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 / 황정혜
오래전 설 연휴에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삼척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보태면 눈송이가 아기 엄지손톱만큼 컸다. 순식간에 도로는 눈이 수북이 쌓였다. 아버님, 어머님, 어린 조카들까지 자가용 다섯 대가 움직였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도망치듯이 부곡하와이로 달렸다. 전라도에서 보는 눈과 확연히 달랐다. 부곡은 참 따뜻했다. 온천욕으로 놀란 가슴 달래고 여유롭게 구경했다. 그런데 우연히 걷게 된 ‘지옥로’는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죄를 심판받는다는 불교식 해석이다. 그 과정을 조각과 글로 세세하게 설명해 놓은 곳이었다.
죽은 자가 첫 번째 맞는 7일간은 선과 악의 심판을 받는단다. 둘째 칠일은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빌린 후 돌려주지 않았으며 주기보다 받기만을 한 자를 벌하였다. 죄 많은 영혼은 물살이 빠르며 파도가 산처럼 높고 독사가 우글거리는 곳을 건넜다.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한 자는 불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당했다. 다음 심판대에 끌려가는 죄인들의 조각상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이었다. 삼칠일엔 몸으로 지은 죄뿐 아니라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처벌받는다.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온몸에 박혀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사칠 일엔 거짓말이나 욕설의 죄를 업칭이라는 저울에 달아 다스렸다. 남의 험담이나 잘난 척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혀가 뽑히거나 손발이 싹둑 잘리어 철판 위에 늘어놓는 형벌이다.
오칠일에 도착한 곳은 염라대왕 앞이다. 업경이라는 거울을 갖고 죄를 논했다. 살생과 도둑질 등 악행을 저지르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희생한 자, 선한 일을 쌓은 자는 죄를 사면해준다. 뉘우치지 못한 영혼은 발설지옥에서 혀를 뽑아 그 위로 쟁기질을 하여 갈리는 고통을 받는다. 내 평생토록 잊지 않는 형상이다. 육칠일의 중범죄자들을 다스리는 독사지옥, 49일째 되는 날, 착한 일을 많이 한 영혼은 윤회 환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천당과 지옥, 염라대왕 이야기는 막연하게나마 많이 듣고 생각한다. 끌려가는 죄인들의 초췌함도 벌 받는 모습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나는 어떤 형벌을 받게 될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이후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겠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특히 고운 말을 하려고 늘 신경 쓴다. 혀 위에서 쟁기질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들에게도 같이 본 지옥길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내가 믿는 만큼의 효과는 없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욕도 할 줄 알아야 한단다. 그럼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란 말이냐고 반문한다. 어느 날 둘째 딸이 말했다. “엄마 제 이름을 바꿔야겠어요. ‘빼어날 수’, ‘어질 현’ 도저히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심성이 착한 딸이 급한 성질이라 ‘욱’할 때가 있다. 자신을 알면 언젠가는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따뜻했던 부곡 하와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지옥길’은 평생 내 삶에 ‘인과응보’라는 말을 담고 산다.
첫댓글 사후세계에 대한 불교식 해석을 보면서 천당과 지옥이란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어릴적에는 왜 그렇게도 무섭든지요. 저는 믿지않지만 그렇다고안 믿을수도 없겠다 싶어요.
저는 지금도 무서워서 착하게 살아보려합니다.
이상한 글을 쓴 것 같아서 자신감을 잃었는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