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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의 서사시
"하늘에 산다"
글: 박 종 권
수필편.2
내가 만난 최초의 적기
1965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새모에 밤부터 눈은 계속 내리고 활주로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출근하는 모든 장병들과 문관들은 활주로로 들어와 눈을 쓸어냈다. 제설 작업은 진종일 계속되었다. 비행훈련은 중지됐고 대대조종사들은 비상대기조를 제외하고 다수가 연말 휴가를 간 상태다.
이 날 오전 11시경 비행대대 작전실의 비행 스케줄 보드에 내 이름이 떠올랐다. 단독 호출 부호를 부여받은 것도 처음이다. 내 호출부호 뒤에는 2대의 엄호편대가 붙었다. 나는 전투조종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부대 지휘관으로부터 출격명령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특수한 정보수집 비행임부가 극비에 하달되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밤새 눈이 내리면 그 넓은 비행장은 끝없는 설원이 되었고 떠난 전투기들은 눈으로 덮인 할주로를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이면 주간비행이나 야간비행을 마치고 기지를 찾아 올 때 관제탑에서 비쳐주는 탐조등은 활주로를 떠났던 조종사들에게 유일한 기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전투비행단의 활주로는 항시 전투기가 출동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면 제설 장비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이라 출근하는 전 장병은 일직사형의 지지로 할당된 제설작업 구역으로 직행해 쌓인 눈을 제거해야 했다. 때때로 눈을 치우고 있는 그 활주로에 긴급 출동 명령을 받은 전투기가 하늘로 치솟곤 했다.
이날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출격명령은 단기로 동해 상공에 출현한 정체 불명기에 접근하여 사진을 촬영 해 우는 특수한 임무였다. 절대 먼저 교전해서는 안된다는 지시가 있었고 교전상황이 발생되면 엄호해 오던 2대 F-5A 전투기가 즉각 후방에서 적기를 공격하게 될 것이었다. 따르는 엄호편대를 믿고 아직고 제설작업이 덜 끝난 활주로를 떠난 시간이 1966년 12월 30일 13시 40분 나에게 적기를 찾아 떠나는 최초의 출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정체불명의 적성기가 동해상공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S내로 깊숙이 오르내렸다.
이날도 소련 국적기로 추정되는 정체 불명기가 이틀 째 계속해서 오스크 해협으로부터 출현해서 동해의 독도 상공까지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어 한미 공군 간에 한국의 영공 방위를 위해 최소한의 전술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식을 같이했다. 태평양 공군 사령부는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비행단은 수원에 위치한 제10전투비행단으로 신예 전투기 F-5A 2개 대대와 F-86D 전천후 요격기 2개 대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단 한번의 사고도 없을 뿐 아니라 패기 넘치는 젊은 전투 조종사로 신뢰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임무가 떨어질때 마다 요기 급으로는 늘 한발 앞서 선발되곤 했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매일 매일의 일과가 공중에서적기를 만나면 어떻게 결판을 낼 것인가의 공중전 훈련과 적의 전쟁 지도부와 전략·전술 목표를 어떻게 침투하며 단 한번의 공격으로 격파시킬 것인가 하는 피 나는 훈련을 쌓아 간다. 일생에 한번의 결전을 위해 그러한 기본 훈련 속에서 자기 만의 비법을 익힌다. 그리고 공중에서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 헤매듯 적기를 찾아 헤맨다. 나도 그 중의 야심 찬 전투기 조종사였고 진정한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 했었다.
그 동안 전쟁은 없었다. 월남전에 파병은 있었지만 전투기 조종사들은 가지 못했다. 모두 가고파 했지만 전쟁 억제력으로 남아야 했다.
전투 조종사들에게 가슴의 피를 끓게 하면서 기대했던 1개 대대의 월남전 파병계획은 공군만은 북한의 도발에 억제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정책결정으로 꿈에서도 그려보던 전투기 파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우려 했듯이 미소 냉전이 종식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북한으로부터 도발이 있어왔고 서해·동해 그리고 휴전선 가까이 정체 불명기나 간첩선이 수도 없이 나타나 전투기 조종사들은 전쟁터에서 출격이나 다름없는 비상대기 긴급 출동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수많은 비상출동에서 오늘 처음 단기로 적기를 찾아 나선 것이다.
