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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계석 ◈
1985 한국시조시인협회 여름 세미나
時調와 海洋文學
때 : 1985. 8. 9(금) ~ 11(일)
곳 : 浦項商空工會議所 강당
곳 : 포항 시민회관 (추가내용)
大會辭…… 李泰極
歡迎辭…… 朴敬錫
주제 Ⅰ <海洋文學의 重要性과 그 特性>……文德守
주제 Ⅱ <現代時調에 浮刻된 바다 像>………曹柱煥
주제 Ⅲ <海洋文學과 時調의 役活>…………李根培
⦁주최 : 한국시조시인협회
⦁후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문인협회
중앙일보사
예총포항지부
KBS포항방송국
포항문화방송(株)
*출처 : 시조문학
1985년 겨울호 통권 77호 계간 45호 (추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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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會辭
우리 한국시조시인협회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행사의 하나인 夏季세미나를 올해는 浦項에서 갖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포항은 경북 제 1 도시요 동해의 최고 港口이면서 동시에 동양 굴지의 鐵鋼 도시입니다. 日就月將하는 이 도시에서 세미나를 갖게 된 우리 協會도 일취월장하리라는 大吉한 徵兆를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항구 도시라는 점을 감안해서 세미나의 主題를「時調와 海洋文學」으로 정했읍니다. 半島인 우리 조국에서 해양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再論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면에 대한 우리 文人들의 관심과 노력이 극히 얕은 상태에 머물러 왔었읍니다. 이 점을 반성함과 더불어 시조가 寄與해야 할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고 토론해 보자는 의도에서 정해진 주제입니다.
名門 고장에 와서 우리 협회의 행사만을 치르는데서 그치지 말고 좀더 유익한 그 무엇을 이 고장에 남기고 가자는 實利的 名分을 찾은 결과, 「時調復興會」를 아울러 갖기로 했읍니다.
부족한대로나마 우리 詩人들이 이 「時調文學의 밤」을 통해 몇 톨의 씨를 착실히 뿌리고 돌아설 수 있으리라고 감히 自負합니다.
전국적 규모로 그동안 大都市에서 몇차례 가진 끝에, 中小도시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협회의 세미나를 이 고장 포항에서 갖는다는 데에도 그 뜻이 깊다고 아니할 수 없읍니다. 문화 예술의 中央集權的 폐단을 없애는 한편 우리 전통문학인 시조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한 본격적 출발점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를 원만하게 치를 수 있도록 기꺼이 명예회장을 맡아주신 朴敬錫 議員님과 물심양면으로 적극 협조해주신 이고장 有志들에게 재삼 감사를 드리며, 앞장 서서 땀을 흘린 진행위원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1985. 8. 9
大會長 문학박사 李 泰 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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歡迎辭
존경하는 한국시조시인협회 李泰極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
귀 협회가 올해의 여름 세미나를 우리 고장에서 갖게 된 것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귀 협회는 국내의 많은 문화예술단체 중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과 순수성, 그리고內實로써 다져진 권위있는 문학단체인 줄로 알고 있읍니다.
더우기 가장 값진 문화 遺産의 하나로서 우리 겨레만의 고유 · 정통 문학인 시조를 오늘날의 中興으로 이끌어 세우기까지 귀 협회가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현대 시조의 中興 旗手였던 가람 李秉岐선생과 노산 李殷相선생은 이미 幽明을 달리하셨읍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도 그에 못지 않은 공헌을 끼친 著名하신 重鎭 詩人들이 많이 계실 뿐더러, 오늘을 이끌어가는 中堅과 내일을 펼쳐갈 新銳 詩人들이 대거 참여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오늘의 이 자리가 뜻깊고 빛나는 것은 단순히 그 사실 하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大局的 입장에서 볼 때, 「시조와 해양문학」이라는 時宜에 적합한 주제를 내걸고 세미나를 갖는다는 意義도 물론 큰 비중을 누리는 것이겠읍니다.
