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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깨달음 주심을 …(1)
<승리의 비밀은 따로 있다>
출애굽기 17:8-16 / 창세기 45:1-15
♬ 93장 1.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 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2.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
3.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면 늘 충성하겠네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4.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 이 세상을 떠나갈 때 곧 영생 얻으리
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 주시니 나의 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 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2절 나의 생명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는 나의 사랑이시며 나의 의지시라
주는 나를 이끄시어 주의 길 인도하시며 나의 생의 목자 되시니 나를 따르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생명의 면류관으로 내게 씌우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친구, 기쁨, 소망) 되시니 ❶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 중에 빠지리 ❷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❸ 그 명령을 준행하면 늘 충성하겠네 ❹ 이 세상을 떠나갈 때 곧 영생 얻으리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찬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 오래 전부터 요한복음 2장 설교를 하면서 조금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하여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자랑삼아 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즉 하인들이 한 일이라고는 마리아의 부탁대로 결례를 위해 물을 담아두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길어다가 아구까지 부은 것 밖에 없었다. 아구까지 채워진 물을 변화시킨 것은 하인도 아니요, 마리아도 아니다. 그 누구도 아닌 예수님이셨다. 그리고 하인들처럼 돌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가 그것도 아구까지 붓는 것이 낫지 언제 포도를 심어 열매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겠느냐는 것이다.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로 만드는 것은 전능하신 예수님이셨다고 당연한 것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사실 그 포도주는 세상의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치 내 자신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는 했다.
● 본문을 택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나로 하여금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심도 감사를 드린다. 본문을 택하게 하신 것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은 직접 전쟁에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운 여호수아도 아니요, 산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한 모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의 수고가 승리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한 일은 1/10,000도 못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모두 아니 성경에 나온 신앙의 의인일지라도 그들의 한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비한다면 1/10,000도 안 된다는 것이다.
종종 예수님은 여러 각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들의 현실을 자주 말씀하셨다.
마 17:20-21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을 향하여 `옮겨지라'고 하여도 옮겨질 것이다. 그런 믿음만 있다면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25:20-23에서도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배로 남긴 것을 보시고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에 비하면 우리가 한 것은 얼마나 되겠는가! 소 잔등이에 파리 한 마리 붙어 앉아서 자기가 소를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다. 욥에게 나타나 욥이 깨닫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실 때에 욥은 더 이상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할 말이 있다면 아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할 것이란 오직 이것뿐이었다.
욥 42:1-6 / [하나님께 꿇어 엎드리다]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이렇게 아뢰었다. 2)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는 줄을 나는 잘 압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다 이루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3) 주께서는 말씀하셨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내 계획을 가리는 자 그 누구냐고 말입니다.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댔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해댔습니다. 4) 주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듣고만 있으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질문하실 때 대답해 보라고 말입니다. 5)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 6) 이렇게 내가 꿇어 엎드립니다. 먼지바닥 위에 앉아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
▶ 이방 왕이었지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고백은 참 많은 깨달음을 준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해 주자 왕은 금방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반응을 하였다.
단 2:46-48 / 이 말을 다 들은 느부갓네살은 땅바닥에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을 하고 제사를 올릴 제물과 분향제물을 다니엘에게 갖다 주라고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47) 그러고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섬기는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신들 가운데서도 뛰어나신 신이요 또한 모든 왕들을 당신 뜻대로 다스리시는 분이구나. 그러하시기에 그 비밀스런 일을 밝히 드러내시지 않는가! 그대가 이 비밀스런 일을 밝히 드러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대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겠는가!' 48) 그런 뒤 왕은 다니엘을 높은 벼슬자리에 앉히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다. 곧 다니엘을 바벨론의 각 지방 책임자로 책봉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현인들을 관할하는 자리에 앉힌 것이다.
