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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강 사도행전의 지리적 구조
26.03.16(월)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으니까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겠죠.
이 말씀대로 이제 사건이 펼쳐집니다.
7장에 스데반의 순교가 일어났고요.
그 스데반의 순교를 기화로 해서 예루살렘의 큰 박해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비극적인 사건이었죠. 그런데 재미있게도 흩어짐의 사건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는 것이 생각난다 그런 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받겠느냐
베드로가 고넬료를 전도하는데 베드로가 주도한 일이 아니라 베드로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냥 따라간 거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어떻게 막겠느냐 이것이 초대 교회에 일어난 사도 행정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의 성격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겁니다. 성령께서 주도하시지요.
사도행전을 1장 8절에 제시되어 있는 구도에 따라 주제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주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확산되는 지리적 구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강의 포인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땅끝은 어디일까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타나는 그 지리적인 예고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까요? 재미있는 것은 오순절 방언이 이 지리적 구조와 관련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관련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땅끝은 어디일까요?
땅끝은 스페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5장을 보면은요 사도바울이 자신의 여행 계획을 설명하는 가운데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정한 후에 너희에게 즉 로마 교회에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겠다 하고 말합니다. 서바나는 스페인을 가리키거든요.
이걸 통해 볼 때 바울의 전도 목적지는 서바나이고 그 서바나가 땅끝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먼저 땅끝이라는 말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건데요. 사도행전에는 스페인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이 스페인에 가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이 자신 사역의 최종 목적지라고 말하는 것은 또 아니거든요.
스페인이 땅끝이다.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거죠. 사도행전 내에서 볼 때 그러면 로마가 땅끝이겠구나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의 모든 이야기는 로마에서 끝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도행전은 의도적으로 미완성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간 이유는 가이사에게 항소해서 재판을 받기 위함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독자들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고 어떤 결과가 있을지 그것을 궁금하게 여긴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기다리다가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거죠. 얘기가 미완성인 채로 끝납니다. 많은 해석자들은 이것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이어받아서 계속 이어가라 이런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끝까지 가지 않았으니까 아직 땅끝에 오지 않은 겁니다. 그러므로 로마가 땅끝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거죠.
그런데 이런 주장들에는 한 가지 전제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땅끝이 한 지점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복음이 확산되는 구조도 그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인 구도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구절이 한 곳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냐하면 사도행전 8장 1절인데요. 그날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행전 7장까지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는데,
8장 1절에서 박해가 일어나면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아 사도행전 1장부터 7장까지는 예루살렘 그 다음에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복음이 전달되는 이야기 그리고 13장부터는 바울의 전도여행이 나오죠.
여기서부터는 땅끝이구나 이렇게 사도행전이 1장부터 7장은 예루살렘 8장부터 12장은 유다와 사마리아 13장 이후는 땅끝으로 직선으로 이어지는 구도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이 전제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만약에 그렇다면 예루살렘을 떠났으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계속해서 그 공간적인 배경이 예루살렘으로 계속 돌아옵니다.
1장부터 7장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렀죠
그 다음에 9장에 보면 사울이 회심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울이 회심한 후에 다메섹에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또 베드로가 고넬료를 전도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 문제가 되어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 일을 알리게 되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변화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전도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12장은 보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대한 박해가 이루어지는데 그 박해를 주도했던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하나님의 징벌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한 다음에 13장 14장 그 1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거든요.
이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요구할 것이냐의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열립니다. 이 회의 결과 예루살렘교회가 또 변화됩니다.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한 후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요. 3차 전도 여행한 후에도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에서 또 복음을 전합니다.
계속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나아가는 직선적인 구도가 아닌 겁니다.
그럼 도대체 땅끝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그 땅끝으로 가는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한 가지 힌트를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1절을 보면 예수님 말씀 가운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2세대 사람을 정제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그 남방 여왕 구스의 여왕이죠. 구스를 우리가 보통 이디오피아와 같은 나라라고 여기는데요. 그러니까 이건 뭡니까? 이디오피아가 땅끝이라는 거네요.
