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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24-35절.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남
24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n the following day he entered Caesarea. Now Cornelius was waiting for them and had called together his relatives and close friends.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τῇ δὲ ἐπαύριον,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ὴν Καισάριαν·
on the now next day, he entered into the Caesarea
직역하면 ‘그 다음 날 그는 가이사랴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들어가니’(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entered) ‘들어갔다’는 뜻으로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고넬료가—- 기다리더니
ὁ δὲ Κορνήλιος ἦν προσδοκῶν αὐτοὺς,
the and Cornellius was waiting them
직역하면 ‘고넬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기다리더니’(ἦν προσδοκῶν)는 두 개의 동사로 되어 있는데, 앞의 동사는 미완료과거로서(was) 과거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뒤의 동사는 현재분사로서(waiting) ‘기다리면서’라는 뜻으로서 두 개를 합하면, ‘기다리면서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συνκαλεσάμενος τοὺς συγγενεῖς αὐτοῦ καὶ τοὺς ἀναγκαίους φίλους.
having called together the relatives of him and the close friends
‘모아’(συνκαλεσ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lled together) 열의를 가지고 다 모으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Peter entered, Cornelius met him, and fell at his feet and worshiped him.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Ὡς δὲ ἐγένετο τοῦ εἰσελθεῖν τὸν Πέτρον,
and then was of the to have entered the Peter
‘들어올 때’에서 동사는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ἐγένετο εἰσελθεῖν) 앞의 동사는 부정과거이고(was)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entered), 베드로가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단호하게 들어온 것을 가리킵니다.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συναντήσας αὐτῷ ὁ Κορνήλιος, πεσὼν ἐπὶ τοὺς πόδας, προσεκύνησεν.
having met him the Cornellius, having fallen at the feet, worshiped
직역하면, ‘베드로가 그를 맞아서, 그 발 앞에 엎드리면서, 절했다’는 뜻입니다.
‘맞아’(συναντ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met) 고넬료가 베드로를 반갑게 얼른 맞이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엎드리어’(πεσ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fallen) 갑자기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절하니’(προσεκύν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worshiped) ‘절했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왕 앞에 엎드려 절하듯이 절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나라나 동양에서는 지극히 존경스러운 분에게 엎드려 절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상 25:24, 왕하 4:37, 에스더 8:3, 막 5:22, 마 28:9).
그러나 이때 베드로는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배를 거부했고(26절), 바울도 루스드라에서 이런 경배 받기를 거절했고(행 14:15), 천사도 요한에게 이런 경배를 거부했습니다(계 19:16).
다만 고넬료는 베드로 자신을 신처럼 존경한 것은 아니고,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한 것입니다.
바울도 갈라디아 지방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천사처럼, 혹은 그리스도 예수처럼 공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갈 4:14).
26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raised him up, saying, "Stand up; I too am just a man."
베드로가 일으켜
ὁ δὲ Πέτρος ἤγειρεν αὐτὸν,
the but Peter lifted up him,
직역하면 ‘그러나 베드로가 그를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일으켜’(ἤγειρεν)는 부정과거로서(lifted up) 얼른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되 일어서라.
λέγων, Ἀνάστηθι·
saying, rise up
‘이르되’(λέγων)는 현재분사이고(saying), ‘일어서라’(Ἀνάστηθι)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ise up) 얼른 일어서라고 단호하게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나도 사람이라 하고
καὶ ἐγὼ αὐτὸς ἄνθρωπός εἰμι.
also I myself man I am
직역하면 ‘나 자신도 또한 사람이다’는 뜻입니다.
‘나도’에서 ‘나’(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am).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였기 때문에, 고넬료는 베드로를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로 공경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 피조물인 자기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일이 없도록 고넬료가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27절.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he talked with him, he entered and found many people assembled.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καὶ συνομιλῶν αὐτῷ, εἰσῆλθεν,
and talking with him, he entered
직역하면, ‘그와 함께 말하면서 그는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함께 말하면서’(συνομιλῶν)는 현재분사이고(talking with), ‘들어갔다’(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entered) 단호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들어간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καὶ εὑρίσκει συνεληλυθότας πολλούς,
and he finds having gathered together many
직역하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을 그가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인’(συνεληλυθότας)은 완료분사로서(having gathered together)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고’(εὑρίσκει)는 현재형으로서(he finds)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said to them, "You yourselves know how unlawful it is for a man who is a Jew to associate with a foreigner or to visit him; and yet God has shown me that I should not call any man unholy or unclean.