단 4:29-37 / 열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에 있는 왕궁을 거닐면서 30)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얼마나 웅장한가! 내 힘과 권세와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 보이려고 이 도성 바벨론을 내 제국의 수도로 건설하지 않았던가!’ 31) 이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느부갓네살아,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네 제국도 그 힘도 이제는 모두 다 끝장났다. 32) 너는 이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들녘에서나 살게 될 것이다. 소처럼 풀이나 뜯어먹고 살 것이다. 일곱 해 동안 그렇게 산 뒤에야 비로소 네가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를 모두 관할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또한 너는 하나님께서 당신 뜻대로 뽑으신 사람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도 내려 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것이다.’ 33) 이 말씀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느부갓네살에게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사람 사는 곳에서 쫓겨나 소처럼 들녘에서 풀을 뜯어먹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을 맞으며 살아야 하였고 그의 머리칼은 독수리 깃털처럼 더부룩하게 자라났으며 그의 손톱과 발톱도 새 발톱처럼 자라났다. 34) [하나님을 찬양하는 왕] 왕이 말하였다. ‘일곱 해가 지났을 때 내가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에게 영광을 돌렸다. 주께서는 이 세상을 영영토록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35) 주께서는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찮게 내려다보시지요. 하늘에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땅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도 다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 그 누가 감히 주님의 뜻을 거스르랴! 주께서 하시는 일 그 누가 감히 이러실 수 있느냐고 입을 뗄 수 있으랴! 36) 비로소 내가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가 다스리던 이 제국의 영광과 위엄과 영예가 회복되었다. 나를 돕던 관료들과 귀족들도 모두 나를 환영하였고 내 왕권도 되찾았다. 나는 전에 누렸던 영예보다 더한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37) 그래서 나 느부갓네살은 이제 하늘에 계신 임금님께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돌리노라. 그분을 드높이 기리노라.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다 올바르시다. 그분은 젠체하며 거만하게 목을 곧추세우며 살아가는 자들도 내리 꺾으실 수 있는 분이다.’
단 6:22-28 /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무사합니다. 상한 데 한 곳 없습니다. 내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것으로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임금님, 나는 또 임금님께도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임금님께 해를 끼친 적이 있었습니까?' 23) 이 말을 듣고 왕은 너무나 기뻐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올리라고 명하였다.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려 보니 정말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24)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모조리 잡아들여 사자들이 우굴거리는 굴속에 집어 던지도록 하였다. 그들 몸이 사자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뼈까지 씹어 삼켜 버렸다. 25) 다리오왕은 제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 곧 인종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 글을 써서 어명을 내렸다. `그대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빈다. 26) 나 다리오가 그대들에게 명을 내리노라. 내가 다스리는 제국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니 그분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그분의 권세는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 27) 그분은 사람을 건지시는 분, 사람을 구해 내시는 분,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이적을 베푸시는 분,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 바로 그분께서 다니엘을 구해 내셨다. 사자굴에서 아무 흠도 없이 건져내셨다.' 28)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다스리던 시대와 바사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기적을 베푸시는 것은 그 기적을 보고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데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표적을 보고도 주님으로 믿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면서도 주님을 거부하였다. 지금의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우리 자신이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성경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불신앙이다. 인간의 마음은 죄로 인해 돌덩이처럼 완고하게 굳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강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 옛날 생각, 고정 관념 등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진리나 기적을 보고도 무시해 버리고 믿지 않다.
예수님 당시에도 불신앙으로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그들의 마음이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요 12:37-40 /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이적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38)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들은 소식을 아무나 믿겠느냐? 여호와의 권능과 승리가 그토록 비천하고 멸시받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 도대체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39) 또한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이유를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4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귀를 막아 버려라. 눈을 아예 감겨 버려라. 그들이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마음으로 깨달아 내게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라. 그들이 고침받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이사야 선지자는 영혼이 굳어져 버린 완악한 사람을 일컬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가슴이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며,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요 12:42-43 / 유대인 지도자들 중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내색하지 못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들을 회당에서 쫓아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43)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영광을 더 원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 이유 중의 하나는 출회(黜會)당할까 봐, 퇴출당할까 봐, 사회의 조직에서 밀릴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저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저분은 진짜 메시아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출회당하고 배척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인 것을 믿고 있었지만 드러나게 표현하진 못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선 예수님을 잘 믿지만 세상에선 꼬리를 감춰버린다. 회사에서 술 마시러 가자면 잘 따라가고, 동료들에게 예수쟁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자유스럽게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상황에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린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다.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하고 ‘왕따’ 당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겉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에서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떳떳하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식탁 밑으로 손을 내리고 짧게 ‘하나님 땡큐’하는 식으로 기도하지 말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표현할 수 있기 바란다.