그러나 우리 고장으로서는, 문화의 분위기를 한껏 드높이며 2世들에게 문학적 素養을 길러줌으로써 문예 창달의 계기가 될 「시조 문학의 밤」이 高名하신 文人들에 의해 성대히 베풀어진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헤아려집니다.
오늘날에는 항구·철강·산업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희 고장입니다마는, 먼 옛적에 서라벌의 <해맞이 고을>(迎日)이 곧 우리 고장이었으며, 〈延烏郞과 細烏女>의 전설이 담긴 고을, 가까이는 李陸史의 名作 <청포도>의 産室이 바로 우리 고장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由緖 깊은 우리 고장으로 하여금 문화의 꽃을 다시 난만히 피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이끌어 주시고 밀어 주십시오.
비록 더위가 한창인 때에 열리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慶事를 맞은 저희로서는 아무쪼록 알찬 성과를 거두어 주십사 하고 기원할 따름입니다.
건승하심을 비오며.
1985. 8. 9
명예대회장 국회의원 朴 敬錫 사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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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日程表
月⦁日 | 時 間 | 內容 | 備考 |
8⦁9 (金) | ⭘14:00~14:30 ⭘15:00~18:00 ⭘19:00~21:30 | ⭘회원 등록 ⭘해변 휴식 ⭘시조 문학의 밤 1) 강연 – 겨레시로서의 시조(鄭椀永) 2) 강연 – 시조를 어떻게 쓸 것인가(張諄河) 3) 자작시 낭송 박병순 유성규 이상범 정재익 김상훈 류상덕 김남환 김광수 소재순 장지성 박영교 경 철 김상형 이채란 하영필 박노경 용진호 제갈태일 정석주 이일향 4) 명시조 낭송 유명화 정명자 박은희 채후불 (포항여고) 권영국 이상석 채상욱(제철공고) ⭘환영연 : 朴敬錫議員 主宰 ⭘찬조출연 : 포항시립실내관현악단 (단장 : 임승박) | ⭘포항여고 ⭘상공회의소 |
8⦁10 (土) | ⭘09:00~12:00 ⭘13:00~ | ⭘주제 발표 文德守 ⦁ 李根培 ⦁ 曺柱煥 ⭘질의 토의 질의자 : 김제현 ⦁ 서 벌 ⦁ 이은방 ⦁ 한춘섭 임종찬 ⦁김몽선 ⦁ 이정환 ⭘중식 및 관광 | ⭘상공회의소 ⭘송라 보경사 |
8⦁11 (日) | ⭘07:00~08:00 ⭘08:30~09:30 ⭘10:00~12:00 ⭘12:00 | ⭘영일만 해안일주 관광 ⭘대보 등대박물관 ⭘포항종합제철 시찰 ⭘폐회 | ⭘포항해양경찰대 지원 |
⭘연락처 : ⭘서울 : 김광수 782-2380(직장) 856-9983(집) ⭘포항 : 조주환 ② 7721(집) ② 4632(포항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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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Ⅰ
海洋文學의 重要性과 그 特性
文 德 守
우리나라는 흔히 半島로 일컬어지고 있거니와, 三面이 바다이고, 동서로 흐르고 있는 두 江이 북쪽 국경을 이루고 있으므로, 全國土가 물로 둘러싸여 있는, 사실상 섬과 같은 나라이다. 이와 같은 國土의 지리적 조건에서, 물이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역사의 방향(운명)을 좌우해 왔고,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海洋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고 해양을 제재로 한 神話的·詩的 사상력의 활동, 그리고 그 이미저리의 형성과 확대 등이 의외에도 낙후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바다 또는 해양이라는 문학적 소재와 「해양문학」이라는 쟝르적 성격에 대해서는 논의할 또 다른 여지가 많지만, 어쨌든 해양문학의 거의 제로와 같은 상태는 한국 文學史의 가장 큰 하나의 허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차제에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 해양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고찰해 보고, 앞으로 있어야 할 바람직한 海洋文學의 성격을 추구해 본다는 것은 결코 무익한 일은 아닐 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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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와 해양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의 우리 민족의 생활이 흙(뭍)에 밀착되어 있었고, 물과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한 점에 있다. 이런 사실을 실증해 주는 작품으로서, 張晚(1566~1629, 명종 21~인조 7)의 다음과 같은 시조를 들 수 있다.
