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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허준(許浚) 第77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正面 對決 第二
그날 뜻 아니하게도 내의원 의원들이 들이닥쳐선 이 집이 혜민서 의원 허준이의 집이냐 확인한 뒤 불문곡직 일용하는 당귀가 담긴 다래끼를 들고 가버리자 허준의 가족은 도시 영문을 가늠할 길이 없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허준의 아내는 그래도 찾아온 인물들이 아들의 동관이라고 개울 건너까지 따라나가 전송하는 시어머니를 진정시킨 후 집을 나섰다.
그러나 이씨는 애고개 고갯마루 돌서낭길 앞에 이르러 걸음을 세웠다.
설사 찾아왔던 사람들의 언동이 수상쩍었다 한들 그들이 내의원 관원임이 틀림없다면 퇴청시각도 먼 이 시각에 남편 직처에 달려간다는 것은 아녀자의 행위가 아니라 여겨진 것이다.
'곧 돌아오시겠지 ... '
애써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되돌아온 이씨와 함께 이날 허준 일가는 애고개 위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가 졌다.
"어머님 먼저 돌아가 계십시오."
"나야 돌아간들 아니냐. 저 등불들이 모두 애비를 보려고 온 병자들인데 내가 미리 가 있은들이지."
고부가 막막한 눈길을 들었을 때 발밑이 이미 어두운 오솔길 쪽에서 관복의 그림자가 나타났고 자세히 보니 그건 허준을 들쳐업은 이공기와 이명원이었다.
"애비 아니냐!"
놀란 손씨가 내달았고 뒤따르던 김씨가 문득 남편의 동관들에게 내외하며 걸음을 세웠다.
코피는 멎었으나 자꾸만 다리가 꼬이는 허준은 걸음을 걷지 못했다.
영문을 물으며 손씨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명원이가 이공기의 등에서 허준을 부축해 내렸다.
"별일 아니올시다."
친구에게 부액받아 선 허준이 어머니의 눈물을 향해 거푸 그 말을 되풀이했으나 다가온 허준의 아내는 남편의 물을 뒤집어쓴 관복과 그 진흙 바닥을 기어다닌 참담한 흔적들을 향해 숨을 삼켰다.
"마당의 병자들을 보아주오."
친구들의 부축으로 방안에 뉘어지며 허준이 말했다. 믿었던 의원이 오히려 업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마당 가득히 몰려 있던 병자와 가족들이 수런거렸고 그 난감해하던 얼굴 하나가
"모두 내의원 의원들이여."
하고 숨통이 터지듯이 외쳤다.
방으로 안내받은 이공기가 허준의 가족에게 물을 데울 것을 지시하고 가져온 쑥주머니를 풀어 기해(배꼽 아래 1촌 5푼)와 중완( 배꼽 위)에 뜸뜰 준비를 서둘었다.
이어 이명원이 손씨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술과 갱엿을 구해올 것을 이른 후 허준의 수족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매 맞아 피멍든 데 엿과 술을 달여먹인다는 들은 말이 있더니 애비가 혹 뭇매라도 맞은 게 아니냐?"
엿도가가 삼개나루 가까이 있다는 얘기를 마당의 병자 가족들에게 전해 들은 손씨가 통행하는 손자와 사립 밖으로 나갔고 따라나서는 며느리에게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날 이공기와 이명원이 허준의 곁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
한밤중 엿을 탄 술 두 잔을 허준에게 먹이고 잠을 재운 후 방문을 열어 방안의 진한 쑥냄새를 갈아낼 적에야 아직도 궁금하고 안타까운 얼굴로 마당에 서성이는 병자들을 본 두 사람이 허준을 대신하여 병세를 문답하고 단방을 일러주어 돌려보냈으나 허준이 업혀오게 된 동기만은 두 사람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내의원 관기를 빙자하여 운수 나쁜 날엔 항용 있는 일올시다."