6.25 전쟁 중에도 그 이후에도 아무도 적기를 공중에서 만나 공중전을 펼 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런 한때를 기다리며 일격 필추의 춘련을 해 왔다.
나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외진 바다와 하늘 그 사이 공간에서 적을 찾아나선 것이다. 어쩌면 단 둘만이 얼굴을 마주하며 지척의 거리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상대에 따라 돌변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내 뒤에 2대의 엄호편대가 있어 위안이 됐다. 동해 상공의 바다와 하늘 사이에 은백색의 얇은 솜 털 구름이 끝없이 깔려 있었다. 동해 상공이지만 구름이 깔려 있어 푸른 하늘만 위로 있을 뿐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푸프기보다 회색 빛으로 변해 있어 긴장을 더해 왔고 오직 태양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 적기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기동해서 적 후미에 머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피사체의 구도를 잡을 것인가? 만약 후미에 기관포가 있다면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꽆이 아닌가? 후미에서의 일격은 절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30~60도 후 측방으로 접근해 가리라 생각하며 날아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기를 만나 사진을 찍어 가져오는 것이고 이떤 임의의 교전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적기가 교전해 오거나 교전상황이 예상되면 나는 급 기동으로 전장에서 빠져 나오고 정당 방위로 뒤따라 오는 엄호기 편대가 적기를 격추시킬 것이니 절대로 먼저 사격하거나 교전 상황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교전적 행위는 항공통제본부TAEE에서 지기할 것이다.
오산에 전개되어 있는 미 공군기지에서 미공군 전투기가 출격한다면 미·소간 분쟁의 소지가 된다. 동해 상공의 공해이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 내의 미 식별 항적에 대한 대응조치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주권적 행위이기 때문에 한국 공군이 먼저 나서야 했다. 공군 본부에서 작전사령부를 경유 비행단에 특별 명령으로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비행대대장은 작전 사령부에서 내린 명령을 단장으로 부터 직접 받았다. 대대 최고 베테랑급 조종사로 선발해야 했지만 비상대기 임무와 휴가 등으로 인선에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미 기상예보로 일반 비행훈련은 중지된 상태이지만 상부로부터 받은 이 임무만은 기필코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했다. 최강팀으로 출격시켜야 했지만 오늘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박 대위 자신 있지?"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임무의 최적임사로 결정했으면서도 불안스러웠는지 나에게 또 한번 시선을 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 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출격의 기회였던가? 두려움은 없었지만 날씨가 다소 긴장케 했다. 매일 매일의 비행훈련 중 가장 자신하는 비행이 적기를 만나는 전투 기동훈련이었다. 갈고 닦은 일기당천의 기량을 닦아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던 때에 용케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그 때가 중위시절 이었음에도 한강 에어쇼의 단독비행 조종사로 선발되었었고 그 후 비행 기량은 눈부시게 발전해 갔다. 먹이를 찾는 독수리가 발톱을 감추고 자중자애하듯 한국 공군의 최고 조종사가 되려 얼마나 심신을 다듬어 왔던가? 두려움 없이 먹이를 찾아 떠나는 굶주림 독수리처럼 거침없이 하늘을 날곤 했다. 어느 때는 야간비행까지 하루에 3번을 비행하기도 했다. 하늘의 에이스가 되고 붕정만리를 쉬지 않고 날 수 있는 독수리, 난공불락의 요새를 일격에 때려 주수는 그런 보라매가 되려 서로가 끊임없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비행술을 익혀 왔다.
중용한 작전이 상부로부터 하달되면 언제나 소속 비행대대장이 적임 조종사를 결정했다. 이런 중요한 임무의 조종사 결정만큼은 지연 혈연 동문이 통하지 않았다. 강한 자율성과 높운 전문성만이 신뢰와 선택을 받는 것이다. 지연도 동문도 없은 외딴섬 시골 출신인 나에게 예기치 않았던 이런 실제 상황이 닥친 것이다.
