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 / 조미숙
우리 동네에 있는 내과는 꽤 유명하다. 의원인데 입원실까지 갖췄다. 누군가의 암을 바로 진단하기도 했다는 소문도 돌고, 큰 교회의 신도라 아는 사람이 많아 여러 사람에게서 이런저런 일화를 전해 듣기도 해, 내가 아는 사람 마냥 친근하기도 하다. 또 이 동네에서 오래 살기도 해 자주 진료를 받으니 내 주치의이기도 하다. 특별히 전문 과를 찾아야 할 일이 아니면 가니 내 진료 기록이 빼곡하다. 언젠가는 팔에 붕대를 감는 (뼈가 부러진 건 아니고) 데 갑자기 의사가 시어머니랑 같이 사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어깨까지 감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그 오지랖에 배꼽을 잡았다. 아무튼 나를 잘 아는 우리 병원이 있어 편리하다.
어느 날 발목에 좁쌀 같은 작은 물집이 잡혔다. 처음에는 가려웠지만 흔하게 생기는 거라 그러다 없어지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점점 커져 1원 동전만 했다.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다. 동그랗게 붙어 있어 꼭 소나무에 달린 한입버섯 같기도 하다. 아프지는 않지만 자꾸 눈이 간다. 생긴 게 참 신기해서 여기저기 자랑삼아 보여줬더니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는 타박만 돌아왔다. 피부과에 가면 최소한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니 웬만해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미루던 차였다.
그러다가 모임을 하고 들어왔더니 격하게 반기는 보물이(반려견)가 나에게 뛰어오르다 발톱으로 물집을 터트렸다. 집에서 대충 짜내고 소독하고 밴드 붙여놨는데 다음날 보니 다시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염증이 생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희한하게 또 가득 찼다. 할 수 없이 동네 내과로 갔다. 물집을 짜고 약을 바르고는 항생제를 지어준다. 며칠 먹어도 그대로다. 거무스름한 게 덮여있다. 안 되겠다 싶어 피부과를 찾았다. 사정을 설명하니 이건 항생제 먹는 건 아니라고 이것저것을 처방해 준다. 가루약 바르고 약 먹으니 바로 꼬들꼬들해지며 좋아졌다. 지금은 동그란 흉터만 남았다.
이번 일로 전문의가 달리 필요한 게 아니다는 것을 느꼈지만 요즘은 진료과목을 너무 세분화해 불편하다. 종합병원만 가도 정신이 없다. 이건 어느 과, 저건 저기 과로 가야 한단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약 종류만 늘어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병원 갈 일도 아픈 곳도 많은데 순례를 하고 있으면 되레 없는 병도 생길 것 같다. 한 곳만 보지 않고 여러 곳과 연결해 통합적으로 진단하면 좋겠다.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오로지 본인이 봐야 할 것만 찾는 전문의들이 의외로 다른 분야는 서툰 것 같다. 한 사람이 다 보면 약의 종류도 양도 가감할 수 있고 약물 오남용도 비용도 여러 모로 이로울 텐데 아쉽기만 하다. 당신이 고쳐야 할 병만 볼 것이 아니라 환자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데 대학병원 같은 곳에서는 동종 과에서도 쪼개서 진료하니 의사들이 기계화되는 것 같다. 항상 바쁘고 사무적인 의사에게는 인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의료 환경이 좋은 수도권은 명의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지방에선 힘들다. 그러니 교통이 편리한 이유도 있지만 너도나도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는다. 지방에도 능력 있는 의사가 더 많이, 고루 필요하다.
날로 병원 갈 일은 많아진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보면 여러 광고가 눈에 띈다. 각종 영양제 수액에 신식 검사 기계다. 어쩔 땐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곳이 아니라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 같다. 진료를 받고 나서도 개운치가 않다. 왜 이런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별 설명을 하지 않고 약 먹고 지켜보자거나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안다고 한다. 큰 병원의 진료 시간은 1분도 채 안 되는(지방도 마찬가지지만)데 이는 시스템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조금만 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될텐데 말이다. “수가 인상도 도움이 안 되고 사람값(진찰료)을 안 쳐주는 것이 문제다”라는 어떤 의사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의사가 환자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 예방과 돌봄의 효과로 환자가 줄어들어 감당해야 할 의사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연일 뉴스가 뜨겁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하는 행태를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환자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발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서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 ‘방안의 코끼리’라는 말처럼 그들은 알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느 쪽이 옳은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힘없는 환자를 볼모로 힘자랑을 하거나 기득권 싸움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사의 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기를 더 간절히 바라는 시기다. 우리 병원이 있어야 한다.
첫댓글 선생님,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맞아요. 전문의가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이 정부가 제발 진정성있게 문제에 접근했으면 합니다.
양심과 용기 있는 분들의 결단이 필요하겠지요.
공감합니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가 제대로 실행되면 좋겠네요.
뭐가 됐든 국민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사냐?
의사가 왜 그렇게 물었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답을 알아내곤 막 웃었구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 유머가 제 스타일입니다. 너무 재밌어요.
병원을 우리 동네로 옮기는 게 어떠신지. 하하!
저도 이런 병원 좋아해요. 감기 걸리면 다니던 우리 동네 병원이 남악으로 이사 가 버려서 아쉬워요.
더 좋은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편안하게 다니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더 동네병원을 믿지 못하겠네요. 항상 나이 많으신 분들만 우글우글. 과연 나을 수 있는. 곳일까? 하구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의사들도 시골 병원을 꺼려 병원에 의사를 소개해 주는 브로커가 있다고 합니다.
월급이 일반 직장인들의 연봉을 주는데도 말이죠.
친구가 종합병원 간호사인데 환자가 많이 찾는 과의 의사들은 거의 구하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도 좀 잘 본다고 소문난 의사들은 금방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오래 볼 수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