그러기에 바벨론이나 페르샤 왕으로 기적을 목격한 왕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나라에 조서까지 보내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조한 사실은 참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요셉 / 창세기 45:1-15
이 말씀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드디어 그의 형제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 17세 정도였다. 그 후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생각해 보자. 누가 창세기 45장의 장면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마치 영화의 엄청난 반전처럼, 요셉은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창 45:1-2 / 요셉은 시중 드는 종들 앞에서 북받치는 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종들에게 ‘모두들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래서 그 방에는 요셉과 그의 형제들만 남아 있게 되었다. 요셉이 말하였다. ‘형님들! 내가 바로 요셉이오!’ 2) 그러고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큰 소리로 울었던지 밖에 있던 애굽 종들도 이 소리를 들었고 또 다른 애굽 사람들도 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바로의 애굽 궁전까지 전해졌다.
요셉의 울음은 22년 동안 마음에 간직했던 수많은 일들을 참기름을 짜듯이 꼬~옥 짜서 나오는 눈물로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밖에 있던 애굽 종들로부터 다른 애굽 사람들도 들을 정도였다. 이 눈물은 인간을 알리는 울음이 아니라 경건한 요셉이 그렇게도 원하였던 형들의 경건한 모습이었다.
물론 이 반응은 유다의 간청을 들었을 때였다.
창 44:33-34 / 그러니 총리 각하,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막냇동생을 대신하여 총리 각하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제발 이 아이만은 꼭 돌아가게 해주십시요.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이 아이가 우리 형제들과 함께 고향으로 올라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34)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우리만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만 돌아오는 것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셔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그냥 세상을 떠나시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총리 각하, 하오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두손 모아 총리 각하께 빕니다.
이 말에 그동안 닫혀만 있었던 요셉이 열리며 ‘형님들,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형들은 대답을 못하였다. 너무나도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형님들! 이리 좀 가까이들 오시지요.’ 형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 동안에 있었던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말한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잘 보세요. 형들이 애굽에 팔아넘긴 바로 그 요셉이란 말이에요. 형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거지요. 우리 식구들 생명을 구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내신 것 아닙니까? 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올해로 2년째입니다. 앞으로도 5년은 더 기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더구나 추수하는 것도 아예 바라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또 형님들의 아이들까지 목숨을 구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 애굽으로 보내셨지요.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보내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을 내리신 것인가요? 나를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밑에서 일하는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지요. 그래서 나는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내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상황에서 요셉이 하는 말을 보면 요셉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형님들! 이리 좀 가까이들 오시지요.’ 형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잘 보세요. 형들이 애굽에 팔아넘긴 바로 그 요셉이란 말이에요.’(창 45:4) 무슨 말인가? <형님들이 이십 이 년 전에 나를 팔지 않았습니까? 내가 바로 그 요셉입니다. 난 그 때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대로 한다면 형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본문은 기가 막힌 반전을 보여준다. 분명히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말했는데. 잠시 후, 요셉은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이건 사실 인간 요셉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요셉이었기에 거듭난 요셉(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어 받음)으로는 당연한 말이었다.
형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거지요. 우리 식구들 생명을 구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내신 것 아닙니까? 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올해로 2년째입니다. 앞으로도 5년은 더 기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더구나 추수하는 것도 아예 바라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또 형님들의 아이들까지 목숨을 구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 애굽으로 보내셨지요.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보내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을 내리신 것인가요? 나를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밑에서 일하는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지요. 그래서 나는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내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창 45:5-8)
어떻게 자기를 애굽으로 판 ‘형들’에서 애굽으로 보내신 ‘하나님’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나를 애굽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란 말은 요셉의 가슴에 담겨 있는 진실로, 즉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과 말이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면 형들이 팔아버린 것에 대하여 엄한 벌을 내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따라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우리도 세상을 살 때, 이 둘 가운데 산다. <인간의 안목으로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 따끔하게 형들에게 충고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안으로 세상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 하나님을 높이면 살 것인가?>말이다. 이 선택에 따라 인생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왜 우리는 거듭났고 성령충만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
▶ 이제부터라도 바울 사도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며 빛과 소금이 되는 성도가 되자.