風波에 놀난 沙工 ᄇᆞㅣᄑᆞ라 말을 사니
九折羊腸이 물에셔 어려웨라.
이후란 ᄇᆞㅣ도 물도 말고 밧갈기를 ᄒᆞ리라.
이 시조는 과거 우리 민족의 물(또는 바다)에 대한 認識의 한계와 海洋文學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의 일단을 잘 暗示해 준다. 즉, 逐字的 차원에서 볼 때, 風波에 대한 위협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心理的 이유도 문제거니와 그보다는 물이 아니라도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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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生活現場이 있고, 물(또는 바다)이 가지는 생활 현장으로서의 중요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漁場이나 水產業보다 「논밭」만이 생활 현장이며, 바다 의식보다는 논밭의 생산력이 삶에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지배층의 통치의식도 흙의 영역이 곧 國土의 경계라는 관념으로 굳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흙의 영역만이 國土의 전부라는 의식은 우리나라를 거대한 大陸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하나의 半島에 불과하며, 大國에 붙어 있는 小國이라는 관념을 낳게 하고, 마침내 「事大的인 大陸指向性」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삼국시대에는 조선술이 꽤 발달하고 일시 서해와 등지나해의 海上權을 장악한 때도 있었으나, 고려와 이조를 통해서 항상 대륙에 붙어 있는 小國이라는 일종의 「邊方意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地政學的 조건에다 사상적·종교적 측면에서 불교와 유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변방의식은 周邊國家라는 하나의 컴플렉스를 갖게 마련이다. 필자는 이것을 우리 민족이 장구한 역사를 통해서 형성하게 된 뿌리 깊은 心理現象으로서 「邊方 컴플렉스」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하여 몽고의 침략, 중국의 中華思想에 눌려 항상 비굴한 약자의 위치로 전락되고, 생존 유지를 위한 事大主義 사상, 사대주의 외교, 사대주의 윤리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恥辱的인 狀況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계속했으나 끝내 극복하지 못한 딜레마 속에서 二重苦痛으로 허덕여왔던 것이다. 천년 이상을 두고 우리 민족을 괴롭혀온 周邊意識, 변방 컴플렉스는 大陸指向에서 온 불가피한 현상이었고, 우리 민족이 본래 가졌던 자존심과 진취성, 모험과 응전력을 계속 약화시켜 온 결과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제 흙과 더불어 물의 중요성, 대륙과 더불어 해양의 중요성, 그리고 대륙 지향성과 더불어 「海洋指向性」을 가져야 할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식의 일대 전환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삶과 우리 국토 및 역사의 운명이 물 또는 바다와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우리 민족의 生存空間, 生活現場으로서의 영역이 동해와 서해는 물론, 태평양까지 확대되어 있으며, 따라서 韓半島인 우리 국토가 동북 아시아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야말로 동북 아시아의 중심 국가라는 이른바 「中心圈思想」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中心圈思想(中心主義思想)이 결코 허황한 관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地政學的 위치가 바로 그것의 역사적 현실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비행기로 서울서 北京까지 2시간, 東京까지도 2시간, 台北·홍콩· 블라디보스토크까지도 모두 2시간 전후의 거리에 있다. 서울에 콤파스의 축을 고정시켜 놓고, 2시간 전후의 거리에 맞도록 콤파스의 한 쪽 다리를 회전시켜 보면, 바로 서울이 이러한 지역들의 중심지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콤파스가 그린 圓周의 내부에는 육지도 있고 바다도 있으며, 그 육지와 바다는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等價意識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가져야 할 현실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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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상상적 海洋指向性은 바로 이러한 중심권 사상에 의거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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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洋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는, 심리적 측면에서 유전적이라고 할 만큼의 오랜 歷史的 脈絡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 역사적 맥락을 실제의 역사에서 개략적이나마 더듬어 봄으로써, 우리 민족이 유전적으로 가져왔던 소극적이며 퇴영적인 해양 인식의 불행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시조 朱蒙의 아들이면서도 왕위 계승권을 가진 태자가 되지 못한 溫祚는, 형 沸流와 함께 漢水(漢江)이남으로 피해 내려왔다. 그들이 도읍을 정하려고 할 때, 신하들이 「생각컨대 河南의 땅은 북으로 漢水를 끼고 동으로 高岳에 의거하고, 남으로 沃澤을 바라보고, 서쪽은 大海로 가로막혔으니, 그 天險의 地利를 이루어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고 건의했다. 「서쪽은 大海로 가로막혔으니……」라는 말에서 바다를 새로운 국토의 개척지나 생활 현장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城壁과 같이 적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방어」의 의미로만 인식했던 것이다.
