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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영토문제는 땅 문제를 해결하여 놓은 희년법이 해결책입니다.
에스겔, 포로에서 예언자로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겔 33:7)
에스겔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인 부시의 아들이다. 주전 597년 석달 짜리 왕(19대)이었던 여호야긴(여고냐)과 함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지 5년 뒤에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아서 예언 활동을 시작했다. 에스겔서 1장에서 24장까지는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기록한 것으로 함락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에스겔서 5:5~9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겔 5: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5: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이스라엘은 이런 연유로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하고, 성전은 불타며, 나라는 패망하였다.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도 2,000년 동안 예루살렘은 발도 들이지 못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야 했었다.
에스겔서 25~32장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있다. 심판의 대상은 암몬, 모압, 세일,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그리고 애굽 등 8개국이다. 모두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나 족속들이다.
포로 귀환에서 본토 회복으로
에스겔은 그런 다음 33장 이후부터 48장까지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스라엘의 미래를 알려준다. 나라 없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알리면서 장차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을 소개하고 있다. 에스겔서 36장에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이렇게 알려준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겔 36:24,25)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때가 되면 포로에서 풀려서 고국 땅으로 돌아올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이 우상 숭배로 더러워진 마음을 청결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예언을 따라서 포로에서 풀려난 백성들은 1차 귀환이 49,897명, 2차 1,775명, 3차는 느헤미야 외 다수다. 숫자가 적다. 1차는 스룹바벨 성전 건축, 2차 귀환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율법교육과 종교개혁, 3차 귀환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 재건과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포로 귀환자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종교와 경제를 개혁하는 등 의미 있는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포로 귀환자들은 숫자가 너무 적어서 한 나라가 온전하게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포로기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정치는 온전한 회복이 되지 않았고, 종교적 기능만 독자적으로 유지해 왔다. 예를 들어서 마카비 혁명과 하스몬 왕조의 유지는 종교를 관장하는 제사장 계열이 주도한 사회다. 예수님 활동 시기에도 정치는 약점을 가진 헤롯이 로마 황제의 지휘와 조종을 받는 어용 통치에 불과하여 나라는 사실상 로마의 속국이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고국 땅의 복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풀려난 사실만을 뜻한다고 볼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영토와 백성들이 주권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의미가 있는 ‘고국 땅’이어야 한다.
에스겔서에서 백성들이 돌아오는 ‘고국 땅’은 8회가 사용되었다(겔 28:5, 29:14, 36:17,24, 37:14,21, 38:15, 39:28). 여기서 ‘고국 땅’은 히브리어 “아다마”이며, 어원은 ‘흙’ 또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 토지, 대지, 고향, 고국으로 번역한다. 개역 성경은 본문을 ‘고토’, 개역 개정은 ‘고국 땅’으로 번역했다. “아다마”는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다시 땅의 경작을 맡긴 ‘근본된 토지(창 3:23)’와 어원이 같다.
그러므로 에스겔서가 말하는 ‘고국 땅’은 단순히 포로에서 해방되는 의미를 넘어서 이스라엘이란 한 나라가 회복된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작게는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자기 땅을 되찾는 것이고, 크게는 한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되찾는 온전한 회복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필자는 ‘고국 땅’을 ‘본토’로 의역을 해보고 있다. 포로에서 ‘돌아오는 고국 땅’은 ‘본토 회복’으로 주제를 달아본다.
이에 합당한 용어가 우리 말에도 있다. 고구려의 건국 이념이 “다물”이다. ‘다물’은 ‘토지 무르기’라는 뜻이며, 순수 우리 말이다. "다"는 '땅'이라는 말이며, "물"은 '무르기'라는 말이다. 고구려 주몽이 주전 37년 나라를 세울 때 잃어버린 시베리아를 비롯한 북방 영토를 되찾자는 열망에서 건국 이념을 ‘다물’이라고 하였다. 기록상으로는 한자로 ‘복구토 다물(復舊土 多勿)’이었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성경 희년법의 핵심은 속량으로 내 땅이 회복되는 "토지 무르기(레 25:24)"다. 이것이 우리말로는 고토 회복, 곧 "다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땅, “아다마”는 포로에서 풀려나서 돌아올 고국을 말하기도 하지만,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한 이스라엘 영토 전체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만민의 구원의 완성과 본향을 유업으로 상속받는 구속사의 최종 성취와도 관련되고 있다(히 11:8~10).