애써 웃으며 그 말 한마디를 했고 허준 스스로도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그 어머니에게 "말은 곧 잊기 쉬운 것이라 몸으로 깨우침을 받았을 뿐." 이라며 더 긴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내의원에서는 항용 있는 일.'
그러나 그 항용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내의원에 있었다. 정작이었다.
'양예수는 어의 자리를 너무 오래 했어 ... 망육십이면 의당 후계자를 길러야 하거늘 ... 사람을 보는 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이대로 더 두고 보아선 안돼.'
이번 허준에 가해진 1천 회의 어필 송독은 다분히 지난날 유의태에 향한 구원과 허준의 과차성적 특히 허준의 장기가 침임에서 그 새 사람에 대한 양예수의 견제 심리에 있다고 단정하는 정작은 역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이 문제를 표면화시킬 것을 결심했다.
허준이 이공기와 이명원의 우정에 힘입어 체력을 회복하고 남은 어필 송독 230여 회를 마친 날 정작은 혜민서 제조 정종영을 집으로 찾았다.
현직 한성 판윤으로 있으면서 혜민서 제조를 겸하는 그 정종영은 18세에 사마시에 올라 부수찬, 지평, 교리 등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청백리로 녹선되는 등 주위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고 정작의 죽은 형 정렴의 친우이기도 했다.
같은 정씨이되 그는 초계, 자신은 온양으로 비록 본관은 달라도 정종영은 친구의 아우인 정작을 친아우처럼 알았고 그 정작이 자신의 재주만큼 피지 못하고 한낱 유의로서 지내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는 처지였다.
그러나 정종영도 발벗고 나서서 도울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
정작의 아버지 정순붕은 인종 때 대사헌을 거쳐 지중추부사까지 지낸 조정의 거물이었으나 그가 속한 당파가 소윤으로서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윤임, 유관 등 대윤파를 제거하는 데 활약, 그 공으로 보익공신 1등 온양부원군에 우의정까지 올랐으나 다시 세상이 곤두박질치자 임백령, 정언각과 함께 을사사화의 삼간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몰락했다.
그 집안의 비극 속에서 정작과 그의 형 정렴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했으나 정순붕의 죽음 후 그 자식들을 아끼는 이들의 조심스러운 천거 속에서 형 염은 사마시 합격 후 장악원 주부와 혜민서 교수를 거쳐 포천 현감을 끝으로 벼슬길을 버리고 산수 그림이나 그리며 한 세월했다.
그 27세 위인 형을 따라다니며 세상에 눈을 뜬 정작도 벼슬길에 들어서 한때 예조 좌랑까지 지냈으나 더 이상의 출세엔 마음두지 않고 내의원에 적을 두며 여력을 술과 시에 탐닉하며 한세월 보내는 처지였다.
'출세해선 안된다!'
아버지의 비참한 말로가 남 위에 올라서려는 그 출세에서 비롯됐기에 형 염은 어린 아우 작에게 그 말만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주던 터였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출세의 길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작의 핏줄 속에는 포기한 벼슬길에선 피우지 못한 세상 됨됨이에 대한 강렬한 관심만은 수그러지지 않고 불타고 있는 건가. 뜻 아니하게도 허준을 위해 얼굴을 내밀려 하니 정작 그 자신도 알지 못할 충동이었다.
"모른 체할 수 없어서 나선다?"
"그러합니다."
"나도 허준이란 아이의 이름은 들은 바 있네마는?"
올해 64세가 되는 정종영의 온화한 얼굴이 44세 장년인 전직 우의정의 아들이요 친구의 아우를 건너보았다.
"좀더 소상히 말해보게."
"한마디로 내의원 인사가 너무 정체되어 있사옵고 그나마 그 인재들이 공정한 평가로 적재적소에 박히지 아니하고 어의의 주견 하나로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그건 탓할 일 아닐세."
"...?"
"내의원 인사는 본시 그러했네. 의원이란 무언가.
