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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형님 (tistory.com)
2019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이름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심사평]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담담히 말하는 시선 인상적
예심을 거쳐 올라온 예비 시인 17명의 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읽을 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보다 서정적인 시가 우세했으며,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시보다 일상을 포착하거나 가족, 가난 등 서정시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 비정규직, 청년 실업, 성폭력 및 미투 운동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고 뜨거운데, 오늘의 시가 시대 현실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시단에 이슈가 별로 없는 현상이 응모작에도 투영된 듯하다.
17명의 작품 중 7명의 작품을 먼저 추렸고, 그 중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인 3명의 작품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하현’ ‘새가 하는 일’ ‘이름’이었다.
‘하현’은 달이 차고 이우는 것과 만두를 빚는 한 여자의 노동을 겹쳐 놓는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달을 보며 “한 여자의 붉은 생애”를 떠올리는 시상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새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중 가장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였다. “나무는 새가 펴는 우산”이라는 이미지와 나무에서 새와 매니큐어와 우산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역동적이었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부모의 기대치와 어긋난 자신의 생을 들여다본 ‘이름’은 자신의 몸과 헛도는 큰 옷,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가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로 유전되는 가족의 삶과 상처에서 빠져나와 그로부터 달아나는 상상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름’을 호명하기로 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미처 호명하지 못한 예비 시인들에게는 꼭 다음을 기약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눈 밝은 선자가 당신의 시를 호명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이하석(시인), 이경수(문학평론가)
2019,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측백나무 울타리 /송연숙
누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
측백나무 울타리 세워놓았나
안쪽도 바깥도 없는 그 울타리 드나들며
나는 안쪽에서 바깥을, 또 바깥에서
안쪽을 넘겨보거나 내다보곤 했다
또 아주 오래전 허물어진 옛집을 수습해서
울타리에 기대 놓았다
그럴 때면 앞마당과 뒤란이
저희들까지 순서를 정하곤 하였다
집을 품지 않은 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니어서 벌판에서 벌판으로 몇 천리 가면 기차가 떠나는 간이역이 있고 또 어느 쪽에서 몇 시간 동안 그 기차를 타고가면 어리둥절할 양떼들이 있다 양들에게 측백나무 울타리에 관해 물으면 예전 자신들이 구름의 일족으로 흘러 다닐때 언뜻 본 것도 같다는 말을 하였다
측백나무 울타리에
오래전에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
거미는 아침이슬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도 만드는데
머리가 먼저 이슬에 들어가 집을 짓는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둥근 배마저 이슬의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
안쪽도 바깥쪽도 없는 집
순서도 모서리도 신음도 만들지 않는 집
측백나무 울타리엔
거울 하나 둥실 매달려 있다
당선소감
어제는 알레르기 쇼크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낯선 병명을 되뇌다 보니 “아나(얘야) 필(감정) 락(즐거울) 시스(복수)”, “얘야 즐거운 감정을 많이 가지고 살아라”하는 생각이 기도의 응답처럼 딱하며 깨지는 호두알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적막의 시간을 먹여 키운 나의 시들이 “아나필락시스”하며 건네는 위로다. 또 예민한 시인의 눈을 가지고 정진하라는 호된 충고다. 시는 나의 십자가다.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것이다. 스승님께 먼저 감사 올린다.