그런데 여기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요. 여기에 사용된 땅끝이라는 용어입니다. 누가복음에도 땅끝이라는 말이 나오고 사도행전에도 땅끝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단어가 조금 달라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땅끝이라는 말은 끝이라는 말이 에스카투오스라는 헬라어 단어고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땅끝은 페라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페라스라는 단어는 경계선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변두리를 가리키는 거예요.
여기에 중요한 힌트가 담겨 있는 거죠. 땅끝이란 무엇일까? 땅의 변두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예 그것을 잘 보여주는 지도가 한 장 있습니다.
이 지도는요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라는 역사가가 쓴 히스토리아라는 역사책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만든 지도입니다.
헤로도투스는 이 지도에 담겨있는 이 모든 지역들을 실제로 다 가보고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이 역사책을 기록했습니다.
근데 이 역사책에 담겨있는 헤로도토스의 서술에 의하면 전 세계는 하나의 땅 덩어리로 되어 있고요.
북쪽에는 유럽이 있고요. 남쪽에는 리비아와 아시아가 있습니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근데 헤로도투스는 말하기를 유럽의 크기는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한 것보다 더 크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그 서술을 토대로 지도를 그린 거예요. 이것은 주전 5세기의 지도고요.
신약 성경이 기록되던 것보다 조금 앞선 시대인 주전에서 주후로 넘어가는 그 기간에 스트라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트라보는 지리학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학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스트라보는 지리학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의 지리책을 토대로 해서 만든 지도가 이 지도입니다.
모양은 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개념이 대동소이합니다. 400년이 지났지만 지리학의 지식에 큰 발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비 전문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이 지도나 헤로도토스의 지도나 비슷하기 때문에 좀 더 단순한 헤로도토스의 지도를 가지고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지도에서 땅끝은 어디일까요?
땅끝은 빙 둘러 땅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땅끝이지 않습니까? 그럼 땅끝은 하나가 아니죠. 수많은 땅끝들이 있습니다.
남쪽 땅끝은 어디이냐하면 이디오피아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사람들이 이디오피아 남쪽으론 안 가봤어요. 그러니까 이디오피아가 땅끝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남쪽 땅끝은 이디오피아입니다. 아까 누가복음에 나온 그 말씀과 같은 거죠.
동쪽 땅끝은 인디아입니다.
북쪽 땅끝은 스키지아입니다.
그 다음에 서쪽 땅끝은 스페인입니다. 그러니까 스페인이 땅끝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수많은 땅끝들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땅끝까지 간다는 말은 땅끝까지 복음에 전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이 되겠어요. 온 땅에 복음을 전한다는 그런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구약외경 가운데 솔로몬의 시편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그 책 1편 4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의 부는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영광은 땅끝까지 이르렀다 첫 줄과 둘째 줄은 대구로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한 건데요. 그래서 온 땅이라는 말과 땅끝까지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쓰인 겁니다. 땅끝까지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온 땅에 이르른다 그런 뜻이 되는 거죠.
이렇게 땅끝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살펴보았는데요.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과 관련됩니다.
먼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일어난 방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신약 성경을 보면 고린도 전서에도 방언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방언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은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나타났던 그 방언은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어떤 특별한 언어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언어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방언은 그런 언어가 아닙니다. 방언을 하는 것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보고요. 사도행전 2장 6절에서는 이 소리가 나면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 합니다.
각각 자기 여기서 자기는 듣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또 그래서 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느냐면 8절에서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이 방언이라는 말은요 그냥 지방 언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상도 방언 전라도 방언할 때 그 방언이라는 뜻으로 쓴 겁니다.
