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수호지 - 수호지 61
- 산채의 새 주인
동경의 천자로부터 출동하라는 긴급 명령을 받은 훈련 사령관 단정규와 위정국은 즉시 행동에 옮겨
정예 군사를 뽑고, 무기, 안장, 군량 등을 점검하고 있으려니까 연락병이 숨을 헐떡거리며 왔다.
"양산박의 관승이 오천 대군을 이끌고 이 능주 고을을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군사에게 출동 준비를 시킨 다음 성 밖으로 나가 싸움에 유리한 진형을 짰다.
관승이 선봉장 깃발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와 단정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간도 쓸개도 없는 자야. 감히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우리 앞에 나타났느냐?"
"내 말을 들어 보게나. 지금 천자님은 총명을 흐리게 하는 간신배에 둘러쌓여 나랏일을 그르치고 있소."
"시끄럽다!"
단정규가 화가 나서 말에 박차를 가하자 위정국도 채찍을 휘두르며 언덕 중앙으로 나왔다.
한 사람은 마치 검은 뭉게구름과 같이 달렸고, 또 한 사람은 타오르는 불길같이 세차게 말을 몰았다.
관승이 청룡도를 들고 나가려하자 왼편에 있던 선찬과 오른편에 있던 학사문이 대신 응수하러 나갔다.
네 필의 말 발굽 소리가 어지러운 가운데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찬 바람을 일게 하고,
창과 창이 부딪혀 튀는 불똥은 살기를 뿜었다.
이렇게 한참을 어울려 싸우다가 단정규와 위정국은 힘이 달리는지 자기네 진지로 도망쳤다.
선찬은 위정국을 쫓고, 학사문은 단정규를 쫓고 있는데, 갑자기 붉은 기를 펄럭이며 붉은 갑옷을 입은
4, 5백 명의 군사가 오랏줄을 던지고 갈퀴와 작살을 내밀어 말과 함께 선찬을 사로잡았다.
학사문은 검은 갑옷의 복병에 에워싸여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두 장수가 이렇게 창피한 꼴을 당하자 관승도 도리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그때 임충과 양지가 이끈 군사와 손립, 황신이 이끈 부대가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관승도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선찬과 학사문을 산 채로 잡아 성 안으로 돌아온 두 관군 사령관은 능주 지방 장관 장태수로부터
금 백 냥씩을 하사받았다.
"저 두 산적 두령을 곧 동경으로 호송하라."
선찬과 학사문을 호송하는 호송 군관 3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마른 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선 산 밑을
지나는데, 갑자기 징 소리가 한번 울리더니 한 떼의 강도가 나타났다.
무리들의 선두에 선 자는 양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초정, 포욱과 힘을 합친 이규였다.
포욱이 내닫기가 무섭게 한칼로 호송 군관의 목을 쳐 버리자 군사들은 선찬과 학사문을 실은 함거를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이규가 함거 속에 묶여 있는 선찬, 학사문을 보고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두 형제는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소?"
"부끄럽소이다."
그날 밤 이규, 선찬, 학사문, 초정, 포욱은 고수산 산채에서 몸을 푼 뒤 새벽을 기해 능주로 떠났다.
한편 선찬과 학사문을 도중에 강도에게 빼앗겼다는 보고를 듣고 단정규와 위정국은 펄펄 뛰며 분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관승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단정규는 이를 부드득 갈며 갑옷을 걸쳤다.
"오냐, 꿩 대신 닭인지, 닭 대신 꿩인지는 모르지만 두 놈 놓친 분풀이로 관승을 잡아 와야겠다."
단정규는 칼을 높이 들고 춤을 추며 나는 듯이 달려나갔다. 관승과 단정규는 한덩어리가 되어 공봉전을
벌이기를 50여 차례, 관승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꽁무니를 보였다.
"게 섰거라!"
단정규는 승리의 기분에 들떠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추격했다.
힌참 도망가던 관승은 별안간 돌아서며,
"이 미련한 사람아, 말에서 내려 항복할 때는 지금뿐이네."
하며, 기합 소리와 함께 청룡도 등으로 단정규의 허리를 후려치자 단정규는 균형을 잃고 말 위에서 뒹굴었다.
관승은 급히 말에서 내려 단정규를 안아 일으켰다.
"장군, 실례했소이다."
단정규는 땅에 엎드려 무장답게 항복을 했다.
관승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동지가 되기를 권하자, 단정규는,
"패장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생각보다 쉽게 머리를 숙였다.
두 사람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진으로 돌아오자 임충은 눈을 껌벅이며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단정규가 양산박의 형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 위정국이었다.
위정국은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와 싸움을 걸었다.
관승과 맞붙어 싸우기를 10여 합, 그러다가 위정국은 자기 진영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승이 뒤쫓으려 하자 단정규가 큰 소리로 말렸다.
"장군, 추격하지 마시오!"
관승이 말을 멈추자 능주군 진지에서 5백여 화병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몸에는 붉은 갑옷을 두르고, 손에는 관솔불을 든 화병들은 불지르기를 위한 마른 갈대를 잔뜩 실은
50여 대의 불수레를 앞뒤에 따르게 했다.
화병들은 등에다 유황 등 갖가지 화약이 든 호리병을 들고 번개같이 내닫더니, 일제히 불을 질러
사람이고 말이고 닥치는 대로 화상을입혔다.
인마가 울부짖는 처절한 비명과 신음 소리는 생지옥을 연상케 했으며, 전열이 무너져 도망친 관승의 군사는
40리 밖까지 후퇴하여 가까스로 진을 치게 되었다.
위정국은 승리를 거두고 기분 좋게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이미 매운 연기가 천지를 뒤덮고,
활활 타는 불길은 하늘을 찔렀다.
이것은 이규와 초정, 포욱이 고수산 패거리를 데리고 능주의 뒤로 돌아 북문을 쳐부수고 입성하여
성 안에 불을 지르고 창고에 쌓인 식량을 약탈한 것이다.
위정국이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되돌아 서려는데 벌써 관승이 추격해 왔다.
능주가 이꼴이니 위정국은 별 수 없이 옆 고을로 도망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단정규가 관승, 임충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위정국은 강직한 사람입니다. 힘으로서는 안 되고 마음을 녹여야 합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성 안으로 들어가 그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관승과 임충은 그 말이 옳다 하여 단정규를 위정국이 있는 성으로 .보냈다.
저녁이 되자 아닌게 아니라 단정규와 위정국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관승의 진지로 왔다.
양산박에서는 관승이 크게 이겼다는 선발대의 보고를 듣고 개선군을 환영하기 위해 호수 어귀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송강은 노준의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증가오호의 교관인 사문공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노준의가 사문공을 잡아오자 모든 두령은 충의당에 모여 조개의 영혼을 위로하고 원수를 갚았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자 송강은 양산박의 새 주인을 뽑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용이 제일 먼저 의견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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