최돈선, 최승호 시인님, 박무웅 대표님과 시와표현 식구들, 한림대 문우님들,
강원여성 문인들, 두 딸, 심사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송연숙(52)
△강원도 춘천 生
△강원대 교육대학원
[심사평]“깊은 사유·상상력 풍부 … 예리한 관찰력 높이 평가”-이상국·이영춘 시인
최종 논의된 작품은 이민주의 `그늘의 기원'과 전금례의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 송연숙의 `측백나무 울타리'였다. `그늘의 기원'과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는 함축적 시로 주지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나 시적 긴장감과 참신성이 결여된 것이 흠이었다. `측백나무 울타리' 외 4편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이뤘고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이 풍부하며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측백나무 울타리'는 단면만 유지한 사회나 가정의 시대상을 암시한 시로도 읽힌다. 안쪽과 바깥쪽도 없는 집을 짓는 거미의 형상 같은 화자는 마치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단독자의 외로움 혹은 생의 공허함을 표출해 내고 있다.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숲에서 깨다
하채연
등을 받치고 잠들었던 나무기둥에서
새벽이슬 냄새가 훅 끼쳐온다
사방에 울울창창하게 뻗은 녹음들
현시를 잊은 채 창공에 닿아 빛나고
꿈결처럼 말을 거는 선선한 바람에
나는 나무들이 지어놓은 미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새소리로 엮어놓은 문패를 열고 들어가자
억겁의 땅으로부터 솟은 나이테의 내력이
기둥을 키우며 나의 발목에 작고 푸른 원주를 새기고
육신과 나무, 나무와 육신 사이를 비집고 난 샛길 사이로
와본 적 있는 것만 같은 울렁이는 향수가 지천에 빛난다
목피들이 전생을 벗겨내는 소리가 알싸한 그 길목에선
곤줄박이 한 마리가 잎새 한 장을 전해준다
해독할 수 없는 이끼들의 필체로 쓰인 문장들
지워지지 않을 나의 태곳적 이름을 발설하고 있다
무한한 혈맥으로 엮인 나무 그늘 속
편안히 누워 흙이 된 이름들을 짚어본다
끝없이 이어져 불거진 이 뿌리들은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을까
억겁의 계절을 지나도 숨 쉬는 숲은
태양과 달을 이고 은빛 땀을 대지로 흘려보내고
나는 한 장의 연서를 쥐고 숲에서 깬다
뒤돌아보면 푸른 절경이 등허리에 축축하다
심사평
당선작 이견 없어… 성장 가능성 높아
2019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임호
출근길,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은행알들이 비좁은 그녀의 구두에 밟혀 터진다
"헬로 에브리바디~ 근데 내가 좀 바쁘거든요~!"
우리의 그녀는 바쁘다
우리의 그녀는 뛰지 않을 수 없다
어깨에 당겨 맨 앙증맞은 가방엔
있어야 할 약간의 센스와
없어도 될 약간의 의심을 담고
우리의 그녀는 뛴다
한꺼번에 많이 벌릴 수 없어 조금씩 뛴다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을 만큼씩 뛴다
먹이를 쪼는 비둘기처럼 뒤뚱거리며 뛴다
그녀는 뛴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
그녀의 치마는 그녀가 선택할 수 없는 바람에 흩날리고
그녀의 가슴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안도로 출렁이고
그녀의 쇄골은 떡볶이처럼 흐느적거리고
그녀의 뺨은 뿌듯함으로 달아오른다
우리는 이런 그녀를 흐믓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페이트런
그녀의 협잡꾼, 그녀의 앞잡이
상처의 방향이 다를 뿐
우리는 한 이불에서 뛰기 시작했다
누가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명랑한 그녀의 부주의를
누가 그녀를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자꾸만 예뻐지는 그녀의 미래를
누가 그녀를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그녀만의 달콤한 모멸을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피앙세
도려낸 시간에서 흐르는 육즙을 받아 마시며
저 푸른 초원 위에 녹초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달리다가
돌아와 그녀가 사라진 엘리베이터앞에 앉아
포크를 움켜쥐고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우리는, 우리는 모두
그녀의 그녀
당선소감
기차 플랫폼에 앉아있다. 형형색색으로 머물러 있던 기다란 콘테이너 행렬이 서로 잡아당기는 소리를 요란하게 전달하며 다시 출발한다.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얼떨결에 끊고 한참 후에야 누군가 나를 잡아당겨주는 소리가 뒤늦게 심장에서 울려온다.
6년 전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서며 웬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다는 불안이 밀려왔고,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는 방편으로 시의 문을 두드렸다.
출퇴근하는 광역버스에서 착상을 메모해놓았다가 주말 아침 일찍 동네 도서관에 들어앉아 시를 갈무리하고 다시 텃밭으로 나가는 일과가 자주,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신촌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시에 묶인 사람들과 합평하며 배운 오랜 시간은 아직도 문학과 시에 대해 막연한 감만 갖고 있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다 쓴 시들을 뒤돌아보면 부끄럽다.