이렇게 에스겔이 말하는 땅, ‘아다마’의 범위를 크고 넓게 보는 것은 40장 이후 하나님이 보여주는 성전과 그 성전을 중심에 둔 거룩한 땅과 토지분배에 대한 영적, 현실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새 시대는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6~28)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포로가 본토(고국 땅, 고토)로 돌아오면, 그들을 선두주자로 하여 이스라엘의 미래를 열게 될 새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펼치게 될 새 시대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새 영과 새 신을 부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는 것은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내 규례를 지켜서 나의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토지 청지기직의 회복을 뜻한다.
새 시대를 열게 될 새 마음에 대한 언약은 예레미야에게 먼저 하였다(렘 31:31~34). 에스겔이 말하는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의 표현은 구약에서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신약적 개념이다(욜 2:28,29). 새 마음은 오직 회개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을 통하여 받는 영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주었고(요 14:16~18),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 2:1~4). 지금 에스겔은 이런 신약시대에 있게 될 성령의 역할과 새 마음에 대하여 환상을 통하여 그 실상을 보고 있다.
그런데 새 마음을 주는 것은 여호와의 율례를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육신의 굳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실족하였고, 우상을 섬기며 곁길로 갔었다. 에스겔서에서 본문이 말하는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은 18장이 말하는 죽은 영혼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죽은 영혼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고, 억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돌려주지 아니하고, 변리를 위하여 이식을 받고, 우상에게 눈을 돌리는 가증한 짓을 행한다는 것이다(겔 18:11~13). 에스겔서 18장은 이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굳은 마음이 저지른 범죄를 말하고 있다(18:6~9.11~13, 15~18).
에스겔서 18장이 말하는 죽은 영혼은 우상 숭배와 이웃에 대한 경제 규례의 위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 36장이 말하는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은 우상 숭배를 떠나서 율례를 지키고, 경제법을 준행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 된다. 전에는 굳은 마음이어서 억지로 지키는 율례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순종하는 율례의 준행자가 되도록, 새 영이 임하여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다.
새 영을 주는 것은 율례를 지키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르자면 새 영과 새 마음을 주는 의미의 핵심은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보는 미래는 바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실천적 삶이다. 그래서 에스겔이 본 새 영과 새 마음은 앞으로 에스겔 40장 이후에 제시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될 통치(겔 45:9~10)를 가능하게 할 전제 조건이다. 새 영이 주는 부드러운 마음은 나라의 공평과 정의, 백성들은 생존과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각종 제도의 수용이고 준행이다. 곧 에스겔이 본 왕의 희년법 준수(겔 46:16~18)와 백성들에게 하게 될 토지분배의 실현이다.
그리고 에스겔이 본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은 신약시대에 있을 성령의 강림과 그 역할에 대한 시대적 전조(예표)이기도 하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필요한 사역을 위해서 성령이 특정인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했다. 그런데 지금 에스겔이 본 새 영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민족 전체에게 주어지고 있다. 물론,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처럼 모든 민족에게 영이 임한 것은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인에게 주어진 영의 임재나 역할이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까지 범위가 커져 있다. 그래서 신약시대와 초대교회에 있을 성령의 임재를 예비하고 있다.
새 영의 역할은 균형잡힌 생활이다.
