모금 손에 그러쥐고 더운 여름날 벌컥 마시고 싶다. 시가 깨끗하다. 맑다. 투명하다. 시인이 시인의 아버지에게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삶에 대해.
소가 된 울아버지
큰 눈망울 곱게 뻗은 뿔 누렁소
아직도 귀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구슬픈 음매 음매 울음소리
밭 갈고 논 갈며 새끼 낳고
등 시퍼렇게 뼈 휘어지도록
일만 하다 늙어 팔려 간 누렁소
등에 진 무거운 짐
가족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
고통의 멍에 홀로 짊어진
소가 된 아버지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소처럼 쉼 없이 일만 하다가
죽어서 가죽이라도 남겨주고픈
평생 소로 살아온 아버지
『소가 된 울아버지』 전문 인용
일만 하다 늙어 팔려 간 누렁소에 빗대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인의 심정이 고스란히 보인다. 등짐을 지거나 밭고랑을 매거나 늘 묵묵하게 주인이 이끄는 대로 걷던 소의 걸음. 어쩌면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소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늘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며 우리를 위안해 주던 아버지의 등. 더 이상 남겨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가죽이라고 남겨주고 싶은 아버지. 평생 소로 살아온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가 한 편의 시며 한 편의 그림이며 한 편의 작품이다.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인의 회상 어느 한 꼭지에 아련한 그리움이 솟을 것이며 진중한 그리움이 배일 것이며, 그 아픔의 순간에 동참하지 못한 질책과 후회가 남을 것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자기 살기 바쁜 것이 인생이며 우리는 그 인생이라는 질곡의 창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것이다. 그, 반면 부모님의 생각은 다음에 소개하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비 오면 비 맞으랴 눈 오면 미끄러지랴
명절이면 차 밀릴라 생신일 땐 오지 마라
늙으신 부모님이 젊은 자식들 보살피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부분 인용
부모는 그런 것이다. 보고 싶어도 오지 말라 하시고, 차가 밀리니 집에서 쉬라고 하신다. 너희나 잘 살면 된다 하신다. 그 마음 깊은 곳에 내보이기 싫은 진심을 가린 채, 오직 자식들만 생각한다. 그것을 알아야 하는 데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요즘 시대, 문화가 발달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글로벌화하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전화 한 통이라도 드리는지?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이종명 시인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다. 맺으며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는, 시 쓰기는 자기 고백이다. 시 읽기는 누군가의 고백과 성찰에 나를 비춰보는 일이다. 반성하며 어제와 다른 내가 되는 일이다. 시의 순기능이다. 시를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때론 시인 소리를 듣기 위해서, 때론 멋있어 보여서 때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등등의 말을 뒤에 감춘 채 고상하게 이야기한다. 시가 좋아서요. 시의 무엇이 좋습니까? 하면 답을 못한다. 시가 뭔지 모른다는 말이다. 시에 대한 자기 주관이 없다는 말이다. 자기 논리조차 존재하지 않는 작품, 색깔이 선명하지 않은 작품은 밋밋하다. 수사만 화려하고 막상 먹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구름일 뿐이다. 하지만 이종명 시인의 시는 먹을 것이 많고 반성할 것이 많고 성찰할 것이 많다. 맛있는 뷔페면서 동시에 다시 오고 싶은 음식점이다. 시인의 동시, 시조, 시 모두 시적 질감보다는 시적 환기와 명징한 메시지가 독자를 주목하게 만든다. 문장은 짓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하게 우러날 때,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며 외길 인생을 바로잡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아주 많이 지친 날, 이종명 시인의 시집 『첫시간 첫마음 첫호흡』을 손에 쥐어보자. 어쩌면 그곳, 그 페이지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진솔한 목적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한동안 즐거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4부 (고운 인연) 중 한 작품을 소개하며 맺는다. 좋은 시집에서 참다운 나를 발견하길 소망한다. (김부회)
벽
이종명
내가 벽이다
네가 벽이다
모두 벽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만든 벽
나만 옳으냐
너만 옳으냐
모두 옳으냐
힐난과 비난으로 만든 벽
삐뚤어진 사상 곪아 터진 마음
독선과 아집 독살스러운 말
차가운 시선 냉대와 무시 조롱
내가 만드는 벽
네가 만드는 벽
끼리 만드는 벽
벽안에 또 벽 그 안에 벽
나만 최고고 잘나니
끼리 잘나고 최고니
뭉개고 뭉개고 뭉개고
벽보기 부끄러운 인간 벽
프로필
강원대학교교육대학원, 강원대학교, 송호대학교, 대원대학교 외래교수(전),강원도 횡성 우천초등학교 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