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읍내에서 남쪽으로 부안여자고등학교를 지나 2km쯤 가면 큰 곧동묘지 옆을 넘는 헌례고개가 있고, 이 고개에서 1km쯤 더 가면 옹정(독우물)이라는 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부안군내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낡은터, 웃말, 구석뜸, 중리, 월리, 샛터, 똘두럭, 이민촌의 여덟 마을로 이루어져 흔히 옹정8리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이 생겨나기는 고려말에 부안김씨 김광서(金光敍)라는 분이 나라가 이성계한테 망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개성(開城)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숨어 살면서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의 낡은터(葛里)마을이 그의 정착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김광서가 이곳에 집터를 다듬과 우물을 손수 파고 큰 항아리로 우물을 만들었다하여 이 마을 이름을 이때부터 독우물(甕井)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도승이 지나다 목이 마려워 이 독우물의 물을 달게 마시고 마을의 형국을 살펴보더니 “이 우물의 물맛이 의한하고 마을 형국이 아늑하여 큰 인물이 많이 나올 마을”고 하고 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로부터 조선조 500년 동안 대과(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이 마을에서 20여 명이 났으며 4현(四賢), 팔장사(八壯士) 등 인물이 끊이지 않아 부안현감이 새로 부임하여 오게 되면 반드시 옹정에 먼저 인사하러 오게 마련인데 헌례고개에서 말을 내려 옹정을 향하여 예를 드렸다하여 이 고개를 헌례(獻禮)고개라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명종 때의 큰 문장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은 이 마을에 사응 친구 기묘명현(己卯名賢, 조선 중종 14년 기묘년에 조광조 등 신진 선비들이 南褒, 沈貞, 洪景舟 등 훈구勳舊 재상宰相들에게 몰려 화를 크게 입은 조신朝臣들을 일컬음)인 옹천 김석홍(甕泉 金錫弘)을 찾아왔다 가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甕井多君子 金門聚德星
또 모제 김안국(慕齊 金安國)이 전라도 간찰사로 와서 옹정에 숨어 사는 김석홍을 찾아보고 이 마을을 일러 ‘君子之鄕’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부안에서 살기 좋고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된 5대 마을을 속칭 1옹정, 2노적, 3석교, 4줄포, 5월천리라고 부르고 있는데, 옹정을 그 첫 번째로 꼽는 이유는 위와 같은 유서 깊은 사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