그리고 에스겔이 말하는 새 영과 새 마음이 주어져서 지키게 될 율례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신득의(이신칭의)에 따른 신앙적 약점을 보충할 수도 있다. 이신득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칫하면 믿음만 있으면,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구약이 말하는 율례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전제가 붙어있는 믿음이다(롬 2:23, 7:7~12). 이런 전제가 붙지 않은 이신득의의 맹목적 추종은 바울의 가르침을 하나의 종교 행위로 전락시켜버릴 약점을 갖고 있다.
신약은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율례의 준수를 강조하는 구약적 기초가 없이, 신약시대에 이신득의만 내세우는 신앙은 구약시대의 율법주의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앙이 특정 종교 집단의 교리나 신앙고백으로 한정,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 집단은 무엇인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식의 가르침으로 혹세무민하는 종교인을 만들게 된다. 기독교는 종교라기보다 진리이고, 영원한 생명이며, 생활 그 자체다. 그런데 구약의 뿌리가 없이 믿음만 내세우면, 불교나 타종교처럼 신앙이 종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에스겔에게 보여준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지키게 될 율례는, 신약시대에 성령 공동체가 범할 수 있는 약점을 예방하거나 보충하여서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에스겔 성전과 토지분배 이전에 있을 역사적 사건들
이스라엘의 통일은 성취되고 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겔 37:21,22)
에스겔 37장은 주전 931년 남북으로 분단된 이스라엘(남왕국, 북왕국)이 하나로 통일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호와가 권능으로 임하고 신(神, 영)으로 마른 뼈가 살이 되고, 생기를 주어서 소생하게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오며, 그때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된 나라도 하나로 통일되어 한 임금이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다윗이 왕이 되어 다 한 목자로 있을 것이며,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율례를 지킬 것이다. 다윗은 야곱의 땅에서 영원한 왕으로 있으면서 화평의 언약으로 나를 견고하게, 백성들은 번성하게 하고, 나의 성소가 그 가운데 세워져서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한다(겔 37:24~28).
에스겔의 이 예언은 이미 일부가 성취되었다. 여기서 에스겔이 말하는 다윗왕은 그 계보를 이은 메시아를 뜻하는데 그 메시아는 이미 2,000년 전에 오셨다(롬 1:3,4, 눅 1:32,33). 아직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으므로, 성취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또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일들은 모르므로 아직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분단되었던 이스라엘의 남북통일은 현재 상태에서 거의 성취되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지도를 보면,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는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통일왕국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상태로 미완성이다. 면적으로 비교하면 통일왕국의 면모는 아니다(부족하다). 그러나 위치상으로 본 남북의 영토가 분할되지 않았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특히 이스라엘 전역에서 포로기 이후에 잃었던 주권과 통치권을 온전하게 회복하였다. 영토와 백성, 그리고 주권이 있으면 그것이 독립 국가다.
에스겔이 포로 시대에 환상으로 본 이스라엘의 남북통일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세월이 무려 2,400년이나 흘러갔다(주전 597년 2차 포로 이후). 그러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하여 그 꿈이 이루어지는 중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이므로 에스겔 37장이 말하는 예언이 일부 성취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에스겔이 말하는 곡과의 전투는?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겔 39:1)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39:6)
그다음은 에스겔서 38장과 39장은 곡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 당할 큰 전쟁과 환란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곡과의 전쟁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전쟁이 이스라엘과 중동에서만 벌어지는 국지전이 될지, 세계 3차 대전이 될지도 의문이다. 혹자는 실제로 일어날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에스겔서 38장이 말하는 곡의 침입이 계시록이 말하는 종말과는 어떻게 관련될지는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곡과의 전쟁은 북방 열방들의 침략으로 일어나는데 그 나라를 특징지어 말하기도 어렵다. 주로 아랍 이슬람 국가일 가능성이 높지만, 튀르키, 러시아도 대상국이 될 수 있고, 이스라엘을 치러오는 동맹국에는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에스겔이 알려준 곡의 침략과 전투를 보면서 우리가 확인하고 짚어야 할 것은 있다.
