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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늪
미국에 있는 10여 개 개신교 교단이 모여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하자는 데 대해 의견을 모았다. 통합하는 교단의 이름은 ‘Christian Church’로 하고, 본래 자기 이름은 괄호 안에 두자는 제안이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고 말았다. 끝까지 약속을 지킨 교단은 제자교회뿐이었다. 지금 제자교회 공식 명칭은 ‘Christian Church (Disciples of Christ)’이다. 제자교회의 별명이 ‘괄호 교단’인 이유다. 제자교회 일치부 책임자로 일하는 최승언 목사에게 들은 말이다.
한때 미국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부요한 나라였다. 다양한 교단과 교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한 사역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펼쳐나갔다. 한 마디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이웃에게 친절을 베풂으로써 그 부요함을 드러냈다.
140년 전인 1885년, 조선 땅으로 젊은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를 보낸 배경이다. 감리교회의 경우 당시 남북전쟁이 진행 중임에도 분열 상태였던 미감리회와 남감리회는 한국에서 협력하였다. 선교지에서 하나의 감리교회로서 교회일치를 이룬 셈이다.
오늘의 미국은 피난민이자 개척자로서 청교도가 신대륙 뉴잉글랜드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맨 처음 지은 집은 성전이었다. 성전은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예배당뿐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주민들이 모여 회의하는 주민자치센타로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예배당은 공동회당(Common House)으로도 불렸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특히 시골 교회들은 건물을 아주 단순하고 간소하게 짓는다고 한다. 공간은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물론, 청소년들을 위한 체육관 역할도 하고, 때로는 타운홀 모임도 열고, 또 선거 때는 투표소로도 사용된다. 최소한 재정을 들여 창고 건물처럼 간단하게 벽을 세우지만, 십자가를 높여 이곳이 거룩한 하나님의 집임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일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따듯한 시민사회를 품었다.
연합감리교회(UMC) 세계선교부에서 일하는 김진양 목사의 경험이다. 지역 교회에서 일하던 어느 날 보이스카우트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이글스카우트를 심사하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대부분 보이스카우트 활동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니 목사도 선발에 참여한 것이다. 보이스카우트 방침은 무신론자를 금하고 하나님을 성실히 섬길 것을 선서하게 한다. 이글스카우트가 되려고 지망한 젊은이들은 대체로 자기소개서에서 삶의 목적이 사회봉사라고 하였다. 교회도 그런 의미에서 다닌다고 했다.
그런 미국을 세계가 걱정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고 때문이 아니다. 부자 1%가 차지하는 부의 초집중, 경제적으로 중간 계층의 몰락, 여전히 거듭되는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혐오, 무분별한 총기 사용 등은 오랫동안 직면해 온 이슈들이다. 점점 극단화하는 정치 진영 간 대립, 세계에서 자임해온민주주의와 공동이익의 보루 역할에 대한 포기 그리고 대통령의 거친 입은크게 실망스럽다.
도대체 부요했던 복음적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마크 릴라)에 나오는 미국교회 보수화 경향에 대한 분석이다. 처음에 주류 교회는 도시의 소수 민족, 이웃 공동체,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런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알고 지냈고, 따듯한 관계였다. 그런데 교외지역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기분에 따라 다양한 교회에 나가며 대형교회, 스타 목사를 쇼핑하였다. 교회 안에서 기독교 교리, 죄의식에 대한 가르침은 커갔지만, 사회적 책임 의식은 부족하게 되었다.
하긴 지금 우리가 미국교회를 흉볼 처지는 아니다. 미국에서 이념논쟁에 동원된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단적 보수교회를 탓할 입장이 못 된다. 예수 복음과 무관한 맹목의 늪에 빠져 길을 잃은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교회 생태계를 파괴한 모모한 대형교회들은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혐오에 앞장선 까닭에 공교회의 선교를 가로막고 있다. 얼마 전까지 사회가 교회를 걱정했는데, 이젠 아예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과연 부요하다고 말할 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