F-5B 전투기를 몰고 활주로를 떠난지 10여 분, 벌써 전투기는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동해 상공을 날고 있었다. 구름 위 회색 빛 높은 하늘 뿐이다.
레이더 통제관이 적기를 찾아가는 진행반향을 동쪽으로 잡아 주었다. 빠르게 날아가고 있으니 대지를 영원히 떠나버린 이방인 같았다. 전방동체양쪽 모서리에 달린 전투영 뒷면 거울을 보니 열 추적용 공대동 미사일 2박씩을 날개에 단 엄호편대가 저만치 뒤딸아 오고 있음이 보인다.
항공작전통제 본부에서 주어진 비밀 주파수로 다시 항공 통제본부를 부르자 항공 통제관과 임무 관제사가 긴장된 톤으로 호출 부호를 확인하며 응식 해왔다. 이날 나의 호출 부호는 <Roper-red>였다. Roper는 그 당시 한국 공군의 최강의 전투 비행대대였던 제102전투비행대대의 호출 고유 부호였다.
"로퍼-레드 응답하고 복명하라 여기는 항공통제본부다. 적성기 위치 11시 방향, 거리 50 마일, 고도 20,000만 피트, 속도 200노트, 방위각 090을 유지하라 오버." 나는 거침없이 적성기의 고도와 방위을 간결하게 복명했다. "Roger Angel 20, Vector 090 Over."
나를 앞 세운 3대의 출격 편대는 이미 전장에 들어선 것이다.
엄호편대와의 교신도 서로 간 확인됐다. 긴장감이 더 해 왔다.
나는 애기의 연료상태, 앤진 rpm상태, 오일, 유압 계통점검을 한 순간에 마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기관총 무장 스위치를 on했다. 그리고 전진해 갔다. 오직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적기를 육안으로 포착해야 하고 최단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적기의 속도가 200노트라니 분면 전투기는 아닐 것이다라고 예감이 왔으나 긴장되었다. 우리는 최고 속도로 돌진해 전장으로 진입해 갔고 통상 그렇게 훈련했었다. 공중전에서 속도 우위와 고도 우위가 공중전에서는 승리의 관건이다.
우리는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너무 빠르게 접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싶었다. 사실 그랬었다.
공중 사격훈련을 할 때 늘 보던 도앻의 검푸르고 거친 파도 이랑은 구름으로 덮여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 위를 날며 적기를 찾고 있었다. 산소 마스크로 연결된 껌벅거리는 호홉 지시계를 다시 확인하고 보조 연료탱크의 스위치를 동체 연료 스위치로 전환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전투 기동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즉각 외부 연료 탱크를 날려 버릴 것이다. 이제 곹 적기가 시야에 들어 올 것이다. 한 대 일까? 아니면 두 대 일수도 있다. 교전애 온다면 제일 먼저 전투장에서의 내가 할 행동은 무엇인가?
200노트의 속도라면 특수 임무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도 나처럼 전투기편대가 엄호기로 뒤따르고 있릉 것이 아닌가? 그러면 공해 상공에서 본의 아닌 공중전이 일게 될 것이고 전쟁의 발단자가 된단 말인가? 그래도 그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먼저 선수를 쳐 온다면 목숨 걸고 결단을 내리리라. 그러나 공중 전투에서 후미에서의 일격의 선수 그것은 무서운 일격이다. 결코 후미추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후미의 측방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적기릐 위치 방향으로 계속 전진해 갔다.
드디어 적기가 나타났다.
"Bandit 10 o`clock high!"적기 출현 10시 상방!
나를 엄호해 오던 편대의 요기인 남 대위의 긴장되고 날카로운 외침이 고막을 찢는 듯 날라왔다. 순간 머리 끝까지 피가 솟아 오르듯 했다.
