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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3
류인혜
*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점심을 먹은 후 피렌체를 돌아본다. 가이드는 별다른 설명이 없이 여행계획서에 들어있지 않은 박물관으로 먼저 들어가서 모두 그곳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MUSEO(두오모 성당 박물관)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다.
계단 중간에 따로 공간을 마련하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La Pieta)’ 는 아주 소중히 모셔져 있다. 조각의 섬세함과 표정이 걸작품이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다. 아이들이 입을 벌려 노래를 하는 성가대 조각은 재미있다. 제자들의 조각품을 한 장씩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누가 누군지 구별되지 않는다.
가장 구석진 방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도 있다. 그 바로 앞에 서서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의 ‘참회하는 막달레나(Maddalena)’ 조각은 충격이다. ‘스치아치아토’ 기법으로 조각한 작품이다. 그녀가 입은 옷은 집시들의 차림새 같이 보인다. 어쩌면 저렇게 섬세한 조각을 했을까, 감탄이 나온다.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중요한 미술품들이 많은 곳인 박물관에서 설명이 길다고 다리 아픈 사람이 불평해서 가이드의 심기가 나빠졌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가이드는 알고 있지만 우리는 왜 그것이 중요한지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서 가이드는 수준을 높게 잡았는데, 기대치만큼이 되지 않으니 나중에는 건성으로 데리고 다닌 면도 있다. 제대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매점에서 영어로 된 피렌체 안내 책자를 샀다.
밖으로 나오니 작은 광장이 있다. 검정 돌로 박아놓은 바닥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바로 곁에 있는 성당의 뒷면으로 먼저 갔다. 수리하는 중이라서 한쪽 면을 막아두었다. 외관이 아름답다. 둥그런 돔을 찍어 두었다. 건물을 장식한 원본들은 박물관에 보관을 해두고 성당을 수리할 때, 복사품을 만들어 넣었다. 앞으로 돌아가서 보니 박물관에서 본 제자들의 모습이 성당 저편 위에 조각되어 있다.
건물의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자유시간을 준다. 바로 앞에 있는 세례당(Battistero)은 단순한 느낌을 준다. 단테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예수님의 세례 장면이 높이 있다. 박물관에 보관된 원본보다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길이가 길다고 하니 가이드는 별것을 다 본단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었다는 출입문의 금박을 입힌 10개의 철판 그림도 복사본이다. 박물관에서 본 원본은 조형이 아름다웠다. (『메디치가 이야기』 참조)
책으로만 읽던, 꿈에 그리던 플로렌스에 온 기념으로 나무로 만든 조각품을 7유로에 샀다. 피렌체라고 하지만 영어 발음인 ‘플로렌스’가 더 정답게 여겨져 베네치아를 혼자서 ‘베니스’라고 부르듯이 고집을 부린다.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상상 속의 플로렌스는 멋진 도시였다. 실제로 만난 도시도 고색 찬란하다는 표현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한 달쯤 아니 한 열흘쯤이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다.
이동하려는 데 또 한 사람이 없다. 지난번처럼 가이드가 또 뛰었다. 잠시 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자가 달려와서 책을 챙겨놓고 고개를 드니 주위에 아무도 없어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하소연한다. 일행을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라는 주의를 상기하지 못했나 보았다. 가이드가 울상이다. 15명의 일행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100명의 인솔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성당 안으로 들어간 가이드 박강제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건은 수습이 되었다.
골목을 걸어 단테의 생가로 간다. 규모가 크다. 수리 중이라서 근처의 작고 아담한 성당에 들어가 앉아서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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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Alighieri Dante 1265∼1321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불멸의 고전 《신곡》을 저술하여 유럽 중세의 문학·철학·신학·수사학 및 제과학의 전통을 총괄하고,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쌓은 장편 서사시의 정통을 계승하여 얼마 후에 나타난 F. 페트라르카· G. 보카치오와 나란히 르네상스 문학의 지평을 개척했다.
1265년 피렌체의 소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일가는 단테의 대에 와서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귀족의 교양을 위해 어릴 때부터 고전문법과 수사학을 배웠고, 청년 시절에는 석학인 B. 라티니에게 사사했다.