이르되
ἔφη τε πρὸς αὐτούς
he was saying then to them
직역하면 ‘그때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르되’(ἔφη)는 미완료 과거로서(he was saying) 말하기를 시작해서 계속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Ὑμεῖς ἐπίστασθε
you you know
‘너희’(Ὑμεῖς,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알거니와’(ἐπίστασθε)는 현재형으로서(you know) ‘너희가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ὡς ἀθέμιτόν ἐστιν ἀνδρὶ Ἰουδαίῳ κολλᾶσθαι ἢ προσέρχεσθαι ἀλλοφύλῳ·
how unlawful it is for man Jew to unite himself or to come near to foreigner
직역하면 ‘유대인이 이방인과 연합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이 얼마나 위법한 것인 것을’(너희가 알거니와)란 뜻입니다.
‘교제하며’(κολλᾶσθαι)는 부정사형 동사인데(to unite himself) 원형(κολλάω)은 ‘달라붙다, 연합하다, 친밀하게 교제하다’(glue, unite, friendly intercourse)란 뜻입니다.
‘가까이하는 것’(προσέρχεσθαι)은 부정사형 동사이고(to come near), 맨 앞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t is).
‘위법한(ἀθέμιτόν)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어긋나는 것을 가리키고(contrary to the divinely constituted order of things), 금기사항을 깨뜨리는 것이고, 신성모독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breaking d taboo, denotes profanity).
‘이방인’(ἀλλοφύλῳ)이라는 단어는 원래 ‘다른 족속’(another tribe)을 가리키는데, 유대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유대인의 율법에 이방인과의 모든 친교는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며,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나 이방인에게 속한 물건을 만지는 것도 금기시 되었습니다. Bruce by L. Key 285
그러나 이러한 금기 조항은 모세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이 만든 전통이었습니다.
이 바리새적인 전통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해서도 안 되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Palestine in the time of Christ 128: Josephus contra Apion 2:28, Tacitus History of the Jews 8:8).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κἀμοὶ ὁ Θεὸς ἔδειξεν
to me the God showed
직역하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지시하사’(ἔδειξεν)는 부정과거로서(showed) 과거에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δείκνυμι)은 ‘보여주다, 가르쳐주다, 설명하다, 알게 하다’(show, exhibit, teach, demonstrate, make known)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지시하셨다’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보여주셨다, 알게 해주셨다’는 뜻으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이 필요 없다는 환상을 보여주심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더 깊은 의미를 알게 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엡 2:11-22).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μηδένα κοινὸν ἢ ἀκάθαρτον λέγειν ἄνθρωπον·
not common or unclean to say man
직역하면 ‘속된 사람이거나 부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말라고’(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철폐하신 계시의 말씀은 유대인과 베드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아주 놀라운 혁명적인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유대인의 전통과 자기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한 것은 큰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금지 문제는 세계 최초 교회 회의인 AD 50년 예루살렘 총회의 핵심적인 논의 사항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말함으로써 교회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문제(할례)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행 15:7-11).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금지 문제를 거의 절대적으로 철폐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이 차별 문제를 고집하고 있고, 세계에서 인종 차별 문제는 각 지역의 커다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부르지’(λέγ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ay), 앞의 동사 ‘지시하셨다’(ἔδειξεν)에 연결됩니다.
29절.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is why I came without even raising any objection when I was sent for. So I ask for what reason you have sent for me."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διὸ καὶ ἀναντιρρήτως ἦλθον, μεταπεμφθείς
wherefore also without objection I came, having been summoned
직역하면, ‘부름받은 것을 사양하지 않고 내가 왔다’는 뜻입니다.
‘부름받은’(μεταπεμφθείς)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ummoned) 과거에 부름받았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왔노라’(ἦ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I came)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온 것을 가리킵니다.
묻노니
πυνθάνομαι οὖν
I inquire therefore
직역하면 ‘그러므로 내가 묻노라’는 뜻입니다.
‘묻노니’(πυνθάν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inquire) 지금 묻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Τίνι λόγῳ μετεπέμψασθέ με:
for what reason did you summon me?
직역하면 ‘무슨 이유로 너희가 나를 불렀느냐?’는 뜻입니다.
