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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고서원 유허비 | 槃皐書院 遺墟碑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1년(1375)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1년 넘게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동안 자주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 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조선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회재 이언적·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포은대실록비(1890)·반고서원유허비(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사진의 안내문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고, 연도는 괄호 안에 표기했습니다.
### 울주 반구천의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울주 반구천과 그 주변은 자연경관과 문화 경관이 잘 어우러진 명승이다. 자연 협곡 사이로 구불거리며 흐르는 반구천 일대에는 모래벌과 습지가 형성되었고, 둘레로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여럿 솟아 있어 자연유산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반구천 일대 퇴적층인 대구층에서 백악기 전기에 살았던 수생파충류인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노바페스 울산엔시스: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을 포함하여 수백 개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어 국제적으로 주목 받았다.
또한 반구천 일대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원앙, 삵, 수달, 담비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졸참나무와 갈대, 억새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중요하다.
반구천 일대는 선사와 역사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 인문 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국내 암각화 유적 가운데 국보로 지정 보호되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세계적으로 가치와 의미를 평가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사 및 역사 문화유산이다.
반구천이 휘감아 흐르는 반구대는 고려 말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은 정몽주가 찾은 곳으로 반고서원 유허비, 반구서원, 집청정이 있는 곳이다.
반구대 바위의 각자(刻字)와 새긴 그림, 연로개수기, 반구대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 문인서화가들의 시와 그림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 일대가 명승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 硯; 벼루연)
는 약 370년 전 반구대의 벼랑길을 고쳐 닦았다는 사실을 바위에 새긴 역사 기록입니다.
### 반구대의 옛 그림과 현재 모습
대곡천 계곡은 1억 년 전 백악기시대, 선사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쳐 역사시대의 흔적까지 동시에 아우르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이자 노천미술관이다. 대곡천 계곡의 중심에는 선조들이 신선골이라고 불렀던 천혜의 절경, 반구대가 있다.
반구대 아래, 위로 대곡천 계곡 따라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와 국보 147호 천전리암각화가 자리하고 있다. 반구대는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저술 활동을 한 반고사 터, 고려말 언양에 유배된 정몽주 선생을 기려 창건한 반고서원, 조선후기 수많은 선비들이 머물고 시를 짓던 집청정을 품고 있다.
반구대를 노래한 한시는 400수 이상 전해내려 오고 있지만 반구대의 비경을 그린 산수화는 지금까지 두 점 정도가 전부다. 겸재 정선의 〈반구〉도와 교남명승첩에 실린 〈언양 반구대〉다.
겸재 정선의 〈반구〉도는 지난 2008년 권섭의 공회첩에서 발견되었으며 반구대의 기암절벽과 집청정, 대곡천 바닥의 바위를 묘사한 진경산수화다. 겸재 정선이 경상도 하양(지금의 경산)과 청하(지금의 포항) 현감을 8년 간 지내면서 반구대를 방문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장헌)세자는 반구대 현장을 방문한 기록은 없지만 겸재의 그림을 보고 능허관만고에 반구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언양 반구대〉 그림은 실경산수화로 교남명승첩(간송미술관 소장)의 1권 23면에 실려 있다.
교남명승첩은 상하 2권 58폭으로 구성돼 있고 영남지방의 34개 지역 58개 명소가 이름을 올렸다. 〈언양 반구대〉 그림은 반구대암각화 발견 당시부터 소개 되었지만 최근까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화폭에 담긴 풍경은 지금의 반구서원 주변에서 본 반구대 일원 풍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 영남은 일반적으로 **문경새재의 조령(鳥嶺)**을 비롯해 죽령 등 큰 고개의 남쪽을 가리킵니다. 교남은 특히 문경의 주흘산(主屹山) 남쪽이라는 설명도 전해진다.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과의 관계
앞서 살펴보신 반구대 그림이 실린 『교남명승첩』의 제목도 여기서 유래한다.
