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안토니 대성당(Basilica di Sant'Antonio di Padova) -파도바-
성 안토니오 성당
성안토니오 성당은 1263년에 짓기 시작하였으나 성 안토니오는 1231년으로 이보다 30년이나 앞서 죽었다.
성당 내부에는 성 안토니오(1232~1307)의 무덤과 그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도나텔로가 제작한 동상과 양각 조각물이 있는 높은 주 제단상이 있고, 제단 안쪽에 밑에는 그리스도 상이 있다. 성모 마리아 상, 파도바의 성인상 등도 있다.
성당은 빨강과 흰색 배색이 아름다운 8개의 큰 쿠포라(둥근 지붕)가 둘러싸고 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을 닮은 7개의 비잔틴식 돔과 2개씩 짝을 이뤄 서있는 육각형의 종탑, 로마네스크풍의 육중한 벽돌건물이다.
성당의 정면을 향해 우측으로는 회랑이 계속 되는 입구가 있고 예배당도 있다. 성당에 부속되는 시설로서 산·죠르죠 기도당과 그 쌍둥이와 같은 기도당(구교회)이 있고 이 내부에도 성당내와 같이 가치 있는 프레스코화가 많이 있다
산 안토니오는 젊은 프란치스코회 수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책과 하얀 백합을 들고 있기도 한다. 고아· 수감자· 표류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임산부· 아픈 어린이· 유리 부는 직공·수련 수사· 포르투갈· 유리제품 상인의 수호 성인이며,
특히 잃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찾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라틴어: Sanctus Antonius de Padua, 1195년 8월 15일 - 1231년 6월 13일)는 포르투갈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자 프란치스코회의 수사이다. 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선종하였으나, 본래 그는 리스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탁월한 설교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하였으며, 당대에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이례적으로 선종한 후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1946년에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축일은 6월 13일이다.
그는 특히 설교에 능했는데, 신기하게도 그가 죽은 뒤에도 혀 만은 썩지 않았다고 하며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파도바의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오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났읍니다. 1220년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 위대한 설교자가 되며, 이단과 맞서 싸우는 데 전념했다.
그는 50회 이상의 기적을 일으켰다.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파도바에서 그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겼고, 산타 마리아 마테르 도미니(Santa MariaMater Domini) 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은 곧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너무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예전에 있던 건물을 통합하여 성 안토니오 성당이 세워졌다.
성인의 유해는 1263년 이 성당으로 옮겨져 처음으로 그의 무덤이 열렸는데, 유해의 혀가 기적적이라 할 정도로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이 일은 과학자들에게조차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성 안토니오의 무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순례 장소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매년 6월 13일이 되면 파도바는 추모 행사와 행렬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