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민수기 32:1-5(27) 27, 359, 349, 397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이 땅을 우리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2,5)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백 년을 애굽 왕 바로의 종으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 맺어 주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60만 대군(약 200만 명)은 길도 없는 광야를 걸었습니다.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며, 찌르는 가시와 험악한 돌작밭을 40년을 걸어서 요단 동편까지 왔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언약 맺어 주신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이 모세에게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고 이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이니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고 여기서 살겠다’고 말했습니다.(1)
요단 동편 길르앗은 요단강으로 흐르는 실개천이 있었고 넓은 초원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볼 수 없었던 흐르는 물과 무성한 초원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들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다고 했습니다.(1) 그들이 지나온 광야에는 가축을 키울 수 있는 푸른 목장이 아닙니다. 어떻게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들이 심히 많은 가축을 가질 수 있게 된 원인은 31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요단 동편에 길르앗 땅에는 이미 아다롯과 기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보온에 미디안의 다섯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3; 31:8)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원수라고 하시며 모세에게 그들을 쳐서 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1,2)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천 명씩,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하여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이고 남자를 다 죽였습니다. 그들의 촌락을 다 불사르고 가축과 양 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노략한 것과 사람과 짐승을 다 빼앗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31:9-12)
그들이 빼앗은 탈취물이 얼마나 되는가를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양이 육십칠만 오천 마리요, 소가 칠만 이천 마리요, 나귀가 육만 천 마리’,(32-34) 그 외 계속해서 양이 삼십만 칠천오백 마리, 양이 육백칠십 마리, 소가 삼만 육천 마리라(36,37)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안장 반지, 귀고리, 목걸이들, 금이 도합 만 오천칠백오십 세겔이었습니다.(50,52)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탈취한 모든 것의 절반은 싸움에 나간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31:25,27) 르우벤과 갓 자손은 목축업을 하였기에 가축들을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목축해서 많은 가축 떼를 가진 것이 아니라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고 빼앗은 전리품으로 많은 가축 떼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많은 가축 떼를 가지고, 길르앗 땅을 보았을 때 그곳이 가축을 키우기에 좋은 곳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우리에게는 가축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4,5)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넘쳐 흐르는 요단강 물과 넓은 초원을 보았을 때, 그곳이 마치 지상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는 오래전부터 가나안 족속을 비롯한 일곱 족속이 집을 짓고 농사하며 대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성을 쌓고, 군대를 훈련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을 건너고,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고 그 땅을 빼앗아야 합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고 말했습니다.(6)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오늘의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국보다 세상을 더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것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땅을 우리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은 세상이 좋아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매우 위험하고, 매우 불행한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라고 크게 책망했습니다.(7)
모세는 38년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군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열 명의 정탐군들이 낙심케하는 말을 하므로 해서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 한 사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었던 것을 말했습니다.(8-13)
모세는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한 말을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케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낙심하게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용기를 잃게 될뿐 아니라, 믿음도 흔들리게 됩니다. 낙심케하는 말은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멸망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고 무서운 책망을 했습니다.(15)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여호와를 떠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다고 했습니다. 낙심하는 말을 듣고 그들이 낙심하여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죽었듯이 요단을 건너지 않으면 세상에서 유리하며 불행하게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신앙적으로 모범적인 성도가 낙심하는 말을 했을 때 많은 성도들에게 미치는 악한 영향이 얼마나 무섭고 큰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모세로부터 이러한 책망을 듣고 그들은 잘못을 깨닫고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족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성읍을 건축하여 우리 아이들이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건너가서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16,27)
우리가 요단을 건너고 앞장서서 나아가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가나안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이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사오며, 가나안에는 기업을 받지 않고 요단 동편에 기업을 받겠다’고 말했습니다.(16-19)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장하고 건너가서 싸우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다 무장하고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의 원수를 쫓아내시기까지 싸우면 너희는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너희의 소유가 될 것이지만,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라’고 말했습니다.(20-23)
그들은 ‘우리 주의 말씀대로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27)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그 땅과 그 경내의 성읍들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33)
그후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때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무장한 사만 명이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요단을 건너갔습니다.(수4:12)
그들은 끝까지 앞장서서 싸우고 가나안을 치고 빼앗았습니다. 여호수아가 빼앗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이미 모세가 약속한 대로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은 요단 동편 길르앗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었습니다.(수12:8)
우리가 어렸을 때는 헐벗고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성도들의 믿음은 대단한 열심이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부흥회를 하면 이웃 교회 성도들이 다 모여 집회를 마칠 때까지 먹고 자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성도들은 주님 고대가를 즐겨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주님 조금 더 있다 오세요’라고 한답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아서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가 좋아지니까, 굶주렸던 옛날을 다 잊어버리고 믿음은 식어지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너지 않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사탄 마귀와 싸우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전도나,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맡겨준 직분에 충성하지 않겠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게 되고, 하물며 예배드리는 것도 바쁘다면서 자주 빠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 주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기보다는 세상을 즐기며 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범죄가 됩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요단을 건너지 않고 여기 살겠다고 말한 것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가축을 가지지 않았다면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기가 어렵고 가난했을 때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삶이 넉넉하니까 교회를 섬기는 것이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어집니다. 참으로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주셔서 세상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살게 되니까, 교회를 섬기는 일이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즐겨하지 않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23)고 무서운 경고를 했습니다. 여호와께 범죄가 되어 심판과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은 모세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 앞서 요단을 건너가서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모조리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하므로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이 그들이 원하는 요단 동편에 돌아와서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도 되돌아보면 광야와 같은 험악한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이제 머잖아 영원한 천국에 보입니다. 믿음이 변하여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멸망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교회를 잘 섬기고 열심히 전도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맡겨주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잘 살다가 주님 오시는 날,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안식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