# 교남(嶠南): 영남지방
명승(名勝): 경치가 뛰어난 곳
첩(帖): 그림이나 글을 모아 엮은 책
정몽주와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올라가 시를 짓고 여흥을 즐겼다고 전해지는 반구대 너럭바위 위에 갓을 쓴 선비들이 묘사돼 있다. 그림의 왼쪽하단부에 있는 집들은 옛 반고서원으로 추정되고, 오른쪽 산기슭에는 집청정과 반구암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남명승첩은 작품에 낙관이 없어 제작 시기와 작가에 대한 논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겸재 정선이 아닌 정선의 손자인 정황의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 (1995. 6. 23. 지정)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태화강 지류에 해당하는 대곡천변의 절벽에 있다. 암각화가 집중적으로 새겨진 중심암면 크기는 너비 약 8m, 높이 약 5m이며, 10°가량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주변 암면 10여 곳에서도 소수의 암각화가 확인된다. 북향인 중심암면은 넓고 편평하며 절벽 윗부분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오랫동안 비바람으로부터 그림을 잘 보호하여 왔다.
지금까지 조사된 암각화는 약 300여 점으로 사람·바다와 육지동물·사냥과 어로 장면 등이 있다. 동물그림의 종류는 북방긴수염고래·혹등고래·참고래·귀신고래·향유고래·바다거북·바다 새·물고기·상어 등과 같은 바다동물과 대륙사슴·사향사슴·노루·고라니·산양·호랑이·표범·멧돼지·너구리·늑대·여우·산토끼 등의 육지동물이 있으며, 배와 작살·부구(浮具)를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과 활을 들고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 등 선사시대 사람들의 수렵·어로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도 잘 남아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시대는 울산 황성동 패총 유적에서 출토된 작살이 박힌 고래 뼈와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의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를 표현한 암각화로 평가되며 현재 울주 천전리 각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Dinosaur Tracksite in Daegok-ri
大谷里 恐龍脚印 化石遺址 大谷里 恐竜足跡 化石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2000.11.9.지정)
Ulsan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13(Designated in Nov.2000)
공룡들은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아열대(亞熱帶) 기후 아래 사바나 지역의 하천평야(河川平野)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룡이 살았던 시기를 지질학적으로 중생대라고 하며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도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白堊紀)에 살았던 공룡들의 흔적으로 보인다.
대곡천의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화석이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약 100㎡ 넓이의 바위 곳곳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고 용각류 팔용과(Brachiosauridae)에 속하는 것 60톤급과 조각류 이구아나과(Iguanodont)에 속하는 것 ,고성룡족인, Goseongosauripus 등 24개 정도이다.
불규칙하게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갔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일대의 지층(地層)은 경상계 하양층군 사연리층 중회색 사질이암층에 속하며, 이 공룡발자국 화석은 울산지역과 대곡천 주변의 환경과 자연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집청정 | 集清亭
집청정은 경주최씨 정무공파(貞武公派) 파조 청백리 병조판서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증손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 1673~1737)가 세운 정자다.
집청정(集清亭)은 맑음을 모은다는 뜻이며 오른쪽에 청류헌(聽流軒-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 왼쪽에 대치루(對峙樓-서로 마주함)를 두고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鄭敾)의 '반구'와 겸재 또는 그의 손자 정황(鄭榥)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언양반구대'에도 집청정으로 보이는 정자가 묘사되어 있다.
집청정은 반구대를 찾는 시인 묵객의 소통의 장이 되었으며, 조선후기부터 구한말까지 284명의 시인이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작품들을 운암의 후손 최준식(崔俊植)이 정리하여 한권의 책(集清亭詩集)으로 묶었다.
집청정시집에는 숙종과 영·정조 때의 문신, 학자, 경상도 관찰사, 인근지역 수령들이 이름을 올렸으며, 숙종 때의 문신 권해(權瑎)의 반구제영(盤龜題詠)도 실려 있다.
지금도 집청정은 옛 정신을 살려 지역 문인의 창작과 소통의 장소로, 예와 도를 배우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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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 반구천의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유산
문답으로 살펴보는 반구대의 역사와 문화
(총 60문항)
### 제1부. 반구천의 자연경관과 생태환경
문 1. 울주 반구천은 어디에 있는가?