골 3:1-4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여러분도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있는 풍부한 보화와 기쁨에 눈을 돌리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영예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2) 하늘나라의 것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채우십시오. 이 세상일을 염려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3) 마치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도 이 세상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참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4) 우리들의 참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빛나며 그분의 모든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골 3:5-10 /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 그러므로 죄에 가득 찬 세속적 욕망을 버리십시오. 여러분 속에 파고드는 악한 욕망을 죽이십시오. 성적인 죄, 부정, 정욕, 수치스러운 욕망을 끊어 버리십시오. 이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릴 것입니다. 7)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여러분도 그런 생활을 해왔습니다. 8)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증오와 저주와 더러운 말과 같은 때묻은 옷을 벗어 버릴 때입니다. 9)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거짓말은 모든 악행만을 일삼던 여러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10) 여러분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사람은 계속해서 옳은 일을 더욱더 배우려 하고 여러분 속에서 새 생명을 창조하여 주신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골 3:11-17 / 이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국적이나 인종이나 교육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 들일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12)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겸손하게 온유와 인내로 13)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1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하나로 묶어 주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께 받은 평화가 항상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에 깃들이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여러분의 책임이며 특권입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해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지혜롭게 되어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17)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주 예수의 대리인으로 행동하고 주 예수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를 드리십시오.
<육신의 눈에 보이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기에 육신의 정욕으로 즉시 말을 내뱉고, 즉시 판단하고 즉시 생각한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육신의 안목으로는 보이지 않는 배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진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한 템포 멈추어야 한다. 말하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묵상)’해야 한다.
히 12:2-3 /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3) 만일 여러분이 지치거나 낙심케 되거든 죄인들의 무서운 만행을 참고 견디신 예수의 일을 생각하십시오.
▶ 요셉의 묵상을 나름대로 보자.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이 나를 팔 때 왜 막지 않으셨을까? 이 일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끝에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을 했을 것이다. <저를 애굽에 보낸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겉으로 보면 형님들이 판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군요.>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만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인생을 ‘자기 위주에서 보는 사람의 관계성 안에서’만 생각한다. 거기는 자기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형님들이 자기를 팔고, 형님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형놈들은 나쁜 놈이다. 형놈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 즉 모든 일의 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를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풀어나간다. 성도는 세상을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인간들의 세상 한 복판에 그 세상을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늘 자기와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셨을까?>라고 질문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요셉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복수를 하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 이에 히브리 기자는 요셉처럼 경건의 훈련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히 12:2-11 / [하나님의 훈련] 이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둘러앉아 우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속도를 늦추거나 뒤로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다리에 달라붙어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죄(얽매는 죄 – 쉽게 빗나가게 하는 죄)를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정해 놓으신 이 특별한 경주에 인내를 가지고 달려갑시다. 2)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3) 만일 여러분이 지치거나 낙심케 되거든 죄인들의 무서운 만행(반항)을 참고 견디신 예수의 일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죄나 유혹과 맞서서 싸우고는 있지만 아직 피 흘릴 정도로 심한 싸움을 치른 경험은 없지 않습니까? 5) 하나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을 여러분은 벌써 다 잊어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주께서 네게 징계를 내리실 때 너는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주께서 네 잘못을 책망하실 때 너는 좌절해서는 안 된다. 6) 주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것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너를 채찍으로 때리시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참 자녀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내리는 시련을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자녀에게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을 단련시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8) 만일 여러분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듯 하나님의 질책을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도 가족도 될 수 없습니다. 9) 비록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가 우리를 꾸짖고 야단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참되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시련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10)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는 우리의 앞날을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우리를 훈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나누어 주려고 언제나 바르게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11) 무슨 벌이든 벌 받을 때는 즐겁기보다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유익한 결과를 낳아 믿음이나 성격이 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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