元나라가 1232년 고려를 침공했을 때, 고려 고종은 江華로 천도했다. 이것 역시 바다를 성벽과 같은「방어」의 수단으로만 이해했던 예다. 그 후, 고려는 원조의 강압에 못이겨, 수많은 함선과 군량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元軍과 연합하여 두 차례 (1274,1282)에 걸쳐 바다(현해탄)를 건너 일본을 공격했으나, 두 번 다 태풍을 만나 실패했다. 그 당시 造船術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海洋氣象에 대한 無知로 인한 두 차례의 실패는 고려의 해양 인식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실례라고 하겠다. 해양 기상에 대한 무지는, 바로 해양에 대한 인식 결여의 중요한 한 국면으로 지적된다.
임진왜란 때 李舜臣 장군이 비록 해전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그 승리도 「방어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初戰 당시 해상에서 日軍의 함선을 쳐부수어 상륙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바다 자체가 갖는 자연적 방어 상태에만 의존하고, 함선을 건조하고 해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식이 없었던 때문인데, 이는 당시의 지배층이 해양 인식을 전혀 가지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李舜臣 장군은 거북선을 만들고 도서의 지형과 해류를 전투에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해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당시의 고루한 大陸指向的 위정자들의 해양 인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바다를 정복해야 국가를 튼튼하게 지킬 수 있다」든지, 「바다를 개척해야 생활을 풍요하게 할 수 있다」는 진취적, 적극적인 인식의 결여는, 바다에 대한 방어 개념만이 그 뒤의 역사에도 계속하게 되고, 造船의 기술과 과학적인 海戰力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예를 개화기 초기의 역사에서도 되풀이된 사례를 볼 수 있음은 매우 안타깝다. 辛未洋擾(1871), 그 뒤의 일본의 江華侵攻(1875)이 그 예다. 육지의 쇄국정책만을 강화하고, 외국 군함이 근해를 마구 유린해도 이를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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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시킬 수 있는 군함 한 척도 없었던 것이다. 江華條約(1876)으로 부산, 인천, 원산의 세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는데, 이 굴욕적인 개항은 임진왜란을 통해서 나타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복 야욕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고, 마침내 韓日合倂을 가져온 그 시발점이 되었다고 하겠다.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나라 전체를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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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洋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우리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精神史의 주축을 이루는 想像世界, 즉 문학사(문학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관념과 현실, 상상과 역사는 구별될 수도 있으나,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이른바 모방론을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상상적 체험과 그 창조는 현실적 체험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을 수긍한다면,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의 역사가, 실제의 역사와 정신사에 병립적으로 공존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문학사에서 바다를 제재로 한 작품이 꽤 있기는 있다. 그러나, 배도 팔고 말도 팔아 버리고 숫제「밭갈기」만 하겠다는, 앞서 예로 든 張晚의 시조는 물, 즉 생활 현장으로서의 강이나 바다 자체의 포기일 뿐만 아니라, 물의 이미저리, 또는 海洋 이미저리에 대한 想像活動 자체의 제약 내지 포기이기도 하다. 李賢輔의 〈漁父詞〉나 尹善道의 〈漁父四時詞〉는 그런대로 바다의 정취가 풍기는 감흥도 있고, 어부 생활의 멋도 있는 바다의 이미저리를 나타내고 있기는 하나, 그러나 생활 현장으로서의, 리얼리티와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 바다를 自然의 한 풍경으로서 바라보는 태도와, 생활 및 역사의 현장으로서 바라보는 태도는 전자는 낭만주의이며 후자는 리얼리즘이라는 구별 이전의, 또는 그러한 구별을 초월하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서사적 작품에서도 바다를 제재로 한 작품, 혹은 바다와 관련을 가진 작품이 있기는 있다. 