‘불렀느냐’(μετεπέμψασθέ)는 부정과거로서(did you summon) 과거에 부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30절.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Cornelius said, "Four days ago to this hour, I was praying in my house during the ninth hour; and behold, a man stood before me in shining garments,
고넬료가 이르되
Καὶ ὁ Κορνήλιος ἔφη
and the Cornellius was saying
‘이르되’(ἔφη)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saying) 말하기 시작해서 계속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Ἀπὸ τετάρτης ἡμέρας, μέχρι ταύτης τῆς ὥρας, ἤμην τὴν ἐνάτην προσευχόμενος ἐν τῷ οἴκῳ μου,
ago four days, until this the hour, I was at the night praying in the house of me
‘기도를 하는데’(ἤμην---προσευχόμενος)에서 앞의 단어는 미완료과거로서(I was being) 계속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뒤의 단어는 현재분사로서(praying)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기도하면서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맘때까지’란 고넬료가 6시인 정오부터 9시 즉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본에는 금식하면서 기도했다고 말합니다(ἤμην νηστεύων: Byzantine Textform, Greek Orthodox, Stephanus Textus Receptus).
‘나흘’이란 유대인들이 하루의 짜투리도 하루로 계산하는 것을 뜻하는데, ①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난 날 하루, ② 고넬료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고,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사람들을 영접하여 재운 날 하루, ③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출발해서 간 날 하루, ④ 베드로와 일행이 고넬료 집에 도착한 날 하루를 계산한 것입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καὶ ἰδοὺ, ἀνὴρ ἔστη ἐνώπιόν μου ἐν ἐσθῆτι λαμπρᾷ,
and behold, a man stood before me in apparel bright
직역하면 ‘보라,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섰다’는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똑똑히 보라는 뜻인데,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서서’(ἔστη)는 부정과거로서(stood) 갑자기 단호하게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빛난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은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31절.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said, 'Cornelius, your prayer has been heard and your alms have been remembered before God.
말하되
καὶ φησίν
and he said
직역하면 ‘그가 말했다’는 뜻인데, ‘말하되’(φησί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그가 단호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Κορνήλιε, εἰσηκούσθη σου ἡ προσευχὴ καὶ αἱ ἐλεημοσύναι σου ἐμνήσθησαν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Cornellius, has been heard your the prayer and the alms of you have been remembered before God
직역하면, ‘고넬료야, 네 기도가 들으신 바 되었고, 네 구제들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뜻입니다.
‘들으신 바 되었고’(εἰσηκού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as been heard) 확실하게 들으신 바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기억하신 바 되었다’(ἐμνή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ave been remembered) 분명하게 기억하신 바 된 것을 가리킵니다.
32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send to Joppa and invite Simon, who is also called Peter, to come to you; he is staying at the house of Simon the tanner by the sea.'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시몬을 청하라.
πέμψον οὖν εἰς Ἰόππην καὶ μετακάλεσαι Σίμωνα
send therefore to Joppa and call for Simon
직역하면, ‘그러므로 (사람을) 욥바에 보내라. 그리고 시몬을 청하라’는 뜻입니다.
‘보내어’(πέμψ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end), 얼른 단호하게 사람을 보내라고 명령하신 것이고, ‘청하라’(μετακάλεσαι)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call for) 얼른 단호하게 청하라는 명령입니다.
베드로라 하는
ὃς ἐπικαλεῖται Πέτρος·
who is called Peter
직역하면 ‘베드로로 불리는’이란 뜻입니다.
‘불리는’(ἐπικαλεῖτ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is called).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οὗτος ξενίζεται ἐν οἰκίᾳ Σίμωνος, βυρσέως παρὰ θάλασσαν.
he lodges in house of Simon, tanner by sea
‘유숙하느니라’(ξενίζ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lodges) 지금 유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I sent for you immediately, and you have been kind enough to come. Now then, we are all here present before God to hear all that you have been commanded by the Lord."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ἐξαυτῆς οὖν ἔπεμψα πρὸς σέ,
at once therefore I sent to you
직역하면, ‘그러므로 즉시 내가 당신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보내었는데’(ἔπεμψα)는 부정과거로서(I sent) ‘보냈다’는 뜻인데, 당장 확실하게 보낸 것을 가리킵니다.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σύ τε καλῶς ἐποίησας, παραγενόμενος.
you then well you did, having come
직역하면, ‘이제 당신이 오셨으니 잘 하셨습니다’란 뜻입니다.
‘당신이’(σύ: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였나이다’(ἐποίησας)는 부정과거로서(did) 분명히 잘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오셨으니’(παραγενό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확실하게 온 것을 가리킵니다.
