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에 가질 마음들(3)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2017년 1월 15일 / 대예배, 주일오후예배 / 히브리서 11:8-16
3. 아브람이 가졌던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히 11:9 /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훗날 하나님께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처럼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고향 땅을 떠 날 때 아브람의 나이 75세였고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에서 100년을 지내다가 175세에 죽었습니다.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어디에 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장막은 텐트(tents)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인 처소입니다. 100년을 아브람은 일시적인 장소인 텐트에서 살았는데, 대궐은 아닐지라도 몇 백 평 정도의 집을 마련하고 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후손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브라함은 아내의 매장지로 썼던 손바닥만 한 막벨라 굴 외에는 땅을 전혀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집을 짓고 편안하게 산 것이 아니라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 삶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하고 고단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람이나 사래는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라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아 하늘에 있는 참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속한 신앙생활이 아닌 하늘나라를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그만 어려우면 ‘애굽! 애굽!’ 하듯이 만일 아브람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누가복음 5장에서 자신들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제 깊은 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러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을 때에 시몬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어제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해보겠습니다.” 시몬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물이 가득차서 찢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게 될 것이다.”라고 하시자 네 사람은 배를 호숫가에 댄 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바라본 것은 아직도 하늘 소망이 아닌 세상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복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제사장이 있고, 레위인이 있고, 백성들이 있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지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이 땅의 기업이 없을 뿐입니다. 사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민 18:20-24 /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받은 땅으로 들어가 땅을 나누어 갖더라도 네게 돌아갈 땅은 없다. 너와 네 후손들에게 어떤 몫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 여호와가 너와 네 후손들이 받을 몫이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예물을 너와 네 후손들의 몫으로 주겠다. … 23) 오직 레위인만이 장막에서 일을 볼 수 있으며 장막에서 일을 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네 후손들도 영원히 지켜야 할 규정이다. … 24)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 여호와에게 바치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의 몫으로 준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 그들 몫을 나누어 갖는다 해도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는 까닭이다.”
■ 1182년 이탈리아의 아씨시에서 태어난 프란시스는 18세 되던 해에 신분상승을 꿈꾸며 기사가 되고자 아씨시와 페루지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아씨시의 패배로 끝났고, 그는 1년 동안의 포로생활로 병을 얻어 돌아왔다. 병상에 있는 동안 깊은 영적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으나, 기사가 되고픈 꿈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전쟁터로 나갑니다. 일행이 스폴레토 계곡에서 머물 때 “프란시스야, 너는 어찌하여 주인 대신 종을 섬기려 하느냐?” 하는 말씀과 아씨시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씨시 근교 외딴 곳에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1205년경 어느 날 그는 아씨시 교외에서 한센병(나병)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병환자를 무서워 피했던 그는 이번에는 말에서 내려 와 그에게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하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으로 그는 온전히 세속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다 허물어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성당에 들어가 십자가 앞에 경건하게 엎드렸을 때,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프란시스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말씀에 따라 프란시스는 세 개의 성당을 수리하였고, 그 후 이 말씀이 교회를 영적으로 고치라는 소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프란시스의 아버지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프란시스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걸 주위에 나눠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가진 돈과 앞으로 받을 유산, 그리고 옷가지를 모두 아버지에게 돌려드린다.”고 하며 복음전파를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합니다.
▶ 이에 반하여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도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시며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다만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그러니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 인자는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고도 없이 올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되새겨야 할 교훈들입니다.
마 24:39-42 /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휩쓸려 갈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올 때도 그럴 것이다. 40) 그때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2) 그러니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 주인이 언제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리라.