延烏郞과 細烏女의 전설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그럴 듯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고대부터 한국인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는 것, 그리고 日本征服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화의 현실적 의의는 수긍되나 항해의 과정, 그리고 일본서 정복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는 점이 아쉽다. 특히 항해 과정의 표현이 없는 점은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洪吉童傳〉에서는 길동이 중국 南京으로 가는 도중에 碑島國을 발견하고, 〈許生傳〉에서는 沙門과 長崎 사이의 바다에서 무인도를 발견하는데 이는 해양 진출의 꿈을 반영하고 이 섬들은 모두 유토피아니즘을 소박한 대로 반영하고 있는 樂園이다. 그러나 비록 이 소설의 가치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라고는 할지라도, 이 소중한 낙원에 이르는 航海의 과정, 즉 바다에 대결하는 시련의 과정이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소설에서는 구조면에서 항해 과정의 생략을 지적한다는 것은 그러한 지적으로 그칠 일이지, 그 이상 비난한다는 것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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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줄은 물론 알고 있다.
水宮을 무대로 한 <토끼전>은 바다의 이미저리가 갖는 설화적 象徵性의 깊이를 보여주는데 이 점은 그런 대로 의의가 있으나, 水宮과 龍王, 그리고 거북과 토끼의 水宮과 육지간의 왕래 등에서 설화로서의 寓意 이상의 리얼리즘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소설에는 바다에 대한 상상적 인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寓意的 說話라는 한계 이상을 뛰어넘는 생활과 역사의 리얼리티는 발견할 수 없다. <토끼전>의 설화성과는 대조가 되는 다소의 현장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金仁謙의 〈日東壯遊歌>에 있음은 홍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歌辭에 나타나는 현해탄의 항해 과정에서 뱃바닥의 나무관자를「七星板」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상적 대목이긴 하나, 겁 먹은 얕은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바다의 상징은 죽음과 재생의 原型 이미저리로 보나, 뱃바닥을 七星板에 비유한 것은 그러한 이미저리의 구조를 갖고 있는 비유라고는 볼 수 없다.
이밖에도 바다를 제재로 했거나 바다와 관련이 있는 작품들이 있겠지만, 이상의 고찰만으로도 우리 문학사에서는 본격적인 海洋文學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된다. 해양 소설, 해양시가라고 할 만한 본격적 작품이 없음은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상상적 인식 활동이 없었음을 말해 주며, 상상적 인식 활동의 결여는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생활 현장-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못하건간에 생활 현장으로서의 海洋의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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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해양문학이라고 해서 文學一般과 다른 특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한 지역, 한 민족의 역사와의 관련에서 볼 때, 그 지역과 그 민족에 있어서 해양문학의 필요성, 그리고 바람직한 海洋文學의 특성이 논의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全國土가 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개인이나 민족 전체가 물 또는 바다와는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바다의 중요성에 대한 현실적 체험 및 상상적 체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양문학의 발생적 근거는 바로 우리 국토와 우리의 생활의 환경적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해양문학의 특성도 이러한 환경적 조건과 우리 문학사를 기초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의 바람직한 우리나라 해양문학의 특성을 몇 가지로 묶어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일방적인 大陸指向性과 대륙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변방 컴플렉스를 불식하고, 우리의 체험과 인식의 방향을 전환하고 확대할 海洋指向性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적 시도는 우리의 국토와 삶의 空間이 동북 아시아의 中心圈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 즉 「중심권 사상」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체성, 또는 민족적 주체성 운운」하나, 그 주체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적이며 근원적 기반이 바로 중심권 상상(중심주의 사상)이다.
