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은 1983년 학교설립과 함께 개관해 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학교부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경주시가지와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학교 설립을 기념해 주민들이 기증한 유물과 발굴유물, 매입한 유물 등 2천여점을 박물관에서 보유하고 있다. 전시관을 마련해 500여점을 전시해 학생과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자리잡고 있어 경주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경주캠퍼스박물관은 30년동안 신라낭산 유적조사, 석장사지 발굴조사, 남산의 천룡사지 폐탑복원 및 주변조사, 경마장부지 생산유적과 교내 석장동 유적, 황남동과 황오동 일부지역에 대한 유적조사를 담당했다. 또 신라왕경유적을 발굴조사하기도 했다.
인근도시 울산과 청도 등에서도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발굴조사 활동을 벌였다.
캠퍼스박물관은 역사유적에 대한 직접적인 발굴조사와 전시를 통해 학술자료 를 공개하고, 교육 등을 통해 학계와 대학교육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발굴조사활동으로 경주지역 최초의 암각화인 석장동암각화를 발견하고, 왕경유적 발굴, 발견유물 특별전과 소조불 특별전 등의 전시회를 열어 문화사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선사시대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불교문화유적을 시대별로 전시하면서 소장품과 전시유물에 대한 도록을 발간해 경주지역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 설치된 학교박물관에서 경주의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경주의 고고유물
동국대 경주캠퍼스 일원에서도 경주지역 전반에 걸쳐 발견된 유적과 같이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대부분 토기류와 기와종류다. 여러 가지 무늬로 만들어진 벽돌종류도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울산지역에서 출토된 석기박편과 돌화살촉, 낚시바늘, 돌도끼 등의 유물이 오래된 시간과 선사시대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토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문양을 찍어 만든 그릇의 파편들이 수도 없이 나열돼 있다. 빗살무늬, 열쇠고리 모양 무늬, 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토기, 내용을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져 있는 토기조각들이 수두룩하다. 아래가 팽이처럼 생긴 토기도 있다. 경주 황성동에서 발견된 높이 10㎝의 작은 항아리는 무늬 없는 토기로 초벌구이 상태를 보여준다. 석장동에서도 목이 있는 같은 형태의 높이 36㎝ 크기 민무늬토기 항아리 조각이 발견됐다.
삼한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압형토기. 3세기 목곽묘에서 출토됐다.
삼한시대로 추정되는 압형토기와 대부직구호, 소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우각형파수부호, 뚜껑이 달린 화로, 노형토기 등이 거의 본래의 모형을 보이고 있다. 3세기 목곽묘에서 출토된 기러기 모양의 압형토기는 내부와 외부가 모두 황동색이다. 머리깃은 점토판을 붙여 만들었다. 부리는 가운제 돌대를 깃으로 연결하고 길고 넓적한 입을 표현했다. 몸통에 원형통을 만들어 내부를 비워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한 듯하다. 다리부분을 둥근 기둥형으로 세우고 나팔모양으로 바닥을 마감해 안정적으로 제작했다.
양쪽에 귀가 달린 삼국시대 양이부호.
삼국시대로 넘어오면서 토기는 세련미를 갖춘다. 양쪽에 귀가 달린 양이부호, 뚜껑이 있는 고배, 대부장경호 등이 더러 완벽한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다. 양쪽에 귀모양의 걸이대가 달려있는 원형그릇 양이부호는 삼국시대 대표적인 토기다. 몸통에 세로로 빗금을 그어 무늬를 삼단으로 만들어 미끄럼 방지효과도 기대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암회색으로 주로 4세기 목곽묘에서 출토됐다.
통일신라시대 토기는 화려한 문양과 안정된 모양을 보여주는 밥그릇 종류가 눈에 띈다. 뼈를 담은 흔적이 남은 토기 골호는 화장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일그러진 얼굴 모양을 새긴 토우도 출토돼 전시되고 있다.
연화문수막새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가운데 사자가 새겨져 있다. 쌍조문수막새와 가릉빈가문수막새 등과 함께 화려한 문양을 자랑한다.
연화문수막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연결되면서 섬세하게 발전된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시대 수막새는 사자무늬, 보상화무늬, 가릉빈가무늬, 쌍조무늬 등으로 다양하다. 귀신의 얼굴을 표현한 귀면와도 경주지역에서 출토돼 전시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연화무늬가 새겨진 벽돌과 매우 귀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유전이 다양한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탑과 부처가 번갈아 조각된 탑상문전도 보인다. 탑상문전과 함께 누각이 새겨진 누각문전도 보인다.
기둥과 지붕의 기왓골, 용마루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전각을 벽돌면에 표현했다. 누각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불교미술
소조불보살입상.