여타 벼슬길하곤 달라. 궁내가 무병하면 존재도 없는 것이요 내버려두어도 조정의 문무의 반열엔 함부로 끼어 들어오는 존재들도 아닐세."
"아옵니다."
"하여튼 의외로구먼, 평소 궐내에서 말수 적던 그대가 나서는 것이."
"꼭 허준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옵고 내 의원의 장래를 위한 충정올시다."
"그 말도 듣기 좋네. 하나 의원의 존재란 무언가?
궁내에 환후가 있으면 그때 비로소 책임을 지고 그 환후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때 또 책임을 추궁할 뿐 오늘까지 대과없이 지내왔다 할진대 굳이 현재의 인선이 이렇다저렇다 괘념할 거리가 못돼."
"더구나 양예수가 책임을 진 후 양대에 걸쳐 큰 실수가 없다는 것이 조정의 공론인즉."
"...?"
"물론 나보다 가까이서 더 자세히 보고 있는 그대의 눈에는 양예수의 인사나 자의가 눈에 거슬리기도 하리. 그러나 어의라는 막중한 직책을 지닌 인물에게 제 휘하의 자잘한 의원들의 인사쯤 자유로이 할 권한은 있는 걸세. 그중 누구의 눈에 억울하게 보이는 일이 띈다 해도 저희네 요량에 맡기고 모른 체 덮어주는 것이 제조로서의 내 소임이고 또 내 방침이로세."
혜민서 제조 정종영을 만나고 돌아오며 정작은 우울했다.
"양예수와 조석으로 상종하는 그대의 눈에는 어의의 독단이 불복스럽다 할지라도 왕실의 수의라는 그의 직책으로 봐서 그 정도 독단은 족히 허락된 범주의 것이네."
정작이 입을 열려 하자 정종영은 그 입을 막듯이 거듭 말을 이었었다.
"전조에서부터 양대에 걸쳐 큰탈 없이 왕실의 의약 일체를 책임져온 터요 그 인사가 정치적 파당에 관련된 내용도 아닌데 누가 그 잘못을 꼬집어 논란할 수 있나. 그리고 그 발설자가 그대인 것을 알면 그대의 가계를 기억하는 인물들로부터도 결코 좋은 말은 나오지 않으리."
마지막 말이 아팠다.
그대의 가계의 그 가계란 우의정이요 온양부원군에 봉작되었던 그리고 말년에는 을사사화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병사한 후 관작이 추탈된 아버지의 존재를 일깨우는 말이었다.
그 어두운 집안의 역사로 인하여 형 정렴은 정작이 16세에 술병으로 죽으면서 유언했었다.
"벼슬길에 끼여들지 말아라!"
"세상의 됨됨이에 관해 간여하지 말아라."
그 형도 자기도 한때는 어엿한 우의정이요 부원군의 자식들이면서 입신양명의 길목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으며 집안의 몰락과 함께 각오했어야 할 참화로부터 비켜나 여명을 부지해온 것은 너무도 뼈아프게 정작도 안다.
그 형 염이 죽고 28년 ... 44세에 이른 지금 자신의 나이로 새삼 '세상의 됨됨이에' 끼여들고자 하는 자기는 대체 뭔가...
정작은 생각한다. 자신의 입신이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아닐지나 재주 있는 자가 쓰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사원에 의해 배척을 당하는 광경을 끝내 못본 채 못 느낀 채 눈감고 지나가야만 하는가!
'그것도 세상에 대한 관심인가? 그 정도도 끼여들어서는 아니 되는 자기는 그런 인생으로 끝나는가.'
하긴 일체를 모른 체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보신책일 것이다. 대체 허준이가 자신에게 무엇이기에 그에게 닥친 일들에 자기의 가슴이 끓어야 하는가.
세상에 대한 관심은 아득한 옛날에 접어버리고 더 이상 타오를 미련도 없는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알았거늘...