둘째, 해양의 역사적·현실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필수 불가결하며, 그러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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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海洋文學作品을 생성할 심심 세계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해양의 역사적·현실적 중요성이란 바다가 단지 관조적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의 現場이요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역사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현실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항구와 造船所의 건설, 해외 진출의 활성화, • 해저 자원의 개발, 원양어업의 추진, 과학적 탐사, 국토 개념의 확장, 해양에 대한 국방상의 새로운 개념- 오늘의 우리의 모든 이러한 文明的 活動은, 우리 민족사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해양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떴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오늘의 모든 현실적·역사적 체험은 우리의 문학적 상상 활동의 모티프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상상 활동이 이 모두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세째, 시건 소설이건 앞으로의 우리 海洋文學은, 우리의 역사 및 문학사가 가졌던 해양 인식의 결여라는 허점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바다에 대한 경시, 공포, 소극적 방어 관념, 무지, 관조적 태도, 그리고 리얼리티가 희박한 설화적 인식 -이 모든 허점은 우리의 역사를 치욕적으로 얼룩지게 하고, 우리의 문학사를 허약하게 만든 요인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학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그리고 아픈 교훈이다. 바다의 상징적 이미저리가 가지고 있는 삶과 죽음, 도전과 좌절, 정복과 패배, 개척과 시련- 이러한 신화적 드라마를 기본 구조로 하는 해양문학을 우리 문학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네째, 바다는 우리의 생존 및 역사의 현장임과 동시에 「위대한 원시적 대자연」이라는 二重性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二重性의 인식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앞에서 우리의 생존 및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文明性을 강조했으나, 대자연으로서의 바다가 가지고 있는 그 보편성, 광활성, 원시성 및 통합성은 바다의 상상적 인식에 있어서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바다의 자연성과 文明性, 즉 바다의 二重性은 역사와 원시, 이상과 현실, 평화와 투쟁이라는 이미저리의 극적 구조를 내포하는 원인이 되며, 이러한 구조는 우리의 상상적 인식 속에 불가피하게 침투되기 마련이다.
◉ 주제Ⅱ
현대시조에 浮刻된 바다像
曺柱煥
I. 起
인류의 생활은 바다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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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支配하는 者가 世界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바다를 探究한 민족이 그들의 번영을 이룩한 例도 보아왔다.
일찌기 孤山은 '漁夫四時詞'에서 바다에 대해 興趣있는 민족정서를 노래했던 것과 같이 바다는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국토가 비좁은 우리나라는 다행히 三面이 해양으로 둘러싸여 天惠의 바다 資源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探究하고 잘 이용한다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가 요망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本稿는 '한국시조 큰사전'에 수록된 현대시조 속에 나타난 바다像을 알아보려고 한다. (자료를 '한국시조 큰사전'을 이용한 뜻은 첫째, 지금까지의 현대시조를 집대성했다는 점. 둘째, 수록된 작품은 自選 他選이든 거의 그 시인의 代表作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Ⅱ. 時調詩人들의 바다에 대한 관심
'한국시조 큰사전'에 수록된 381 名의 시조시인(수록된 전원) 가운데 바다를 素材로 한 편 이상의 작품을 쓴 詩人은 112名(29%)이었고, 작품량으로는 7,254편 (큰사전에 수록된 전 작품) 중 175편 (2.4%)이었으며, 이는 또 총 18,331 首 중에 442首(2.4%)였다. (素材에서 海女,海材,海岸, 등대 等 포함. 한산도, 울릉도 等에서 내용상 바다와 관계가 먼 것은 제외함.)
위에서 三面이 海洋인 우리의 자연환경에 비해서는 바다에 대한 관심이 극히 미약한 편이다. 또한, 현대시조 초기의 주요작가인 六堂, 春園, 薝園 등은 단 한 편의 作品도 없었다.
