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방지법도 외국여성엔‘예외’
성매매없는 대한민국 만들기 ⑧ 성매매 유린 당하는 외국여성
국내에 머물며 클럽 등지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외국인 여성들 대부분이 기획사를 통해 E-6(예술흥행)비자를 발급받아 들어온 경우다. 동두천시 광암동의 한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일하는 러시아 여성들이 경찰과 인권단체 회원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문화일보DB>
■ 말뿐인 외국인여성 특례조항
국내에서 인권이 유린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외국인 피해여성들이 성매매특별법에 특례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 등 처벌을 받고 있어 ‘말뿐인 법적 보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합법적인 비자가 없는 데다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경찰의 신고를 꺼리거나 상담소의 접근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처음으로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한국인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러시아인 추그노라 마리나(20·여)와 이를 알선한 한국인 이모(33·남)씨를 구속하고, 다른 러시아 성매매 여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지난 8월부터 인터넷 채팅사이트와 전단지를 통해 남성들에게 러시아여성들을 알선하고, 마리나는 지난해 11월 강제출국 당한 후 올해 다시 이름을 바꿔 입국하는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출입국을 반복하며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법적 보호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다.
김민정 이주여성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에서 외국인 여성 특례 내용은 외국인 여성이 성매매 범죄를 신고할 경우 출입국관리법 규정에 의해 강제퇴거명령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며 “단기 비자 등으로 불법 체류중인 외국인 여성이 나서서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이어 “사건에 대해 공소가 제기되면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 스스로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대부분이 국제적 범죄 조직단에 의해 국내 클럽으로 인신매매된 상황인데 국내 성매매 피해여성들도 입증하기 어려운 선불금 등의 피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제5조 지원시설의 종류) 역시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이 3개월 이내의 범위에서 지원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생색내기용 ‘피해자 보호’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의 한 쉼터 운영자는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강제출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를 입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뿐더러 쉼터나 상담소에 입소해도 성매매 피해 사실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언어와 한국인에 대한 오해의 장벽을 가지고 있어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어 3개월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주여성에 대한 합법적 노동권 보장 없이는 외국인 여성들의 성매매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국장은 “러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들어온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불법 체류하거나 강제출국 당해도 다시 들어오게 된다”며 “근본적으로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을 줄이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노동권 보장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여성인권연대에 따르면, 법무부가 지난해부터 외국인 여성들의 유흥업소 진출을 막기 위해 우선적으로 러시아계 여성 무희들에 대해 E-6(예술흥행)비자 발급을 중단하면서 ‘위장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거나, 관광비자를 통해 입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그들은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하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이는 결국 일종의 ‘선불금’이 된 상태에서 유흥업소에 팔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설명이다.
■ 인신매매에 시달리는 외국여성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 대부분이 속칭 외국인 연예 공연 기획사를 통해 유입되고 있어 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성매매 및 사기 등 범죄 근절을 위해 이들의 유입 통로 차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여성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외국인여성쉼터 두 곳에 입소한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모두 E-6(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여성. 절차는 간단하다. 근로자 파견사업허가를 받은 기획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재외공관을 거쳐 외국여성들에 대한 연예인 비자인 E-6비자를 발급받는다.
법무부가 허가하는 이 비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음악, 미술 등 예술활동과 연주, 운동경기 등의 활동에 종사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합법적으로 발급해주는 비자다. 현재 러시아 무희들에 대해 E-6비자가 제한돼 기획사측은 관광비자나 단기방문사증으로 발급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외국여성들이 한국에 유입되면 기획사는 이들을 곧바로 클럽으로 넘기고 폐업 신고를 하거나 자취를 감춘다. 이때 여성들은 입국시 비행기 삯과 수수료, 알선료, 체류비, 심지어는 옷값과 화장품값이 더해져 클럽 주인에게 팔려진다.