나는 왜 시를 택했을까? 시는 내게 무슨 의미인가? '시적인 것'들은 어디에 있다가 언제 나타나는가? 무슨 자격증을 따도 시원찮을 마당에 왜 이른 아침에 시를 쓰고 앉아 있나? 이런 질문들과 싸우다 그만두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시가 설혹 내 인생의 장식물에 불과해지더라도 그냥 같이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아마도 오늘 당선은 이대로 그 길을 떠나라는 재촉일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숙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참 잘했어요'를 받은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시의 꼬리를 쥐어잡고 끝까지 매달려 가 보지도 않았으며 주소 모를 시의 근처에서 늘 서성거렸던 것만 같다. 그러므로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한 발 더 내딛어야 하나'가 앞으로의 크고 두려운 숙제이겠으나 그보다 먼저 못다 푼 숙제를 풀어 채워 놓는 것이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양심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시의 불빛이 내게서 깜빡거리는지 지켜봐 주신다면 고맙겠다.
시는 늘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자리를 찍어주신 김근 선생님과 시의 끈적끈적한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이재은, 정희영, 조혜영, 정선율 그리고 미처 다 부르지 못하는 詩友들께 영광을 바친다. 뒷걸음 칠 때마다 등을 토닥여 주었고 당선소식에 핸드폰 너머 나 대신 울어준 아내 신경화와 사랑하는 두 아들, 그리고 가족들과 기쁨을 같이 하겠다. 책으로만 접한 시의 여러 큰 스승들과 언제나 무료로 나를 품어준 일산 대화도서관에도 감사를 표한다. 앞으로 내게 좋은 시를 내어 주리라 믿는 이 세상에도 미리 감사한다.
임 호
66년 경기 평택 출생, 경기 고양 거주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현) 한국예탁결제원 재직 중
심사평- 이시영, 박수연
예심을 거쳐 모두 열여섯 분의 작품이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본심에 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서정시를 짓는 언어에 대한 충분한 수련이 느껴졌다.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신춘문예용이라거나 언어적 공교함에 머물러 있다거나 하는 문학상 심사평의 많은 말들도 실은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 중 본격적인 논의 대상으로 세 분의 작품을 먼저 골라 냈다. 「떨림」 「연어를 읽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세 편이 그것이다.
「떨림」은 사물들에 대한 정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관찰력은 세계의 보이지 않는 면모에 대한 상상과 통할 터인데, 이는 서정시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 작품이 주목된 것은 그 능력을 기이한 세계나 어색한 낯설음으로 몰아가지 않고 응모자 자신의 독특한 정서로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정서가 관념의 아득한 아우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 관념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응모자 자신의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우려하였다. 「연어를 읽다」는 세계의 생명과 그것의 순환을 생태주의라는 이념에 실어 묘사한다.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이 상상력은 시의 언어가 곧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의 이념에 연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름답다. 시의 편에서 보면 그 상상력은 설명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마지막 연이 그에 대한 우려를 갖게 했다. 시를 이완시키는 해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는 언어의 공교함이나 감각적 이미지 제작 능력에 있어서는 위 두 작품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 응모자만의 세계와 시각이 살아 있다. 출근길의 조바심을 현대인 모두의 조바심으로 확장시키는 시의 진술들에는 경쾌하고 맑은 삶이 들어 있는데, 시의 언어에는 가벼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라는 구절은 저 가벼움과 삶의 비애를 적절히 결합시키는 언어적 능력과 정서 조절의 방법을 잘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은 이 새로운 경쾌함과 비애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하였다.