이제 우리는---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νῦν οὖν, πάντες ἡμεῖς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πάρεσμεν
now therefore, all we before the God, we are present
직역하면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ἡμεῖς: you)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있나이다’(πάρεσμεν)는 현재형으로서(are present) 현재 지금 계속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ἀκοῦσαι πάντα τὰ, προστεταγμένα σοι ὑπὸ τοῦ Κυρίου.
to hear all things, having been commanded you from the Lord
직역하면, ‘당신이 주님께 명령받은 모든 것들을 들으려고’란 뜻입니다.
‘명령받은’(προστεταγμένα)은 완료분사 수동태인데(having been commanded), 군사용어(military term)로서 고넬료가 군인이기 때문에 군사용어를 쓴 것입니다.
‘들으려고’(ἀκοῦ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ear) 귀를 쫑긋하여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34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pening his mouth, Peter said: "I most certainly understand now that God is not one to show partiality,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Ἀνοίξας δὲ Πέτρος τὸ στόμα, εἶπεν
having opened then Peter the mouth, he said
‘열어’(Ἀνοίξ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opened) 단호한 의지로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말하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단호하게 확신적으로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참으로 (35절, 깨달았도다)
Ἐπ’ ἀληθείας καταλαμβάνομαι
of truth I understand
직역하면 ‘참으로 내가 깨닫는도다’는 뜻입니다.
‘깨달았도다’는 번역은 한글 성경에 35절에 번역되었으나, 원문에는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깨달았도다’(καταλαμβάν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understand) 지금 내가 깨닫고 있다는 뜻이고, 원형(καταλαμβάνω)은 ‘붙잡다, 체포하다, 따라잡다, 이해하다’( seize tight hold of, arrest, catch, capture, overtake, perceive, comprehend)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ὅτι οὐκ ἔστιν προσωπολήμπτης ὁ Θεός,
that not is One who shows partiality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란 뜻입니다.
‘외모를 보는 분’(προσωπολήμπτης)이라는 명사는 ‘낯을 봐주는 분, 편파성을 보이는 분’(an accepter of a face, one who shows partiality)을 뜻하고, 여기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데, 세상에서의 지위나 출신 민족이나 소유 재산을 보고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약 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성품이나 그의 행한 일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35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이미 참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36절)
35절.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n every nation the man who fears Him and does what is right is welcome to Him.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ἀλλ’ ἐν παντὶ ἔθνει, ὁ φοβούμενος αὐτὸν καὶ ἐργαζόμενος δικαιοσύνην, δεκτὸς αὐτῷ ἐστιν·
but in every nation, the (one) fearing him and doing righteousness, acceptable to Him is
직역하면, ‘각 나라에서, 그를 경외하는 자와 의를 행하는 자는 그분에게 용납된다는 것’이란 뜻입니다.
‘경외하는’(φοβούμενος)은 현재분사로서(fearing) 계속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고, ‘(의를) 행하는’(ἐργαζόμενος)도 현재분사로서(doing) 계속 의를 행하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용납된다’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용납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설교
전 시간에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많은 구제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고넬료가 순종의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하고 일을 하실까요?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나 교회에 열심히 나오거나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즉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베드로도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이나 전통 아래 있었지만 그 율법이나 전통에 얽매이지를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이라고만 하면 그대로 순종했던 사람입니다.
24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지난 시간에는 기도하는 고넬료와 기도하는 베드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순종하는 베드로와 순종하는 고넬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튿날 베드로는 가이사라에 들어가서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전날에 베드로는 기도하고 있는 중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왔고 그 안에는 먹을 수 없는 짐승들이 가득 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순종하지 못하고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고넬료가 보낸 이방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때 성령님께서 내가 그 사람들을 보냈으니 의심 말고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을 부정하게 생각하는 자기의 전통 율법적인 생각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이방인들을 집에 초청해서 한밤을 유숙하고 그 다음 날 그들과 함께 고넬료에게로 찾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이때의 갈등을 28-29절에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 자신도 이방인을 만나는 것이 위법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방인과 만나서 교제한다든지 밥을 먹는다든지 인간관계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율법(유대나라에서는 국법)에 어긋나는 일인 것을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율법과 전통을 어기고 성령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을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이런 위법적인 행동 때문에 베드로는 사도행전 11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책벌을 당할 뻔했습니다.
오늘날도 이슬람 국민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위법이고 전통을 어기는 것이고 가정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예수를 믿으면 유교의 제사를 부인한다고 가정에서 쫓겨나고, 친척들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2. 둘째 고넬료의 순종이 나타납니다.
고넬료가 누구를 초청했습니까?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초청 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의심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하인들을 욥바에 보내고 베드로가 온다 안 온다는 말이 없는데도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해놓고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모습입니까?
