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淸蓮박하영
집에 과일 떨어진 지가 한참 되었다
한동안 과일을 못 먹어 그런지, 기분 탓인지
몸이 좀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어 오늘은 꼭
과일을 사 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과일 중에도 사과를 제일 좋아하지만 가끔은
바나나도 먹기에 서울역에서 장을 보는 나는
오늘은 과일만 살 것이니 그냥 롯데마트로 다녀올까
용산 하나로로 갈까, 서대문 하나로로 갈까,
후암시장으로 갈까, 이촌 시장으로 갈까 궁리로 가득한데,
큰딸한테서 카톡으로 통신이 들어 온다
엄마!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마!
용산구 일기 예보 미세먼지 최악이야!
핸드폰을 읽는 동안 어디선가
과일이 왔어요, 과일이
소리가 자그맣게 들리는 것 같아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해 먹으려던
한소끔 끓는 물 인덕션을 끄고
급히 아래층으로 달려 나가니
과일 판매 트럭이 정차한다
나는 과일 차가 집 앞에 온 기쁨에 사과 만 원어치
토마토 오천 원어치를 한 보따리 사서 집으로 들고 들어 와
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를 되뇌며
딸에게 이 상황을 카톡으로 보내니
참 신기하다 그런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아주 작은 일" 하나까지도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2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