지난해 여성부가 실시한 ‘한국의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조사’결과, 여성들은 클럽주인이 부담한 금액을 갚기 위해 월 평균 78만원에,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휴일 없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국 전 계약서에 작성한 계약기간, 월급, 근무시간 등에 대한 규정과 복지에 관한 사항이 적힌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이것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쉼터에 입소한 외국인 피해여성 중에는 월급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한달에 35만원씩 월급을 받은 경우도 있다.
외국인여성상담소 한 관계자는 “외국여성들을 인신매매하는 전문 기획사들은 한번에 10여명씩 초청해 클럽으로 넘긴 후 바로 폐업신고를 하고 자취를 감춰버려 찾기가 힘들다”면서 “‘ㄷ’기획사에 의해 서울,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인신매매된 여성들의 신고가 들어오는 등 전문적으로 외국여성들을 알선하는 기획사의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어 당국의 단속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 대안마련 어떻게 하나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에 대한 재활 및 일자리 대책의 일환으로 이들을 쉼터나 상담소에서 동료 상담 및 통역 활동가로 키우자는 현실적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체류 기간 연장 등 법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가톨릭서울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머물고 있는 쏘냐(러시아·가명)는 이 곳 쉼터에서 상담교사의 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다. 성격이 활달하고 이해심이 많은 쏘냐는 말하자면 쉼터의 큰언니다.
그는 가끔 쉼터로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들의 구조 요청 전화가 오면 러시아어로 침착하고 편안하게 현장 상황을 전해듣고 대처 요령 등을 전달한다. 또 새로 입소한 사람들이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쉼터의 생활 규율을 안내하고 불편한 사항들을 접수하고, 이들이 피해자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임금체불이나 성매매피해사실 등에 대해 깊게 상담하고 법적 처리 절차에 필요한 서류 등을 작성한다.
하지만 쏘냐는 이 달 말이면 비자가 만료돼 본국인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한다. 쏘냐의 역할로 조금이나마 외국인여성들에 대한 상담 및 운영 업무를 덜었던 상담교사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 관계자는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들의 특성상 한국에서의 성매매피해사실을 드러내고 심적치료나 법적대응을 하려면 충분한 상담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들의 자활을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와 마음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중간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 들어와 성매매피해를 입은 여성들 중 현장활동가 의지 및 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활 및 일자리 대책의 일환으로 체류자격을 인정하고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등 국가의 실질적인 법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별법 시행후 포주들 日·加등지로 인신매매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영업이 어려운 성매매업주들이 고용된 여성을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 해외업소에 팔아 넘기는 사례가 늘어나 성매매 문제가 국제적 인신매매 문제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 등 관계부처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아직 없어 정부의 성매매 방지 대책에 구멍이 뚫렸다.
최근 사업상 마카오에 출장을 다녀온 한 기업인은 “현지 유흥업소에 들렀다 만난 한국인 성매매여성으로부터 한국에 있는 업주에 의해 강제로 마카오에 오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마카오의 성매매업소에서 한국인 성매매여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문제는 해외에서 여성들이 입게 되는 성매매 피해에 대해서는 성매매특별법의 보호대상이 아닌 현지법에 저촉되는 사항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현재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처럼 강제출국당하거나 처벌될 소지가 크다. 업주들의 인신매매 행위 역시 특별법의 구멍을 통과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장에서 성매매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이 같은 상황을 감지하고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 활동가는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 중에 업주로부터 해외로 나갈 것을 강요받아 도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일본 도쿄나 신주쿠 업소 마담이 직접 찾아와 면접을 한 경우도 있다”며 “특별법 시행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자 업주들이 선불금이 있는 여성들을 일본이나 뉴질랜드, 캐나다 등지로 팔아 넘기거나 심지어는 홍콩으로 업소 전체가 아예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해외로 나가는 여성들은 브로커와 연계된 여행사를 통해 여권과 비자를 하루만에 발급받고 있다”며 “이는 출입국관리소를 낀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조직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책 마련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여권업무는 외교통상부가 담당하고 있고, 비자는 각국 대사관에서 담당하고 있다”면서 “출입국 관계만 봐서 성매매여성들이 인신매매되는지 법무부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감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