눈을 10시 방향으로 돌렸을 때 적기는 약 10마일 거리에서 남쪽으로 유유히 날고 있지 않은가? 동해 상공의 한 복판에 한 점이 되어 저렇게 조용히 흐르고 있다니 일전도 불사할 각오로 달려 온 우리 사애의 실체가 저것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적성 항체인가? 그렇게 긴장되고 일격 필추의 각오로 전장에 들어선 예상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으로 구름 위를 조용히 흐르고 있지 않은가? 혹시 우리가 유인된 것이 아닌가싶어 그 뒤를 유심히 살폈으나 흰 구름 위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육안에 들어 온 항적은 비행기의 크기나 속도로 보아 이미 우리의 적수가 아니었다. 나는 일격에 격추시킬 수있는 거리인 기관포의 최적 사거리인 800~1,200 피트로 후미 측방에서 간격을 좁혀 들어가려 했다. 위치를 항법 장비로 파악해 보니 강릉기지에서 동남쪽 200마일, 독도상공에 접근하고 있었다. 돌아갈 모 기지 수원까지는 3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행동반경의 한계까지 나온 셈이다. 정보수집과 사진촬영 임무를 마치면 지체없이 돌아서야 한다. 너무 멀리 온 것이다. 이 때 예상치 못했던 급변적 상황이 생겼다.
우리는 음속 가까운 속도로 전진해 갔고 적기는 200노트 느린 속도로 서로가 측방으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점으로 보이던 적기가 갑자기 크게 다가온 것이다. 미리 미리 최적 접근속도로 접급했어야 했다.
나는 적기보다 앞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애기를 수직으로 낚아 챘다. 그리고 큰 원을 2번 연속해서 원통을 그리며 rolling으로 적기 뒤에 머물고자 했다. 하지만 계속 적기보다 앞서 나가려 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출력 조절기를 최저수준인 throttles-idle으로 줄이면서 또 한번 적기 꽁무니에 머물려고 rolling을 했다.
이 과정에서 속도 감속기speed-breaks를 폈다. 그런데도 전투기는 타성으로 적기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난는 기수를 더 들고 고도를 취하며 저속에서 양력을 얻어내는 보소 날개Flaps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나가려 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착륙 바퀴까지 냈다.
전투기 조종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작을 다 한 것이다. 드디어 같은 속도로 뒤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줄였던 출력기를 다시 앞으로 전개시켰다.
그리고 급히 landing-gears와 flaps, speed-dreaks를 순차적으로 원 위치로 집어 넣었다.
그런데 왠일인가 속도가 증가되지 않았고 기수가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오히려 뒤로 처지는 것이 아닌가? 다급해진 마음으로 계기판 가장자리에 있는 엔진계기를 보니 아뿔사! 출력기 위치가 Full임에도 양쪽 엔진 rpm이 최하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양쪽 제트 엔진이 영공비가 맞지 않아 점화가 꺼진 상태로 있는 소위 앤진 실속compressor-stall에 걸려들어 전투기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적기를 바로 앞에 두고 일도양단의 결정적인 순간에 내 전투기의 엔진이 꺼지다니 전투 조종사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 셈이다.
공중전투기동훈련에서 갑작스럽게 비행자세를 높이면 영각angle of attack은 높아지고 저속에서 공기 흐름과 다량의 연료가 엔진으로 들어오면 연공비가 맞지 않아 이런 현상이 때때로 발생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불행스런 경험은 나에게 일찍이 없었다.
나는 직감했다. 전투기를 살리지 못하면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난다.
세상 밖으로 우수 밖으로 멀리 나아 있는 나르 도와줄 사람을 아무도 없다. 오진 전투기 만이 나의 생명이다. 이런 절박한 상태에서 전투기의 생명이 꺼져가다니 이런 수가···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을 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아, 이 일을 어쩌나 싶었다.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듯 가슴이 철렁했다. 전투기를 먼저 살려야 한다. 그그로 타이르며 비상절차에 따라 기수를 아래로 내리며 공중 시동air-start을 걸었다. 침착하게 비상조치를 최악의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만약 엔진을 공중시동으로 살리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끝이다. 절대 절명의 순간을 자초 한 것이다. 먼저 기수를 낮추고 고도를 속도로 바꾸면서 연료 조절기를 조심스레 전개해 가면서 공중 재시동 버튼을 눌렀다. 10초 20초 30초, 다급해진 마음으로 엔진계기를 응시하며 반응을 기다렸다.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긴 시간이 지난듯 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제는 끝장이구나 하는데 드디어 rpm을 지시하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엔진이 되살아 난 것이다. 천우신조로 전투기가 다시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 시간은 나의 일생에 가장 길었던 시간 같았다.
