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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습니까?”입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그들의 생일까지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애완견, 애완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장례를 치르고 화장해서 유골을 보관하고 제를 지내는 일이 보편화되어버렸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을 생각은 안하고 개를 입양하여 키우겠다고 하고, 덴마크에서는 개를 남편이랍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네덜란드에서는 개에게 유산을 상속합니다.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개 아프다고 회사에 결근계를 냈는데 가족 아니라고 안 받아주자 법원에 고소를 해서 결국 이겼습니다. 개도 가족으로 인정하여 아픈 개를 위해 결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개를 인격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인간성 상실이고 타락일 뿐입니다.
불교에서 하는 템플스테이 행사나 법회는 개나 고양이도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종교 선호에서 젊은 층의 반응이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교회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빈자리를 채우려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데리고 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짐승과 달리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영혼이 없으므로 호흡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지만 사람은 영혼이 있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됨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전3:19).
따라서 개와 고양이는 죽음이 다가와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않아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사망에 이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이 있다는 것, 너희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신뢰하여 의지하는 것을 두었다는 것, 안식일을 거룩히 여겨 지키지 않는다는 것, 정직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거짓된 추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한다는 것,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으므로 가난한 자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 것 등입니다.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도 늘 지적받은 죄들이 사실 이러합니다.
신앙은 참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틀리지 않고 맞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약속하시고 불순종하면 형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안 믿으면 지옥형벌이듯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한 복을 누리지만 불순종하면 그에 따른 형벌과 심판이 있습니다. 참 단순하지요? 그러나 이 단순한 것을 반대로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불순종하는 죄악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느9:29입니다.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겔 20:11,13에도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살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잘 되라고 가르치기 위해 계명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명령들을 준행하면 그 가운데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산삼을 드셔보신 분이 계십니까? 산삼을 먹을 때 산삼인 줄 알고 먹어야만 효력이 있습니까? 혹 산삼인줄 모르고 먹어도 효력이 나타납니까? 어느 산골에 사는 며느리가 귀한 산삼을 한 뿌리 캤습니다. 시어머니가 알면 먹을까봐 집 근처 도라지 밭에 잘 묻어두었습니다. 봄이 되자 시어머니가 도라지 밭엘 갔는데 특별난 도라지를 한 뿌리 캤습니다. 평소에 기관지가 안 좋았던 시어머니는 깨끗이 닦아서 먹어버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집에 와서 며느리에게 특별한 도라지를 먹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친정어머니 드리려고 숨겨둔 것인데 시어머니가 먹었으니 며느리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산삼을 도라지인줄 알고 먹었으니 그 효능은 어떨까요? 도라지 효능이 나타날까요, 산삼효능이 나타날까요? 수면제가 아닌데 수면제인줄 알고 먹으면 잠이 잘 드는 경우도 있답니다. 마찬가지로 쥐약인줄 알고 먹어도 죽고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쥐약인줄 모르고 먹었는데 왜 약효가 똑같이 나타나느냐고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순종해도 복을 받고 잘 몰라도 순종하면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불순종했다 해도 형벌이 따릅니다.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순종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라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육체라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쾌락을 향해서, 죄를 향해서 더 빨리 달려가기를 좋아하는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벼룩이 뛰는 본성이 있듯이 죄를 향하는 육체의 본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육신의 소욕을 이겨내야 합니다.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과 7절에서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육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내 건강, 내 능력, 내 재력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시험의 원인은,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와도 그랬듯이 결국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그래야 금세와 내세에서 복된 삶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마르는 것입니다.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면 뿌리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여 스스로 마르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마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으켜주시고 주저앉아도 일어날 힘을 주십니다. 다시 살 길을 열어주시고 생명과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되 진심으로 나아오고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잘 아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고 외식적이며 더러워졌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본문 10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패되지 않은 어린 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을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하길 축복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셨습니까? 그가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순전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식적이고 진실하지 못한 언행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의 어린아이 같은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법궤가 돌아올 때 그 앞에서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춤추며 기뻐했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아이같이 진실한 마음, 순전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기쁘고 좋아서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진실함과 순전함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누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는지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때 묻지 않고 구겨지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순진무궁함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서도 앞뒤 재지 않고 소위, 잔머리 굴리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겠다고 해도 그가 머리를 써서 아무도 못 알아보도록 시간을 바꾸든지, 창문을 닫든지, 다락방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든지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하던 그대로 여전히 행합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짐승도 다 죽이라고 했는데 자기 생각이 앞서 소와 양을 살려서 돌아옵니다. 그냥 순종하면 되는데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니 도리어 책망을 받습니다. 결국 버림받습니다. 그에게 순전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자에게 약속하십니다. 시116:6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본문 6절과 8절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에 대해 말씀합니다. 의뢰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고 의뢰하지 않는 자는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떨기나무는 메마르고 거친 사막에서 근근이 자라납니다. 물이 부족하여 잎을 뾰족한 모양으로 오므려야 겨우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전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어 있어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말씀한 것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든든한 뿌리 틈으로 물길이 지나니 가뭄에도 걱정 없고 때마다 싱그러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원천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처럼 해됨과 상함이 없습니다.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든든히 내렸기 때문입니다. 설령 광야 길을 지나는 고난의 행군이 있어도 그것은 정금으로 나오기 위한 단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나무인가보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여 의지하는 자는 그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뿌리를 내리는 자, 또는 불의함으로 치부하는 자는 어떠함을 이어서 말씀합니다. 11절에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다고 했습니다. 자고새는 자기 알이 아닌 다른 알을 훔쳐 와서 품는데 결국 새끼가 나중에 어미를 찾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고새를 비유하고 계실까요? 불의로 세운 것, 내 힘으로 모은 것은 이와 같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내 힘과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내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는 것은 자고새의 알을 품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심고 세우고 하나님과 함께 모으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생명과 평안을 더하여 주시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은 근심을 더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10:22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우상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냐, 세상을 사랑할 것이냐, 사람을 의지할 것이냐,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냐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대한 결론을 미리 말씀하고 있고 그 결론을 너희 열조를 통해 보았지 않으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너희가 하나님을 택할 것인지, 가나안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한 것처럼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을 향해, 지금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택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복된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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