위의 말씀들은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기에, 세상 직업을 갖는다거나 일을 할지라도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늘 소망을 가지고 언제나 에녹, 아브라함,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적으로 레위 지파와 같습니다. 성도의 기업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게으르지 말고 성실히 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삼는 성도는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성도가 양식보다 귀중하게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성도의 모습이요 그것이 영적 레위인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레위 지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레위인들처럼 오직 하나님으로만 보화로 삼고, 천국만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요 4:34),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교훈하였습니다(요일 2:15, 17).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며 이 세상의 일들을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일을 힘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늘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눅 18:29-30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➊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➋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누가복음 18장과 19장에는 비교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장에 나오는 사람은 부자로 관리라고 하였고, 19장에 나오는 사람은 ‘삭개오’입니다. 이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➊ 두 사람 다 부자입니다. ➋ 두 사람 다 영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➌ 두 사람 다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렇게 같은 점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결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부자관리는 올 때는 당당하게 왔으나 결과는 근심이 가득 차서 돌아갔고, 삭개오는 쭈뼛거리며 예수님을 만났으나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이 부자 관리는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하지만 그 속에 진정한 거듭남의 생명이 없었고, 계명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다가 네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눅 18:22)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 말씀을 듣자 침울한 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감동과 감사, 헌신이 뒤따르지 않습니다.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듭니다. 찐빵이 아무리 커도 그 속에 앙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고 해도 간이 안 맞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듭니다. 결국 이 부자는 근심이 가득하여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도 돈과 권세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모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그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겉으로는 화려하고 그럴 듯 했지만, 텅 빈 영혼 속에 허무함이 크게 밀려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어했습니다. ‘멀리서라도 그 분을 한번 뵈어야 하겠다. 어떤 분이시기에 병든 자가 만나면 고침을 받고, 어떤 분이시기에 상처받은 사람이 만나면 치유함을 얻고, 죄인들도 만나면 변화가 되는 것인가. 어떤 분이시기에 ….’ 그리하여 삭개오는 체면도 돌보지 않고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자 삭개오를 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무르겠다.”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눅 19:6). 삭개오는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는지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➊ 급히(얼른) ➋ 내려와 ➌ 즐거워하며(기쁜 마음) ➍ 영접하거늘(모셨다)
네 가지 행동이 쏜살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시며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셨을 때에 삭개오의 입은 벌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격하였습니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수근 대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신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모셔서 대접을 하는 동안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체증처럼 가슴 한가운데 답답하게 꽉 막혔던 것들이 쑥 빠져나가면서 감사와 기쁨이 소낙비처럼 내려와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삭개오는 심령의 변화가 왔습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상을 사는 방법에 변화가 왔습니다.
나 중심의 삶 → 하나님 중심의 삶 / 물질 중심의 삶 → 말씀 중심 / 육신 중심의 삶 → 영혼 중심의 삶으로 변화가 됩니다. 이런 삶을 가르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엡 4:21-24 / 만일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자 한다면 22) 여러분의 그 낡고 악한 옛 사람을 뽑아 던지십시오. 여러분의 그 낡고 악한 옛 사람이야 말로 육욕과 속임수로 가득 차서 속속들이 다 썩어 버린 지난날 여러분의 자화상입니다. 23) 이제 여러분은 태도와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24) 여러분은 전혀 다른 새 사람, 거룩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모습을 가르켜 영접(迎接)이라고 하며, 이렇게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접한 사람에게서는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눅 19:8 / 삭개오는 주님 앞에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세금을 누구에게 더 부과한 것이 발견되면 제 돈으로 네 배를 갚겠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 계셨던 예수님은 지체없이 “오늘 이 집이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잃어버렸던 아브라함의 자손중의 하나이다. 나, 인자는 이와 같은 이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왜 부자는 이름이 없고, 나사로는 이름이 있습니까? 아무리 부자여도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없는 존재이기에 이름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별 볼일이 없어 보이는 거지라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삶은 그 이름이 '나사로'(하나님의 도우심)라고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과 19장에서 똑같은 부자 사람인데, 한 사람은 그냥 부자로 나오고 또 한 부자는 ‘삭개오’(청결한 사람)라고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요?
유명한 배우 오드리 햅번은 1929년에 태어나서 1993년에 6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전쟁과 평화’(1956), ‘로마의 휴일’(1953)등이 유명한 영화입니다. 그 청초한 아름다움에 모두 반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드리 햅번이 유명한 것은 영화배우로서만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인생의 후반부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과 생활과 재물을 다 바쳐 헌신한 인생을 살다가 갔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나는 사람입니다.
어떤 회사홍보광고에서 이 두 번째 사진을 크게 싣고 그 밑에 이런 글귀를 써 놓았습니다.
우리는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운 얼굴을 스크린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오드리 햅번의 얼굴은 쭈그렁 할머니 모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얼굴이 아니라 삶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배우였을 때에 모습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도 반론하지 못하는 것은 미모보다 그녀의 인품과 행적이 참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모를 따라서 우리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겉모습으로 우리를 평가하시겠습니까? ‘어떤 믿음, 어떤 가치관, 어떤 영혼으로 사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사랑하시고 복을 내리시는 삶일 것입니다!
▶ 3년 동안 특별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하늘소망을 가지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요 13:33-35, 14:1-2 /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떠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떠나가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말하였던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찾더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으로 너희가 네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도록 하겠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기 전까지도 제자들은 세상에 속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도 세상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하늘 소망을 가지지 못했다면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 중 최고의 단계는 자기를 부인(목숨까지)하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빌라도 총독에게 하신 말씀을 봅니다.
요 18:36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내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붙잡혔을 때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대항하였을 것이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 이 땅에 예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를 닮은 것은 초대교회 모습이었습니다.