답.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에 있으며,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이 흐르는 지역이다. 기암절벽과 굽이치는 물길, 선사시대 유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문 2. 반구천 일대가 명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깊은 협곡, 기암괴석, 모래벌과 습지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선사시대 암각화와 역사시대의 문화유산이 함께 분포하기 때문이다.
문 3. 반구천의 지형적 특징은 무엇인가?
답. 산과 절벽 사이를 하천이 구불구불 흐르며, 곳곳에 너럭바위와 기암절벽, 하천 퇴적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문 4. 반구천 일대에서 발견된 중요한 자연사 자료는 무엇인가?
답. 약 1억 년 전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 화석과 수생파충류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이다.
문 5.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발자국 화석으로, 당시 수생파충류의 생태와 서식환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문 6. 반구천 일대에 서식하는 주요 야생동물은 무엇인가?
답. 황조롱이, 원앙, 삵, 수달, 담비 등이 서식하며,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생태환경을 이루고 있다.
문 7. 반구천 주변의 대표적인 식생은 무엇인가?
답. 졸참나무를 비롯한 산림식생과 하천 주변의 갈대, 억새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문 8. 대곡천 계곡을 자연사박물관이자 노천미술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백악기의 화석에서부터 선사시대 암각화, 역사시대의 각자와 시문,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의 자연과 인간의 흔적을 한곳에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제2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문 9.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어디에 있는가?
답.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변의 암벽에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동물과 생활 모습이 남아 있다.
문 10. 반구대 암각화는 언제 국보로 지정되었는가?
답. 1995년 6월 23일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가유산 명칭 체계에서는 '국보'로 표기한다.
문 11. 암각화가 집중된 중심 암면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답. 너비 약 8m, 높이 약 5m이며, 암면은 오른쪽으로 약 10도 기울어져 있다.
문 12. 반구대 암각화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자연적 조건은 무엇인가?
답. 북쪽을 향한 넓은 암면 위로 절벽 윗부분이 처마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그림을 어느 정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문 13. 반구대 암각화에는 대략 몇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가?
답. 제공된 안내자료에서는 약 300여 점으로 설명한다. 조사와 판독 방법에 따라 집계 수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 14.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바다동물은 무엇인가?
답.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 바다거북, 물고기, 상어 등이다.
문 15. 육지동물로는 무엇이 새겨져 있는가?
답. 사슴, 노루, 고라니, 산양, 호랑이, 표범, 멧돼지, 늑대, 여우, 산토끼 등 다양한 동물이 나타난다.
문 16.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잡이 모습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답.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작살과 부구(浮具) 등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문 17. 반구대 암각화가 선사시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당시 사람들이 어떤 동물을 사냥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 18. 반구대 암각화는 어느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가?
답. 안내자료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개별 그림의 제작 시기와 암각화 전체의 연대에 대해서는 학술적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문 19.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답. 선사시대의 고래와 포경 활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매우 이른 시기의 암각화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해양문화와 선사예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산이다.
문 20.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은 무엇인가?
답.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이다. 두 유적은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제3부.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문 21.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어느 시대의 흔적인가?
답.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이 남긴 발자국으로 알려져 있다.
문 22. 당시 공룡들이 살았던 환경은 어떠했는가?
답.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의 영향을 받는 아열대 기후였으며, 사바나와 하천평야가 발달했던 것으로 설명된다.
문 23.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발자국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공룡의 이동 방향과 당시 환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문 24. 발자국 화석이 분포한 바위의 넓이는 어느 정도인가?
답. 안내자료에 따르면 약 100㎡의 바위에 여러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문 25. 어떤 종류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는가?
답. 안내자료에서는 브라키오사우루스과에 해당하는 용각류와 이구아노돈류에 해당하는 조각류 등의 발자국을 소개하고 있다.
문 26. 공룡발자국 배열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답. 발자국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공룡들이 이동한 방향과 보행 흔적을 추정할 수 있다.