전투기의 생명은 바로 나의 생명, 조종간을 흔들어 보니 힘이 확실히 실려왔다. 살았다. 그런데 적기는 어디 있나? 적기보다 훨씬 아래로 처져버린 애기의 기수를 끌어 올리며 위를 쳐다 보니500피트 가량 높이에서 적기는 아직도 혼자 유유히 그대로 날고 있지 않은가? 그 사이 엄호기 편대는 어디론지 사라져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애기를 다시 살렸으니 사진 촬영을 위하여 적기의 날개 밑을 파고 들었다. 그런데 적기의 후미를 보니 통상 폭격기들이 갖는 후미 기관포 같은 타원형 원통 같은 것이 쭉 나와 있지 않은가?
금방 불을 뿜을 것만 같아 조준의 사각으로 빠지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관측 장비나 수집용 구조물 같았다. 마음을 좋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돌아갈 연료가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 갈 수가 없다. 대대장의 기대에 찬 얼굴이 떠 올랐다. 급하게 사진의 구도를 바꾸며 4장을 찍었다.
그리고 통제 본부에 임무 완료 보고를 했다.
"항공 통제본부 여기는 roper-red 사진 촬영 완료 했음. 즉각 귀환해야 하겠음 오버"
정체 불명기는 중형기상 관측기나 특수목적의 정보 수집기 같다는 것과 동체에 창구가 10개, 동체에 27이라 적혀 있고 꼬리부분에 소련기 표식을 달고 있슴과 조종석은 좌우 복좌이고 적성기 기종은 AN-8같다고 현장 초도 보고를 마쳤다.
연료 부족임을 알리고 최단 거리 기지귀환을 요청했다. 기수를 서북으로 돌리며 연료를 절약하기 위하여 고도를 높였다. 그동안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하여 알마나 많은 시련을 극복해 왔던가? 그리고 한번 생사를 건 실력의 겨룸이 있기를 기다리며 전투기량을 닦아 오지 않았던가! 그런 혼련 가운데서 많은 전우와 선후배글이 사라져 갔다.
그렇게 바라던 적기와의 만남이 바로 눈 앞에 오늘 전개된 것이다.
그것도 1대 1로 아무도 없는 하늘 공간에서 만난 것이다. 상대는 전투기가 아닌 정보 수집기이다. 그런데 총 한번 쏴 보지 못하고 아어없이 내 스스로 북귀객이 될 뻔 하지 않았는가? 천당과 지옥으로 오르고 내렸으니 너무나도 호된 첫 출격 신고를 한 셈이다.
임무의 마지막 순간에 적기는 날개 옆에 붙어 있는 나를 보고 놀랐다. 갑자기 급선회를 시작하며 빠져나가려 했다. 태극기 표식을 한 한국 전투기가 난데없이 바싹 붙어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는 초동 선회를 멈추고 한동안 유삼하 쳐다보더니 손을 흔들어 냈다. 나는 피사체를 담아야 했고 연료도 없어 화답할 심적 여유조차 없었다. 적기라면, 사소한 적대 행위가 있었다면 격추시킬 수 있는 절대 우위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지만 명령에 따라 임무를 충실히 완료했다. 그는 내가 애기를 낚아채어 떠날 때 계속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출격명령에 따라 임무는 완수됐다. 조종실수로 생명을 잃어 가는 전투기를 되살렸고 적기를 만나 촬영도 끝냈으니 후련한 마음으로 기지로 돌아가자며 기수를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연료를 다시 점검하니 아뿔사! 연료잔량 지시계가 전체 연료의 4분의 1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곧 연료 부족 경고 등이 들어올 것이다. 이제는 돌아갈 연료가 부족하고 기상조차 나쁘다. 너무 멀리 왔고 비행조작 실수로 연료가 많이 소진되었다. 명령받아 기본 임무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1분도 지체할 수 없는 비상 연료 상태로 돌입하고 있었다. 중요한 임무를 마친 후의 안도감과 기쁨은 잠시 뿐, 이제는 귀환 연료 부족으로 가슴이 조여 왔다. 연료를 아끼려 고도를 취했다. 드디어 최소 연료경고등이 들어 왔다. 이 연료의 잔량으로 모 기지인 수원까지 돌아간다는 것은 무리다. 예비 기지로 선정했던 동해안 강릉기지로 가겠다니 폭설로 활주로가 폐쇄되어 있단다.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이었다. 모 기지인 수원기지의 기상은 구름높이가 착륙 최저치 Landing minimum 보다 다소 높고 시정이 2마일이고 가볍게 눈이 내린다니 문제는 연료이다. 연료 고갈 경고등이 들어와 있음을 관제사에게 알렸다. 귀환기지의 지휘소와 관제탑에도 연락이 됐다.
