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마태복음 25장 14절~29절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제목: 달란트를 맡은 청지기/ 조영찬 전도사
이 이야기는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으로 왕권을 받으러 가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각각 다섯개, 두개, 한개의 달란트가 주어졌습니다.
한 달란트는 6천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 중 다섯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장사를 해서 두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안하고 땅을 파고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이윤을 남긴 종들에게는 상을 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추방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열매 맺는 삶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재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재능은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달란트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달란트는 재능을 의미합니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활용해서 세상에 공헌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윤을 남기는 삶입니다.
그런데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능을 썩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것이 바로 재능을 썩히는 행위입니다.
죄에는 적극적인 죄가 있고 소극적인 죄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죄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즉 나쁜짓을 하는 것이 적극적인 죄입니다.
소극적인 죄는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선한 일,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소극적 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죄만 정죄 받아야 하고 소극적인 죄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줬으니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서는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치관은 세속의 수준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안주더라도 선한 영향을 주지 않은 것조차 간과할 수 없는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심각한 죄였는지 주인이 돌아와서 달란트를 묻어두었던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아낼 정도로 심판을 받아야 할 죄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속적 가치관이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비극들은 선한 일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선장과 선원과 관계부처의 공무원 등 모든 관련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등한시한 작태들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세월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건과 사고와 비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방임하고 유기한 결과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달란트를 묻어둔 종을 엄중히 처벌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정의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만 바라보고 어떤 악이든지 다 용서하시는 분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사랑의 신일뿐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정의만 있고 사랑이 없는 신 또한 참된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대속교리와 충돌되는 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이고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구원관은 정의가 실종된 사랑뿐인 하느님을 과도히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어떤 죄도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는 죄까지 용서하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대속교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죄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소극적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죄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 예전에 행하던 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고 자신하는 것은 죄 위에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가치관을 망각하고 세속의 가치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사 어떻게 되든말든 피해만 안주면 장땡이고 예수만 믿으면 천박하게 살아도 상관 없다는 값싼 믿음에 젖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엇이든지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일 강박증에 빠진 사람도 많습니다. 이것은 행위 구원론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즉 참된 신앙인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면서도 행위에 중독되지 않는 균형잡힌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균형의 신앙이 어렵기 때문인 많은 이들이 극단적인 믿음주의나 극단적인 행위주의로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달란트는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딱 두배 정도면 족하다.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과 과도하게 행위에 치우치는 극단은 피해야 한다, 주인이신 하느님 보시기에 무한한 정도로 하면 딱 좋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본문을 해석하실 때 양극성 사고를 드러냅니다. 한쪽은 열심이 지나쳐서 행위 구원론에 빠지고 다른 쪽은 믿음주의에 붙잡혀서 예수님이 다 해놓으셨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어떤 극단도 거부합니다. 누구나 받은 만큼 열심히 이윤을 남기면 됩니다. 한달란트를 받았으면 두달란트를 만들면 되었지 10달란트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달란트를 무시해서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극단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공동체소식
1. 한주간의 소확행
1) 코스트코 쇼핑
하늘금님과 함께 코스트코에 다녀왔습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즐비했습니다.
시각과 청각의 손실로 인해 감각세계가 사막화된 이들은 남은 감각을 총동원해서 외부의 감각자극을 전달해줘야 하는데 코스트코는 그러한 필요를 충족하는데 아주 좋은 곳입니다.
동행해주신 하늘금님께 감사드립니다.
2) 남촌식당과 상소동 산림욕장
하늘인목사님과 함께 금산의 남촌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인삼튀김과 도리뱅뱅이 어죽이 하모니를 이루는 맛집이었습니다.
상소동 산림욕장에는 놀거리들이 있어서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삼관인과 손벗들이 함께 힐링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목사님을 비롯해 동행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 삼손 공동체
삼손이란 삼관인과 손벗을 합친 말입니다.
삼손은 구약성경에서 아주 힘센 사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삼관인과 손벗들이 만나서 삼손같이 강력한 말씀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힘입니다. 함께 힘을 모아 지지하고 응원하는 세력이 있어야 우리공동체가 활동을 전개해나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모든 힘들이 필요합니다. 인력, 재력, 언어의 힘이 필요합니다.
삼손 공동체는 삼관인 1인당 손벗이 3명 이상이어야 합니다.
지금은 삼관인이 3명인데 통역과 함께 할 손길이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손달란트를 가진 손벗님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다립니다.
3. 손벗과 손달란트
손벗이란 손달라트가 있는 분들을 가리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손달란트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달란트의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어느정도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저희 공동체와 교제를 나누어보고 여러가지를 체험해보시면 됩니다.
직접 방문하셔서 예배와 놀이와 점어와 수어 등을 체험해보시는 것도 좋고
멀리서 카톡이나 연보나 기도를 통해 동참해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 책망받을 일입니다.
그러니 사소한 것이라도 동참의 한걸음이 절실합니다.
이미 여러모로 도움주시고 동참해오고 계신 분들은 더 많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직접 참여가 어렵다면 속으로 기도라도 한마디 해주십시오.
하느님이 받아주실만한 진정성 있는 기도라면 훌륭한 동참이 됩니다.
만일 동참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인다면 지체없이 문의해주십시오. 그러면 각 사람의 형편과 달란트에 맞는 체험이나 동참방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4. 마태복음 읽기
오늘은 지난주에 못 읽은 마태복음 1장부터 5장 까지를 돌아가며 읽겠습니다.
5. 한소네의 룰렛앱을 이용한 다양한 놀이 체험
지난시간처럼 한소네의 룰렛을 이용해 다양한 놀이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홀짝 게임도 해보고 윷놀이도 해보는 등 룰렛의 다양한 활용법을 함께 탐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