(1) 곡과의 전쟁은 하나님이 직접 일으키는 전쟁이다(겔 38:16).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죽은 자는 장례 기간이 7개월이 소요될 만큼 큰 전쟁이다(겔 39:12). 침략자들은 자기들끼리 치는 칼로도 죽지만, 대부분 지진과 전염병과 자연재해 등으로 자멸하게 된다(겔 38:18~22)
(2) 곡과의 전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신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은 물론(겔 39:7), 이방 민족이 여호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겔 38:23).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이 선해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였다(겔 39:22).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일으키고, 이방 민족을 치는 것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에스겔서 5:19에서 39:28까지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들의 패망에 대하여, “여호와를 알게 하리라”라는 표현이 약 80회가 나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하는 것"이라고 이처럼 자주 반복하는 경우는 에스겔서 뿐이다.
(3) 곡과의 전쟁은 땅을 정결케 하는 작업이다(겔 39:12~1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오염시킨 이방 민족을 제거하여 땅을 정결하게 하려고 곡과의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본토가 회복되어 정결하게 된 땅에 성전(?)이 들어서고 다윗이 통치하는 왕국이 임하게 된다.
곡과의 전투, 에스겔서와 계시록의 비교
에스겔서와 계시록, 곡과의 전쟁은 대상과 내용이 비슷하다.
곡과 마곡의 전투에서 곡은 인명이고, 마곡은 지명이다. 에스겔서 38장, 39장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계시록 20:7,8에서 말하는 곡의 전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곡과 마곡은 명칭이 같으며, 잔혹하고, 피해도 큰 전쟁이기에 닮았다. 시간에서도 에스겔서는 말년(겔 38:8)과 끝날(겔 38:16)을 말하고 있고,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도 마지막 전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에스겔서가 말하는 곡의 전투와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를 같은 시기, 같은 내용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두 전투가 용어와 전투 장면에서는 의미가 비슷하지만, 시간과 그 결과적 현상에서는 서로 다르다고 본다. 에스겔서 39:25~29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 내어 많은 민족이 보는 데에서 그들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라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겔 39:26~28)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겔 39:29)
본문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알려주고 있다. 이 전쟁이 끝이 나면 이스라엘은 본토를 회복하며, 타국에 남아 있던 사람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돌아오게 된다. 그때는 여호와의 영광을 여러 민족 가운데에 나타내어 모든 민족이 내가 행한 심판과 내가 그 위에 나타낸 권능을 보게 한다(21). 그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겠고(22),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게 된다(26).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그 전투 후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는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하게 되고, 영토는 회복하여 타국에 남은 자가 없게 되며, 새 땅에서 평안히 거주하게 된다. 이방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회복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날은 예루살렘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부어주는 은혜의 약속이 있다(욜 2:28, 3:1).
에스겔 곡의 전투와 계시록 곡의 전투는 시간과 결과가 다르다.
그러나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천년왕국 다음에 있을 세상의 마지막 전투다. 마지막 전투는 이스라엘의 본토 회복이나 이방에서의 귀환이 의미가 없다.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7개월간이 장례를 치러며 땅을 정결하게 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이미 끝이나고, 새 하늘 새 땅이므로 전쟁의 사후 처리나 회복 절차가 필요 없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곡과의 전쟁은 40장 이후에 보게 될 성전 회복과 토지분배는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있을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계시록이 말하는 곡과의 전투는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전투를 말한다.
계시록이 말하는 곡과의 전투(계 20:7~9)는 끝이 나면,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곡의 전투가 끝이 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계 21:1~7).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곡의 전투와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그 목적과 시간과 그 성취의 내용에서 서로 다르다. 양 전투는 전쟁의 당사자와 전쟁의 내용만 비슷할 뿐, 그 전쟁이 끝이 난 후의 결과는 그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런데 왜 대다수(거의 모든) 사람들이 에스겔이 말하는 곡의 전투와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를 하나로 보려고 할까? 이에 대하여 예언과 성취가 시간을 두고 반복하는 현상, 곧 이중 계시나 이중 성취를 가정할 수 있다. 그러하더라도 이중 성취는 시간에서 시차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서 38장, 39장이 말하는 곡의 전투와 계시록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시간이 다르므로 그 이후에 있을 결과는 다르다.