행 2:43-47 / [신도들의 생활] ➊ 사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➋ 사도들은 많은 기적을 베풀었다. ➌ 신도들은 함께 모여 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으며 ➍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➎ 그리고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➏ 서로의 집에 번갈아 모여서 기쁨과 감사에 넘쳐 음식을 나누며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➐ 이를 본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이 그들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 늘어나게 하셨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한 모습을 사도행전 4:32-35에서 봅니다.
행 4:32-35 / 모든 신도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누구 하나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을 자신 있게 설교하였고 신도들끼리는 뜨겁게 사랑하였다. 34-35)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으며 사도들은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 무엇보다 제자들이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구하는 핵심적인 기도는 세상 사람들이 바라면서 구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었습니다.
마 6:9-10 /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높임을 받으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신 대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 1:6-8 /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에 사도들이 물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가 언제인가는 아버지께서 정해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 아브라함은 가나안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땅을 얻는 것이 자신의 순례여정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시고 지으신 영원토록 견고한 도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세상의 덧없는 현실을 넘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현재의 고난을 장차 그에게 임할 영광의 빛 안에서 보았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임할 영광에 비교할 수 없음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의 어렵고 고단한 삶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앙고백을 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마 16:24-26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새해에 가질 마음들(4)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을 따라
2017년 1월 15일 / 주일오후예배 / 히브리서 11:8-16
4. 이제부터라도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 이제부터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면 반드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믿음의 길을 걸읍시다.
누가복음 5:1-11에서 예수님께서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을까요? 그리고 왜 ‘깊은 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러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하셨을까요? 베드로가 순종하였을 때에 그물이 가득차서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기적을 베푸신 것일까요?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곧 두 배에 고기가 가득 찼을 때에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주님을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죄인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저들을 향해 따를 것을 명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게 될 것이다.” 이에 네 사람은 곧 배를 호숫가에 댄 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기적의 목적은 ❶ 도탄(塗炭)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기적을 베푸십니다. ❷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눈 먼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저 사람의 눈이 먼 것은 부모의 죄냐, 본인의 죄로 인함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 ❸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마리아의 부탁으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돌멩이를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주문은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이나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의 제안을 거절하신 이유는 아무리 기적을 일으켜도 사탄은 믿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이런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그렇습니다. 기적의 목적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❹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가운데서 한 여자가 소리쳐 말하였다. `당신을 낳고 젖을 먹인 여인은 참으로 복 받은 여인입니다!” 2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더 복 받은 사람이다.”(눅 11:27-28). 벙어리를 고쳐주시는 기적을 베푸셨을 때에 한 여인이 예수님의 육신 어머니 마리아를 부러워하자 예수님은 그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곧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단어를 듣거나 보거나 하면 늘 주저주저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기적을 베풀었을 때에 ‘아멘’하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헌신을 동반하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➎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나 설교들은 ‘천국(하늘나라)’에 대하여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천국 혹은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과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즉 성전(교회)를 말합니다.
마 4:17 /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마 4:23 / 예수께서는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온갖 병자와 앓는 사람을 고쳐 주셨다.
마 5:3 /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 5:10 /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 5:20 /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7:21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마 8:11-12 / 이 백부장과 같은 많은 이방 사람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부터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 앉을 것이다. 12)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늘나라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것이다.'
마 9:35 / 예수께서는 그 지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다.
마 10:5-8 /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부하셨다.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6) 오직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가라.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그들에게 선포하라. 8) 병자를 고쳐 주고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3:11 /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 13:19 / 씨가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씨를 빼앗아 간다.
마 13:24-25 / [가라지의 비유]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농부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과 같다. 25)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밭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마 13:31-32 /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32)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마 13:33 / 예수께서는 또 이런 비유를 드셨다. “어떤 여자가 밀가루 반죽 속에 누룩을 넣었더니 그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하늘나라는 이 누룩과 같다.”
마 13:44 /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
마 13:45-46 / 또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장사꾼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마 13:47-48 /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친 그물에 비길 수 있다. 어부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다 모은다. 48) 그물이 가득 차면 그는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먹을 수 있는 고기만 추려 그릇에 담고 다른 것은 던져 버린다.
마 13:52 /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율법학자들은 자기 곳간에서 옛 것도 꺼내고 새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 16:19 / 또 나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네가 땅에서 잠가 둔 문은 어떤 것이든 하늘에서도 잠길 것이고, 땅에서 열어 둔 문은 하늘에서도 열릴 것이다!