선사시대를 넘어오면 발견되는 유물들이 대부분 불교미술작품이다. 불상과 탑, 탱화 등이 주를 이룬다. 경주캠퍼스박물관에도 불교미술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불상은 대부분 금동이나 석불이다. 진흙으로 빚어진 소조상은 드물다. 특히 캠퍼스박물관에 소조불보살입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경주시 오류리에서 출토됐다. 머리부분은 결실되고 없다. 신라에서는 처음 출토된 소조보살입상이다. U자형 천의 자락과 장신구의 형식 등이 경주 남산 장창곡에서 출토된 석조미륵삼존상의 우협시보살상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입상.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예술성을 자랑하는 금동불입상과 좌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출토돼 전시되고 있다. 고려시대 청동보살상과 조선시대 석조불좌상도 시대를 앞선 예술의 변화를 보여준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면석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십이지신상의 조각이 입체적으로 전시돼 박물관 전시품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석조신장상은 구름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12지신의 동물이고 몸은 사람의 형태다. 모두 무기를 들고 있다. 우람한 근육과 갑옷도 유연하게 조각해 역동적인 모습이다.
고려시대 청동 보살상.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납석제좌불은 신체에 비해 다소 얼굴이 크게 표현됐다.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하고 수려한 모습과 다르게 일반인의 얼굴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하기 쉬운 납석으로 조성됐지만 얼굴모습과 의복형태가 부자연스럽고 투박하다. 어깨도 왜소하고 다리 표현도 불투명해 예술성이 떨어진다.
조선시대 후기작품으로 보이는 목조동자상이 채색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벼루를 들고 있는 동자상과 석류를 가슴에 안고 있는 동자상이 불화속의 동자와 달리 머리형태와 복식 지물이 다양해 한국 동자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석조나한상.
조선시대 작품 석조나한좌상은 투박한 솜씨로 조각됐다. 아담한 체구로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둥글고 좁은 어깨가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팔과 가부좌한 다리 위에서 만난다. 매듭 없이 허리띠를 동여매고 있다. 털옷을 걸친 듯한 모습이 수수하다. 머리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어 나이든 승려나 할아버지처럼 보이게 한다.
통일신라시대작품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으로 새겨진 석조광배조각,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조각, 선각으로 새겨진 신장상 조각이 시선을 끈다.
회화작품은 대부분 조선시대작품으로 전시됐다. 벽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웅장한 기림사 삼세불도, 아미타후불도, 신중도, 제석천룡도, 현왕도, 팔금강도, 사자도, 산신도 등이 은근히 화려한 색채로 눈길을 끈다. 독성도와 능파당 진영은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 작품으로 당시 인물을 소개한다. 기림사 삼세불도는 조선시대 1718년 제작된 연도가 표기돼 있다. 한폭의 화면에 내용이 서로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전체 화폭을 아래 위로 나누어 2/3 윗면은 삼세불을 그리고, 아랫면에는 안락국 태자전을 표현했다. 능파당 진영은 화문석 위에 오른쪽을 보고 있는 그림이다. 굵은 염주를 들고, 왼손에는 왼쪽 어깨에 비스듬하게 비껴 기댄 주장자를 잡고 있다. 입술은 붉은 색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담았다. 대선사의 위엄과 이웃친지와 같은 편안함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조선후기 작품으로 보이는 토벽불화 3점이 있다. 1980년대 백률사지구 유적을 조사하면서 벽체에 채색된 벽화를 채색층만 떼어 액자에 보관하고 있다.
◆공예품
동국대 경주캠퍼스박물관에 전시된 공예품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생활용품과 장식이 대부분이다.
가위, 금귀걸이, 청동경통과 동경, 납석제사리호는 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누각식 목탑모형으로 조성된 청동탑, 청동초두, 청동정병, 청동향로, 청동합 청동밥그릇은 다소 투박한 모습을 보인다. 예술성이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오히려 뒤떨어졌다. 청동화문대야, 보림사명 청동불기도 고려시대 작품이다.
조선시대 청동은입사향완.
조선시대 청동은입사향완은 나팔형 안정된 굽 위에 넓은 전이 달린 고배형 향완이다. 은을 입혀 문양을 새긴 세련미가 돋보이며 가늘고 긴 목을 가진 청동정병, 범종의 상륜부 용뉴, 은제가사고리, 요령도 다양한 문양으로 예술적 작품성이 뛰어나게 발전한 모습이다.
조선후기 목조원비
목조원비와 목조경장조각, 분청사기 흙으로 만든 작은 토탑 등이 조선시대의 생활과 예술성을 짐작하게 한다. 목조원비는 사찰의 불단에 봉인하여 왕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원비다. 패두와 패신, 대좌를 따로 제작해 조립한 형태다. 가운데 대황제폐하성수만세(大皇帝陛下聖壽萬歲)라고 기록된 명문이 아직도 남아있다. 명문 좌우로 자연스럽게 대칭을 이루며 용이 구름사이로 승천하는 역동적인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좌측 용은 붉은 여의주를 쥐고 있어 이색적이다. 전체 채색 흔적이 있다. 용의 몸체에 금색 안료를 칠한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이렇듯 경주의 대학교 박물관도 역사적 향기를 가득 품고 있어 역사기행 하는 이를 자극한다.
첫댓글 대학의 박물관들이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은 아예 박물관을 접어버렸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