'그러나 ... '
그건 허준이 때문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양예수와 구침지희로 대결했던 유의태의 기백을 목격했던 많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인 정작에게 있어, 왕실과 정계의 고관대작들에게 굴신하고 칠묘하게 헤뒷장치며 출세의 길을 닦아가는 양예수와 출세의 길을 내던지고 한바탕 조소의 웃음 끝에 산청 시골로 돌아간 유의태의 강렬한 인상 속에서, 처지는 다르나 벼슬길을 단념한 자신의 인생에 위안을 찾았었는지도 ...
그리고 그의 수제자인 허준을 보며 자신이 포기한 출세의 욕망을 의탁해보는 한가닥 인생에 대한 미련인지도 ...
그 미련은 또 자기만의 미련이 아니리라.
사마시(진사와 생원을 뽑는 과거)에 올라 26세에 포천 현감에 이른 후 더 이상의 출세를 포기, 어느날 병을 칭탁하여 동헌 기둥에 인수를 걸어놓고 초야로 묻혀버린 형인들 그 가슴에 타오르던 것은 '벼슬하지 말아라' '세상 됨됨이에 관심하지 말라'는 달관의 심정이 아니라 그치려 해도 그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새파란 원념의 몸부림이었음을 정작은 안다.
벼슬을 버린 그 형이 광주 청계사 골짜기에서 술취해 눈 속에 얼어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을 때의 절망감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 형님과 내 못다 핀 소망을 꽃피워보거라.'
이미 자기 집 대문 앞에 당도한 정작은 설렁줄을 당겨 하인을 부를 것도 잊은 채 그런 결심을 했다.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왕이요 내의원에는 양예수가 호랑이다.
삼사 의원들과 의녀들의 그 말이 아니더라도 양예수의 위엄과 존재가 가히 그 정도 막강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작이 알고 있었다. 아직 그 허준을 양예수의 대항마로 내세우기에는 어쩌면 싹수 있는 한 의원의 장래를 미리 꺾어버리는 우행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일지라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결의에 찬 그 한마디를 뇌면서 정작은 자기 집 설렁줄을 힘있게 흔들었다.
단오절이 왔다.
천중절, 중오절 또는 수릿날로도 불리는 이 단오절은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로 여기는 날이며 특히 이날 궁중에는 두 가지 평화로운 행사가 생긴다.
하나는 임금이 공조에 명하여 부채를 만들어 정승으로부터 요로 백관들에게 나누어주는 단오선의 하사 잔치요, 둘은 내의원이 주관이 되어 제호탕과 옥추단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이 그것들을 문무백관을 비롯 궁살이하는 내시, 상궁, 나인, 심지어 5,6세 어린 항아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주는데 제호탕은 청량제이고 옥추단은 구급약이다.
특히 이 옥추단은 급환 때 꺼내 먹기까지는 가운데 구멍을 뚫어 예쁜 노리개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장식품으로서보다 그건 귀신을 쫓고 제화초복을 비는 벽사의 효험이 있다고 믿어서이다.
허준과 이공기도 궐내 행사에 참여하고 내의원에 내려진 사찬을 먹던 때 였다.
약국 근무인 이명원이가 조용히 다가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지난달 자기를 혜민서에만 붙박아놓는다 인사에 불만을 품고 직소했던 황오복이 명나라에 가는 사신 행차를 따라가는 별견의원으로 뽑혔는데 이에 불만을 품고 그 황오복이 어제 어의를 찾아가 어의와 내 의원 욕을 바가지로 퍼부은 끝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고향으로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후임은 뉘라던가?"
"유도지라네."
허준이 번쩍 눈길을 들었다.
이명원도 이공기도 숨을 삼킨 채였다. 사신 행차를 따라가는 의원을 별견의원이라 부른다.
말할 것도 없이 사신 행차의 병을 돌보는 것이 소임이다.
