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청결한 자(마 5:8)
할렐루야! 설 명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시고 계십니까?
우리 한마음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자녀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족과 고향을 멀리 떠나 살아가던 사람들이 명절을 맞이하여, 살아계신 부모님 얼굴을 보고자, 그리웠던 친구들 얼굴을 보고자, 때로는 꽉막힌 도로를 마다하지 않고 고향 땅을 찾아갑니다. 얼굴 한번 보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어느 날,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도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8-9)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빌립처럼, 누구나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합니다.
다윗은 얼마나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했는지, 시편에 보면,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8-9, 11)라는 애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평생을 수도원에 살면서, 하나님 보기 위해, 기도와 금식으로, 명상으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소망이요, 최고의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간의 육체보다는 언제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언 4:23절을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복과 저주가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깨끗한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죄의 더럽힘이 전혀 없는 완전한, 또다시 죄를 지을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깨끗한 옷을 입고, 경건한 자세로, 깊은 산 속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바리새인들처럼,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하루 종일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겉모습으로, 거룩한 척, 경건한 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5,27)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시면서,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겉모양을 깨끗이 하노라고 애썼고, “종교적 의식을 완벽하게 지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하여, 마음의 깨끗함을 얻을 수도 없었고, 원하는 행복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또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외면에 나타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내면에 있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십니다.
어느 면으로 볼 때, 오늘 우리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그런 이중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로, 인간의 겉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게 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만, 인간의 속은 그냥 그대로, 추하고 더러운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흉악한 생각을 너의 속에 품고 있을 작정이냐? 너의 마음에서 악을 씻어 버려라.”
그렇습니다. 흉악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안될 것입니다. 악은 그 어떤 모양이라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신 15:9)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의 산에 오르고,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같이 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므로써, 하나님과 멀어졌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는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 욕심, 정욕, 시기, 교만, 미움, 혈기” 등등,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썩어집니다. 이런 것들이 점점 장성해서, 마음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고, 이것이 밖으로 나와, 행동으로 나타날 때, 더러운 행실이 되고, 우리 입으로 나올 때, 더러운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이와 같은 더러운 마음이 깨끗해지기까지는 결코 참되고 완전한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교회 생활을 오래 하였다고 하여도, 아무리 교회의 직분이 중요하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연수와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산상수훈을 통하여,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기에,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날마다 싸워야만 합니다.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는 거짓입니다.
사람들은 남을 속이면, 자기가 이기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경기는 상대방을 속이면, 대개 이깁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이 곧 자기를 속이는 것이 됩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는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러운 마음이고, 어두운 마음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는 절대로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은 인생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세상적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고, 위험한 것 같아 보여도, 정직하게 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어, 결국, 세상과 인생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면, 잠시는 이기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지게 되어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정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는 욕심입니다.
욕심을 갖게 되면, 사람이 어리석어집니다. 마음과 생각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욕심에 눈이 먼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욕심은 눈을 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욕심처럼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어리석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욕심과 싸워 이길 수만 있다면, 그는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짓과 욕심과 같은 더러운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속에 비치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고, 조용한 마음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거짓과 욕심이 가득한 이러한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습니까? 우리의 더러운 옷은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깨끗해질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청결이란, 헬라어로 “카타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기독교에만 있는 특별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결”은 본래 깨끗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러웠던 것을 깨끗하게 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카타로스”라는 말은 어느 정도 깨끗한 것이 아니라, 티가 하나 없이, 아주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청결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썩이지 않은 마음, 갈리지 않은 마음, 일치한 마음, 깨끗한 마음, 정화된 마음, 순결한 마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고 깊은 계곡의 맑고 맑은 물처럼, 속이 잘 들여다보이는 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깨끗하게 만드셨는데,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은 뿌연 마음, 흙탕물로 가려진 마음, 이것저것 혼합물이 썩인 복잡한 마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서 17:9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5:17-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 더럽고, 추한 생각으로 가득찬 마음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뿐인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라고 노래한 시인 윤동주가 쓴 “참회록”이라는 시에는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시인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더러워진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겸손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게 하여 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영국에 젊은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십대에 변호사가 되어서,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어느 날, 국회의사당 문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연설을 준비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연설 도중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정신착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더러운 존재다. 나는 쓸모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당신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세요.”
10년 동안, 고통당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서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보혈로 나를 씻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졌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그의 마음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감격을 쓴 찬송시가 찬송가 258장입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그는 윌리암 카우퍼라는 유명한 영국의 변호사입니다.
스가랴 13:1절을 보면,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라고 했습니다.
윌리암 카우퍼는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다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 보혈이 내 죄와 더러움을 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252장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로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감으로, 결국에는 그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예배드릴 때, 골방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20)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정한 마음, 깨끗한 마음, 정직한 영을 새롭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 속에 정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날마다의 삶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뵙게 될 영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며, 깨끗하고 청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