1300년을 전후하는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의 인식과 단테가 그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
G. 귀니첼리, G. 카발칸티, L. 잔니, 그리고 뒤에 C. 피스토이아 등 <청신체파> 시인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단테가 철학적인 <사랑>의 시를 우의(寓意)로까지 높인 것은, 베아트리체(단테의 연인)라는 여성상을 시작법 속에 정착시켰을 때부터이다.
최근 연구에 의해 단테의 최초 작품이라고 현재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신생(新生, 1292∼93)》이다. 일종의 시문혼교체(詩文混交體)로 쓰인 이 작품 속에서 단테는 9살 때 베아트리체와 만났는데 그때부터 9년 뒤에 피렌체 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여 그녀가 머리를 끄덕여 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할 교류도 없이 그녀는 1290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실재인물로 보느냐, 또는 《신곡》 <천국편> 중에서 시인을 인도하는 영원의 여성상으로 보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실재설의 모델로서는 당시 피렌체에 살았던 은행가 시모네 데이바르디에게 출가한 F. 포르티나리의 딸, 비체였다고 한다. 단테는 1277년(12살 때)부터 약혼자로 정해져 있던 M. 도나티의 딸 젬마와 1295년에 결혼, 네 자녀를 두었다.
청년 시인 단테가 피렌체공화국 시정(市政)에 관여하고 있을 무렵, 북이탈리아의 각 자치도시는 로마교황청과 신성로마 황제 양 세력의 틈에서 교황파와 황제파로 나뉘어 대립이 계속되고 있었다. 1289년에 교황파와 황제파가 싸울 때 단테는 기병대의 일원으로 캄파르디노 전투에 참가했다. 이윽고 시인은 피렌체의 시정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1295년 11월에 단테는 정치활동상 필요하여 <의약업종조합(醫藥業種組合)>에 가입하였으며, 포폴로(popolo) 선출위원으로 가담, 12월에는 사비(원로)의 한 사람이 되었고 이듬해인 96년에는 시뇨리아 직속의 100인 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그 무렵 피렌체시의 행정은 교황파 중에서도 공화국의 자립정책을 내세우는 백당(白黨)과 상업상 이익에서 교황과 강하게 결탁한 흑당(黑黨)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단테는 1300년에 교황파의 동맹을 위해 사신으로 산지미냐노에 갔으며 그해 여름에는 프리오레(통령)가 되었다. 그러나 흑백 양당의 싸움이 격화하였으므로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가 조정사절을 파견하여 피렌체의 내정에 간섭하려고 했기 때문에 정권을 쥐고 있었던 백당은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1301년 10월, 단테를 포함한 세 사람을 로마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 사이에 교황의 사절은 피렌체에 들어갔고, 정변이 일어나 흑당의 천하가 되었기 때문에 1301년 1월, 단테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공금횡령죄로 시외추방과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3월에는 벌금을 지불하러 출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구추방의 선고와 함께 체포되면 화형에 처하도록 결정했다.
그 뒤 단테는 다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북이탈리아의 도시에서 도시로 유랑을 계속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백당 동지들과 피렌체 복귀를 획책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 나중에는 1인 1 당을 선언했다(천국편 제17가). 그러나 이 고난에 찬 타향살이 중에도 시인으로서 《신곡》 3편을 계속 써나가는 한편, 1310년에는 신성로마 황제 하인리히 7세가 이탈리아에 공격해 온 것을 기회로 정정(政情)의 변혁을 기대하여 라틴어로 《제정론(帝政論)》을 썼으나, 1313년에 황제가 급사하였으므로 고국 피렌체에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
1320년에는 베로나에서 강연한 것을 바탕으로 《수륙론(水陸論)》을 썼다. 1321년 9월, 라벤나의 구이도 다 폴렌타의 사절로서 베네치아공화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급병(말라리아로 추정)을 얻어 같은 달 13∼14일에 라벤나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베네치아시 성프란체스코 교회당의 한 모퉁이에 매장되어 있다
첫댓글 책으로만 읽읽었었고 꿈에서만 그리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에서 두오모성당 박물관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보는 감회가 새로웠겠습니다.
남천 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댓글로 힘 주시어 감사합니다.
새해 소원하시는 일 순조롭게 이루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