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나의 불편한 선생님. 당신의 소설, <자미>를 중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평서문으로 쓰니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에이드리언 리치와 대담을 했을 때처럼 저도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자미', 본래 서인도제도에서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당신은 이 단어를 당신으로 호명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대로 제목을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차성에 대해 선구적으로 이론을 정립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었지, 당신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 것이 처음에는 시간 낭비 같았으니까요. 또한 어린 시절부터 당신이 호기심을 느꼈던 토니, 당신이 최초로 사랑을 느낀다고 고백했던 제니, 멕시코에서 당신의 멘토가 되어주었던 유도라, 당신의 여신, 아프레케테에 대해 들으면서 저는 제 안에서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현대 페미니즘 역사에서 당신이 주장한 '차이의 역동성'에 대한 묘사를 얻기만 바랐던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에서의 차이는 무시-모방-파괴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당신의 영향력에 대해서만 알고자 했습니다. 가부장제를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의 세계에서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멘토였는지만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언어화하기 전의 사랑에 대해서는 저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지요. 그냥 '레즈비언도 나와 같은 사람이야. 이 사람을 알고 싶으면 레즈비언으로서의 그도 수용해야 해.' 이런 마음을 조금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싫어하는 '역겨운 개량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변화시킨 세상만 보고 싶어했지, 당신이 애쓴 과정을, 우리가 더 애써야 하는 지난한 과정은 애써 무시하고 싶었습니다. '낙인찍힌 자들'이 당신이 빌린 집으로 찾아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추운 집 안에서 살구 브랜디를 마셨던(<자미>, 200쪽) 장면에서 '낙인찍힌 자들'은 그 아파트의 추억을 밑거름 삼아 내가 보지 못한 많은 나날, 다른 여성의 집을 청소하거나 아픈 사람의 어깨에 모직 담요를 둘러주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극진히 사랑했던 제니는 아버지의 집으로 이사간 뒤 아버지의 성폭력으로 짐작되는 일을 겪고 자살했습니다. 당신이 제니를 추도하고 영영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당신은 내면의 힘을 키워 제니와 같은 여성들이 살아가야 하는 험난한 세상을 알리겠다고 선포했을 테지요. 당신이 사랑을 얻은 비옥한 영토를 제공했던 모든 여성들은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에 있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다 영문도 모르고 맞거나 남성이 나를 죽일 수 있는 현실적 공포의 세계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사랑한 모든 사람은 이 현실을 비관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눌 수 있는 온기를 당신에게 전했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두 팔을 동원해 집의 얼룩을 닦아줍니다. 사랑을 나눈 뒤 커피를 끓여 내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나누길 멈추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계속 말라가는 허약한 육신을 지닌 당신은 그 안에서 연대의 힘을 느낍니다. 그때문일까요. 당신은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랑을 펼쳐내고, 사람이 지닌 고유한 무늬를 읽어내려 노력합니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고 있나요. 출산율 0.78명,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기를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이곳. 여기서는 사랑과 그 사랑이 주는 연대의 힘으로 세상의 폭력에 맞서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스물 한 살의 당신은 거침없이 성애의 힘으로 '자신-되기(being)'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자신-되기'가 너무 고달픕니다. 당신이 했던 무수한 실수는 무관심에서 비롯한 방기나 시대의 요구 덕분에 당신 속으로 수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저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은 젊음의 에너지가 충동하는 자연적 힘을 거세하라고 강요당합니다. 실패가 경험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기성의 권력은 에너지가 충만한 자리에 죽어야 마땅한 가부장-자본주의의 질서를 주입합니다. '잘 할 것 아니면 시작하지 말라'는 압박 속에서 '자신-이기(be)' 를 선택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랑하지 않기'입니다. 당신은 가부장의 질서에서만 용인되는 '이성애 중심주의적 사고'를 격렬히 공격하지만, 이곳에서는 이성애의 논리도 통하지 않을 지경입니다.