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성과 작품성, 그리고 상업적 대중성까지 모두 확보한 영화 <기생충>
프랑스의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영화 <기생충>(Parasite)은 예술성과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그야말로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연출과 각본까지 모두 소화한 감독 봉준호의 작가주의 예술성이 극에 달했고, 다양한 장르적 관습(Genre Convention)을 절묘하게 결합해낸 영화의 완성도는 예술성에 더해 작품성 또한 담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자신의 영화세계로 가져와 일반관객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는 면에서 또한 대중적 흥행성까지 겸비하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적 기법,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가 경배하는 20세기 최고의 거장 중 한명으로 풍자영화의 대가로 불린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의 영화작법과 주의(ism) 및 성향을 환기하는 영화 내외의 만듦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열정이 예술적 경지에 도달했음을 확증한다. 유쾌한 코미디와 진중한 드라마, 거기에 전율과 긴장감을 불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팽팽한 분위기가 교묘히 합을 이루면서 봉준호의 <기생충>은 그야말로 ‘웰-메이드’(Well-Made)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구성적 완성도를 담보한다.
반 지하 네 가족 대 건축가가 지은 고가 호화주택 지하에 은신처를 마련해준 남편과 함께 기거했던 원래 가정부 부부, 이들에게 장소를 제공해준 부유층 4인 가족. 4인 4색의 각 인물들과 의외의 변수가 껴들면서 급물살을 타는 매끄러운 이야기전개와 각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거지를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냉담하면서도 은유적으로 투영해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탁월하다.
제한된 건물과 세트에서 이뤄진 공간미와 물의 이미지 등의 구성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시각적 완성도 확보한 것 또한 기발한 발상이다.
덧붙여 주요섭의 단편소설 <개밥>이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실존철학,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정치철학 등에 준거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것도 봉준호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든 영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에 기여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칸의 선택을 받기까지 봉준호 감독의 도전 명작들과 그 의의.
알다시피 봉준호는 2006년 <괴물>로 블록버스터에 도전한 뒤 2009년 <마더>에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심리스릴러를 탐구했고,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넓힌 <설국열차>(2013)에서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과학소설 액션 드라마의 복합장르구성 안에 환경과 계급문제를 녹여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슈퍼돼지 옥자와 시골소녀 미자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옥자>에서도 S.F. 액션 드라마의 장르적 컨벤션 내에 동물과 생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아내면서 감독 특유의 작가주의 성향을 고집스럽게 펼쳐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으로 확장성을 꾀했다는 점을 예외로 하면 말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살인의 추억>(2003)부터 마침내 프랑스 칸이 선택한 최고작품 <기생충>을 내기까지, 감독 봉준호는 거의 일관된 세계관과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문제점들을 복합적인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주관적으로 풀어내면서 한편으로 관객들과 사회적 문제의식에 대해 상호소통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그렇게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 곧 <기생충>에 와서 그 진가를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무대, 그리고 플랫폼을 이용해 그 특유의 철학적 세계관과 견해를 영화에 담아내고, 그 결과물로 계속해서 칸의 문을 두드린 성과가 마침내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줬다고 본다.
<택시 드라이버>(1976), <지옥의 묵시록>(1979), <카게무샤>(1980), <미션>(1986), <패왕별희>(1993), <펄프픽션>(1994), <피아니스트>(2002), 그리고 전년도 상을 받은 <어느 가족>(2018), 이외의 수상작들을 돌이켜볼 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준 작품들은 장르와 작가주의에 충실한 예술성과 작품성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
2019년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의 영예에 이어, 2020년 제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Golden Globe Awards) 무대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Best Motion Picture - Foreign Language) 트로피를 거머쥔 감독 봉준호. 직접 쓴 각본을 기막히게 연출해낸 노고에 대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할 그의 다음 무대는 2020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Academy Awards)이다.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그치고 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의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 <기생충> 리뷰
가난한 4인 가족, 빚에 쪼들리고 반 지하 방에 사는 그들은 위층 이웃집 와이파이를 거머리처럼 빨아들이면서 창문 너머로 낙오자와 같은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고 구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아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기우(최우식)가 유학 가는 친구 민혁(박서준)의 부탁으로 부잣집 딸아이 다혜(정지소)의 과외선생으로 사기 위장취업하게 되면서부터 온 가족이 이 형편없는 생활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게 된다.