여기서 에스겔서의 곡과 계시록의 곡이 시차가 다르다면, 지금까지 보아온 종말에 대한 우리의의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대주의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 등에 대한 복잡다양한 의견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에스겔이 알려준 이스라엘의 본토 회복과 귀환 이후 백성들이 죄를 뉘우치는 회개는 어디까지가 될지가 의문이다. 이스라엘이 패망의 원인이 된 우상 숭배와 계명의 불순종에 대한 회개만 하고 그칠지, 아니면 초림 예수를 몰라보고, 메시아가 선포한 희년을 거부하며, 십자가에 못을 박은 죄까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필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 들어설 거룩한 땅(겔 45:1)과 성소의 위치를 보면서, 예수님을 "성소"와 “거룩한 땅”의 주인(왕)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단정하기는 어렵다.
--- 아래 링크는 에스겔 38장, 39장 곡의 전투에 대한 참고 글 소개입니다. 이분의 견해는 에스겔 본 곡의 전투가 <인류 최후의 전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에스겔이 말하는 곡의 전투는 계시록이 말하는 최후(곡)의 전투와는 시간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인류 최후의 전쟁..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 필자가 본 에스겔의 곡의 전투와 계시록의 곡의 전투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에스겔 40장~48장이 보여주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거룩한 땅과 성소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쓰겠습니다.
첫댓글 에스겔서 38장, 곡의 전투가 세상의 마지막 전투라는 견해를 소개합니다.
백봉태목사 카페(boaskorea)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OFKX/672-- 에서 발췌
이러한 에스겔서의 곡에 대한 예언은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있을 일로서(8절),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입니다. 즉, 신약성경의 계시록에서는 에스겔서의 이 예언을 인용해서 마지막 때 사단이 곡과 마곡을 동원하여 교회를 대적할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바(20:7-10), 이 예언에서 곡이 공격하는 대상인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들’(12절)이란 민족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예언에 나오는 곡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대적할 적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곡의 전투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다수 연구는
ㄱ. 휴거 될 당시에 있거나(세대주의 전천년설) 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합니다. 또 이 전투는 ㄷ. 지상이 아닌 영적 전투로만 보거나, ㄹ. 주전 450년경 또는 알렉산더 대왕 때의 침략 등으로 이미 성취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말하고 있어서 ㄱ, ㄴ, ㄷ, ㄹ이 아니고, 앞으로 있을 실제적인 지상 전투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말에 대해서 이런 전쟁 공포로 세상을 겁박하거나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회개하게 하여 모두를 구원하려는 분이십니다.
곡의 전투에 대한 에스겔서 전투와 계시록의 마지막 전투에 대하여
필자는 에스겔서 38,39장에서 말하는 곡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전투이고, 계시록 20:7,8,9에서 말하는 곡의 전투는 세상을 심판하는 마지막 전투로 두 전쟁은 시차가 있다고 봅니다.
1. 예수 재림에 대한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은 어느 설을 취하든 그 설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2. 다만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지나친 문자적 해석, 현실도피적 태도, 극단적 종말론 심취 등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3. 필자가 말하는 에스겔서의 곡의 전투는 계시록 20:7,8이 말하는 마지막 전투가 아니고,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전투라고 했습니다(겔 39:25~29). 그런데 많은 해석들이 에스겔서 곡의 전투를 계시록이 말하는 마지막 곡의 전투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하여 3번은 1번, 2번과는 다른 주제이므로 3번에 대해서 서로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말씀은 서로 생각을 나눌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