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내촌이야기
1)길영환(85), 내촌이 고향 징집면제
다리가 선천적으로 아파서 군에는 못감
6.25전쟁 나던 때는 집에 있어서 직접 전쟁을 목격했다
여기 전투는 육사생도와 북한군이 전투 했다
하지만 여기서 큰 피해는 없었고 ★생도(?) 4명과 북한군 5명이 죽었다
북한군 자리는 4차선도로가 나 버렸고 ★생도 묻힌 자리는 2차선 도로 근처인데 다 파 갔단다(?)
2) 이강희(87), 9사28연대 출신 내촌이 고향
전쟁이 났는데 처음에는 얼떨결에 전쟁을 맞이해서 피난도 못가고 숨어지냄
9.28 수복이후 얼마 안되어 다시 국군이 밀려 내려왔는데 제2국민병 소집이다
포천에서 500~600명이 50년12월 말에 걷기 시작해서 51년도 2월이 되어 경남 양산 무슨 큰산(천성산?)밑에 웅상이란 곳으로 갔다
일부는 물금으로 이동하여 삼랑진에 이르는 도로공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포천사람하고 강원 사람들이 주로 있었는데 열병환자가 발생하여 많이도 죽어나갔는데 포천사람은 안죽었다~~!
☞소문에 의하면 강원도 사람(원주, 영월, 정선등)은 중공군이 세균을 퍼트려 그러 하다는 썰같은~~있다
얼마나 한심한지 옷을 마대포대로 만들어 입기도 했는데 벗어서 털면 "이"가 하얗게 떨어진다
그러다 국민방위군 사건이 터져 귀환하게 되는데 돈 2만원을 주더라
이당시 화폐개혁이 있어 돈 가치가 있어서 5천원으로 옷 한벌 사 입었다
※쌀 한가마 가격은 모른다, 전시라 가격형성이 어려웠다~~~
걸어서 추풍령근처에 왔는데 밤에 공비가 출현해 애를 먹고 황간에서 10일 정도 머물다 떠나려는데 화물 기차가 마침 들어와 무조건 뛰어 올랐다
★기차를 타고 북수원에 와서 내려 서성 거리다 정말 우연히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이유는 포천사람들 피난지가 이곳이었다
52년도 10월에 포천 사람들 모두 징집되어 제주도에 갈때 김장성,김효석,유은현과 함께 모슬포로 갔다
여기서 교육받고 하사관학교(대정리)에 들어가 2개월 교육받고 간 곳이 9사 28연대!
3대대 정보과에 배치되어 토치카로 갔다
여기저기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한데 점심시간이 되어 반합에 먹는데 먼저 온 동료들은 포탄소리에 아무런 반응없이 잘 먹는데 정말 무섭고 이제 죽는구나 했다
밤에는 수색중대를 따라 정찰도 나가는데
이때 대대 OP가 604고지(계웅산)였다
★휴전이 되니 안되니 어수선한 가운데 7월달 어느날은 기습을 받아 604고지 일대가 포탄 밭이 되었다
★날짜는 모르지만 이한림 사단장이 위문을 왔는데 적 포탄이 명중하여 그 자리에서 수행하던 참모 1명은 전사했다~~~
다행히 지켜서 진지를 뺏기지 않았다
저격능선일대는 휴전막바지에 엄청난 격전을 치르고 적에게 피탈되고 말았다
옆에는 미2사단이 있고 수도사단이 우측에 있었는데 수도사단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천불산쪽으로 내려왔다
★휴전이 되어서 뷱한군과 만나 악수를 하고 몇일간 전사자 처리를 공동으로 했다
북한군은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느껴졌다
정말 많이 죽어 흩어져 있던 ★유해를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은 수습을 했고 개인호나 교통호등에 남아있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생창리 유곡리 일대에 남아 있는데 안전사고로 사실 또 많이 죽어나갔다
그당시 이곳 일대가 인삼밭도 있고해서 그 유혹에 말려 지뢰사고, 그러다 나무하러 산에 들어가 또 지뢰사고~~~
3)유은현(88), 경기 광주가 고향이다
전쟁이 터져 뷱한군이 냐려왔는데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으려 수원산이나 마을 뒤의 독바위(개금산?)에 숨어지냈다
그러다 수복이 되고 얼쩡거리다 여기 사람들과 함께 국민방위군으로 갔다가 왔다
다시 52년10월에 제주도로 징집되어 가서 훈련받고 21사 창설요원으로 가 65연대 인사과에 근무했다
사실 총 한방 안쏘고 57년3월에 다 같이 제대했다
하지만 전쟁은 많이 목격했다
동해안에서 함포사격이 가장 멋지다
불꽃이 연처럼 뒤를 따라 저 산너머로 줄을 지어가다 폭발하면 굉음이 들려오더라~~!
21사는 고성에서 건봉산 향로봉을 남강을 바라보며 지켰는데 기습작전이 많았다
그런데 적을 사살하는 전과보고가 엉망이라 언젠가는 목을 들고 와야 인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어느날 한 병사가 마대를 들고 나타났는데 뭐냐고 물으니 ★적군 높은 사람 머리란다~~?
★실제 이 병사는 헬기타고 1주일간 휴가가고 또 헬기로 데려왔다~~
당시 간부들이 병사용 M1소총을 들고 병에게 칼빈총를 주기도 하더라~~?
휴전후 진주령에 있는데 절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낮에는 우리가 들어가고 밤에는 적군이 내려와 주인행세를 했었다
속초 양양일대는 민간인은 한명도 없더라
4) 김재옥(84), 59년도에 군에 감, 내촌이 고향이다, 처음 전쟁때는 집에 있었다
때만 되면 찾으러 다니더라
의용군으로 끌고 가려고 혈안이 되었다
특히 북으로 올라갈때 더 심했다
어떻게 붙잡혀가지 않아 1.4후퇴시는 피난을 부산등 여러곳으로 가고 나중에 포천군에서 통제해서 수원, 광주로 이 고장사람들이 다 갔다
육사생도나 북한군이 처음에 죽은 곳은 다 안다, 아마 다 파간 것으로~~
지금 다 길이 되어 포장 되었다
5) 김효순(88), 이강희 할아버지와 같단다
그런데 귀가 어두우셔서 말을 듣지 못한다~
6) 김장성 할아버지등 2~3명이 더 계시는데 이강희 회장님 이야기로 가름하신단다
★북한군이 진주해 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바닥빨갱이거 설치는 것, 아침이고 저녁이고 모이라고 그리고 사상교육에 김일성장군가 부르라고 하는 일~~~
★그런데 중공군은 여가와서 조용히 있다가 갔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