단 한번의 최단거리 접근으로 계시비행 착륙을 요청했다. 모 기지까지 아직도 50마일을 더 가야 한다. 조종사로서 안전한 귀환을 생각한다면 전투기를 살렸을 때 주 임무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임무와 책임감이 종합적 상황 판단을 흐르게 했다.
전투기를 끌어 올려 현재 속도를 최고의 고도로 바꾸고 기지를 향해 최장거리 비행을 시작했다. 연료 부족을 알리는 빨간 경고 등을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소한 30분 이내 연료가 바닥난다. 벌써 20분이 지난 산태다. 관제사 유도에 따라 구름 위에서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 왔다. 계기 비행상태가 됬다. 이제 모든 시야가 차단됐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멀리 있을 활주로 연장선을 상상하면서 최저 속도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활강 했다. 전투기는 활주로 축선상에 들어와 있음을 알려왔다.
구름 속 좁은 전투기 속에서 비행 자세 지시계 하나를 믿고 활주로를 찾아 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착륙바퀴를 낼 시기가 됐다. 하지만 언제 연료가 고갈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비상 착륙시에는 착륙바퀴가 충격을 완화시킬 것이다. 활공거리를 최대로 얻어야 했기에 내리는 시기를 최대로 늦추었다. 그러나 착륙 직전에 그 기회를 잊어서는 안 돈다고 다짐했다. 정밀유도GCA 관제사는 전투기에 연료가 고갈되어가고 있음과 단 한번의 접근이 실패하면 복행조차 할 연료도 없음을 알고 있어 그도 초조해 하고 있었다.
엔진 Flame-Out ! 이 외침은 전투기 조종사로서는 하늘에서의 가장 처절한 절규다. 전투기의 생명이 끊어지니 조종사의 절명의 순간이나 다를 바 없다.
"로퍼 레드 고도를 낮추라! 활주로 전방 10마일이다. 그리고 착륙바퀴를 확인하라. 시정은 2마일, 운고는 2,000 피트, 활주로 상태는 엷게 눈으로 덮여 미끄럽다. 다시 반복한다. 고도를 낮추라 활주로가 목전에 있다."
그 동안 관제자는 침착하게 나를 수원기지로 유도했지만 나는 계기판의 붉은 연료 경고등에 가슴을 조이면서 계속 구름 속에서 생과 사의 좁은 공간에서 처절하게 방황하고 있었다.
"로퍼 레드 고도를 낮추어라. 다시 반복한다. 전방에 활주로가 1마일 거리에 있다." 나는 다급한 관계사의 지시에 따라 고도를 확 낮추니 구름이 뚫리고 바로 앞에 주 활주로로 안내하는 접근 보조 등이 확 들어 왔다. 길 잃은 외로운 새 한 마리가 온갖 사투를 겪고 둥지로 되돌아 온 것이다. 아직 전투기는 살아 있었다. 저 만큼 바다의 등대처럼 관제탑의 강렬한 파란 탐조등이 난생 처음으로 환희의 불꽃으로 가슴에 닿았다.
