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4장 46-50절『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성경을 이루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언약의 성취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성경은 바로 구약성경이다.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시고 순종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하므로, 이전의 것은 무효화되고, 새사람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신다.
가장 먼저 언약을 체결한 사람은 아담이였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태어난 아담을 에덴동산에 넣어주시고,『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므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 불순종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하나님이 동물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동물의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 새언약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의『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자의 후손은 장래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언약 속에 들어가지 않은 자를 모두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아시대 대홍수를 통해서 노아와 그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멸절시켰다. 모든 인간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할 그런 존재라는 것을 물심판(물세례)를 통해서 알려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하셨다. 창세기 9장 9-13절에서『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 언약은 장차 불로 심판하실 것(불세례)을 예고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6-7절에서『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세상의 모든 인간은 불심판을 받아야 할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세번째 언약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장차 약속의 자녀와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언약으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이 동물들을 죽여서 반으로 갈라놓았을 때 하나님의 불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이후 13년간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브람이 99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할례를 행하게 하셨고, 다음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몸이 죽은 것같이 되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약속의 자녀를 믿었는데, 그 자녀가 바로 이삭(그리스도의 예표)이었다. 할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고, 약속의 자녀 이삭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이 부활시키는 믿음인 것이다.
그 다음의 언약이 바로 시내산에서의 언약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새긴 두 돌판을 주셨다. 그러나 모세가 두 돌판을 받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돌판을 깨어버렸다.
처음의 돌판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셔서 모세에게 주셨으나,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아 회복은 되지만, 그 휴유증은 남는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첫번째 돌판과 두번째 돌판은 마치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과 같은 모양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고, 두번째 사람 아담은 영의 몸을 주었다. 따라서 두번째 돌판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세워진 성전과도 같은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깨어지고(죽고) 두번째 돌판이 새로 새겨져(다시 태어나), 언약궤 안에(성도의 심중의 성전 안에) 들어있다. 두번째 돌판은 새로운 법으로서 그리스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9장 21절에서『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두번째 돌판을 받고,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정탐꾼은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그 말을 믿고 통곡하며 울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새언약을 맺으신다. 그 새언약은 가나안 입구인 모압 땅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새사람들에게 당부하는 언약의 말씀이었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며,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그래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맹세까지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 성도에게도 일곱 족속이라는 육적 자아가 있다. 그래서 심령 속에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간 과정에서 소금언약, 제사장언약, 다윗언약 들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시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언약을 깨어버렸다. 그 내용들이 예레미야에서 언급된다. 예레미야 1장에서 백성들은 이방민족의 침략을 받아 지배당하고 백성들은 끌려간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유배되어 바벨론에서 고초를 겪고, 회개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 32-34절에서 새언약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께 대한 언약을 지켜나갔지만, 이후 다시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정작 메시야로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신성모독죄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들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에『내가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얼마나 원하였는냐』라고 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유월절 음식을 먹는 것은 예수님이 대속물로 죽는 의미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9-20절에서『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켜 주신다는 언약이 바로 새언약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수님이 군인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잡히시므로, 제자 중 한 사람(베드로)이 칼로 대제사장의 귀를 쳤다. 인간적으로 보면 용감한 일이기도 하다. 마가복음 14장 50절에서 나머지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고, 그 주위를 배회하다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게 된다.
오늘날도 성경을 이루려 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로 나뉘어 진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와 자신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지만 죽은 예수를 멀리서 구경하는 자로 나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하지 않으면 성경(언약)을 이룬 자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