Ⅲ. 作品 속에 나타난 바다의 위치
바다를 素材로 한 175편의 작품 중 구체적으로 위치가 나타난 것은 51편 (29%)으로 이것은
1) 국내 (49편)-남해 27편, 동해 16편, 서해 6편
2) 해외 (2편)-카리브해 외 1편으로 나타났다.
위의 분석에서 국내를 素材로 한 작품이 49편, 해외를 素材로 한 것이 단 2평 뿐이라는 것은 遠洋, 大洋에로 향한 詩人들의 자세는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것은 東海를 素材로 한 景鐵의 '동해' 等 16편의 작품에서는 조국애, 민족혼 등의 이미지를, 南海는 姜永奐의 '남해' 등 27편에서 제주, 다도해 등의 紀行抒情을 주로 떠올리고 있었으며, 西海는 李殷相의 '저주의 서해' 李泰極의 '서해상의 낙조' 등 6편서 낙조, 비탄, 절망 등을 떠올리고 있었다. 위에서 동해와 남해는 조국애, 민족혼 기행서정 등에서 꿈, 이상, 동경 등으로 연결되어 밝은 이미지로 나타났고 서해는 주로 어둡게 나타나고 있었다.
Ⅳ. 作品 속에 나타난 정서의 경향
바다를 素材로 한 175 편의 작품 중 叙景的인 작품은 23편 (13%)으로 나타났고, 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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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的인 것은 152편(87%)이었다. 이 가운데 抒情을 대상으로 정서의 경향을 살펴보면
1) 理想, 希望, 憧憬, 野望 등을 노래한 것- 정완영의 ‘바다 앞에서’ 김남환의 ‘과도에’, 유준호의 ‘바다에서’ 두째 수 등 71편(47%)이었다.
例)
바다 앞에 날 세우면 버리고 싶은 게 많다.
조국이며 인간사며 구겨진 지전이며
한 마리 파도의 열풍 뛰는 고기를 얻고 싶다.
-정완영, 바다 앞에서-
구릿빛 바람 다시 갯바람에 경련하고
추녀마다 엮어 단 생활이 흔들려도
수부는 푸른 바다로 꿈 받으러 나간다.
-유준호, 바다에서 두째 수-
2) 이별, 悔恨, 슬픔 등을 노래한 것- 김상옥의 ‘흰돛 하나’, 이상범의 ‘청람색 바다 2’의 두째 수 등 34편(24%)였다.
例)
귀속에 젖어 있는 물결 소린 옛날인데
호올로 밟은 자욱 돌아보면 호젓하다
돛댄 양 그는 어디로 흘러가고 없느뇨.
-김상옥, 흰돛 하나-
종일 흰 이를 보이며 소녀의 발자욱만 좇더니
해지자 먹물같은 장삼을 걸친 채
우주의 한 모퉁이를 허물며 짐승처럼 울었다.
-이상범, 청람색 바다2-
3) 조국애, 민족혼 등을 노래한 것- 박재삼의 ‘南海流水詩’, 전원범의 ‘동해’ 등 10편(7%)으로 나타났다.
例)
난장진 피바다 속에 눈 뜨고 목숨 지운 이
사백년 흐른 오늘 마른 하늘가에서
이승을 바라는 곳에 銀河로 보일 水道여.
-박재삼, 南海流水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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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려온다 만세소리 파도소리
한 시대 깊이 속에 넘쳐오는 동해바다
지금은 내 주소 우에 차오르는 파도여.
-전원범, 동해, 네째 수-
4) 人生苦, 鄕愁 및 기타-이태극의 ‘어촌일기’, 유성규의 ‘차도’ 등 37편(24%)로 나타남.
例)
깨나 자나 꿈을 안고 파도와 겨루는 무리
갈매기 손짓으로 오늘도 닻을 들고
저 멀리 삶의 등성이로 노를노를 젓는다.
-이태극, 어촌일기-
어느 바다에서 지아비는 생을 낚는가
호롱불 가물대면 물기 잃은 아낙네가
심지 끝 타는 아픔을 가슴으로 조이리.
