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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별미, 긴 겨울밤 애틋한 추억이 떠오르다.
겨울, 그 들판의 나무들에게 / 김시천
한국의 美_겨울 별미
겨울 별미,
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유난히 생각나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포토그래퍼 김재이, 이승헌
한국의 美_겨울 별미
야식의 추억
‘찹쌀?떡! 메밀?묵!’ 1960~70년대 어린 시절의 겨울, 늦은 밤 고향 골목길에서 거의 날마다 들리던 소리다. 아마 내 고향뿐 아니라 다른 도시들의 골목길도 그랬을 것이다. 요즘 생각해도 좀 유별난 것은 그 어린 나이에도 달콤한 찹쌀떡보다 그 자체로는 별맛이 없는 메밀묵 생각에 군침을 삼키며 어른들의 기척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드르륵 마루문이 열리고 엄마의 발소리가 나면 조금 뒤에는 부엌 도마 위를 횡단하는 부엌칼 소리가 맛있게 들려왔다.
더구나 메밀은 위장의 열기와 습기를 몸 밖으로 배출하고 활성 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물질이 있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트림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식품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더욱 기이한 것은 국민 야식 치킨 가게는 초보 자영업자가 피해야 할 첫 번째 대상으로 손꼽히는데도, 수시로 문을 열고 또 그만큼 문을 닫는다. 그 밖의 야식집 역시 대부분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초라하고 서글픈 부침을 고집하는 기이한 의지라니.
채 썬 메밀묵에 고명을 얹고, 끓여둔 육수만 따로 담아 배달하면 될 일인데, 왜? 이미 눈치챘겠지만 고백하자면 이렇게라도 꼬드겨서 아련한 향수의 ‘태평초’를 실컷 즐겼으면 하는 속셈이다. 요즘은 메밀묵을 그리 쉽게 만나기 어렵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변화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치킨은 피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윈윈 아닌가.
겨울이 시작되면 동해·남해에서 지천으로 나는 물미역은 어떤가. 살짝 데치면 변하는 초록빛 예술과 빨간 초장의 만남. 제철인 청도미나리와 참기름 향 고소한 된장의 조화. 굳이 다락같은 영덕대게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 값싸고 키토산 풍부한 홍게도 있는 것을. 그러고 보니 또 어릴 적 추억으로 익숙한 야식거리들이다.
그런데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참에 아예 동업자나 구해볼까?
한국의 美_겨울 별미
겨울 별미로 문화를 만나다
계절과 무관하게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추운 겨울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던 겨울의 맛을 추억해본다.
김치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
김치를 침채(沈菜)라고 불렀는데, 겨울에 먹는 김치라고 해 ‘동침(冬沈)’이 되었고 오늘날 ‘동치미’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개성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동치미는 소금물로 무를 발효시킨 것으로 이후 평안도와 함경도를 대표하는 겨울 별식이었다. 날씨가 추운 북쪽 지역은 저염으로도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후가 온화한 남쪽 지방에 비해 소금이나 젓갈을 많이 쓸 필요가 없는 동치미를 만들어 먹은 것이다. 난류성 어류인 멸치가 풍부한 남부 지방에서는 멸치젓과 갈치젓을 김치에 넣었고, 새우젓과 조기젓은 주로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 사용했다.
찬거리가 마땅찮은 겨울, 호박김치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면 호박에서 우러나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경상도에서는 콩잎에 소금과 젓국을 켜켜이 뿌려 담근 단풍콩잎김치를 밑반찬으로 즐겼다. 함경도에서는 무청이 싱싱하고 많이 달린 무로 막김치를 담그는데 무는 동치미로, 무청으로는 허드레 김치인 무청소박이를 담갔다. 단단하고 작은 무를 전어젓으로 양념해 무와 전어를 통째로 삭혀 만드는 전어통무김치는 전어의 구수한 맛과 무의 시원함이 어우러진 남도의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추운 겨울, 별미로 건강을 기원하다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 날을 ‘작은 설’로 여겨 중요하게 생각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동지에 먹는 팥죽에는 새알심을 가족의 나이 수대로 넣어 먹기도 했다. 또 동지에 궁중에서는 임금을 위한 별식으로 전약(煎藥)을 만들어 진상했다고 전해진다. 전약은 우족을 푹 곤고기를 곱게 다져 대추와 생강, 계피, 꿀 등을 한데 모아 걸쭉하게 끓인 후 네모진 그릇에 탱탱하게 굳히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궁중 보양 별미인 전약은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만큼 영양가도 풍성하다. 재료에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식감이 부드러움은 물론 소화가 잘되고 겨울철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약과 더불어 궁중에서는 타락죽(駝酪粥)도 겨울 보양식으로 즐겼다. 쌀을 곱게 갈아 우유를 넣고 끓이는 타락죽은 소화를 돕고 영양을 보충하는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타락(駝酪)이라는 이름은 돌궐어의 ‘토라크’에서 비롯된 말로, 조선 시대에는 우유 제품을 통틀어 타락이라고 했다.
겨울 산사에서도 영양 보충을 위한 별미를 즐겼다
부각은 다시마나 깻잎, 고추 등에 소화 촉진 효과가 있는 찹쌀풀을 발라 말렸다가 기름에 튀기는 것으로 ‘불필요하게 많은 양을 만들지 않고, 자연의 순리와 질서에 순응해 음식을 대한다’는 사찰의 기본 조리 원칙에도 잘 맞는다.
그리운 겨울의 맛, 추억의 주전부리
요즘은 쉽게 만날 수 없지만 겨울이 되면 밤마다 찹쌀떡과 메밀묵을 들고 동네 골목길을 오가며 구수하게 외치던 메밀묵 장수의 기억도 선명하다. 군고구마와 군밤, 붕어빵의 등장은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상징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정서적인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붕어빵은 1930년대 일본에서 건너온 ‘다이야키’라는 빵에서 유래했다. 다이야키는 고급 어류인 도미를 형상화한 빵으로 값비싼 도미를 형태로나마 소비하고픈 서민의 마음이 투영되어 만들어졌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붕어 형태로 변해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치킨이나 피자를 사시사철 간식으로 즐기게 된 탓에 한때 붕어빵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복고적 정서가 문화적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종류의 붕어빵이 이 시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요즘 다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붕어빵은 슈크림, 치즈, 초콜릿, 고구마 등 개성 있는 재료로 배를 가득 채워 까다로운 현대인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호떡이 처음 나온 것은 1920년대, 우리나라에 정착한 중국인에 의해서라고 전해진다. 당시 많은 중국인이 인천 지역에 터를 잡았는데 값싸고 가장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개발한 것이 호떡이었다고 한다. 중국식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나선 시장에서 달콤한 호떡 하나 얻어 먹고 나면 추운 줄도 모르고 장 보는 내내 호들갑스럽게 조잘대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호떡 역시 한때 잠시 잊힐 만큼 드물게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붕어빵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부활한 것처럼 다양한 속 재료와 차별화된 조리법으로 전통 패스트푸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씨앗, 슈크림, 떡갈비, 아이스크림, 크림치즈 등 다채로운 속 재료를 넣어 만든 호떡이 젊은 입맛을 사로잡았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노상욱 참고 도서 및 사이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황혜성 지음, 현암사 펴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김치 백가지>(한복려 지음, 현암사 펴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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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