문 27.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은 무엇인가?
답. 제공된 안내자료에서는 경상계 하양층군 사연리층의 중회색 사질이암층으로 설명한다.
문 28. 공룡발자국 화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함께 살펴보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 같은 계곡에서 약 1억 년 전 공룡의 흔적과 수천 년 전 인간의 예술활동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구천의 자연사적·문화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제4부. 정몽주와 반구대
문 29. 포은 정몽주는 어떤 인물인가?
답. 정몽주(1337~1392)는 고려 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과 성리학적 학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문 30. 정몽주는 왜 언양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는가?
답. 고려 우왕 1년인 1375년, 당시의 친원배명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으로 유배되었다.
문 31. 정몽주는 언양에서 얼마나 귀양살이를 하였는가?
답. 제공된 안내자료에 따르면 1년 넘게 언양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문 32. 정몽주와 반구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답. 정몽주는 언양 유배기간에 반구대를 자주 찾아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문 33. 정몽주가 반구대에서 지은 것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시는 무엇인가?
답. 「중양절 감회」이다. 중양절을 맞아 자신의 처지와 감회를 시로 표현한 작품으로 소개된다.
문 34. 반구대를 '포은대'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지역 사람들이 정몽주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고 그가 반구대에 남긴 자취를 추모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문 35. 반구대가 고려시대부터 명승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답. 정몽주의 방문과 시문에 관한 기록, 후대에 전해진 문인들의 작품, 반구대 바위의 각자 등을 통해 그 역사적 명성을 살펴볼 수 있다.
### 제5부. 반고서원과 유허비
문 36. 반고서원은 언제 세워졌는가?
답. 조선 숙종 38년인 1712년, 언양지역 유생들이 세웠다.
문 37. 반고서원에서 제향한 세 인물은 누구인가?
답.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이다.
문 38. 반고서원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답. 유학자들의 학덕을 기리고 제사를 올리며, 지역 유생들이 유교적 학문과 정신을 계승하는 장소였다.
문 39. 반고서원은 왜 문을 닫게 되었는가?
답. 고종 8년인 1871년, 흥선대원군이 시행한 서원철폐 정책에 따라 철폐되었다.
문 40. 유허비(遺墟碑)란 무엇인가?
답. 역사적 인물이나 건물의 옛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를 기념하고 그 의미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문 41. 반고서원과 관련하여 세워진 세 비석은 무엇인가?
답.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비(1890), 반고서원유허비(1901)이다.
문 42. 이 비석들은 언제 현재 위치로 옮겨졌는가?
답. 196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 제6부. 집청정과 조선시대 문인문화
문 43. 집청정(集清亭)은 누가 세웠는가?
답. 경주최씨 정무공파의 후손이자 최진립 장군의 증손인 운암 최신기(1673~1737)가 세운 정자이다.
문 44. 집청정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답. '맑음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이다. 자연의 맑은 기운과 선비의 청아한 정신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문 45. 집청정의 오른쪽과 왼쪽에 붙은 이름은 무엇인가?
답. 오른쪽은 청류헌(聽流軒), 왼쪽은 대치루(對峙樓)이다.
문 46. 청류헌과 대치루의 뜻은 무엇인가?
답. 청류헌은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뜻이며, 대치루는 '서로 마주하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문 47. 집청정은 조선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답. 반구대를 찾는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시를 짓고 자연을 감상하며 학문과 예술을 교류하는 장소였다.
문 48. 집청정에서 활동한 문인과 시 작품은 어느 정도인가?
답.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284명의 시인이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문 49. 『집청정시집(集清亭詩集)』은 누가 정리하였는가?
답. 운암 최신기의 후손 최준식이 관련 시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였다.
문 50. 『집청정시집』에는 어떤 인물들의 작품이 실려 있는가?
답. 숙종과 영조·정조 시대의 문신, 학자, 경상도 관찰사, 인근 지역 수령들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권해의 「반구제영」도 수록되어 있다.
