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의 엄마와 아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읽어 내려가는 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기껏해야 설과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며 선심 쓰듯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엄마는 그제도 어제도 아들이 온다며 선잠을 자곤 했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통팥을 얹은 찰떡도 만들고 굴비도 씻어 햇볕에 말려 놓았습니다. 짚불에 구운 굴비를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에 화로도 찾아 모퉁이에 가져다 놓고 웃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대문도 열고 동네 어귀를 몇 번씩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들어왔다 또 나갔다를 반복하다 보니 엄마의 마음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믐날 밤처럼 새까맣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밖의 어둠보다 더 까매질 무렵에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개선장군처럼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환하게 웃는 엄마의 방은 100의 전등불이 켜진 것처럼 밝아졌습니다.
지독하게 아팠던 허리도 걷기 힘들 정도의 관절염도 아들이 온다 는 소리를 듣자마자 암시랑토 않아졌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어떤 단방약 보다 확실하게 잘 듣는 명약인가 봅니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말했던 약이 귀하던 시절의 아편처럼 신통하기까지 합니다. 그믐날 오밤중에 도착해 한숨 자고 난 후 아침에 차례를 지낸 아들은 구차한 변명을 하며 도망가듯 내뺄 궁리부터 합니다. 엄마의 깊은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의 눈치를 슬슬 보며 도망갈 궁리를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서운한 내색도 하지도 않고 "그래야지!. 바쁘면 얼른 가야지!" "차 조심하고 차 막힌다고 밥 굶지 말고." 말끝을 흐리고 맙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통팥 찰떡도 챙기고 구워 놓고 먹지 못했던 굴비도 싸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챙기며 부산을 떱니다. 진즉부터 수도의 모타가 왱왱거려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데도 고쳐달라는 소리조차 안 합니다. 엄마는 자나 깨나 아들 생각뿐입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읍내 마트를 가는데도 4번을 쉬었다 갑니다. 배추 한 다발은커녕 걷기도 힘듭니다. 어렵게 배추 한 다발을 사 가지고 아들놈 입맛에 딱 맞게 생강도 빼고 김치를 담아 퍼줍니다. 엄마가 배추를 어떻게 사 왔는지 아들은 알려고 조차 안 합니다. 옆집 아재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옆집 아재가 남편처럼 아들처럼 손발 노릇을 다 해주었기 때문에 배추 한 다발을 사 올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엄마는 아들 앞에서는 아픈 척도 못합니다. 아들이 걱정할까 봐 그러는 것입니다. 아들이 탄 차가 마을 어귀를 빠져나가자마자 엄마는 죽어버립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펄펄 날던 다리는 천근만근입니다. 단방약으로 먹었던 아들이란 신통한 약발이 다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보일러를 켤 힘도 나무토막 같은 가냘픈 몸뚱이에 온기를 가둬줄 이불도 펼 힘이 없습니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야지 했는데 벌써 아침입니다. 콜록콜록 기침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아들아! 너희들이 이래도 엄마를 가장 잘 안다고? 뭐시여! 잘 안다고."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은 천지가 개벽을 해도 절대 모르는 것이 엄마 마음입니다. 아들 앞에서는 최고의 연출가이자 특급 연기자가 엄마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동네 할머니가 나만 보면 잘난 자식이라며 자랑하기 바빴던 아들의 섣달 그믐날과 정월 초하루의 모습이었습니다. 멋지고 번드르르한 차를 타고 폼나는 양복을 입고 오면 뭐 합니까? 엄마의 속마음은 숭숭 구멍 뚫린 수세미의 속내처럼 이번 설에도 커진 구멍이 더 커지고 말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