-유성규, 파도, 두째 수-4
Ⅴ. 結
以上의 분석을 요약 綜合하면 時調詩人들의 바다에 대한 관심에서 바다를 素材로 한 作品이 ‘한국시조 큰사전’에 수록된 전체(현대시조)에서 2.4%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三面이 海洋인 우리의 자연환경에 비해서 극히 적은 量으로 관심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바다의 位置에서 국내를 素材로 한 作品이 96%, 海外룰 素材로 한 作品이 4%란 것은 水平線 너머로 향한 遠洋, 大洋을 향한 詩人들의 자세가 극히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作品 속에 나타난 情緖의 경향에서 理想, 希望, 憧憬, 野望 등이 많음은 바다를 향한 정서는 밝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잇다.
註, ① 위의 Ⅳ의 4)에서 ‘기타’는 정서의 경향을 네 항목으로 나눈 속에 들어가기 곤란한 것임.
② Ⅳ의 정서의 경향은 보는 이에 따라 어느 정도 관점을 달리 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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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Ⅲ
해양문학과 시조의 역할
李根培
최근에 통일신라시대의 바다의 정복자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張保皐의 해상 무역기지인「淸海鎭」이 전남 완도군의 「將島」가 확실하다고 사가들은 유적의 과학적 분석에 의해 실증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1천여년전의 전설적 인물로만 여겨왔던 張保皐의 역사적 실증에서 그렇고 세계의 海戰史에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꼽히는 李舜臣과 그가 발명한 거북선이 말해 주는 것은 우리나라는 三面이 바다로 싸인 해양국가라는 점이다.
오늘과 같이 산업사회로의 전환과 그 무대가 전세계로 확산된 시대에서는 문학의 領域 또한 새로운 삶의 現場으로 확산되고 多邊化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가 세계 굴지의 造船국가이며 동시에 해양산업 국가이면서도 문학은 산업의 확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만든 우리의 많은 일꾼들이 바다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누비고 제7광구의 油田을 갖고 마두라에서 기름을 캐고……, 보다 크고 보다 넓은 이 땅의 문학의 資源이 무한하게 펼쳐 있음에도 우리의 문학은 아직도 해양문학이라고 정의할 만한 작품과 작가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가 문학의 1인자인 孤山 尹善道가 일찌기 「漁夫四時詞」를 썼던 것도 孤山이 바다의 생활을 해서가 아니라 당대적 작가의 역할로서 영농생활 못지 않게 민중적 삶의 또 하나의 영역에 창작의지를 가졌던 것임을 감안할 때 소설문학과 함께 시문학에 있어서도 특히 시조가 현대적 시 양식으로서의 기능적 수행을 위해서도 크게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나 멜빌의「白鯨」같은 작품은 이미 고전으로 읽히는 세계문학의 대표작이거니와 우리나라야말로 張保皐와 李舜臣 같은 인물과 역사에서 抽出될 수 있듯이 바다를 무대로 한 새로운 문학의 탄생에서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리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의 현대시조에서도 바다를 주제로 쓰였거나 바다의 이미지를 시조에 담은 작품들은 많이 있어 왔다.
李殷相의 「내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가고파」 도 엄격히 말하면 고향이 테마이지만 다분히 바다의 정서에 치우친 작품이며 崔聖淵, 李泰極, 朴在森, 朴敬用, 李殷邦, 鄭仁洙, 李京潤, 姜永奐 같은 시인들에 의해 시대적 상황과 삶을 연결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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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소재로 쓴 작품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시조가 이 시대의 문학 양식으로서 민중직 삶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고 시문학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視野에 들어오는 水平線 안쪽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水平線 너머에서 전개되고 있는 땀과 기름과 살과 피의 현장에 시인의 체험적 상상력이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바람이 잔잔한 날의 돛단배가 아니라 파도와 永山과 싸우는 거대한 함정의 추진력을 시조에 옮겨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시조문학
1985년 겨울호 통권 77호 계간 45호 (추가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