말인즉 나라 밖 구경도 하고 호강스러워 보이나 한양서 의주 그 국경을 넘어 봉황성, 요동, 산해관, 북경까지로 3천6백 리를 약 40일로 주파하는 고행의 길이요 왕복 7천리를 넘는 그 행차에 말단 의원에게는 말도 없이 30켤레 짚세기와 미투리를 짊어지고 허위허위 쫓아가는 지옥의 노정일 뿐이다.
게다가 정사이하 짐꾼까지 총 200명에서 300명에 이르는 집단 행동 속에서 내의원 얕은 의원이야 오가며 대우받을 구석도 없다.
"국사를 수행한다는 사명감이나 문물이 앞선 나라에 가본다는 탐구심이 없는 인물에게는 죽기보다 괴로운 길일 뿐이지."
침묵 끝에 이명원이 말했고,
"유의원은 간다던가?"
하고 허준이 되물었다.
"모르지. 둘 중 하나만 결심하면 가겠지."
"둘 중 하나라니?"
"명나라의 선진문물을 견학하려는 욕심이든 이런 때 아니면 나라 밖 구경은 못해본다는 호기심이거나."
허준이 신음했다.
일전에 들었던 그 명나라 이시진이 찬술했다는 본초강목에 대한 궁금증이 불같이 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공기의 말은 엉뚱했다.
"어의가 정말 집요한 사람이로세. 황오복이를 별견의원으로 꽂은 것은 지난날 자기의 인사에 반기를 든데 대한 제재임에 틀림없어!"
캐물을 것도 없었다. 묻지 않아도 그건 세 사람의 가슴에 확실히 와닫는 직감이었으므로.
그 세 사람의 눈이 멀리 내의원 정청에서 느긋이 도제도며 제조들과 한담과 웃음을 흘리는 양예수 쪽에 박혔다.
의지인이라 엮은 글자가 보이는 커다란 발 너머에서 그 내의원 고관들의 모습은 한껏 평화로웠다.
"대궐 쪽은 넘보지도 말고 혜민서 근무도 감지덕지하며 시키는 대로 해라. 몸 편하려거든 반심 품지 말라는 우리네 모두에 대한 경고겠지."
이공기가 조롱기 어린 눈빛인 채 뇌었고 그 거침없는 언행을 이명원이 눈짓으로 말렸을 때였다.
정청으로 급히 다가드는 내시와 몇마디 얘기가 오가던 김응택이 보였고 곧이어 발이 들춰지며 방안에 동석해 있던 정작이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방안에서 양예수가 황황히 나와서 내시의 얘기를 듣는 것이 보였다.
무슨 사태가 일어난 듯했다.
양예수가 내시에게 되묻기도 전에 방안의 제조와 도제조가 역시 경황없는 모습으로 나왔다. 이어 내시를 앞세운 일행이 황황히 정청을 빠져나갔다.
"공빈 처소의 내신데."
이명원이 그간 궁안에서 안면을 넓힌 듯 뇌었다.
정통 왕자 아니 계시고 임해군과 광해군 형제를 생산한 공빈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의기양양한 선조의 첫째 애인이었다.
정청 가까이 있던 미사가 다가오자 이명원이 그 미사에게 연유를 물었고 미사가 조심스레 주위를 돌아보았다.
"공빈마마 처소에 급한 문후가 겝시다 하옵니다."
"어떤 환후관데?"
"얼핏 듣기 구안와사라 하더이다."
"구안와사?"
"공빈마마가 말인가?"
"자세히 듣지는 못하였사오나 모두 경항없이 나가시는 걸로 보아 아마도 ..."
미사가 귀한 이들의 병을 함부로 입에 올리기를 저어하는 양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운명의 기묘한 마주침이었다. 입과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그 구안와사의 병증이 공빈에게 온 그날 혜민서에도 똑같은 구안와사 병자 하나가 찾아들어와 직숙이라 돌아와 있던 허준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마치 서로의 의술을 견주어보기라도 하라는 듯이 똑같은 병의 두 병자가 양예수와 허준에게 한 사람씩 배당된 것이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 李恩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