자 이 방언이라는 말이 한국은 땅 덩어리가 작다 보니까 충청도 방언이나 강원도 방언이나 같은 한국어잖아요. 같은 한국어의 조금씩 변형인데 스케일이 달라지면 얘기가 좀 달라지죠
유럽에서의 방언이란 무엇이냐하면 각 지역의 언어가 방언입니다. 영어는 영국에서 사용되던 방언이 영어이고 프랑스에서 사용되던 방언이 불어이 거거든요. 그러니까 방언이라는 말은 사실 언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도 있는 거죠.
여기서 사도행전에서의 방언 지방 언어라는 말은 그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러와 라틴어와 대조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말하지 않고 각 지방 언어들로 말했다는 거예요.
이게 뭘 의미할까요? 그 자리에는 세계 각 곳으로 모여든 순례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계 각 국에 흩어져 살지만 예루살렘의 성지순례 한 번 가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여겼거든요.
오순절을 맞이하여서 여러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있었는데요.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하면 바데 메데 엘람 메소보다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 밤빌리아 에굽 리비아 로마 그뢰데 아라비아 이런 수많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각 언어로 이 지역의 언어들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거죠. 그런데 여기에 나와 있는 지명들이 그냥 무작위로 나열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바데 메데 엘람 메소보다미아는 유대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지역들입니다. 유대는 중앙에 있고요.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 밤빌리아는 유대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는 지역들입니다.
그리고 애곱 리비아 로마 그레데는 서쪽 지역들입니다. 아라비아는 남쪽에 있는 지역들입니다.
이 지역들을 배열한 순서를 보세요. 동쪽 나라들을 배열한 다음에 유대를 언급하죠.
아마도 동쪽 나라들로부터 유대로 북쪽 나라들로부터 유대를 서쪽 나라들로부터 유대로 남쪽 나라들로부터 유대로 이런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세계 곳곳에서 유대로 사람들이 순례자들이 모여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도만 놓고 보자면 이 지도는 오늘날의 지리적 인식으로 볼 때는 그저 지중해 연안과 중동 일부 세계의 한 구석의 한 일부에 불과한 지역인데요.
이제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 보자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 보자면은요 리비아가 여기에 있고 로마가 여기에 있고 메데가 여기에 있고 아라비아는 여기에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한 수많은 북쪽 나라들은 여기에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모여든 지역이 이게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모여든 거예요. 전 세계로부터 왔다고 말해도 무리가 안 될 정도로 전 세계로 로부터 사람들이 모여든 겁니다.
자 이 오순절 사건이 뭘 의미하느냐 하면요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사도행전 1장 8절이 오순절에 이미 실현된 겁니다. 자 한번 보시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우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잖아요.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지요 너희가 권능을 받고 제자들이요. 갈릴리에서 살던 촌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외국어로 말하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여러분들 경험해 보셔서 너무나 잘 아시죠. 능력을 받았습니다.
셋째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세계 각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살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순례하러 온 사람들이에요. 오순절이 끝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죠. 땅끝으로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땅끝으로 가는 움직임은 사도행전 끄트머리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 성령강림 사건 사도행전의 첫 사건에서 이미 땅끝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도행전 3~2강 사도행전의 지리적 구조
땅끝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로마 제국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자 이런 질문을 우리가 할 수 있겠죠.
하나님의 나라는 땅끝까지 확장되어 가는데요. 그것은 제국도 마찬가지잖아요. 로마 제국도 땅끝까지 지배를 확장해 나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땅끝까지 세계 전역을 지배해 나간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 제국과 비슷한가 지배자만 바뀐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로마 제국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은 그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오순절 방언 사건입니다.
로마 제국은 땅끝까지 가서 온 나라를 지배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언어인 라틴어와 헬라어를 모든 민족에게 강요했습니다. 원래 로마의 언어는 라틴어입니다.
그리고 헬라어는 헬라 제국의 언어였는데요.
헬라 제국의 문화적 파급력이 엄청나다 보니까 헬라 제국을 무너뜨리고 로마가 제국을 세운 후에도 헬라어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평민들은 헬라어를 사용했고 라틴어는 관용어로 사용되었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각 민족의 언어로 피지배자의 언어로 그 사람들을 찾아가는 겁니다.