2019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당선작
명왕성 유일 전파사 /김향숙
모든 가전家電엔 명왕성冥王星 하나 두둥실 들어있다고 했다 목숨 다하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못하는 것이 제명이라고, 별명이 백과사전인 그 사내는 모르는 게 없다 이 빛나는 지구도 저 없으면 돌지 않는다고 사십 년 기름때 묻은 공구함을 가리킨다 공구들의 명칭마다엔 알파벳 하나씩 휘어지고 벗겨진 곳곳에 일본식 표현이 살짝 묻어있다
오일마다 망가진 것들이 몰려드는 난전亂廛, 배운 적 없는 어깨너머의 기술로 만지작거리면 고장 난 밥솥이 빨간 눈을 켜고, 커피포트 녹음기 선풍기와 마음 고장 심하게 난 이웃까지 불러 앉혀놓고 막걸리 한 잔 따라주면서 다독다독 고친다
십자와 일자,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있으면 퇴출당한 명왕성도 거뜬히 고친다고 큰소리치는 명왕성 유일 전파사 그 사내
봄날이어서 수리 마친 가전들
저러다 파란 이파리들 막 돋아날까 걱정스러운데
고친 카세트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흥겨운 듯 절절한 트로트가 그 뒤를 따라간다
★ 김향숙 씨 약력△1966년 경북 상주 출생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심사평
삶의 애환 건강한 시선으로 그려내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품은 예년에 비해 대폭 늘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인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미적 정서와 예술적 영혼으로 맑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투고된 작품 중에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다. '다가선다는 것', '활짝 핀 귀', '데칼코마니', '조충도', '명왕성 유일 전파사'가 바로 그것들이다. 5편 모두 당선작으로 하여도 괜찮을 만한 작품성과 시적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중에 한 편을 당선작으로 정해야 하는 만큼 심사위원들은 이것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논의하였다.
우선, '다가선다는 것'은 그 표현의 아름다움과 참신함이 눈길을 끌었지만 시적 메시지가 모호하고 약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활짝 핀 귀'는 맹인의 삶을 소재로 하여 역설적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었지만 조금 식상한 발상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데칼코마니'는 자연의 형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해내는 놀라운 안목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 인식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조충도'와 '명왕성 유일 전파사'는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심각한 논의를 거치게 한 작품들이다. '조충도'는 매우 섬세한 감각과 참신한 표현으로 아름다운 시적 세계를 구축했지만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명왕성 유일 전파사'는 무엇보다 당대적 삶의 애환을 건강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물에다 해학적이고도 물활적인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운생동한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점이 놀라운 점으로 주목받았다. 이에 '명왕성 유일 전파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선자는 더욱 정진하여 한국 문단의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성선경·김경복)
2019 한경신춘문예 물고기의 잠/설하한
[심사평] 신화적 상상력을 이미지로 자신만의 세계 만들어내
2019 한경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시적 존재를 증명했다. 특히 시에 대한 실버 세대의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심사였다. 취업과 이력서, 알바, 고시원 등의 시어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의 고뇌와 실존의 깊이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응모작에서는 시의 잠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시는 한마디의 잠언을 위해 수만 마디의 시적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는 구체적 일상과 실존의 경험을 통한 살아 있는 이미지, 사물을 바라보는 번뜩이는 눈, 자신만의 문장을 가진 신인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였다.
본심에서 오랜 숙고 끝에 최종적으로 설하한, 신진숙, 이주호가 남았다. 이주호의 ‘빙붕공항’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펭귄’은 지금 우리 사회 청년들을 가장 적확하게 은유하면서 빙하를 향해 날아오르는 비상의 욕망을 발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슷한 착상의 기성 시가 몇 편 있다는 점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신진숙의 ‘ㅁ이 자라 ㅂ이 되도록’은 발상이 새로웠다.
설하한의 ‘물고기의 잠’은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설하한은 큰 스케일과 자신만의 문장을 가진 응모자였다. 신화적 상상력을 육화해 시의 소재로 삼고, 떠돎과 회귀라는 서사를 시의 구조에 장착할 줄 안다. 이런 이미지와 진술의 조직력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의 시는 이미지가 살아 있었다.
심사위원 : 유안진 시인·서울대 명예교수,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문학관 관장, 이재훈 시인·현대시 주간
첫댓글 https://youtu.be/-86K80mhIHE
측백나무 울타리/송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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