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재현적 기표의 아이러니
데리다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 아이러니는 기표로서의 텍스트들이 자연에 의해 반복되고 오염되면서 발생한다. 그는 아이러니를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즐겁게 하는 힘, 즉 독자들이 해석 과정에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있음을 찾아내고 텍스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읽게 하는 것"이자, 독서에 전체적으로 문제시되는 의문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규정했다. 폴드 만에게도 아이러니는 텍스트 분열의 원리였다. 언어의 균열,중지, 분열로 인해 독자는 단일하고 명백한 독서 규약을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작가 또한 텍스트를 장악하지 못하게 된다. 기원적이 도달불가능한 원전은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고 파편화된 알레고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성과 대체 (displacement)에서 비롯되는 차이에서, 그러니까 기호와 의미 간의 불일치, 작품의 부분들 간의 응집력 부재, 허구성을 드러내는 문학의 자기파괴력 등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렇듯 기의로부터 미끄러지는 차연의 종합으로서의 기표들은 비재현적, 비대상적, 환유적 지시성을 특징으로 한다. 아이러니 발화자 또한 기
의를 상실하였거나 혹은 원래 기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판단을 지연시키면서 유보하는 태도
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면모가 뚜렷이 드러나는 시적 장치가 화자의 목소리다. 기의는 힘을 잃고 상실되었거나 혹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에
목소리라는 기표들만이 증식할 뿐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 아이러니는 다음과 같은 분열적이고 파편화되고 뒤섞인 목소리를 통해 구현된다.'
이미 실패했지만 다시 실패하고 싶다
천체의 운행 손을 잡아도 기분이 없는 밤 밤을 떠올리는 빈 나무 의자 의자가 되기 전 나무가 가졌을 그림 바지 자비 자비라는 오타 이야기할 입과 듣지 않을 귀 남겨진 손 다시 남겨진 천체의 어마어마 그냥 다 끝났으면 그랬으면
가장 많은 말과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0)에 가까워지는 줄무늬 뱀 허물을 벗을수록 비대해지는 이상한 몸
없었어 처음부터 없었어
비늘과 새로 배운 칼놀이
굴러간다 저기 굴러간다. 무엇이?
가파른 창들이 와장창 단숨에 부서지는 상상을 해 기억은 잘 나지 않고 관람차와 가족과 분홍색 솜사탕이 멀리 있던 것 같고 겁먹은 동물들의 파란 혓바닥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먹고 또 먹고 다시 먹고 싶다.
줄무늬 뱀과 젖은 솜에게 전해줄 큰 가방이 필요해
없어도 없고 싶은 없는 것, 이런 문장은 위험하니 쓰지 말라고 충고해줄 선배 혹은 드럼을 치는 전 애인과 일면식도 없는 사진사 우리는 좁은 방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고도와 조수간만의 차와 형이상학에 대해 밤새 떠들고 떠들다 지쳐
야 창문 좀 열어봐
귀찮아 니가 해
- 백은선, 「가능세계」 부분
인용된 부분만 보더라도 연마다 어긋나고 모순되고 충돌하는 다양한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있다. "바지 자비 자비라는 오타" "비늘과 새로 배운 칼놀이" "줄무늬 뱀과 젖은 솜에게 전해줄 큰 가방)" "이야기할 입과 듣지 않을 귀" "가장 많은 말과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등이 어휘 차원에서 발생하는 모순형의 아이러니에 속한다. 제목인 '가능세계'에 견주어볼때 모든 문장은 불가능의 세계를 반대 진술하는 아이러니로 해석할 수 있으며, "허물을 벗을수록 비대해지는 이상한 몸" " (0)에 가까워지는 줄무늬 뱀" "없어도 없고 싶은 없는 것" "이미 실패했지만 다시 실패하고 싶다" 등은 역설을 내포한 시적 진실의 아이러니에 가깝다. 또한 시의 전개 과정에서 진술된 앞의 문장을 반대로 진술함으로써 전체 문맥에서 극적전환의 아이러니가 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손을 잡아도 기분이 없는 밤 밤을 떠올리는 빈 나무 의자 의자가 되기 전 나무가 가졌을 그림"에서 처럼 음성적 인접성에 의해 발생하는 비현재적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아이러니의 용광로처럼, 매 구절이 복합적으로 아이러니를 구축하게 된다는 데서 포스트모더니즘 아이러니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지닌 아이러니의 근본은 열 쪽이 넘도록 길고 장황하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불안정하고 드러나고(감춰지고) 무한한 아이러니'의 양상에 해당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의로서의 의미는 실종되는데, 이 시 자체가 단일한 의식으로부터 생성된 일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별개의 단편적 진술에 의한 '아무것도 아닌 파편들이 끝없이 계속되면서 시적 의미는 판단 정지 상태로 지연되고 보류될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어떤 것도 가치가 없는 것' 혹은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효과 없는 반복으로 가득 차고 싶다"라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이를 대변한다. 이러한 형식은 시인 스스로 혼종
(hybrid) 혹은 미장아빔 (mise en abyme)'이라 명명한 바 있는, 아이러니한 삶 자체를 비현재적으로 모방하는 포스트모던한 픽션이자 수사에 해당한다. 중첩되는 감각이나 이미지, 목소리나 이야기 등의 혼종을 통해 인식의 혼동을 일으킴으로써 아이러니를 발생시키는데, 이때 상상되고 발명된 '가능세계'의 리얼리티는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공간)도,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확정적인 부정형식은 모든 것에 동의하면서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
한 시적 주체의 감정이나 상태, 생각 등을 숨기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단일한 정의 혹은 맥락을 거부하는, 분열되고 위장되는 다변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목소리들의 이러한 불일치를 통해 세계와의 불화에 기꺼이 '동의'를 표한다. 불협화음이 난무해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미결정의' 아이러니한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 출처: 정끝별 <시론 > p236-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