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극장을 찾는 아이들
- 어린왕자
10시 35분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극장으로 가고 있었다. 대학로예술극장 3관이 공연장이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3관이란 말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 근처 어디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없었다. 대극장 앞 경비 아저씨도 소극장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청소 아줌마도 모른다고 했다. 극장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물어 장소를 알아냈다. 인터넷에서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극장을 쉽게 찾으려면 이렇게 가면 된다.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직진하면 한국방송통신대학이 나오는데, 이 방통대를 오른편에 두고 골목길로 곧바로 걸어간다. 한참을 가다 보면 쇳대박물관이 나오고, 그 건물 지하에 대학로예술극장 3관이 있다.
어린왕자는 극단 ‘수레무대’가 준비한 공연이다. 팸플릿을 보니, 극단 이름인 ‘수레무대’는 언제 어디서고 공연을 원하는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무대를 펼쳐 신명 나게 한바탕 굿을 버릴 수 있는 이동 가능한 바퀴 달린 무대를 뜻한다고 소개하고 있었고, 어린왕자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연에 관해 기대가 컸다. 인형으로 만든 어린왕자가 등장했을 때 ‘와!’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세 명의 배우가 인형 하나를 조종하면서 섬세하게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할 때 판타지가 느껴졌다. 무대 위 빈 공간에 마치 계단이 있는 것처럼 인형이 뚜벅뚜벅 올라가는 대목과 책을 읽을 때 상상했던 어린왕자의 모습이 겹쳐져서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배우들이 어린왕자가 살았던 혹성 B612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표현할 때 특히 좋았다. 이때 더욱 작은 어린왕자 인형이 혹성 소품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극단 수레무대가 매우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아동극 관계자들이 극단 ‘수레무대’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었다. 관객석 중간부터 그 뒤로는 무대 하단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배우들이 무대에 섰을 때 배우의 허리 아래는 앞에 앉은 관객의 머리에 가렸다. 그래서 배우들이 앉거나 누울 때 또는 바닥에서 보여주는 인형이나 배우의 움직임은 볼 수 없었다. 어른 눈높이에서 이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 관객에게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내 주위나 뒤에 앉은 아이들이 “안 보이잖아!”, “아무것도 안 보여!”라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곳은 영화 상영이나 강연장으로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극이나 무용 등 공연 예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내 의견이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은 모든 객석에서 무대가 잘 보여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지만, 그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3관은 전혀 다른 수준의 극장이어서 실망이 컸다.
만약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나 학전블루 같은 곳에서 이 공연을 보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아시테지 관계자와 극단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내가 만약 극단 연출이었다면, 무대의 이런 특성을 고려하여 배우들의 연기를 수정했을 것 같다. 무대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뒤에 앉은 관객들도 볼 수 있도록 조처했을 것이다. 예컨대 무대에 단을 쌓아서 전체적으로 높인다든지, 연기하는 지역을 뒤쪽으로 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음으로 만일 내가 극단 진행자였다면 좌석을 지정석으로 해서 입장하도록 했을 것 같다. 지금 하는 것처럼 관객석 앞쪽 줄은 어린이 관객이 앉도록 하고, 뒤쪽에 키가 큰 어른을 앉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늦게 도착하는 어린이 관객을 위해서 입장하는 쪽과 가운데 뒷부분을 비워두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그러나 공연장에 늦은 아동 관객을 입장시키는 것을 필요하고 잘한 일이라고 보지만, 아무 때나 입장시키는 것보다는 암전되는 시간이나 내용이 달라지는 대목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배우들이 연기한 인물 표현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게 표현하였다고 여겨진다. 가족이 함께 보는 것을 고려하여 어른들을 배려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어린이 관객을 중심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왕자 텍스트 자체가 상징성이 높아서 과연 이 작품이 아동극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동극을 만든다면,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수정했으면 어땠을까? 주정뱅이라는 인물은 등장 시간이 너무 짧고, 꽃은 또 너무 길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배우가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고, 표정과 몸짓을 심하게 과장하여 감동보다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의 유행어나 몸짓을 따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잠깐 웃을 수는 있겠지만, 어린왕자라는 공연의 성격에도 어울리지 않고, 수준 높은 코미디를 만드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관객으로 공연하는 아동극 만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심사숙고할 게 많다. 특히 말에 신중해야 한다. 하물며 생각나는 대로 아동들을 대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처음 해설자가 나와서 얘기를 할 때 초등학교 6학년인 남자아이가 떠들고 청개구리처럼 말했다. 그 배우도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떠들면 아저씨 공연 안 하고 집에 갈 거예요. 떠들면 돼요? 안 돼요?” 이런 말은 차라리 안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공연을 시작하면 자연히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말만 간단히 하고, “힘찬 박수로 공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극단 수레무대의 공연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도 좋은 아동극 많이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첫댓글 저는 사실 아동극이란 말이 마음에 걸려요. 아동극이라면 아동이 하는 연극이라는 뜻이 되고, 어른들이 어린이를 관객으로 하는 연극을 만든다면 그냥 연극이고, 연극 가운데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볼 수 있는 연극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면 당연히 연극 가운데서 어른만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드는 게 가장 쉬운 거고, 청소년부터 어른들까지 볼 수 있는 연극 만들기가 그 다음이고, 가장 어려운게 초등학생, 또는 유아부터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드는게 가장 어렵고,그만큼 중요한 연극이지요. 어린이들이 만드는 연극은 어린이가 만든 연극이라고 하고 ,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만드는 연극은 그냥 연극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게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앞에 나와서 안내하는 말이에요. 이번처럼 어린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말투와 행동을 자주 봅니다. 지명할 때도 손가락총을 쏘고. 지명할 때 손가락총을 쏘면 안 된다는 건 아주 기본예절인데 대부분 손가락총으로 지명하더라구요, 방정환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한테 높임말로 보드랍게 하면 좋겠는데---.
저도 그 점이 참 싫었습니다. 손가락총까지는 생각 못했지만, 반말하고, 협박하는 것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그런 말과 몸짓 속에서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