평생동안 잊지 못할 순산이었다. 나는 마이크로 외쳤다. "Insight mama!활주로 발견" 나는 높아진 고도를 급히 낮추고 활주로의 좁은 품으로 안겨 들었다. 잊을 뻔 한 착륙 바퀴를 내리고 보조 날개Laps를 내리면서 속도를 줄이니 전투기가 드디어 사뿐히 활주로에 앉았다. 길 잃은 새가 등지를 찾아 돌아온 것이다.
눈발이 휘날리는 활주로는 다소 미끄러웠다. 조심스레 가만히 브레이크를 잡으니 눈이 깔려 있음에도 잘 먹혔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 감이 조종간과 양쪽 발의 페달을 타고 가슴에 전달되었다. 나는 제일 먼저 안전하게 착륙을 시켜 준 레이다 관제사를 불렀다. "여기는 로퍼 레드 박 대위입니다. 참으로 잘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Happy new year !"라고 송년 인사를 보내니 그가 답신을 해 왔다. "여기는 오늘 관제를 맡았던 김 대위입니다. 박 대위님 참으로 수고가 많았습니다. Merry-Christmas Happy new year !" 그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우리가 나눈 마지막 이 대화가 내가 무사히 살아 돌아 왔음을 의미했다. 나는 주파수를 지상 관계탑으로 비꿔 착륙을 알리며 활주 유도를 받았다. 임무도 끝났고 마지막 교신도 띁냈다. 마음을 놓고 나니 가슴에서 무엇이 울컥한다. 눈시울이 뜨겁다.
모두가 아침 일찍부터 활주로 제설 작업을 했다. 그 활주로에 착륙한 전투기는 썰매처럼 좁고 긴 활주로를 따라 조용히 그리고 안전하게 미끄러져 갔다.
나는 나의 비행 실수로 동해 바다 상공에서 사투를 다해야 했고 그 하늘아래서 적기를 만나 임무를 완수하려 했다. 그로 인하여 연료가 고갈되어 가는 상태가 됐고 구름속에서도 귀소본능歸巢本能으로 떠났던 모 기지로 살아서 돌아 온 것이다. 이제는 개선장군이 된듯한 기분이되어 비행 대대장을 만날 수 있디고 생각하면서 활주로를 빠져 나오려는데 드디어 전투기의 엔진이 꺼졌다. 공중에서 나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전투기가 이제 생명을 잃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나는 살아 있지만 한방울의 연료까지도 다 소진한 전투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전투기 좌석 속에 한 동안 멍 하니 앉아 있으려니 가슴이 메어 지듯 하는 슬픔이 확 달려 들었다.
너가 죽고 나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주위에 암흑 같은 적막이 왔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원이 꺼졌으니 케노피도 열리지 않았다. 잠근 장치를 풀고 수동으로 손으로 받쳐 겨우 열었다. 땀에 흠뻑 젖은 조종복이 바깥 눈바람을 받자 김이 피어 올랐다. 마스크를 제치자 살아 있다는 신선한 생동감이 얼굴에 닿는다. 멀리 고향 바다가 생각났다. 그렇게 조종사가 되려 했던 어린 시절이 스쳐 갔다. 처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2시간의 비행시간은 내가 선택한 하늘 길에서 가장 가슴 조였던 가장 긴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하늘을 쳐다 보았다. 내가 착륙 전에 비상상태Emergency call를 선포했던 탓으로 이미 대기중인 비상구조 소방 차량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문득 아직 기지로 돌아가고 있을 적기 조종사가 떠올랐다. "사고 없이 잘 돌아가고 있겠지"하는 적기에 대한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그도 나도 오늘 최선을 다 한 조종사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지 관제탑 탐조등의 강하고 파란 탐조등 섬광 속에 1965년의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모두가 출격 조종사가 무사히 귀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는 천우신조로 귀환할 수 있었고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한 기분이 되 살아나 구름으로 덮인 눈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만큼 라인 기를 펄럭거리며 대대장이 Jeep 차를 몰고 돌진해 오고 있었다. 1966년 12월 겨울은 이렇게 저물었고 그날 나는 천우신조로 돌아왔다. 그 후 25년 동안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비행을 마칠 때까지 Ace가 되고자 했던 오랜 꿈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200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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