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6. 서른여덟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염성섭 장로, 조용림 권사 (549)
성경말씀 마가복음 8:11~13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홍시
찬송 395 너 시험을 당해
광고 코로나19 델타 변이 3,200명대. 추석‘ 많은 자녀들께서 다녀갔습니다.
추석 연휴에도 아랑곳없이 근무에 임하신 우리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찬송 4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어릴 때부터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우리 성도님들은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묵사인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둥근 보름달처럼 아름다웠으면 참 좋겠다.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결국 따지고 보면 돈의 문제입니다.
이것 때문에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 아니겠습 네가?
그러니 우리가 산다는 것은
유치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권사님들께서 텔레비전 앞에서 고개가 떨어지도록 집중하고 계실 때
제가 개구쟁이 짓을 하곤 합니다.
신문지를 펴서 침을 발라 텔레비전 화면에 붙여 놓습니다.
그리고 돈 100원씩 내놓고 텔레비전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백 권사님께서 참 추잡스러워 죽겠네!
목사님, 1,000원도 아니고 100원 받아서 무엇하게요.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 웃습니다.
이처럼 우리네 인생도 추잡스럽습니다.
11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절,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절,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정말 바리새인들은 추잡스럽습니다.
목사인 저는 웃자고 개구쟁이 노릇을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방해를 놓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추잡스러운 힐난은
갈릴리 호수 서편 지역 달마 누다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세처럼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당신이 메시아라면
예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모세와 같은 기적을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는 이 세대는
지금까지도 표적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당혹스럽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기능을 상실 한지가 너무나 오래지 않습니까?
교회 꼭대기에서 빨강 십자가만 춥고 쓸쓸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메시아 됨의 진정성은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고 나서
부활을 통해서야 깨닫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난주 설교에서도 오병이어, 칠병이어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오천의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일곱 덩이로
사천의 무리를 먹이고도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갑자기 가수 김국진 씨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아 하하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표적이고 기적입니다.
가수 김국진 씨 노랫말처럼
우리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로만 살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고 표적입니다.
목사인 제가 목사가 된 것도 표적이고 기적입니다.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된 것도 표적이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기적을 행하면서도
기적을 거부하는 것 자체도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는 기적을 위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의 믿음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칠병이어의 기적도
예수께서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예수님의 삶이고 인생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실존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음도 기적이듯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13절입니다.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정부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요양시설 면회된다고 하니
서울, 부산 등에서 많은 자녀들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목사인 저는 코로나19 때문에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 이순상 집사님 효자, 김영배 씨도 아내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독신 아들을 먼저 보내고
속이 쓰라릴 텐데 어머님께 추석 인사드리러 오셨습니다.
어머님께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 빨리 좀 가세요.
오래전에도 80이 다 된 아드님께서 어머님을 뵈로 올 때마다
문에 들어서면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우리 어머니 빨리 돌아가시라고 기도해주세요.
그런데 모르는 분들은 이런 말 들으면 호래자식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목사인 저는 이 효자 아드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서울에 있는 딸도 추석 열차로 어렵게 내려왔습니다.
차편이 없으니 내려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목사인 저는 추석 연휴 동안에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새벽같이 나오니
함께 밥 먹을 시간조차 만들지 못했습니다.
고향 집에 내려왔는데도
회사 일로 찬밥이 되도록 화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 함께 모여서 차를 마시며 당부했습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목사인 저는 아직까지도 이기적이어서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빠처럼 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표적을 구하는 세상입니다.
아빠의 표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엄마의 표적도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산 것이 표적입니다.
언젠가
함열 장날에 사다 심었던 대추나무에 큼지막한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그 대추 열매를 따서 먹는데 달짝지근 맛있습니다.
그런데 대추가 저절로 익어지겠습니까?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이 몇 개
대추가 혼자서 저절로 둥글어 질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이 몇 개
그러니 우리네 인생 자체도 표적이고 기적입니다.
엊그제 우리 형제들이 우리 요양원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님을 뵈로 왔습니다.
점심을 함께 하고서 찻집에 가서 따듯한 차를 마셨습니다.
이제 막둥이 장로님까지 육십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이제는 세상을 탓하지 말자.
나이가 들었는데도 험담만 하고 불평만 하는 것도 추하더라.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그러면서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인생에 로또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로또입니다.
가을 홍시감처럼 익어지는 성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