제국은 땅끝으로 주변으로 가지만 그 이유는 중심의 문화를 땅끝에 강요하고 땅끝의 재화들을 약탈해서 중심으로 가져오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끝으로 가서 땅끝의 언어와 땅끝의 문화로 땅끝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땅끝으로 가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도행전은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로마 제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자 우리가 이런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각 사람의 정체성과 다양성 즉 차이를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다.
주로 이것은 성서공회가 세계 성서공회들이 아주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요. 성서공회는 성경을 모든 민족의 언어로 세계 공용어 또는 지배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각 민족의 토착언어로 번역하려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죠. 바로 이런 정신을 따른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선교사들이 예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뭡니까? 피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거죠. 선교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배우는 겁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도행전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로부터 땅끝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 볼 수 있겠는데요. 땅끝이란 모든 사회와 문화의 변두리가 곧 땅끝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회와 문화의 변두리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중심으로부터 밀려나 있고 그래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곧 땅끝이다. 하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땅끝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이것을 뒷 받침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 이야기를 살펴보면요
사도바울은 한 번 찾아간 교회를 반드시 다시 찾아가서 보살핍니다. 제국이 지배하는 것은 그냥 파괴하고 지나가면 끝이죠. 그게 아니라 한 번 찾아갔던 지역을 반드시 다시 찾아갑니다.
그래서 1차 전도여행에 세운 교회들을 2차 전도여행에서 다시 찾아가고요.
그리고 그 후에 확장해서 세운 지역들을 3차 전도여행 갈 때 다시 절반은 방문하고요.
그 다음에 3차 전도여행 끝나고 돌아올 때 2차 전도 여행에 세운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그다음에 3차 전도 여행 때 주로 머물렀던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서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고 이렇게 돌아오는 거예요.
반드시 다시 갑니다. 정복이 아니라 보살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복음이 확산되어 가는 이러한 지리적 구도가 사도행전의 첫 사건인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이미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럼 앞으로는 또 어떻게 나타날까요?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간략하게 살펴볼까요?
사도행전의 제1부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먼저 8장에서 빌립이 이디오피아의 네시에게 보고 전하죠.
복음이 이디오피아로 갑니다.
이디오피아 남쪽 땅끝이잖아요. 8장에서 복음이 이미 땅끝으로 가는 거예요.
9장을 보면은요, 사울이 회심한 후에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담의 색 예루살렘의 북동쪽에 있죠. 북동쪽에 복음이 전해지는 거예요.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군의 백부장입니다. 가이사라에 살러 온 것이 아니라 파견돼 왔단 말이에요. 파견기간 끝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죠. 서쪽으로 복음이 확산되어 가는 거예요.
11장에는 안디옥 교회가 세워집니다.
안디옥 교회는 북쪽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는 이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함으로써 이방 선교의 중심이 되는 교회여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의 기지가 될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십일장에서 세워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미 또 복음이 땅끝까지 확산되고 있죠.
그 다음에 사도행전 제2부 바울의 전도여행은 말할 것도 없죠 바울이 전 세계를 다니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땅끝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직선적으로 한 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초반부부터 시작해서 반복해서 복음이 땅끝으로 계속 확산되어 가고 그 다음에 한 번 간 곳은 안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간 곳들을 또 다시 방문해서 보살피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산되어 가는 것입니다.
자 이제 강의를 마무리하며 이런 내용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죠.
먼저 내 주변의 땅끝은 어디일지 내 주변의 변두리는 어디일지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겠어요.
물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땅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하는 것 땅끝을 섬기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땅끝은 단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 주변의 변두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한번 찾아보고 어떻게 섬길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한번 실천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성탄절 되면 다 한 번씩 하잖아요. 그런 건 잊어버리죠 그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다음 강의는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오는 요약문을 따라 세 번째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어떤 증인이 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지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의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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