마 18:3-4 /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마 18:8 / 만일 네 손이나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잘라버려라.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마 18:23-25 / [무자비한 사람의 비유] 하늘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정해진 날에 셈을 맞춰 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24) 셈을 하는 중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나왔다. 25) 그가 빚을 갚을 돈이 없음을 알자 왕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마 19:23-24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24) 다시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마 20:1 / [포도원 일꾼과 품삯] 하늘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아침 일찍이 나갔다.
마 21:43 /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늘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소출을 잘 내는 백성들에게 그 나라를 맡기실 것이다.
마 22:1-3 / [결혼 잔치의 비유;눅14:15-24] 예수께서는 다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2) `하늘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의 결혼 잔치를 크게 베푼 일에 비할 수 있다. 3) 많은 손님을 초청한 왕은 잔치 준비가 끝나자 신하를 보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게 하였다. 그러나 모두 오기를 거절하였다.
마 23:13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나라의 문을 가로막고 서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하고 있다.
마 25:1 / [열 처녀의 비유]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 25:14-15 / 하늘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돈을 맡긴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요 3:36 /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그분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은 결코 하늘나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롬 1:16-17 / [믿음을 통한 구원]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소식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초청받고 있습니다. 17) 이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 곧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해 줄 자로 만드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롬 3:20-24 / …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이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따름입니다. 21-22) [율법에서 믿음으로]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길은 선한 사람이 된다든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오래전에 성경을 통해서 일러주신 것이니 사실 새로운 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길은 만일 우리가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무죄 선고를 해주시겠다고 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과거가 어떻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23)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상과는 먼 거리에 있을지라도 24)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없다고 선고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값없이 우리 죄를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4:1-5 /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 유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만 해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문제로 어떤 경험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신 것이 과연 그가 선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그는 그 일을 자랑하고도 남을 만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브라함은 내세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3) 그래서 성경에도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믿는 아브라함을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그를 인정해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4-5) 그러니 아브라함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은 그가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는 선물입니다. … 자기가 일한 대가로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구원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심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갈 1:6-9 /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기쁜 소식]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사랑과 은혜로 여러분을 초청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하나님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간다'는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그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설교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것이 나든지 또는 다른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령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9)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인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갈 4:9-11 /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또다시 율법을 지켜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그 빈약하고 천한 종교의 노예가 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특정한 날과 달과 계절과 해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고 있다니 11) 나는 여러분이 걱정스러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 온 힘을 쏟은 것이 허사로 돌아갈까봐 애가 탑니다.
골 3:1-2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여러분도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있는 풍부한 보화와 기쁨에 눈을 돌리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영예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2) 하늘나라의 것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채우십시오. 이 세상일을 염려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딤후 4:18 / 주께서는 언제나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함께 하소서. 아멘.
약 2:5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믿음이 부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선물인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약 5:10-11 /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로 이겨 낸 주님의 예언자들을 본받으십시오. 11) 그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내 주께 진실했으므로 지금 하늘나라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욥은 슬픔을 이기며 끝까지 주님을 믿은 사람의 모범입니다. 욥이 겪어 낸 일을 보고 우리는 주님의 계획이 축복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한없는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벧전 1:17-19 / 여러분의 기도를 듣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는 결코 불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을 정의와 공평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부터 하늘나라에 들어갈 날까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살아가십시오. 1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조상들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려고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에 매여 헛되이 애쓰던 그 길에서 여러분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다 잘 아는 대로 금이나 은 같은 것으로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19) 한 점의 죄도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써 얻은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처럼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겠다고 짐을 챙기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길이 안전한 길인지 아닌지를 확인조차 안하고 길 떠나는 것을 만류해야 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 이왕 떠나는 길 힘차게 떠나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결단은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에 기초를 둡니다. 마치 아브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나안을 향해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떠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자기 확신과 기분대로 떠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신다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 . 요셉은 생각조차 못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였기에 무척 힘들었지만 늘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이미 깨달은 말씀을 마음에 담아 순종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예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신자들 즉 영적으로 소경이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들을 인도하실 때 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야만 독수리 새끼처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들 자신들을 깨뜨리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 참고로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두 믿음의 사람이지만 두 사람이 걸어간 인생행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떠난 길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믿음이 있었기에 요셉에 비해 쉽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순간순간이 생사의 길이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을 걸어간 길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아브람이 소망을 가지고 갔다면 요셉은 절망을 안고 갔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두 사람이 걸어간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요셉이 걸어간 길을 가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죽음과 같은 가시밭에 던져지기를 원하겠습니까?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불안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고 또렷하게 듣는 귀가 열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을 보지 않고 소망을 따라 미래로 연결되는 길을 떠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험난했던 요셉 같은 생활이 계속된다면,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순종 즉 전진할 수 있는 신앙으로 전환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고 자녀들은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고 확신에 찬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윤택한 삶을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