(시사인 808호 커버스토리 참고) 자신이 대지를 거닐 때의 즐거움, 강렬한 비트를 들을 때 느끼는 격렬한 충동, 자신의 힘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낼 때의 뿌듯함...이 모든 층위에서 작용하는 성애를 부정당한 결과가 어떻습니까. '우리 삶은 낯선 형태들이 부과하는 제약을 받게 되며 우리의 개인적 필요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 필요조차 고려하지 않는 구조의 필요에 순응하고 만다.(<시스터 아웃사이더>, 77쪽)'는 당신의 우려대로, 사회의 부조리함이 공고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본주의의 기계를 돌리는 노예가 됩니다. 소수의 사람은 풍족한 자본으로 사람들 간의 차이를 납작하게 눌러버립니다. 차이는 무시해야 하고, 마침내 파괴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차이의 역동성은 커녕 차이가 있는 타자와 만나면 당사자는 피곤해만 집니다. 당신의 소설에서 당신이 다루었던 젊은 시절을 지금 살아가는 당신의 후손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홀로 서서 살면서도 다른 이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일갈합니다. "당신이 아직 하지 못한 말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그것 때문에 하루 하루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죽는 그날까지 계속 침묵하며 감내해야 하는 횡포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여기 계신 어떤 분들에게는 당신이 두려워하는 얼굴이 바로 나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여성이자, 흑인, 레즈비언으로서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이 자리에 섰으며 흑인 여성 시인 전사로서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나요?"(<시스터 아웃사이더>, 48~49쪽)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강력하고 소중한 물음이었습니다. 내 속의 남은 에너지 하나까지 뺏어가는 자,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타자가 힘들고 고달픈가. '저들'은 구조 안에서 당당히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말을 내면화한 어머니, 그들의 말을 내게 똑같이 들려주는 직장의 상사였습니다. 20대의 상처없는 싱그러움을 유지하라고 지껄이는 미디어 속 목소리였습니다. 애를 낳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산성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려버리는 자본주의의 구조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어머니처럼 이런 차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그런 것은 없으니, 너만 잘 하면 된다고. 다른 것에는 눈 돌리지 말자고 살아왔습니다. 이들이 언성을 높일수록 내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데 그들은 계속 요구합니다. 네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를 낳고 집안에 헌신하는 여성이 되어라. 친정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라. 남자들 평균만큼만 일하고 회식도 피하지 마라. 동시에 20대의 싱그러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기 관리를 해라. 생산성 떨어지는 40대 기혼 여성이니 남들보다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더 일해라...저는 제 소리를 잃고 이 소리들에 복무하려고 애썼습니다.
함께 여성인 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여성인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유색인종인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당연히 저에게 강요하는 '저들'과도 매우 다릅니다. 당신이 용기를 북돋워준 것처럼 다르다는 사실에 두려워하지 말자고 되뇌어 봅니다. 제가 그들의 머리 속 '나의 모습'에 제가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의 계획에 제가 살아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전화하여 친정의 은혜를 모른다는 부모에게 "성인에겐 책임이 있을 뿐이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남자들의 평균만큼 일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대뜸 여교사를 불러 40분간 고문했던 상사에게 "당신의 말은 옳지 않다. 남자들의 평균이란 무엇이냐."라고 진지하게 따져 물어 보기로 합니다. 20대의 싱그러움을 유지하라고 권하는 사회에서 딸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튼튼해지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자기 관리는 성찰, 그리고 '타자와 기꺼이 연대하기' 뿐이라고 가르칠 참입니다. 저는 저의 필요대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자미>를 펴겠습니다. 그래도 두려우면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베고 잠들 것입니다.
첫댓글 지금 100페이지 까지 읽었어요. 다 읽고 주황님 댓글 달려고요… 편안한 휴일 되세요.
이 책 기대보다 재밌네요 ^^
—-
230321
조금 전 다 읽었습니다. 주황님 글도요.
잘 읽었습니다. 이따 만나요
몇 번을 다시 읽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황님의 오드리와 자미에 대한 휘몰아치는 생각에 푹 잠겨있다 나온 느낌입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