문 51. 오늘날 집청정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답. 지역 문인들의 창작과 소통의 장소이자 전통 예절과 도를 배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제7부. 교남명승첩과 반구대의 옛 그림
문 52. 교남(嶠南)이란 무슨 뜻인가?
답. 큰 고개나 산줄기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영남지방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조령과 죽령 등 영남으로 통하는 고개들과 관련이 있다.
문 53.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이란 어떤 책인가?
답. 영남지방의 이름난 경승지를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이다. '교남'은 영남, '명승'은 뛰어난 경치, '첩'은 그림이나 글을 엮은 책을 뜻한다.
문 54. 『교남명승첩』에는 얼마나 많은 명소가 실려 있는가?
답.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상하 2권 58폭으로 구성되며, 영남지방 34개 지역의 58개 명소가 수록되어 있다.
문 55. 반구대의 옛 모습을 전하는 대표적인 그림 두 점은 무엇인가?
답.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반구〉와 『교남명승첩』에 실린 〈언양 반구대〉이다.
문 56. 『교남명승첩』의 〈언양 반구대〉에는 어떤 풍경이 묘사되어 있는가?
답. 반구대의 기암절벽과 너럭바위, 갓을 쓴 선비들, 주변의 정자와 건물 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의 건물들은 반고서원, 집청정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 57. 〈언양 반구대〉의 작가를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답. 작품에 작가를 확인할 수 있는 낙관이 없어 제작 시기와 작가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 또는 그의 손자 정황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전해진다.
### 제8부. 반구대의 바위글씨와 역사적 가치
문 58. 반구대 바위에 남아 있는 각자(刻字)란 무엇인가?
답. 바위 표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것을 말한다. 반구대에는 역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글씨와 그림이 있어 옛사람들의 방문과 문화활동을 보여준다.
문 59.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란 무엇인가?
답. 반구대의 험한 벼랑길을 고쳐 닦은 사실을 바위에 새긴 기록이다. 약 370년 전의 길 보수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소개되며, 당시 사람들이 반구대를 찾기 위해 길을 정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 60. 반구천의 자연과 문화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답. 반구천은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의 자연사,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예술, 고려시대 정몽주의 자취,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문학과 산수화가 한 공간에 축적된 곳이다. 따라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정신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복합 문화유산이라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 사연댐과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울주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 하류에 건설된 사연댐의 수위 변화로 인해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보존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61. 사연댐과 관련 암각화 보존 문제점은?
반복적인 침수와 노출: 댐의 수위가 높아지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고,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드러납니다.
암면의 풍화와 훼손: 물에 잠겼다가 마르는 과정이 반복되면 암석의 균열과 풍화가 촉진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사연댐에 수문 3개를 설치하고 평상시 수위를 해발 약 52m로 낮춰 암각화의 침수를 방지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문 설치 공사가 지연되고 있으며, 감소하는 저수량을 보충할 대체 식수원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 종합 정리
반구천의 역사는 크게 네 시대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약 1억 년 전 — 백악기의 자연사
공룡발자국과 수생파충류의 흔적이 남은 지질학적 공간
선사시대 — 암각화의 세계
고래잡이와 사냥, 동물의 모습을 바위에 새긴 선사인들의 삶과 예술
고려시대 — 포은 정몽주의 발자취
유배 중 반구대를 찾아 시를 남긴 충신이자 유학자의 정신세계
조선시대 — 시와 그림의 명승
반고서원과 집청정, 수백 편의 한시와 진경산수화가 꽃피운 문인문화
### 맺음말
반구천은 바위에 새겨진 선사인의 그림과 자연에 새겨진 공룡의 발자국,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시문학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선사인은 바위에 삶을 새겼고, 고려의 충신은 자연에 마음을 맡겼으며, 조선의 선비들은 시와 그림으로 그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반구천을 단순한 경승지를 넘어 천년의 역사와 예술이 흐르는 문화공간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이 문답은 제공해 주신 안내문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림의 작가와 제작 시기, 일부 고문헌의 명칭 및 암각화의 연대 등은 학술적으로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단정하지 않고 '추정' 또는 '전해진다'로 표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