대궐 같은 저택에 첫발을 내디디던 첫날, 우식은 필연적 우연으로 딸아이의 엄마가 미술에 창의적 재능이 있다고 믿는 심술쟁이 꼬마아들 다송(정현준)을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식은 그 즉시 자신의 여동생 기정(박소담)을 미국에서 공부한 유능한 인재로 소개해 이 부잣집에서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기정은 이어서 원래 기사를 음모로 쫓겨나게 하고 아버지(송강호)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다음차례는 엄마, 기정은 아버지에 뒤이어 충직한 집사를 쫓아낼 구실을 만들고, 동생 기우와의 합작으로 마침내 엄마마저 부잣집 주인댁에 들이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온가족의 위장취업 임무를 완수한다. 그야말로 생래적 사기꾼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무계획적으로 살아온 부모와 자의반타의반 계획적으로 이 일을 꾸미게 된 자녀의 부잣집 기생이야기는 시치미 뚝 떼고 아무 문제될게 없다는 듯 무심하게 전개된다. 형편없는 반 지하방에서 살아온 이 4인 가족은 곧 자신들의 육신을 부잣집 4인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살며시 밀고 넣고, 마치 당연한 호사인 것처럼 때론 교만하게 한 지붕 두 가족의 변화된 환경을 누린다.
‘기우’에겐 ‘케빈’, ‘기정’에겐 ‘제시카’라는 미국식 이름도 새로운 정체성으로 부여된다.
4수생과 PC방 죽순이에게는 그야말로 신분세탁(?)의 기회가 되는 셈. 케빈은 딸아이의 가정교사로, 기정은 꼬마아들의 미술선생님으로, 그리고 이들의 부모는 부잣집 내외의 가정부와 기사로서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거듭난다. 부유한 가족과 하층민 가족의 상리공생은 그렇게 계약된 관계로 한동안 지속된다.
주인집 가족이 캠핑을 간다고 집을 비운 어느 밤, 옹기종기 모여 회포를 풀던 반 지하 가족에게 느닷없이 쫓겨난 가정부가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전 가정부의 난데없는 등장으로 이들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모의로 쫓겨나게 만든 그 식모가 주인댁 거택 지하에 자신의 남편을 숨겨놓고 함께 기거했었다는 새로운 사실, 이 황당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서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히 긴장과 전율, 공포가 뒤섞인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물로 모습을 바꾼다.
표면적으로 협잡꾼 하류가족과 부유한 상류가족의 웃지 못 할 블랙 코미디적 해프닝, 사회계층의 상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 보이던 영화는 갑자기 망령을 부리듯 기괴한 분위기와 애통한 기조로 흘러간다.
장르관습의 틀을 거부하는 감독 봉준호는 사고의 틀을 뒤집어 다양한 시도들을 접목해냈다. 때론 신중하고 때론 희롱조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광적으로 영화를 몰아가면서 장르 관습과 모든 가정이 거기에 딸려가도록 했다. 혹자는 단순한 결과를 기대하겠지만, 영화의 결말은 또 다른 짐작을 가능케 하는 개방적 구조로 치닫는다. “괴물”(Host)에 붙어사는 진짜 기생충처럼 영화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명작, 뒤틀린 가족 스릴러 <괴물>(The Host)와 같이 <기생충> 또한 사회계층,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설계된 외관을 갖추고 있는 듯, 도식적으로 보이지만, 광적인 유희를 즐기듯 그 속내의 진위를 알기 어려운 결말로 관객을 다소 허무하게 만든다.
봉준호의 영화는 도식적 해석을 불가하게 한다. 우화, 풍자, 인본주의를 절묘하게 혼합해내는 한편 영리한 게임을 하듯 자신만의 장기를 발휘하는 것이다.
자신의 극적 인물들을 이야기 선상에서 절대 방관하지 않고, 정신병적 현실에 근거를 둔 파멸의 비극적 대단원을 향해 등장인물들이 감정을 분출하게 만든다. 누구나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게 훨씬 더 가슴 저미는 정서적 경험의 순간으로 관객을 내몬다.
감독 자신이 쓴 각본 안에서 서사와 문체상의 기교를 한껏 부리며, 블랙 코미디와 서스펜스, 신랄한 상징주의, 영혼을 파괴하는 치명적 폭력을 배합하고 어우러지게 만든다. 열망과 기대, 변화를 계속해서 강제하는 가운데 세상이 그 토대 위에 세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봉준호의 <기생충>에는 꾸준히 동요된 변화를 추구하는 감독 자신의 영화적 세계관이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이미지가 마법처럼 뇌리에 오래 남는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