만일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했다면 과연 몇 명이나 믿어주고 찾아올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자녀들은 마지못해서 올지 모르지만,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몇 명이나 와줄까요?
이것을 볼 때 고넬료가 일가친척들에게도 얼마나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들어오자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한 것은 베드로를 하나님으로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고넬료는 유대 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로마 군인의 장교이고 베드로는 한낱 식민지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존경했습니다.
참으로 신령하고 경건한 고넬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6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베드로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에게 신으로 대접을 받았을 때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그 영광을 단호히 거절하면서 나도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지 천사나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과거에 애굽의 바로나 로마의 황제나 중국의 황제도 자기가 신으로 존경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독재자들도 신으로 숭배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단의 교주들은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 베드로는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는 고넬료에게 자기는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훌륭한 신앙 인격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성도들에게서 이런 특별한 대접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혹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여러분, 권력이나 돈이나 인기가 있을 때 신적인 존경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바울도 사도행전 14장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낫게 하고,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존경하려고 했을 때, 바울은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고 신적 존경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서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하고, 나는 죄가 있고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27절.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120명쯤 모였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모였기 때문에,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도 그만한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행위라는 사실을 로마인들도 알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라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전통이나 법률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임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법률보다 우선한 것이 관습과 전통이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법률과 전통보다도 더 우선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전통이나 법률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기록된 말씀만이 아니라 베드로가 기도 중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기를 바랍니다.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을 보고 계시고, 귀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입을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94:9)
29절.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온 것은 불법행위로 처벌받을 일인데도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는데, 고넬료에게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고넬료도 ‘하나님이 베드로를 부르라고 해서 불렀습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30절.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고넬료는 왜 베드로를 불렀는지 이유는 모릅니다.
단지 베드로를 부르게 된 경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부르라고 하셔서 불렀다는 것이 대답입니다.
고넬료도 정확히 몰랐고, 베드로도 구체적으로 모르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부르라고 하셨고, 베드로도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다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채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히 11:8)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직장이나 교회로 가라고 하실 때 월급은 얼마를 줍니까? 내 위치는 부장입니까? 차장입니까?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가면 몇 시간 일을 하고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고 이것을 전부 따지고 생각해보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복된 삶이 있습니다.
결국 천국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감방을 갔다 왔다 하고 그것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길 때 하나님이 ‘야! 이것은 다 총리가 되기 위한 각본이다’고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베드로는 순종해서 갔고, 고넬료도 그냥 순종해서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서 ‘왜 나를 만나려고 했습니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해보고 ‘아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31절.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5차원에 계신 하나님은 3차원에 사는 우리들의 기도와 구제 행위를 다 들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십시오.
어떤 사람은 자식이 죽는 일을 당하고 병이 났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조건 옳은 일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면 반드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32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5차원에 계신 하나님은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황을 잘 아십니다.
베드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
장소를 초월하시고 심지어 시간도 초월하십니다.
바로 5차원에 계십니다.
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잘 왔다고 말했습니다.
나쁜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당신을 초청하라고 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온 목적도 모르면서 왔단 말이요’ 하고 냉대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왜 나를 불렀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듣고자 해서 다 모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넬료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신 말씀이 있을 것이니 그 말씀을 해주십시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자 해서 다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참 고넬료가 베드로 보다 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고넬료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천하 만민에게 전하라고 하셨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번뜩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유대나라 지경 안에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찾아가서 심방하고 전도했는데, 갑자기 이방인 전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같으면 당장 고넬료의 집에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겠지만, 당시에 아직 베드로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안 해본 일이고, 관습상 도무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정신이 번뜩 나는 이방인 복음 전도에 대한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때부터는 이방인 전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만, 아직 베드로는 이방인 전도가 유대인 관습이란 담벼락을 허물어야 하는 대단히 생소하고 생전 안 해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도 대단히 어렵게 이방인 전도를 했는데, 이방인 전도 문제로 11장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책별하려고 했고, 15장에서는 세계 최초의 예루살렘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34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베드로가 깨달은 것 하나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동양인이나 백인이나 흑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지성인과 야만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신분 고하를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엄격하게 구별하시고,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메시야가 오시면 다윗처럼 이방인들을 다 죽이고 그 나라들을 유대인의 메시아 왕국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35절.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지금 베드로는 고정관념에 충격적인 변화가 온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는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율법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라도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 보자기에 가득 들어있던 부정한 음식들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이방인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존재들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으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넬료나 베드로나 요셉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잘 알지 못해도, 하나님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의 복된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